Friday, November 30, 2007

The Tragedy of the Decadent Liberals


<마카오 포대에서>


퇴폐적 자유주의자들의 비극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은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서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보수는 기존의 현실에 대하여 점진적 개혁을 원하고, 기존의 가치가 급속도로 바뀌는 것을 기질적으로 싫어한다. 반면 진보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혐오를 느끼고 가능한 한 신속히 변화가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건강한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은 일면 서로가 지향하는 목표나 방향에 대한 비판적 긴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한편의 전횡이나 타락과 추락을 막는 시너지 효과도 불러온다.

우리 사회와 같이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빠른 사회 안에서 일부 지식인들 중에는 자유의 이름으로 보수와 진보사이를 오가는 이들이 있다. 자유라는 이름이 거의 방종에 가까운 원칙상실의 퇴폐까지 불러오게 되면 이 경우는 구제불능이다.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은 진보의 이념을 입으로는 표방하면서 구시대의 특권을 즐기는 일에 능숙하다. 보수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성실성을 자유의 이름으로 비웃고, 진보주의자들의 개혁의지에는 참여하지 않는 데카당트 지식인들이 바로 이들이다.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새롭고 화려한 용어와 가치들을 주장하는 그들의 사고는 빈약한 지식인들에게는 신조어를 공급하는 루트가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일이 취약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자유로움을 행사한다. 따라서 그들의 지적 설득력은 화려한 수사와 유행에 민감하며, 개인적 자유를 자극하는 용어들이 있으므로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의 공동의 가치를 변화시키려는 연대와 실천의 과제를 수행하는 일에는 매우 인색하다. 그런 과제들로 인해 그들만의 특권과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반면 이들은 개인주의적인 자유를 연장하여 방종과 타락도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한다. 방종과 타락이란 개인의 쾌락원리를 쫒아 사회규범의 구속력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이들의 단골메뉴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는 전형적인 도덕적 오류는 자신의 자유를 방종과 도덕적 타락으로 연장시키는 이들이 다른 이의 자유를 훼손하고 무시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반사회적이고, 공동성을 자유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감추고 있는 이중성은 바로 그들의 이기성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나의 경우는 자유이지만 너의 경우는 규범 이탈이라고 을러대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름이 지시하듯 이들은 과거의 규범으로부터 대부분 자유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다. 여기에는 얼마간의 정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가치 판단 구조들은 과거의 권위, 억압을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가치판단 구조 모두가 그렇게 억압적인 것은 아닌 까닭에 과거의 가치판단 구조에는 가슴에 새겨둘만한 중요한 가치들도 담겨있다. 정직과 성실성과 책임성 그리고 인격성을 삶의 공동성 안에서 해석하는 까닭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성실성과 책임성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 이런 까닭에 사회는 다소 보수적인 흐름에 잠겨있는 것이다.

이기적 욕망을 중시하여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퇴폐적 자유주의자들의 비극은 그들 스스로 보수주의자들의 과거 지향적 시대 착오성을 비웃으면서도 정작 과거의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창출로 나가지 못하는 무책임함에 있다. 이들은 전형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초래할 새로운 사회 가치의 창출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며 복속시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이미 자유주의를 선택한 그들은 보다 나은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여가능성을 아마 일찍부터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일반에게 불러온다.

일부 현대 소설들을 읽다보면 바로 이런 자유주의자들의 퇴폐를 인간미로 채색하려는 소름끼치는 허무를 본다. 그들의 인간다움의 가면을 벗기면 절제하지 못한 온갖 추한 욕망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허무하게 보이는 까닭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들처럼 스스로 맺은 사회적 약속들에 대한 무책임한 망각을 당연시 하는 데 있다. 그들은 사소한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인격도 사회적 책임도 망각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오류는 삶의 내면적 긴장과 정신적 고양의 가치를 무기력한 것으로 여기고, 오직 자기 존재를 상대화시키며 순간의 쾌락과 만족에 스스로의 넋을 팔아넘기는 자유의 오용이다.

사실상 인류가 추구해온 자유의 정신은 무제한의 비약을 허용하는 것으로서 무서운 상대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상대에 의하여 규정되는 자기를 거부하는 규정받지 않음의 자유이다. 정치적으로는 억압, 경제적으로는 착취, 사회적으로는 차별을 거부하는 것이 자유의 골격이다. 그러므로 자유란 숭고한 인간의 존엄함을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책임을 통해 균형이 잡혀야 한다. 하지만 타락한 자유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자유는 줄기차게 요구하면서도 그 자유의 보편적 적용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차별과 억압을 생산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쾌락을 위하여 기존의 약속 관계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지식인의 도덕적 타락과 방종은 그들이 지닌 천박한 정신의 발현일 뿐 해방적 실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유는 해방을 불러오는 혼이므로, 그 혼을 지키려면 자유의 보편정신을 지키려는 책임을 요구 한다. 이 책임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존재로서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자유주의자들은 이 공동 책임의 영역에 선듯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본질이 이기적이며 쾌락주의적인 까닭이다. 자유에 대하여 예민한 지식인들이 퇴폐적 쾌락을 추구하는 까닭은 결국 과거 특권층들이 구가하였던 본디 이기적이며 차별적인 특권을 향유하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입으로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진정한 해방적 과제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반사회적이며 이기적인 퇴폐적 쾌락과 자학적인 방종을 불러 들인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깊은 허무의 그늘로 덮여 있다. 이 허무의 그늘을 벗겨내려면 우리 역시 필연적으로 책임의 공동성을 수납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그것은 오랜 종교들이 가르쳐온 사랑의 길이며 자비의 길이고, 인(仁)의 길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잔재하고 있는 낡은 가치들을 청산하는 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낡은 가치들이라 하여 도매금으로 폐기하려는 것은 어린 아기를 목욕시킨 후 목욕물을 버리려 하다가 아기까지 내던지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퇴폐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적 억압의 피해자라 항변하며 억압 기재에 대한 증오를 당당히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작 그들의 삶의 고귀한 품격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숭고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억압이 해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 인간다움의 조건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해방 이후에 진실과 정직, 그리고 책임과 성실성에 미달할 경우, 그들은 방종과 추악함을 너무나 쉽게 불러 들이는 비극을 연출한다.

저항적 기질을 가진 해방적 지식인은 보다 나은 정의와 자유를 꿈꾼다. 정의와 자유로움을 꿈꾸는 이들은 인간성을 모욕하는 행위와 가치와 제도에 대하여 분노하게 되고, 이에 저항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타락한 자유주의자들의 약점은 오직 "자신들만"의 정의와 자유를 구가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해방적 지식인들의 저항에 연대하지만 “우리“의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혁명 세력들이 부패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사이비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권을 누리려 하는 이들은 공공의 세계를 어려워 한다. 왜냐하면 협소한 특수의 자리에서 그들이 누리는 쾌락에 집착하여 보다 넓은 책임과 보편성의 가치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퇴폐 지식인들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모름지기 정의와 자유에 기초한 인식과 실천의 지평을 보편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자유의 개념이 브르죠아들의 것으로 고착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퇴폐적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생래적 이기성으로 인하여 아는 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만족적인 쾌락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보다는 특수한 가치를 선호하는 귀족적 특권과 기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까닭에 그들은 위선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 및 정치권력 귀족들의 특권을 부정한 프랑스 혁명을 넘어, 보편적 인권의 지평을 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적어도 이런 류의 데카당트 자유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만금 진보적인 목사들에게서도 이런 이중 규범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입과 글로는 정의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몸과 정신은 자신들의 이기적 특권과 이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입이나 글만 보지 말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이중적 위선을 벗어나는냐 못벗어나느냐의 문제는 그가 사상적으로 견고한 인식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성직자로서 권력을 탐하고, 치부하며, 권위를 부리는 자들은 사상적 진보를 이용하며 신도들을 깨우치면서, 자기 스스로는 구원의 길과는 다른 저주의 길을 가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퇴폐적 행위를 행하면서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값싼 즐거움에 스스로 영혼을 파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리는 소유의 특권과 쾌락은 결국 누군가의 존엄함을 유린하는 행위와 연계된다. 따라서 그들은 바로 해방적 작업에 참여하던 얼굴과는 다른 흉측한 또 다른 얼굴을 사적 영역에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킬과 하이드를 통하여 인간의 이중성의 적나라함을 드러내 보인 바 있지만 이는 결국 삶의 공공성을 소화해 내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퇴폐적 개인주의의 진면목일 것이다. 이것이 비극인 것은 그들의 이중성으로 인해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회에도 해악을 끼칠뿐 아무런 선을 이루지 못하는 허무에 지배를 받는 까닭이다.

Friday, November 23, 2007

"No Thanks for Thanksgiving" Like this One...


(I was glad to find this artcle in my son's homepage. The Sunflower picture is from one of Sanmaru Letters.)

By Robert Jensen



One indication of moral progress in the United States would be the replacement of Thanksgiving Day and its self-indulgent family feasting with a National Day of Atonement accompanied by a self-reflective collective fasting.

In fact, indigenous people have offered such a model; since 1970 they have marked the fourth Thursday of November as a Day of Mourning in a spiritual/political ceremony on Coles Hill overlooking Plymouth Rock, Massachusetts, one of the early sites of the European invasion of the Americas.

Not only is the thought of such a change in this white-supremacist holiday impossible to imagine, but the very mention of the idea sends most Americans into apoplectic fits -- which speaks volumes about our historical hypocrisy and its relation to the contemporary politics of empire in the United States.

That the world's great powers achieved "greatness" through criminal brutality on a grand scale is not news, of course. That those same societies are reluctant to highlight this history of barbarism also is predictable.

But in the United States, this reluctance to acknowledge our original sin -- the genocide of indigenous people -- is of special importance today. It's now routine -- even among conservative commentators -- to describe the United States as an empire, so long as everyone understands we are an inherently benevolent one. Because all our history contradicts that claim, history must be twisted and tortured to serve the purposes of the powerful.

One vehicle for taming history is various patriotic holidays, with Thanksgiving at the heart of U.S. myth-building. From an early age, we Americans hear a story about the hearty Pilgrims, whose search for freedom took them from England to Massachusetts. There, aided by the friendly Wampanoag Indians, they survived in a new and harsh environment, leading to a harvest feast in 1621 following the Pilgrims first winter.

Some aspects of the conventional story are true enough. But it's also true that by 1637 Massachusetts Gov. John Winthrop was proclaiming a thanksgiving for the successful massacre of hundreds of Pequot Indian men, women and children, part of the long and bloody process of opening up additional land to the English invaders. The pattern would repeat itself across the continent until between 95 and 99 percent of American Indians had been exterminated and the rest were left to assimilate into white society or die off on reservations, out of the view of polite society.

Simply put: Thanksgiving is the day when the dominant white culture (and, sadly, most of the rest of the non-white but non-indigenous population) celebrates the beginning of a genocide that was, in fact, blessed by the men we hold up as our heroic founding fathers.

The first president, George Washington, in 1783 said he preferred buying Indians' land rather than driving them off it because that was like driving "wild beasts" from the forest. He compared Indians to wolves, "both being beasts of prey, tho' they differ in shape."

Thomas Jefferson -- president #3 and author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hich refers to Indians as the "merciless Indian Savages" -- was known to romanticize Indians and their culture, but that didn't stop him in 1807 from writing to his secretary of war that in a coming conflict with certain tribes, "[W]e shall destroy all of them."

As the genocide was winding down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odore Roosevelt (president #26) defended the expansion of whites across the continent as an inevitable process "due solely to the power of the mighty civilized races which have not lost the fighting instinct, and which by their expansion are gradually bringing peace into the red wastes where the barbarian peoples of the world hold sway."

Roosevelt also once said, "I don't go so far as to think that the only good Indians are dead Indians, but I believe nine out of ten are, and I shouldn't like to inquire too closely into the case of the tenth."

How does a country deal with the fact that some of its most revered historical figures had certain moral values and political views virtually identical to Nazis? Here's how "respectable" politicians, pundits, and professors play the game: When invoking a grand and glorious aspect of our past, then history is all-important. We are told how crucial it is for people to know history, and there is much hand wringing about the younger generations' lack of knowledge about, and respect for, that history.

In the United States, we hear constantly about the deep wisdom of the founding fathers, the adventurous spirit of the early explorers, the gritty determination of those who "settled" the country -- and about how crucial it is for children to learn these things.

But when one brings into historical discussions any facts and interpretations that contest the celebratory story and make people uncomfortable -- such as the genocide of indigenous people as the foundational act in the creation of the United States -- suddenly the value of history drops precipitously and one is asked, "Why do you insist on dwelling on the past?"

This is the mark of a well-disciplined intellectual class -- one that can extol the importance of knowing history for contemporary citizenship and, at the same time, argue that we shouldn't spend too much time thinking about history.

This off-and-on engagement with history isn't of mere academic interest; as the dominant imperial power of the moment, U.S. elites have a clear stake in the contemporary propaganda value of that history. Obscuring bitter truths about historical crimes helps perpetuate the fantasy of American benevolence, which makes it easier to sell contemporary imperial adventures -- such as the invasion and occupation of Iraq -- as another benevolent action.

Any attempt to complicate this story guarantees hostility from mainstream culture. After raising the barbarism of America's much-revered founding fathers in a lecture, I was once accused of trying to "humble our proud nation" and "undermine young people's faith in our country."

Yes, of course -- that is exactly what I would hope to achieve. We should practice the virtue of humility and avoid the excessive pride that can, when combined with great power, lead to great abuses of power.

History does matter, which is why people in power put so much energy into controlling it. The United States is hardly the only society that has created such mythology. While some historians in Great Britain continue to talk about the benefits that the empire brought to India, political movements in India want to make the mythology of Hindutva into historical fact.

Abuses of history go on in the former empire and the former colony. History can be one of the many ways we create and impose hierarchy, or it can be part of a process of liberation. The truth won't set us free, but the telling of truth at least opens the possibility of freedom.

As Americans sit down on Thanksgiving Day to gorge themselves on the bounty of empire, many will worry about the expansive effects of overeating on their waistlines. We would be better to think about the constricting effects of the day's mythology on our minds.



from http://www.alternet.org/story/28584/

Thursday, November 22, 2007

Thanksgiving for my journey with the beloved ones...



My mother and two sons


When I drove to my son’s school about 15 years ago, I told my son, “let us think that this is the worst day of your life, and tomorrow will be a little better! Let us believe in it!” It was really hard time for my sons who brought back to Korea when they were not able to speak Korean due to the long period of stay in abroad. My older son went to a middle school, and the other went to a private elementary school. This was a third new start for them. The first was when I brought them to Germany in 1984, and the second was when my family decided to move to New Jersey from Bonn, Germany. Whenever they had to restart, the fundamental problem was language. They have experienced of being foreign to others many times. The most troblesome experience was in Korea. When they were foreigners in Germany and America, there were many who volunteered for helping improve their languages.

However when they came back to Korea, it was not like that. One of the chief teachers told my son in front of me that “you are so unlucky to have such parents!” And he said ro me again, “From my experience your son has no hope.” I was terrified that the person who said such mean opinion was an educator in a public school. Since then my two sons began to struggle for their survival in Korean schools. My younger used to call home when he arrived at a phone booth which was located a half mile away from my home, and say “please call the police if I am not arriving in 10 minutes.” I am still painful that he was feeling that his being was seriously threatened by the world which had been totally not friendly to him. For a boy most of whose life spent in abroad, it was really a hard time to adjust himself to his homeland.

As they were not able to understand Korean, I had to teach them how to follow up schooling in Korea. In the third year of our struggle, I decided to send them to English speaking world because I was not convinced with myself about their mental status. There were two incidents of suicide. Two of my colleagues had to suffer due to their son’s suicide. They and I were in the almost same situation because each of us came back Korea after having a long journey of studying in abroad. Their children were also not able to speak Korean fluently. In school, teachers and their classmates made fond of them. Even sometimes they harassed or mocked the singled out new comer in the class. Maybe the new comer looked weird because he was not able to pronounce Korean properly. Murmuring and hesitating with weird gestures might be funny to them. But they did not feel any humane duty to help the new comer. Rather they enjoyed making fun of him. Even the teachers did not pay attention to the new comer. Instead they used to get angry when his class record got behind of other classes due to the low grades of the new comers.

Hearing the two news that two of my colleagues lost their older sons, I was afraid of myself for my understanding of my sons. I reflected over and over and finally come to a conclusion to send them to Australia. At that time I thought even though I might be not well prepared for my retirement I had to support them studying in Australia. So they had to restart their life in Australia again. After finishing the first semester, they came back home with almost all As. They looked different, with dyed long hair, free clothes. We spent a wonderful winter vacation together. When they were about to go back to Australia, they made a decision not to go back there. They told me, they want to live with family. Actually we did not say each other that we missed each other too much. I am still very much thankful to my sons for their wonderful decision at that important moment. I am always happy that they treasured the time being together.

Now my older son left home for his further study. But I feel not so much lonesome because he was with me as long as he could. My younger son will leave me again soon. Even though I may miss them I am very much thankful to God for having wonderful sons who have dreams in their hearts. As I left my parents for my study in Germany and America along time ago, my sons are now having a season for making a journey for their further study respectively. This morning I looked myself and glanced at the shape of my father in the mirror. My age is near to the age of my father when I left him. I am so grateful to my God for letting me have my journey in the past, and to see my sons who are making their own journeys. Occasionally I am sitting near the window, looking the forest out of my window, thinking of my father and mother. I am so regretful that I was not a good son for them because I was not able to accept their limitations. They were totally not capable to support my study. However, I never forgot my mother’s prayer for me. But for my mother’s prayer, I might not be the person as I am. I am so much grateful to God for giving me wonderful mother and sons.

This morning when I read the sojourners’ letter from Jim Wallis, I found the phrase said by Thomas Merton that “in the end, it is the reality of personal relationships that saves everything.” Yes, I totally agree with Thomas! Regardless What you accomplished in this life, in the end you have to confront with the reality of personal relationships which will reveal the true nature of your life. I really wish my sons will treasure personal relationships in a wider world beyond the temptation of anonymity. My Quaker brother Bob sent me an e-mail this morning and wished me a good thanksgiving. I have good memory of his sincerity in making relations, supporting the weak, and making always available for others what he owns. When we were at Pendle Hill, in a morning I saw him weave something in the backyard of the library. I asked him, “what are you doing there.” He replied me, “I am weaving an eye of God.” In my study, I have an eye of God woven with beautiful colors. We are weavers of the eye of God which guides us in the Light till the end of our journey. Even though I have lost many things, I am still so deeply thankful to God for my being as it is. If possible, for the rest of my life, I would like to commit myself to live out more in the practice of simplicity, integrity, and compassion.

Tuesday, November 20, 2007

The Lives of Others...

영화 "타인의 생명" 을 보고

오늘 나는 중국 비자를 받기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영화를 한 편을 구입해 돌아왔다. 제목은 “타인(他人)의 생명(Das Leben der Anderen)" 원작이 독일어라서 독일어로 보았다. 이 영화는 1984년을 배경으로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한 작가인 게오르그 드라이만과 아름다운 배우 크리스타 마리아의 사랑,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던 베테랑 정보원 게르트 위슬러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그렸다.

냉혹한 도청 및 취조 기술자인 위슬러는 자유주의 사상을 드러내는 작가 게오르그의 반사회적 언행에 의심을 가지는 윗선의 명령에 따라 게오르그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하루 24시간 감시한다. 그의 상관은 인간이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자이다. 위슬러는 게오르그와 그의 애인 마리아의 삶을 엿본다. 감시자의 눈을 가지고 그들의 대화와 일상을 엿보던 위슬러는 점차 게오르그와 마리아를 향한 감시자의 눈을 버리고 은밀한 보호자로 변해 간다.

게오르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반정부 문서를 작성 발표하기로 모의하고 그들은 문서 작성을 게오르그에게 맡긴다. 이 과정을 엿들어 온 위슬러는 게오르그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도청 보고서에 담지 않는다. 마침내 반정부 문서가 작성되어 발표되었을 때 정보국은 발칵 뒤집히고 문서작성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이 문서를 작성한 타자기 색출 작업에 나선다. 그것은 게오르그 집 마루 밑에 감추어져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위슬러는 정보국장의 의심을 받게 된다.

마침내 정보국장은 마리아를 잡아들여 위슬러에게 취조를 맡긴다. 위슬러의 취조를 받은 마리아는 위기가 가까이 다가 왔음을 알고 체념하여 그 타자기가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윽고 정보원들이 들이 그들의 아파트에 들이 닥쳐 그 타자기가 있던 자리를 지목하는 순간 게오르그는 마리아에게 강한 의혹의 눈빛을 보낸다. 마리아는 게오르그의 눈길을 피한다. 타자기가 있던 바로 그 자리를 색출자들이 들쳐냈을 때 거기 있어야 할 타자기는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마리아는 숨겨둔 타자기가 발각되어 게오르그가 체포될 것을 알고 거리로 뛰쳐나가 트럭에 치인다. 피투성이가 된 마리아를 품에 안은 게오르그는 그녀를 의심했던 눈초리를 보냈던 자신을 후회하며 마리아에게 용서를 구한다.

한편 정보국의 의혹을 받게 된 위슬러는 좌천되어 미래를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무너졌다는 방송을 듣게 된다. 그나마 정보원 직을 잃은 위슬러는 우편배달부가 되어 편지를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게오르그는 전직 고관을 만나 자기의 아파트가 완벽하게 도청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그는 자기의 아파트 곳곳에 설치된 도청장치들을 뜯어내며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를 도청한 자료들을 찾아내 그것들을 읽어 가면서 HGW XX/7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그 도청자가 바로 자기를 지켜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오르그는 그 도청자의 이름이 위슬러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를 찾아가 그가 편지를 배달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어느 날 위슬러는 편지를 배달하다가 게오르그가 쓴 신간, “선한 사람의 소나타“ (Eine Sonata des guten Menschen) 포스터를 보고 서점에 들어가 그 책을 펼쳐본다. 그 책 표지를 넘기다가 "이 책을 HGW XX/7에게 바칩니다“라는 구절을 발견한다. 그는 ”선물로 포장 할까요?“라고 묻는 점원에게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나를 위해 산거예요.”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영화는 언어보다 의미있는 순간과 표정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한 정보원의 가슴에 따듯하게 움튼 인간에 대한 관심, 타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는 배려는 사실과 정직의 세계를 넘어 간다. 위슬러의 차가운 표정 이면에 담긴 따스한 인간애는 제도도 이념의 장벽도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관심을 가지는 행위가 스스로에게 커다란 위험이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슬러가 게오르그와 마리아를 지켜주기 위하여 손에 들고 있었던 보고서를 감추는 장면에서 영화의 반전이 시작되고 그가 잔인한 고발자가 아닌, 한 아름다운 인간임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삶은 언제나 위기에 처한다. 감시자의 보고서에 의해 그 존재가 결정되고,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일거수 일투족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오르그와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감시자 앞에서 여지없이 그러나는 그들의 벌거벗은 모습에서 거듭 거듭 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감시자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안도하게 되지만, 그 감시자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감시의 힘을 인식하고 더 크고 조직적인 감시의 힘에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게오르그의 편에 서 있다가, 다시 그를 감싸는 감시자의 안전을 염려한다. 그 더 큰 감시자는 일사불란한 색출자들을 앞세운 냉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의 이중성, 천진난만한 삶을 감시자의 눈으로 볼 때 위급하기 짝이 없다. 삶의 모든 권리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는 피감시자를 바라보는 감시자의 눈, 그 눈이 인간성으로 옷입을 때 그 눈은 더이상 잔인한 감시자의 것이 아니라 따스한 보호자의 눈이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위슬러에게서 느낄 수 있듯 개인은 인격성에 기반한 인간다움을 자기희생을 마다않고 지킬 수 있으나, 제도와 집단의 권력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은 인간다움보다 이해관계에 치밀하다는 니버의 생각은 일면 옳고 정당하다.

그러나 개인은 잔인한 집단의 위협에 처할 경우 자기희생보다는 자기보존의 생존을 모색하기도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리도 서로 사랑하는 게오르그와 마리아 사이에 일어나는 배반과 의혹의 이중주를 보았다. 위험을 예견하며 감시자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가던 마리아는 정보국에 연행되어 갇혀 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 생각하고 타자기가 있는 곳을 밝힌다. 위기를 견디며 사랑해 온 게오르그에 대한 배반이다. 반면 색출자들이 들이 닥쳤을 때 게오르그는 자기가 사랑해 온 여인 마리아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배반과 의혹,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것들 보다도 훨씬 크고 진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존재의 위기를 불러오는 강요된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일식인 까닭이다.

그녀의 배반이 그녀의 사랑인 게오르그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로 하여금 견딜수 없는 존재의 폭발을 불러왔다. 트럭에 치인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고서 게오르그는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그의 의혹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 한 사람은 목숨을 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 순간이다.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배반과 의혹이 없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를 이 영화는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 배반도 의혹도 있으나 그 배반과 의혹은 그들의 진실한 사랑의 힘에 의해 뻔뻔스러움으로 이어지지 않고 결국 고통으로 되돌아 온다. 그들의 사랑은 배반과 의혹을 넘어 진실했기 때문이다. 정작 그들이 배반과 의혹의 힘을 막아 준 사람은 바로 위슬러였다. 그가 타자기를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하나님의 눈을 생각했다. 그 분의 눈 앞에 비치는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위험한 곡예와 같을 것인가. 이 삶의 고비 고비 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그런 우리는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은 징벌과 색출의 눈을 가진 감시자가 아니라, 우리가 예지하지 못하는 삶의 위기에서 우리를 감싸고 지키주시는 따스한 눈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사랑의 하나님이란 어거스틴이 말한 바,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이기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죄스러운 실존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며 감시자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감시를 받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처럼 감시자의 눈이 냉혹한 시선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인간의 눈이 될 때, 오히려 그 감시자가 우리의 허물을 감추어 주는 은밀한 수호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정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그가 나의 어머니이든, 나를 사랑한 사람이든, 아니면 하나님이든...

취조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던 위슬러의 가슴이 따스해 질 때 그는 잔인한 취조자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배려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구원한다. 게오르그가 위슬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것은 인간성을 되찾은 위슬러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진 까닭이다. 나는 나의 삶을 지금까지 가리고 지켜준 HGW XX/7는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집단의 이름을 앞세워 개인의 삶을 파괴하던 차가운 취조자, 감시자, 고발자의 길보다는 따스한 가슴을 가지고 타인의 생명을 지켜주는 길이 바로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이라는 하나의 진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보여 주고 있다.

Monday, November 19, 2007

A Prayer for Peace



-Divinity School of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PRAYER



God of love,

turn my heart to your ways;

and give me peace.


God of justice,

teach me how to discern

your just ways.


God of compassion,

open my heart to share solidarity

with those in suffering


God of Peace,

guide me to work for peace

and empower me to be peaceful.


God of Light,

shine on my way and

brighten my spirit to overcome

the darkness of life.


Amen.

Sunday, November 18, 2007

Beyond monologues


독백을 넘어서서

인터넷 문화가 확산된 이래 사람마다 자기 독백의 집을 가지고 있다. 그 집은 항상 열려 있기도 하고, 일부 폐쇄되어 있기도 하지만 독백의 집이라는 점에서 여일하다. 독백을 넘어서 대화가 있는 집들도 있다. 썩은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독백들은 사방에 널려있다. 여가를 즐기는 부르죠아적 건전주의의 집에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몰리고, 진보적 생명평화의 집에는 삶을 나누려는 이들이 몰린다. 하지만 그 치열함의 정도는 생명평화의 집이 당연히 으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현방식은 양자 모두 여전히 독백이다. 독백에 공감하는 독백의 형식이다. 진보적 사상가들의 독백의 집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브르죠아적인 건전한 삶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 정신과 폭로 속에 담긴 그들의 “치열한 의식“이다. 손쉽게 안락함과 타협하는 정신들이 아니다. 거기에는 회의와 머뭇거림과 빈정거림보다 바른 의식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가진 계급의식이 요구하는 평균치적 수치이다.

그들의 기준은 억압과 소외와 착취와 차별을 딛고 세워진 브르죠아 컬춰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있다. 마치 교회주의자들의 안락한 길을 버리고 소외의 길을 걸었던 소종파주의자들의 외길과도 같다. 세상의 변화와 최후의 승리를 바라는 것도 없다. 다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까닭이다. 거기에는 안락과 사치와 허영의 유혹을 이기는 정련된 정신의 힘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다.

생명평화운동 - 이것을 대중의 호흡에 맞추려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 운동이 언제 대중의 환호를 받았던가를 생각해 보면 답을 찾기 어렵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생명평화운동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특수한 신분과 지위와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평화를 외치면 결국 반폭력 반군사주의 반권위주의로 번역되는 까닭이다. 그들은 이것을 반미, 친북, 용공으로 알아 듣고 혐오한다.

생명을 살리자는 운동도 뒤집으면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전투적 의식 없이는 수행할 수 없는 과제이다. 죽이는 자가 있으면 가로막고 싸울 일이 된다. 이런 점에서 생명평화운동은 라디칼한 하나님 나라 운동과 같다. 도무지 지혜롭게 타협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취하려는 이 세상의 어느 정치 집단이나 혹은 다른 이념과 적당히 섞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의 정신은 교회운동 이전에 본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교회가 적당히 타협함으로 명분과 실리를 얻고자 한다면 이 땅의 생명평화 운동가들보다도 가벼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되기 어렵다. 거룩함이란 인간의 속된 가치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는 타협주의자들을 양산해 온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경쟁의 바다에 자식들을 밀어 넣고 성공의 푯대를 향해 고문하듯 죽기 살기로 헤엄을 치라고 한다. 자식과 부모사이에 잦아든 죽음의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수능이 끝난 후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어나 뉴스를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스므살의 청년이 절망에 등 밀려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스로를 버렸다. 그 아름다운 스므살인데....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울적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스므살 그에게 우리는 정말 미안해해야 한다. 이 경쟁의 바다에서 헤엄치려면 고독한 성공과 승리만이 아니라, 그러한 자신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의식도 키워내야 한다.

나는 생존의 이기성을 인정한다. 자신의 생존의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은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르죠아 문화가 가르치는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남보다 더 편안하기를 바라는 것은 차별과 경쟁의 심리에 사로잡힌 시기와 질투 문화를 옷 입는 것과 같다. 시기와 질투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우월과 열등의 극단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우열을 나누는 일에 예민한 이들은 약자에게는 폭력적이고 강자에게는 아첨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자신의 자식들이 약자가 될 때, 그는 자신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조차 폭력적이다.

나는 이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어 생명과 평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세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경쟁의 문화를 자극하는 시기와 질투, 우열의 극단을 넘어서서 우리의 인간됨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 세상의 경쟁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당연시하기 보다는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기와 질투보다, 우열의 논리에 복속될 수 없는 존엄한 생명 가치를 품고 있는 자신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해를 가진 이들만이 남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다. 나만의 독백을 넘어서 벗들과의 대화나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만의 가치”가 아닌 “우리의 가치,” 우리의 가치를 초월하는 가치를 품은 고귀한 정신과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의 태도, 이것이 오늘 이 고도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폭력적인 존재로 길러지고 있다. 자기에게 실망하여 자기를 버리기도 하고, 자기에게 매료되어 나르시시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고독하다. 우리는 이중의 고독을 오간다. 그 결과는 자기를 향하여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이다. 잘난 자기만 소중하고, 싫은 자기는 너무나 쉽게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식을 향해서도 우리는 그런 가치를 너무나 쉽게 가학적으로 적용한다. 인간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이런 못난 자기도 소중히 품고 사는 것이다. 이를 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리라.

who am I?



(Pendle Hill 캠퍼스에서>


나는 누구일까?

본훼퍼가 물었던 질문이다.

오늘 비로소 나는 왜 본훼퍼가

"나는 누구일까?"라고 물은 의미를 알았다.


깊은 감옥에 갇혀

간수의 호명에 오가던 그가

만나는 이들과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을까.

말이라도 제대로 걸어 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그를 목사라 부르고

또 신학자라고도 부르는 데

그를 일러 대단한 신념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

정작 그는 자기 자신에게 외롭게 말을 건넨다

"나는 누구일까?"


존재를 담은 말을 건넨다는 것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죽음을 기다리는 이가 태연히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목사이고 신학자인 사람이....

고독과 긴장이 차있는 시간속에서


그는 마주 선 자기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누구인가?"

체념으로 일어서고

두려움으로 누웠던 감방 안에서

그는 절망하여 두려워 떨고 있는 자신을 본다.


그 깊은 절망의 자리에서

오직 열려있는 창은

오 하나님,

오직 그 분을 향한 것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

스치며 지나치는 일상의 소외,

아침 빛이 다가오는 차가운 시간

숨박히듯 어둠이 차오는 저녁

그곳에 무릎을 꿇은 본훼퍼를 생각한다.


그는 "오 하나님, 오직 당신만 나를 아십니다."

그렇게 고백한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여 걷던 그가

홀로 자신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무거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야 하는 그

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침묵하는 하나님

그의 손에 자기를 맡긴다

Saturday, November 17, 2007

Utilitarian Ethics and Its Critque




효용의 윤리학(Utilitarian Ethics)

얼마전 노방 전도자 한사람이 한 손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십자가를 들고 노숙자들을 위하여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두타스님이 시주를 청하는 자리에 와서 담대히(?) 두타 스님의 머리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마 그는 그것이 그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사진을 보고 기독교의 무례함과 매우 무식한 일방성을 비난했습니다. 합리적 설득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일방적인 전도행위는 기독교를 비합리적이고 미성숙한 종교로 보이게 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의 가슴을 닫게 만들기도 하지요. 성폭력이나 성희롱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랑의 행위도 동의 없이 행하면 상대에게는 폭력입니다. 이런 전도 방법은 일종의 종교적 폭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열광적인 승리주의적 신앙을 가진 이에게는 무용담이 되거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으나 참된 기독교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사랑의 계명(agape)을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효용의 윤리학입니다. 사람이 가치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공동성의 문제일 것입니다. 서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자신과 동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경우 관계의 지속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편이 한 편을 신분적으로 차별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다른 편은 무시를 당하거나 차별당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던 일상의 오류( common fallacy)가 수정되기 시작한 것은 퀘이커들이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며 노예 제도가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17세기부터입니다.

17세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노예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노예도 노예로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그 사회 안에서 생존할 수 있었지요. 칸트의 인격주의적인 윤리사상이 이런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게 한 윤리이론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을 받아들여 실천 했던 사람은 초기에는 소수였습니다. 전통적인 교리와 사회제도에 대하여 의심을 하던 퀘이커들이 제일 먼저 믿는 바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윤리적 자각과 비약은 삶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나 신학적 인식에서 촉발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인식하게 되면 자신이 소중하고, 또한 다른 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여 더욱 다른 이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13세기에 라인지역 신비주의자들로 알려졌던 여성 신비가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피조된 모든 존재들에 대한 동정과 평등을 인식하고 실천하려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깊은 의무와 숭고한 삶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자각하거나 인식하는 데 크게 힘을 입습니다.

이러한 의무론적 윤리나 덕의 윤리에 비하여 효용성의 윤리는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물질적이며 사회적인 관계에 가장 적용되기 좋은 이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효용성의 윤리는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것인가?”를 묻고, “효율성이 높은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이웃을 사랑을 한다면 어떤 사랑이 가장 효율적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모든 이웃을 공평하게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할 수 있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최대 다수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오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기독교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효용성의 윤리는 주어진 정황에서 깊이 현실을 체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실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가 가리키는 지표를 중시하게 됩니다. 따라서 효용성의 윤리는 경험을 통하여 내리는 판단을 중시합니다. 한번 실패한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경험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만일 어느 행동이 다수의 사람들 중에 몇몇 사람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주는 방법에 비하여 편파적이며, 공정치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소수보다는 다수를 행복하게 하는 행위가 더 크게 인정을 받고, 소수나 개인만을 위한 행위는 집단 이기나 혹은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효용성의 윤리란 다수를 위한 효용가치(utility)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가장 윤리적인 옳고 선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불러옵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험을 총 동원하여 효용가치를 떨어드리는 방법보다는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결과를 불러 올 방안들을 찾는 것이 보다 책임적이며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the highest good, the highest number)을 찾는 것 이것이 효용성의 윤리가 가진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따라서 효용성의 원리는 행위의 동기나 과정보다 목적을 이루어 얻는 결과에 초점을 두고 윤리적 평가를 내린다는 점에서 칸트의 동기와 원칙의 윤리학과는 다소 갈등 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의 관점에서 본다면 행위의 선함은 행위의 결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순수한 동기에서 결과와 상관없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합니다. 반면 효용성의 윤리는 다양한 행위 중에서 보다 효율적인 행위를 찾으려면 결과가 확실히 유익해야 그 행위가 정당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정당전쟁 이론(the Just war theory)에서 전쟁행위가 정당하려면 무엇보다 악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그 악을 극복할 수 있을 때만 정당하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효용성의 가치
효용성의 윤리는 일면 개인의 가치보다 전체 사회의 유익이라는 측면에서 적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동기와 원칙을 중시하는 윤리적 판단 형식들은 개체 인격과 인격과의 관계에 우선 적용하는 이론 이라면 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이론은 사회적인 선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정치, 사회, 경제, 군사적 판단에 적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따라서 제도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론적 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단의 논리나 전체를 중시하는 전체주의자들은 다른 어떤 이론보다 효용성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히틀러도 나치 정권의 정당성을 “독일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라는 기치를 늘 내 세웠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유예하고 집단의 논리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효용성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효용성의 윤리가 사회를 더욱 살맛나고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원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지만, 소수자를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도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속성은 언제나 개인의 요구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효용성의 윤리를 제창한 밴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우리는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즐거움(pleasure)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소외나 박탈감보다는 참여와 성취감을 불러오는 것이 훨씬더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코통을 줄이고 쾌락을 확대하는 방안이 보다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쾌락, 혹은 즐거움이란 가치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그 지속성은 길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가 의미한 즐거움이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기쁨이기도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더 높고 숭고한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하지 못하는 일종의 “돼지의 쾌락” 같은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밴담의 아들 격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삶의 효용성은 즐거운 쾌락(pleasure)을 넘어선 정신적인 행복(happiness)라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고되고 힘들어도 삶의 오랜 목표를 이루어 냄으로써 얻는 행복이야말로 보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인간다운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행복이라는 가치는 다양한 해석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여기서는 고통이나 아픔을 무가치하게 보았던 밴담과는 달리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하여 희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밀은 밴담과는 달리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쾌락보다는 그 지속성이 길고 의미가 깊은 행복을 더욱 중요한 행위의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얻는 즐거움이나 행복의 지속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들에 비하여 밀 이후의 사회철학자들은 밴담이나 밀보다도 더욱 추상적인 가치들이 더 심원한 행복의 조건이라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무어(G.E. Moore, 1873-1958)는 삶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 정의, 미, 지식과 같은 이념들( ideals of freedom, knowledge, justice and beauty)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상이 사라진 사회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것은 19세기 초 전체주의와 전쟁을 통하여 분명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념들이 가진 가치를 어떻게 셈하고 펴가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남게 됩니다. 소중한 가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효용성의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 하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인 까닭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탠포드 대학의 애로우(Kenneth Arrow)는 본유의 가치란 우리들이 선호하는 것(preferences)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효용성의 가치에 인간이 자유를 가지고 그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까지 포함시킨 것이지요. 따라서 인간이 가진 선호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성, 자결성, 그리고 선택권들을 존중하는 사회의 형성이 효용성의 윤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것입니다. 개체인간의 감정과 합리적 목적,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보장된 사회, 나아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다양하게 인정하는 가치, 그것이 선호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입장에서는 행복을 가져오는 가치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선호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다원적 사유와 더불어 개인이 모든 가치를 다 향유할 수 없다는 한계성 또한 인정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논리는 오늘날 인권개념의 확장을 불러와 인권보장을 위한 법적 사회적 의무를 확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운리학과 산술적 계산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이런 다양한 이론의 적용은 다양한 논리를 결과했지만 가장 실질적인 차원에서 효율성의 윤리는 정책입안이나, 경제적 계획, 그리고 대외적인 외교적 관계에 많이 적용될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치밀하게 적용되는 것은 행위가 불러올 효과에 대한 손익 계산(calculus of benefits and costs)입니다. 합리적으로 해가 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또한 유익할 것을 미리 예측하여 손익 계산을 하는 것은 효용성의 윤리에서는 매우 당연한 절차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계산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가치들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가치, 존재론적인 가치들은 가치로 환산하기도 어렵고, 그 가치의 효과를 계산해 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과 북의 공동 경제구로서 개성공단을 적극 활성화 시킬 경우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지만 향후 수년이 지나면 그 경제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판단은 수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피차 호전성을 버리고, 평화를 얻게 된다면 그 평화는 양측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군사적 대립을 유지해 온 비용을 절감하게 되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계산은 수치를 통하여 셈해 낼 수 있지만 평화라는 가치는 일정한 양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가치이므로 재화로 환산해 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국사독재에 의하여 경제개발이 촉진되고 있을 때 나라의 부를 확장해 나가기 위하여 무수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통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군사정부는 외국의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저임금 정책을 도입하였고, 노동운동을 압살했습니다. 이런 군사독재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는 매우 악성화된 효율성의 윤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인권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효용성의 윤리는 내면적 가치, 보이지 않는 가치, 추상적 가치, 인격적 가치와 같은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수치로 환산되거나 수치로 작용해서 이윤을 불러오거나 극대화된 재생산 구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권사상의 확대 발전을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는 인권과 신뢰도 중요한 무형 자산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양식을 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효용성의 윤리는 매우 전략적이며 의도적인 행위를 지향합니다. 여기서 산술적인 계산을 필연적으로 도입하게 되는 데 주로 측정하는 방법은 수치의 증가나 저하에 따라 쾌락, 행복, 이념, 선호성 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의 지수를 떨어뜨리는 고통, 불편, 혼란, 통제, 억압 등의 요건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행복의 조건을 확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산술적 계산의 목표입니다. 여기서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가치, 행복, 사랑, 배려, 동정, 가족, 정직 등의 가치들은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워 소홀히 처리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힘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나 물질적 행복을 다루는 경제적 영역에서는 추상적인 가치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될 수 있습니다. 생산성과 물질적 재화를 높이는 데 일단 목적을 두거나, 힘의 강화를 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동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효용성의 윤리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 스스로 가장 많이 적용하는 보이지 않는 윤리 이론입니다. 우리의 선호도를 결정하는 동기와 계기는 사실상 효율적인 가치판단을 따르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옷을 하나 사도, 문구점에 가서 연필을 고를 때도,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심지어는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의 의식에서는 이런 계산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연애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선택하거나 심지어는 성직자가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이런 가치판단의 구조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우리 삶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인가?“ 라는 질문은 개인, 가정, 사회, 정부, 그리고 모든 단위의 사회적 제도를 움직여 나가는 목적 지향적인 윤리적 질문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추구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무엇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인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원칙 효용성의 윤리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가장 효용성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중심으로 효용성을 생각하는 입장( Act-Utilitarianism) 이고 다른 하나는 원칙(Rule- Utilitarianism)입니다. 단순하게 말하여 행위 효용주의란 개인이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위를 선택하는 경우를 이르는 것이고, 원칙효용주의란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기본적인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전자가 수단과 방법을 정하지 않고 효용의 극대화를 기한다면, 후자는 효용의 극대화를 위한 일반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상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지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매우 천재적인 과학자 K 박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의 에너지 위기 문제에 대하여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그의 연구내용이 완성될 경우 인류의 에너지원 고갈에 따른 위기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퇴근길에 테러를 당하여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확인된 결과 그의 심장에 손상이 되어 심장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2-3일 이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병원 응급실에 식물인간 상태로 급히 후송되어 임종을 기다리는 온 신원을 알 수 없는 A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A의 조직을 검사한 의사는 그의 심장이 K박사의 신체적 조건이 생물학적으로 맞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의료진은 K박사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A의 죽음을 서둘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K 박사도 죽고, A 도 역시 조만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료진은 모든 것을 비밀리에 하기로 하고 A의 심장을 꺼내 K 박사에게 이식하여 K 박사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다만 A의 죽음을 서두른 것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침묵 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우 행위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커다란 유익을 가져올 행위를 한 의료진은 좋은 선택을 한 것으로 ‘잘 했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죽을 사람의 심장을 꺼내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그의 생존으로 인하여 인류사회가 더 커다란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적은 희생을 치렀지만 얻을 수 있는 예상되는 유익은 지극히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행위실용주의는 이와 같이 특정한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유무익을 판단하는 입장을 가집니다. 이런 논리는 요즈음 스템셀 연구에서 그 정당성 유무를 논할 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비록 태아나 혹은 복제된 생명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더 많은 이들을 불치병에서 구하는 것은 선한 일이라는 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칙효용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경우는 “의료진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일반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 거절됩니다. 의료진이 비밀리에 사회적 약자를 죽이거나, 혹은 인간을 귀천을 따져 서열화하여 귀한 사람을 위하여 천한 사람을 버리는 행위를 한다면 의료행위에 대한 신뢰의 원칙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A 환자와 의료진과의 신뢰의 관계가 다른 이익관계로 인하여 기만되고 파괴되는 까닭입니다. 더구나 A의 심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는 고의적인 살해행위로서 ”생명에 대한 해악 금지“의 원칙을 포기한 행위로 평가되어 도덕적 및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원칙효용주의란 결과론적인 효용성만을 따지는 논리의 비원칙성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효용성을 극대화하되 지켜야 할 룰이 있고, 그 룰을 어길 경우 전체적인 효용성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는 견해입니다. 행위 효용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효용성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경우 매우 중요한 도덕률을 어길 수도 있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특수한 경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 폭탄 투하를 결정한 미국 트루만 대통령의 결정도 일면 행위효용성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살고 있었던 무죄한 십여만명의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묵살한 것이지요. 하지만 원칙효용주의자는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가 불러오는 효용성은 인간의 존엄함을 부정하는 행위로 인하여 결코 큰 것일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보편적인 도덕원칙을 전제하고 그 위에 효용성의 논리를 적용하라는 것이 원칙효용주의의 입장입니다.

효용성의 윤리에 대한 비판
결과지향적인 효용성의 윤리는 무조건 좋은 결과를 초래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우리로 하여금 사로잡히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2007년 아프카니스탄 사회선교를 위하여 파견되었던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카니스탄 근본주의자들에 의하여 볼모가 되어 죽음의 위협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배운 이 23명의 기독교인들은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다가 결국 두 명이 아깝게도 희생을 당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결말이 지어졌습니다. 이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요구하는 요구를 들어주면 그들이 모두 살아 돌아 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 중에는 죽임을 당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에 대하여 많은 이들의 분노가 표출 되었는 데 그 소이를 따지고 보면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위협을 국민들이 경험했고, 또 그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이 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렇게 강요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행위 효용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프카니스탄 과격분자들의 그릇된 요구도 들어주며 그들에게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를 결과합니다. 나치 치하의 협력자들 역시 생존의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나치에 협력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불러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점에서 효용성의 윤리는 책임의 지평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효용성의 윤리가 가지는 기회주의적인 요구의 문제입니다. 더 좋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면 기존의 논리와 원칙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도덕적 원칙과 정직함이 유지될 경우는 개선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인격적인 배반이나 혹은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더 큰 효용적 가치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인격적 통전성(integrity)을 포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격적 신뢰나 정책적 신뢰를 받기 어려운 정황에 처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효용성의 윤리만을 앞세운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격이나 도덕적 책임의 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결과라는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다면 쾌락을 얻을 수는 있어도 인격적 정직성을 상실하고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면 효용성의 윤리는 인격적 책임성과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양보하지 않는 칸트의 원인과 동기 중심의 윤리학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결과 지향적인 가치판단은 행위의 동기 자체의 순수함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효용성의 윤리는 앞선 K 박사와 A 씨의 경우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누구의 편에서 손익 계산을 하는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의료진은 엘리트들로서 엘리트인 K 박사 편에서 가치판단을 계산했습니다. A씨는 그 가치판단의 희생자가 된 셈입니다. 이와 유사한 논리는 요즈음 학문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논란이 많은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신식민지주의 논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과연 어느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고, 어느 나라의 효용 가치를 높이는 것인가? 제국주의적 사고가 어떤 유형의 억압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제국주의자들과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비판적으로 논의되는 경우에서 정치, 경제적인 손익 계산의 논리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럴듯하게 포장된 논리 속에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적 선택은 자기 희생적일 수도 있고 덕스러울 수도 있지만, 집단의 판단은 개인에 비하여 매우 부도덕적인 이기성에 이끌려진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그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의 윤리가 개인보다는 집단에게 더 잘 적용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의 이익을 논할 때, 우리는 그 집단에 속한 이들일 경우와 아닐 경우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행위의 유익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인가 아닌가도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서구사회의 제국주의의 역사는 서구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 왔을지 몰라도,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에게는 치욕과 착취를 불러왔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정책이나 집단의 논리 속에 차별의 논리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효용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사회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1948년 유엔에서 선언된 보편적 인권선언의 기본가치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가치들은 효용성의 윤리의 집단이기성이나 특수한 이익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적 행위의 한계를 원칙적으로 드러내는 기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 기본 가치들이란 어떤 개인적, 집단적 행위라 할지라도 법적 토대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책무를 가지며, 그 책무는 인간의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연대의 가치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효용의 극대화를 기하는 것은 보다 인간화된 사회를 이루어 나가려는 인류의 도덕적 합의일 것입니다.

The first black dean at Boston University





펜들힐의 숲이 내다보이는 나의 창가에서 나는 간디를 생각하고, 함석헌을 생각하고 하워드 덜만을 읽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평화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에 비하여 내가 부끄럽고 내 영혼이 참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느낀다. 덜만은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인종차별이라는 증오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역사속에서 최초의 흑인 학장으로, 설교가로, 그리고 평화주의 사상가로, 인권운동가로 살아갔다.

어린 시절을 그가 보냈던 그의 고향 플로리다에서는 흑인은 백인들의 차별로 인해 초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가난한 가족들은 영특했던 그를 위하여 조그만 기금을 마련했고, 흑인들의 학교가 있는 잭슨빌리라는 도시로 유학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막상 기차를 타려니, 그가 가진 모든 짐마다 기차 값을 내야 했다. 자신의 여비만 간신히 마련했던 그는 기차 삵을 치를 수 없어 프로리다 데이터나 비치 기차역에 쭈구리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옷을 잘 차려입은 한 신사가 다가와서 그에게 기차비를 대주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사라졌다. 덜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 65년 전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 역에서 나의 차비를 대준 그 사람은 잃어버릴 뻔한 나의 꿈을 되찾게 해 준 이였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이의 꿈을 무참하게 깨뜨리는 이도 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다른 이의 꿈을 다시 살려내는 이도 있다. 그 때 그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미국의 시민운동사에 획을 그은 마틴 루터 킹의 가슴에 불을 지른 하워드 덜만 목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덜만은 후에 백인 일색이었던 보스톤 대학 신학부 교수가 되고, 그 후 학장으로 일했다. 덜만은 그의 말년에 "꿈의 흔적"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하나님의 영의 운동은 우리의 가슴속에서 간혹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 정신에 거슬려 행동하게 하고 아직 오지 않는 것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순간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과감한 도전을 하도록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희망의 빛을 밝혀주시곤 한다."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 불꽃이 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가슴에 절망이 찾아와 홀로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꿈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 분의 도우심을 인식할 수 있는 영적인 자각 속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오늘 우리가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 덜만에게 가장 깊이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노예로 살아왔던 그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덜만이 외지로 떠날 때 이렇게 그에게 일러 주었다: " 네게 일러 둘 말이 있으니 이를 평생 잊지 말거라. 언제나 위를 바라 보거라. 절대 의기소침하여 고개를 떨구면 안된다. 언제나 앞을 보거라. 절대 되돌아 보지 말거라. 그리고 네가 얻는 모든 것은 네가 일해서 얻은 것이어야 한다."

"I want to tell you something, and you remember it all your life. Look up always; down never. Look forward always; backwards never. And remember, everything you get you have to work for!"

모든 이들이 떠나 버린 빈자리에서 외로움과 비애가 뼈를 적시는 깊은 밤과 새벽을 맞아 본 사람은 노예로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힘겨운 날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 이들의 노래와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위대한 영혼을 가진 이들의 삶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들로부터 새로운 용기와 도전을 촉구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을 깊이 만날 수록 나는 불꽃이 이는 영혼을 가진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인간답고 아름다운 이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Friday, November 16, 2007

Speaking out in silence...


- Pendle Hill Class of 2005/6 -

Dear friends,

Warm greetings from CK, particularly to Jiae!
Thank you for the e-mail which reminds me again of the faces I met at Pendle Hill.

As the season turns to another Fall here, I recollect this morning of the Autumn days at Pendle Hill and the cool air and silence at the sanctuary I felt in a morning.

Since I left Pendle Hill, I was invited to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Manila, Philippines, Tainan Theological Seminary in Taiwan, and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I spent one semester in each institution. Now I am teaching here in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I have been a sojourner to my students and friends in Asia, seeing things little bit differently from my own perspective formulated through my past experiences. I saw thousands of suffering Asian people in Asia. I heard from my students about the sad history of western imperial colonization inflicted suffering upon Asian people. Now a new wave of capitalism has hit them again, forcing them into greedy competition. Greedy competition leads us to apathy as imperialists and colonizers did. So we are forced to become small colonizers to other Asians.

I had an opportunity to visit Okinawa two weeks ago. My Quaker friend, Takashi invited me to come to Okinawa. I went there to meet him and to learn Okinawan peace movement against the existence of an American Huge airbase. I never saw that kind of huge airbase. It was a symbol of American Empire, demonstrating its perception of "order" in its expansionism to the end of the world, coercive power, and subjection of others. America is going to build this kind of base in Pyung Taik, Korea!

I am deeply saddened to see the reality of American imperial militarism, even in a beautiful Okinawa, very far east in Asia! America has near 800 bases all around the world. Is America a fighter for freedom, as American Christian fundamentalists proudly believe, against all kinds of terror? America occupied this land before 1945. Militarism is, to me, a simple notion against humanity. It is apparently the successor of Roman Empire in modern era. In Philippines, I saw the American Embassy located in a beautiful seaside, armed with Tanks. But I cannot stop questioning that what they are doing in Philippines when 750 people were killed out of juridical killing during the last year. In Sri Lanka, the situation is worse. In last year, more than 850 families lost their beloved fathers or sons killed brutally out of juridical killing, well designed by hidden hands of domineering people. I do wish you all remember this situation while you pray.

Recently I renamed my "center for Christin social ethics" "Center for Human Rights and Peace in Asia." This is one of my conclusion that I am obliged to do something to work for peace in solidarity with suffering people in Asia. I opened my blog, peaceinasia. blogspot.com for sharing information and thought with my friends and students. Even though there is a clear limitation with my English, my blog is using bilingual: Korean and English. I invite you to visit. There you might notice that I am very much indebted to the spirituality of Pendle Hill. There I learned a radical notion of silence which does not admit any kind of violence. The teachers of Pendle Hill taught me that violence resides in language, system, dogma, ideology and even in our self interests for surviving. I feel always happy whenever I think of each of all, and of every corner of Pendle Hill I used to take a walk during my days at Pendle Hill.

I will not name each of you, but all of you are in my heart!
Wherever you are, stay in the Light!

CK

Do not conform to the silly politicized preachers...



Suddenly there appear some evangelists who are addressing their political opinions on the pulpit. It is strange to me because they were keeping silence when our society was dominated by domineering military power. At that time they chaired a number of prayer meetings for praising the dictators. Since the civil government established about 12 years ago, they came out and began to speak about politics from a fundamentalist perspective. They are mostly fundamentalists who pay attention to Christian interests. Once they had their hairs cut, requiring government of cancelation of the education law recently enacted. They identify themselves with anti-communists who are well prepared for fighting for religious freedom. But against whom are they are militant? Seen with a global perspective, the old ideology of communist revolution had already passed away. Nevertheless they are eagerly militant for waging an ideological war. They seem to be like the dogs barking at the shadows.

Using the authority of pulpit on the behalf of a political figure is so bad misconduct. According to the historical lessons, religious teachings should never be associated with the politics. It is not because politics is so bad, but because religion should be too radical to be in connection with politics. Politics is a skill for compromising aimed for grasping power regardless what the nature of means may be. If religion begins to serve politics, it means that the radical nature of religion turned out to be guided by political ideas. When a preacher delivers a speech on the pulpit, he or she is serving the Lord, God, not a politician who is a simple sinner. For this reason, it is wrongful to use the pulpit for propaganda of a politician. It is definitely a grime sin.

Going back to the era of the Nazi regime, the German Christians equipped with Luther's teaching on the two kingdoms ordained by God made a great mistake to acknowledge Hitler on the pulpit as a servant of God. We remember that German Christians were too obedient to recognize the vicious face of Hitler. In 1934 at Barmen, a number of theologians and pastors got together and declared the famous Barmen Declaration which addressed about the basic principle of the relation of Christian faith to politics. However, the German churches did not listen to it. Instead they honored Hitler as if he represents the authority of God. They were too much convinced with themselves, for their society was a total Christian. This brought them a huge historical mistake. They assisted Hitler to kill more than 6 million of innocent Jews.

Korean Christians, they are too much proud of themselves. They seem to be empowered through the rapid growth of Christian population in Korean society. Yet, unfortunately they are misleading to political messianism by politicized pastors. It is of great danger when religious community confuses messianic politics with political messianism. Messianic politics is a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God's initiation in politics which is not yet revealed. But when Christian churches occupied by a political messianism, then Christians who are supposed to hope for the peaceful politics of Christ become to serve for a secular ideology proposed by a sinful politician who tries to take over the role of Christ. Thus a secular, sinful politician takes over the place where the gospel of Christ is to be proclaimed. This is why corrupt pastors do on the pulpit.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Jesus was too radical to speak for a politician. It is of great mistake for spiritual leaders to partake in relative politics. If they want to stand for a politician, then they should give up their spiritual authority as a preacher. Preaching is only for proclaiming for the gospel. Otherwise their spiritual authority endorsed by God might be abused or misused for a certain political interests. Then Christian community might be misled by silly pastors who are blind for politicizing the body of Christ. It is very sad and sorry to admit that such politicized silly pastors are always there in human history. They are those who confuse their calling with the servant of a sinful politician. We should never conform to them in any circumstance. It is a clear sin before God because they lead God's people to an idol worship.

Wednesday, November 14, 2007

The Reason Why the Eyes of the Lady of Justice are Covered...



"Chief Prosecutors secretly get bribed from Sam Sung"

Several years ago when I was staying in a Quaker Monastery, Pendel Hill in Philadelphia, Pennsylvania, I got an important lesson from the community. The Board of Directors of Pendle Hill has been applying a principle of fair trade to their community life. Whenever they purchase coffees and vegetables, they paid much more money in comparison with the case they buy in a supermarket.

One of the cooks told me that they are willing to pay for the fair trade, concerning about the goods produced by fair labor or trade. If we buy cheaper coffee, that means we might come to assist the system of unfair labor of children in the farms where they seek for cheap labor from children. Or if we purchase cheap vegetable that means also that the farmers are forced to use cheap labor or fertilizer to make the vegetable grow rapidly. For this reason, Pendel Hill purchases goods through fair trade process. To practice fair trade, Pendle Hill makes contact with the farmers who promise Pendle Hill to produce the goods using fair labor and organic farming as well.

Quakers, they are living without luxurious things. Simplicity is one of the basic Quaker principles. Integrity, simplicity, and pacifism are the fundamentals for Quaker life. They really believe in the fact that they could be perfectly obedient to the biblical commandments as far as they are guided by the Light of Christ. Thus, a life with integrity is to pay fairly for the goods we need for our daily life. In order to live out a life with fairness, they make a contract to encourage farmers to be honest in farming. The farmers, mostly Mennonites, they also ask fair trade when they sell what they produced honestly. It was a striking story I heard for the first time.

From my experiences, when I eat with my students in Korea it was natural to me as well as to my student that I usually pay for the foods. They do say thanks, but I feel there is some assumption that professors should pay for the foods because they earn more money. When I was in Philippines, I had to pay for the foods because I was the richest person among us. However, when I was teaching at Tainan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 I was refused to pay for the foods by the students who were willingly paying for their own foods respectively. They told me, “Why are you going to pay for the foods we ate?” I told them, "because I am professor who earns more money." However they were laughing and asking me “why?”

In Hong Kong, I had several times to get together with my students. But at each occasion they paid for their foods and I for my foods. They seemed to think that it was unfair to me if they let me pay for their foods. To maintain dignity and higher self esteem I thought we need to practice the fair principle of fair relationship. Aristotle once said that pride is to deserve what one has to be offered. If I get something without paying, then I might get profit in the sense of getting something. But at the same time, I might be subjected to the person who gave me a favor. Thus, I could lose my pride, not be able to ask for my own.

These days, I got news about the bribery of the chief prosecutors. Even such higher authoritative public figures they pond of getting money for free from a huge company like Sam Sung. This secrete ”give and take” bribery habit was exposed by a former prosecutor and later one of the chief chair for Sam Sung legal staffs. Suddenly the prosecutors have lost respect and authority from people. Lacking of the sense of fairness, what did the prosecutors, the bribery takers do for the bribery giver? Getting something for free charge is a crime because it ruins the basic trust in our society. By bribing the prosecutors the bribery give might have got much more interests than what they bribe.

It is really a red signal indicator of our society that those who are responsible for keeping the basic democratic values turned out bribery takers. At the court yard we could see the carved three words: justice, freedom and equality. How shameful news! It is not the shame that there were some bribery relationships, but the shame that those who should keep eyes on the democratic values are the very bribery takers. Yet, before we stone them, we should be critical with ourselves whether we have the possibility of becoming unfair bribery takers. If we are far from the sense of fair trade in our daily life, we might also fall into the same spot being bribed. The prosecutors might have misunderstood the lady of justice. They seems to think that she covers her eyes for letting them to be bribees....

There is always a way to serve your neighbors....


< 이 글은 "우리사이" 74호에서 퍼온 글입니다>

돈보다 섭리에 기대어 살기

겨울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우리 VIP손님들을 위한 김장이 어떻게 마련되어질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민들레국수집의 일이 제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좁쌀 한알. 도솔출판사. 최성현. 46쪽).

저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 주시는 분들을 대접한다면서 겁도 없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다, 후원회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생색내면서 주는 돈은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면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점점 늘어나는 손님들 때문에 진땀이 났습니다. 손님들이 드실 쌀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연줄연줄 아는 분들에게 부탁해 보았지만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분도 있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습니다. 눈 딱 감고 민들레국수집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입니다. 책임질 일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얼굴이 뜨겁습니다. 한 끼 밥도 얻어먹기 힘든 우리 손님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우리 손님들의 처지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은 또 어떠실까? 용기를 내어서 민들레국수집의 옆 동네인 만석동의 ‘기찻길 옆 작은학교’의 단비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겨우 말했습니다. 공동체와 상의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합니다. 잠시 후 단비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백만 원을 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첫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첫해인 2003년도에는 갑자기 늘어난 우리 손님들이 드실 쌀을 구하느라 김장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푸짐한 김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거저 주시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데도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과 함께 오순도순 숨어 지내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문하러 오셨던 착한 분이 우리 손님들에게도 대접하라며 성탄 선물로 주신 쇠갈비 반 짝을 택시비를 아끼려고 자유공원 근처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고 오다가 너무 힘들어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께 짧은 거리를 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굳이 목적지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국수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 기사님께서 허름한 민들레국수집을 보시곤 어떤 곳인지 물어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차비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서너 시간 후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강화도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형님이 좋은 일로 식당을 그만두게 되셨는데 올해 담은 김장 김치를 전부 국수집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곧바로 트럭을 빌려서 강화도로 가서 한 트럭 가득 김치를 싣고 왔습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순무김치까지 주셨습니다. 우리 손님들께 늦은 봄까지 대접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의 김장은 경상북도 봉화에서 농사를 짓는 착하신 바오로 형제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았고, 화학비료도 쓰지 않은 유기농 배추인데 그냥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모자라는 고춧가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토굴에 그 많은 김장을 저장까지 해 주십니다. 그래서 두 해 동안은 겨울이 오기 전이면 민들레의 집 식구 서넛과 함께 봉화에 가서 김장을 했습니다. 천오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배추밭에 가서 직접 배추를 뽑아서 트럭으로 바오로 형제님의 집으로 옮겨서 밤늦게까지 전등을 켜 놓고 배추를 다듬고 소금물에 절여 놓습니다. 십일월인데도 살얼음이 어는 곳입니다. 찬바람 맞으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배추를 절이느라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절인 배추를 맑은 냇물에 헹굽니다. 오전 아홉 시 반쯤에 봉화성당의 수녀님과 자매님들이 승합차로 오송골에 오십니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수녀님과 자매님들은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주십니다. 겨우 저녁 무렵에야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많은 배추가 먹음직스럽게 버무려져서 토굴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겨서 저장됩니다. 다음 해 여름까지 청송 교도소를 다녀오는 길에 들러서 싣고 오곤 했습니다.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

손님들이 김치가 맛있다고 기뻐합니다. 정말 김치가 맛있습니다.

네 번째 해에는 김장은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화에 계신 착한 바오로 형제님께만 큰 부담을 드리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또 마땅히 김장 김치를 저장할 곳도 없어서 김장을 하지 않고, 그냥 조금씩 김치를 담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분들이 저보다 더 김장 걱정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네 새마을 부녀회에서는 일손을 거들겠다고 합니다. 식재료를 납품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은 김장을 한다면 필요한 고춧가루와 마늘과 생강을 내어놓겠다고 합니다. 샘표간장 대리점을 하시는 분은 소금과 까나리 액젓과 양념들을 선물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화수시장의 착하신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싱싱한 새우를 두 상자나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화수1동 동사무소에 계신 착하신 분께서 배추가 필요한지 물어봅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착하신 분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배추를 샀다면서 필요한 곳에 전해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배추 200 포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속이 꽉 찬 배추를 320포기나 실어다 주셨습니다. 김포야채 가게 주인은 필요한 무와 대파들을 원가에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 식구 셋이 배추 절이는 일을 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지나가시다가 한 분 두 분 거들어 주십니다. 어느새 배추를 다 절여 놓았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김장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거들어 줍니다.

김장하는 날인데 비가 내립니다. 봉사자이신 아가다 자매님이 어느 틈에 천막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새마을 부녀회 자매님들이 비옷을 입고 절인 배추를 씻고, 나르고, 양념을 다듬습니다. 오늘 김장은 배추 320포기, 무 300개, 쪽파 20단, 갓 20단, 대파 15단입니다. 국수집 주변의 민들레의 집 식구들도 김장을 거들어주기 위해 모였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던 우리 VIP 손님 몇 분도 쪽파 다듬는 것을 거들어주십니다. 생선 노점상을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싱싱한 대구를 열 마리나 주시면서 매운탕을 끓여 김장하는 분들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동네 약방 어르신께서는 뜨끈한 쌍화탕을 직접 오셔서 나눠주십니다. 민들레국수집의 김장이 아니라 동네 김장을 하는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김장을 하는 날이지만 VIP 손님들도 계속 찾아오셨습니다. 금방 버무린 김치도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소문을 듣고 식사하러 오신 손님 한 분이 불평을 합니다.

“하필 오늘 김장을 해서 밥 먹는 사람 힘들게 하느냐. 쉬는 날 하지.”

김장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200포기를 담아도 저장해 둘 곳이 모자랄 텐데 320포기나 담았으니 김치가 넘쳐납니다. 김장을 반으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먹을 김치입니다. 하나는 김장을 못 담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이 가득 담겨 버무려진 맛있는 김치가 차곡차곡 창고에 저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장도 못한 가정에 나눠 줄 김치도 비닐 봉투에 잘 담아 나눠 드렸습니다. 서른 가구도 넘게 가져다드렸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에게도 필요한 만큼 나눠드렸습니다. 그 많던 김치가 자기 있을 자리로 잘 나뉘어졌습니다.

다시 새로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올해 김장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공동선 2007년 11-12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Sadness with joy and happiness






As a sojourner on this planet, I am well conscious of my beginning in the past, and the moment of my death in future as well. Sometimes I know that it is deeply sorrowful to remember of my fate, limit, destiny, the darkness of the other side of my life. However, I know also I am blessed to experience the beautiful moments, the dawning twilight, buds coming out from the soil, the splendid beauty of blooming flowers, and starring eyes of a child, and the spirit not fearing of fate. Travelling the long way I took in the past, I met some who loved me, others who ignored and even betrayed me. Yet, I believe that I am still abundantly blessed to have my own boys who are also partaking in their journey as sojourners of this planet. Yes, it is painful to remember they are also destined to say good bye to this world when time comes as I will.

However, I come to know that everything given in this world is a divine sign for the direction to the truthfulness and beauty of life. When I feel my boys are grown enough to stand for themselves, and begin to look for meaning of life for their own. Like a seaman struggling for making a voyage in the sea of huge waves, I see my boys are moving on, declaring bravely that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Until I see my beloved sons fighting for their own lives, I did not know life is so holy and splendid. Yes, it is not the matter of pleasure or achievement you could get, but the matter of mastering your own fate beyond your wrath, fear, and horror of dark shade.

The trembling happiest moment I experience with my heart is to see the unconquered spirit, the not feared face before the horrible shade drawn before you. The final victory I long for is not to get the named victory in the world like fortune, love, or honor, but becoming the master of my fate consistently, until I welcome my own death, without fearing of the terror of the misfortunes. Even if I am fatal to make errors in my life, I will never surrender my free spirit to nihility, believing in God who is faithful and supportive for dignifying lives and sharing the suffering of lives limited to mortality in the universe. When I have to say good bye to everything, I will be very much thankful to God for his gracious guidance which leads me to be a human.

Tuesday, November 13, 2007

Aristotle and Ethics of Character

ARISTOTLE의 윤리학

행위자의 도덕적 능력
진지하게 옳고 그름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누군들 옳고 그름이라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옳고 그름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전략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태도도 윤리학적으로는 일종의 윤리적인 행위입니다. 이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편안하고, 즐거우며,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마 모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적인 윤리학적 논의를 살펴보면 한결 같이 행복론 (eudaemonianism)담고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과 행복한 삶은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가톨릭 윤리학자인 맥카비( Herbert McCabe)는 윤리학이란 “전적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결국 이 말은 윤리학이란 가장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가장 자연스러운 것, 내 적성에 맞고 내 본성에 맞아 편안한 것, 그래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행위를 찾아 하려는 것이 윤리학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여기에는 어떤 특정한 원칙이 이미 주어져 있으니 그것을 잘 찾아야 한다는 뜻이 동반됩니다. 가톨릭 신학자답게 자연적인 원리에 맞는 삶과 행위를 찾아 행하는 것이 윤리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이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동남 아시아의 비기독교적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우 유사하지만 나름대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같은 사람은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은 바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매우 유사한 윤리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덕이 있고 품위 있는 인간“의 형성에 대한 교육적 관심을 깊이 가졌던 이들입니다. 윤리학적 전통에서 우리는 이들을 덕의 윤리 (ethics of virtue), 성품의 윤리 (ethics of character), 혹은 완전주의적 윤리학을 ( perfectionist ethics) 전개한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칸트가 인간이 가지는 도덕율을 합리적으로 해명하며 그것을 의무이론으로 밝혔던 것에 비하여 이들은 도덕적 주체인 인간 자신을 어떻게 윤리적인 존재로 교육할 것인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교양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한 사람이 있고, 희생적인 봉사도 마다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우 이기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평화적인 사람이 있는 데 반하여 폭력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에는 남에게 폐가 되거나 해악을 끼치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사려 깊게 헤아리는 사람이 있는 데 비하여 다른 이에게 해악을 끼치더라도 자기 욕망과 만족을 채우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칸트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인 경우를 가정했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매우 비합리적인 이기적이며,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도 만납니다. 따라서 “왜 이 사람은 덕스러운 데 저 사람은 사악한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Reinhold Niebuhr) 인간 개인은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덕스러운 존재일 수 있지만 사회집단은 덕스럽기 보다는 집단 이기성에 매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개인이라기보다는 무리지어 다니는 집단입니다. 개인의 사악함은 도덕적 설득을 통하여 극복될 수도 있지만. 집단의 이기성은 집단이 생산해 내는 이데올로기로 강화되어 도덕적 설득보다는 강제적 통제가 더 유효하다고 라인홀드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집단만이 아니라 개인도 사악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집단과 도덕성의 문제는 사회윤리학적인 관점에서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이 장에서는 왜 모든 인간은 각기 다른 도덕적 성품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행위자 중심의 윤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자의 도덕성은 습관(habitus)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어떤 행위를 반복하느냐에 따라서 습관이 형성됩니다. 합리적 사고와 판단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존중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인가에 대하여 감정이 상해 기분이 나쁘면 그것을 피하게 되고, 무엇인가 만족스럽고 좋으면 그것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인가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는 삶의 원칙, 즉 반복의 원칙(repeat)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의 습관은 감정에 기초하지만 반복을 거쳐서 이성적으로 체계화 됩니다. 그러므로 이성의 능력에 의하여 길들여지고 습관화된 삶은 인간으로서 출중함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은 배부른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불편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요즈음같이 웰빙(well being) 문화가 보편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비만이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식탐이라는 습관이 생길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이 먹어 불편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먹는 것을 이성적으로 조절함으로 자신의 식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너무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아닌, 즉 거식이나 과식을 피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현대인들의 자기 관리를 위한 중요한 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무수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하여 무엇이 가장 적절한(appropriate) 행위인지를 체득하게 됩니다. 가장 적절한 행위양식을 일러 출중함, 혹은 덕이라 불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러한 적절한 행위를 중용지도(means)라고 여기고 그것을 일러 “덕”(arete)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덕이란 좋은 습관을 의미합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좋은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따라서 이렇게 좋은 성품, 혹은 높은 교양과 고결함을 가진 사람은 어느 순간 문득 무엇인가 깨달아 변화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랜 삶의 행위와 사유의 습성을 통하여 형성된 인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성품의 형성은 깨달음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진리의 현현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일상의 삶의 궤도에서 오랜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의 형성은 바로 자신의 행위가 가장 적절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이런 노력을 통하여 습관을 옷 입는 데에서 드러납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좋은 습관, 곧 덕은 악덕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악덕은 부적절함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 부적절함은 절제되지 못한 습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항상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걸핏하면 폭력적인 행위와 언사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폭력적인 절제된 행위를 습관화하기 보다는 폭력적인 감정과 행위에 더욱 습관화된 사람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습관은 어느 순간의 기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무수한 반복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국가 대표 급 선수가 강도만나 만난 한 시민을 도와 그 사람을 구하고 강도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위험한 정황에서 자기가 해를 당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를 붙잡았으므로 그는 정의롭고 용감한 시민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바로 그 사람이 경찰에 체포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상습적으로 약자를 괴롭히며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특정한 행위를 들어 그를 덕스러운 사람으로 보는 관점은 이런 사례를 통해 본다면 그리 바람직 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행위는 어느 순간의 행위가 아니라 늘 용감한 습관을 덕으로 형성한 이들에게서 찾아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을 특정한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습관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4대 덕목을 이런 관점에서 젊은이들에게 반복적으로 습관화하는 교육을 제창하였고, 이를 그 당시 귀족들의 교육이론으로 적용하였습니다. 여기서 귀족주의(aristocracy)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의 도덕적 의무를 이르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se)도 일면 이런 성품의 윤리의 중요성을 지시하는 말입니다. 돈과 권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높은 품위와 교양과 도덕성이 수반하지 않으면 사회적 존경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특권을 가진 귀족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교양과 덕은 깨달음의 차원이 아니라 습성화된 성품의 차원에서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덕의 습관과 더불어 덕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도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반복적 습관이란 인식론적 차원보다는 실천적 차원에서 얻어지는 덕을 의미합니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습관화된 덕은 모든 교육구조에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는 무수히 반복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정례화된 종교적 제의나 기도에도 적용되었습니다. 특히 카톨릭교회는 말씀에 의한 깨달음보다는 반복적 행위의 습관화된 신앙생활을 중시 하였는 데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이론을 받아들여 신자들의 삶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여 개신교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주의적인 깨달음의 종교라는 측면이 강해 덕보다는 믿음을 더욱 강조해온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덕과 성품을 쌓기 위한 노력에 소홀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회심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사람도 한참 지나가 보면 여전히 옛사람의 습성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행복 Eudaemonia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출중(excellency)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출중함이란 덕과 성품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칼이 있다면 칼은 무엇인가 자르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그 칼이 그 존재 목적에 맞으려면 날이 날카로워 잘 들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그 목적에 적합한 출중함을 덕이라 본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출중함을 그의 덕론에 따라 지혜, 절제, 용기, 정의라는 네 가지를 주덕 항목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혜나 용기, 정의 그리고 절제는 습관화된 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기능에 대하여 어떤 생명의 형태라고 말한다면, 생명의 형태를 합리적인 원리들과 연계된 영혼의 능력이나 활동들의 실행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바로 좋은 사람의 기능을 일러 이러한 활동들을 잘 그리고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어떤 기능이 그것에 적절한 출중함에 따라 수행되는 경우 가장 잘 수행된다면 -- 바로 이런 전제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란 출중함이나 덕에 따라, 혹은 인간의 출중함이나 덕이 여럿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최고의 완벽한 것에 따라 그의 영혼의 능력이 실행되는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자기 목적에 가장 기능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 출중한 사람이며 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출중함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존재 이유요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덕이란 인간의 자기목적에 충실한, 즉 행복에 가장 작합한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돈을 가진다면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돈을 무엇인가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다른 매개적 수단과는 달리 행복이란 바로 그 자체가 인간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얻기 위한 수단,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최상의 기능이거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덕은 가장 출중한 행위능력을 뜻하는 것이지요. 돈이나 명예나 혹은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궁극적인 목적 자체가 아니라 덕을 만나야만 궁극적인 최상의 목적인 행복(flurishing)을 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
이런 그의 생각은 플라톤의 현실과 이데아(형상)가 나누어져 영원히 평행을 이루는 추상성을 배제하고, 형상을 현실적인 존재 안에서 잠재된 씨앗처럼 보아 그 성장과정을 통하여 현실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변화의 논리를 수용한 결과입니다. 플라톤에게서는 궁극적으로 덕이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고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으로 다른 세계에서 별처럼 빛나는 것입니다.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궁극적인 이데아, 곧 형상으로서의 덕은 철학하기인, 기억과 회상의 방법으로만 겨우 희미하게 이해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구체적으로 덕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설명 했습니다.

“덕이란 행위와 감정을 결정하는 마음의 정해진 입장으로 우리에게 상대적인 중용의 원리에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고, 바로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이는 다름 아니라 덕스러운 사람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덕은 그의 시대 정신에 맞는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현대적 덕스러움과는 다소 상이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덕을 지적인 것 (intellectual virtues)과 도덕 적인 것으로 (moral virtues) 대별하했습니다.

도덕적 덕은 용기 (courage), 절제 (temperance or moderation), 돈거래에 있어서의 관대 (liberality), 부유함이나 권력 앞에서의 당당함 (magnificence), 당연한 권리와 몫을 요구하는 긍지 (pride), 분노에 대한 절제로서의 유순함 (gentleness), 기꺼이 옳음을 지지하는 동의 (agreeableness), 진실함 (truthfulness) 와 유모어 감각 (wit)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지도를 이르는 덕은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될 수 있는 데 그 첫째가 균형(equilibrium)입니다. 균형이 잘 잡힌 상태를 이르는 이 말은 곧 양극단으로 쳐지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옳고 그름이란 다름 아닌 균형이 잘 잡힌 상태인가 아닌가에서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그 덕은 상대적인 것(reletive)으로서 주어진 정황에 따라 그 규범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1에서 9까지의 중용은 5이지만, 1에서 25까지 에서는 중용지도의 덕은 13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25까지의 수에서 잘 균형이 잡힌 덕스러운 상태를 첫 번의 경우를 원칙으로 삼아 5라고 주장한다면 25라는 전체의 수 앞에서 그것은 모자람이거나 부족한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동식물을 바라보면서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 모두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런 덕의 상대성은 개별 동물이나 식물마다 생명을 존속시키는 조건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개체 상황에서 가장 출중한 판단은 상대적이지만 가장 균형이 이루어지는 데에서 덕이 형성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덕이란 양극단 을 의미 하는 악덕 사이에(inbetween)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침(excess)이나 결핍 (deficiency)은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어느 경우에도 덕이 될 수 없습니다.

자발적 행위와 덕의 구조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덕을 삶의 목적으로 아는 것과 그 덕을 실천 할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덕에 관하여 알고 있고 이해는 하지만 실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하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덕을 일종의 앎의 의무 혹은 정언적으로 이미 주어진 명령으로 이해하는 칸트와는 달리 그 것을 일종의 실천 능력으로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를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자발적인 것(voluntary), 비자발적인 것(involuntary), 그리고 무자발적인 행위(nonvoluntary)가 그것입니다. 덕과 관계된 행위는 이 중에서 자발적인 것뿐입니다. 따라서 자발적인 행위만이 도덕적인 것이며, 그 결과는 행위자의 책임을 불러오게 되어 비난이나 칭송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강요된 것이나, 혹은 무의식적인 행위, 혹은 의도하거나 의지하지 않는 행위라면 도덕적인 행위라 할 수 없습니다. 비자발적인 행위는 사람이 충분한 인식이나 정보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그릇된 행위를 한 것이 있을 경우, 만일 그가 그런 행위를 하고서 후회를 한다면 그 경우는 비자발적인 행위이고, 만일 후회조차 하지 못한다면 무자발적인 행위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행위의 동기와 결과에 대한 인식능력도 덕의 조건이 되는 셈입니다. 다만 현대 윤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의지“의 조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쿠스 윤리학에서 한 부분을 할애하여 용기, 절제, 그리고 방탕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용기란 전장에서 죽음을 직면한 병사들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확신이나 공포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명예를 지키는 자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통이나 공포 사이에 중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음이 불러오는 두려움에 직면하는 자세에서, 비겁함이나 공포에 질리지 않고 경솔하거나 비겁함을 보이지 않는 것이 용기입니다. 절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소극적으로 자기욕망에 빠지지 않는 상태로서 버릇없는 아이처럼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는, 방탕한 행태와 같은 전형적인 무절제를 벗어난 상태를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정의에 대해서는 니코마쿠스 윤리학 5장에서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의는 그의 사회윤리의 근간입니다. 그의 정의론은 일반적인 보편적 정의(general or universal justice) 개념, 그리고 특수 정의(particular justice) 개념으로 나누어지는 데 일반적인 정의는 법을 지키는 일이나 다른 덕과의 관계를 지시하고, 특수 정의는 덕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 부류로 나누어 집니다. 특수 정의란 다른 덕의 정의롭지 못한 사실을 밝히는 데 적용될 수 있는 데, 예를 들자면, 전장에서 방패를 버리고 도망하는 병사의 비겁함은 정의롭지 못한 일로서 불의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떤 행의의 결과로 인하여 부덕함이 결과될 경우 이는 정의의 훼손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동기나 행위에 의하여 얻는 불의한 이익을 구별해 내는 데에서도 특수 정의 개념이 적용됩니다. 적진에서 부상을 당한 동료를 버리고 오는 행위는 비겁한 일이지만, 비겁함보다는 자신의 편리함이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면(overarching) 이 경우는 불의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능력이 있음에도 그 능력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부덕할 뿐 아니라 불의한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불의한 행위와 구별 되는 특수한 불의로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톨레스의 예를 들어 부연 설명한다면 이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돈을 벌기위해 하는 간음과 욕망충족을 위한 간음이 있다면, 돈을 벌기위한 간음은 절제치 못한 행위가 아닌 불의한 행위이지만, 욕망충족을 위한 간음은 무절제한 불의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일하게 불의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 의도와 동기에 있어서 한 편은 절제치 못한 부덕의 결과라면, 한 편은 부도덕한 이익관계를 추구하는 행위로서 구별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특수정의는 공정치 못한 행위를 판단하는 가치라면, 일반 정의는 덕스러움을 갖추지 못한 행위를 드러내는 판단기준으로서의 정의를 지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르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적게 재화를 나누는 것이 불의한 것이고, 그 중간이 공정함(fairness)이라는 규범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그는 많거나 적음이 없는 평등한 재화의 분배를 일러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분배적 정의와 더불어 교정적 정의(rectificatory justice)라는 개념도 제시했는 데 이는 예컨대 재판관이 가치판단을 통하여 손실이 난 것만큼 보상하도록 함으로서 균등한 평등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정의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조망에서 본다면 일반 정의나 특수 정의라는 개념은 정의라는 커다란 의미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의 개념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더 크거나 적은 정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 덕(intellectual justice)이라는 개념아래 다섯 가지 덕을 포함시켰습니다. 지식, 예술, 분별력, 직관, 그리고 지혜 (knowledge, art, prudence, intuition, and wisdom) 입니다. 오늘날 윤리학자들은 이 모든 것을 덕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덕에 비하여 이 덕목들은 더욱 추상적인 중용지도를 지시하는 것으로서 결핍이나 지나침은 악덕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니코마쿠스윤리학 7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람직하지 않은 도덕적 성품을 세 가지 들고 있는 데, 그것은 악(vice), 무절제(inconvinience), 그리고 잔인함(brutality)입니다. 그의 시대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가장 도덕적 삶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잔인함은 특히 동물적인 행위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무절제는 즉각적인 쾌락을 불러오는 욕망에 동기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절제의 덕은 이성적으로 판단되어 질서지어진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무절제는 방탕함으로 이어지고 끝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비이성적인 행태로 이끌려질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즐거움 혹은 쾌락(pleasure)을 이해함에 있어서 모든 즐거움은 나쁜 것이라고 보았던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프스(Speusippus)나 모든 즐거움은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던 유독수스(Eudoxus)와는 달리 다소 온화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한 즐거움은 중독으로 이끌려지거나, 온전한 성품을 이루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즐거움은 행복과는 다른 것이라고 규정 하였습니다. 쾌락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덕스러운 행위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즐거움이나 쾌락만이 좋은 것일 수 있지만, 덕스럽지 못한 행위의 결과로서 쾌락은 해악이라고 본 것입니다.

지나침과 결핍을 피하여 중용의 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덕이므로 정의와 절제, 혹은 용기와 지혜가 모두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침이나 결핍은 부덕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습성화된 삶의 반복을 통하여 옷입은 덕, 그것이야 말로 실천적인 능력을 가진 덕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원적 영성이나 가톨릭 적인 영성은 이번 실천적인 덕에 뒷받침된 신앙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개신교는 보편적인 인간의 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죄인이 범하는 죄의 차별성에 대한 인식에 인색합니다. 즉 모든 인간은 크기에 차이가 있을 지라도 동일한 죄인이라는 원칙에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라인홀드 니버 같은 신학자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점에서 죄의 평등성(equality of sinfulness)와 더불어 개별적인 죄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는(inequality of sinfulness) 라는 개념을 통하여 비록 죄인이지만 선한 삶을 살아가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차이를 중시 했습니다. 그의 통찰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사회안에 어울려 살면서 선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입니다. 비록 우리가 모두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권원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 이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죄의 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역사에 적용한다면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타락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하여 인간의 도덕적 실천 능력도 공정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듭 짓는 말
인류의 역사 속에서 아리스토렐레스는 덕의 윤리학을 제창한 최초의 종합적인 사상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동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한 윤리적 이해를 제시한 사람은 공자입니다. 공자 역시 올바른 마음가짐과 행위를 위하여 중용의 도를 가르쳤고, 이를 위한 수신(修身)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덕의 윤리학은 선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행위자의 관념적 이해나 산술적 계산에 앞서 행위자의 도덕적 능력을 성품의 형성에서 찾는 것을 중시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성품이란 개체인이 가진 천재적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조정 가능한 중용지도를 선택하는 행위의 향방을 결정하는 습성이기도 하고, 이성적으로 잘 제어된 감정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덕을 갖춘 사람이야 말로 사회 속에서 가장 출중한 사람이며, 그의 삶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덕스러운 삶이란 특정한 일회적인 행위나 개념 파악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실천적 습관에 더욱 의존하여 지나침이나 모자람의 양 극단을 피하고 균형잡힌 삶의 감각에서 더욱 꽃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심리학자와 같은 일련의 학자들은 그러한 덕이란 사실 상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기준을 덕의 특성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동일한 행위의 반복성과 다수성을 낳게 하는 능력을 함축하는 덕의 특징들은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들도 있습니다. 일명 덕의 윤리학을 지지하는 이들은 가톨릭 도덕신학자들과 더불어, 소종파적인 전통을 가진 윤리학자들, 그리고 현대 사상가 중에는 맥킨티어 (Alasdair MacIntyre), 하우어와스(Stanley Howerwas), 그리고 길리건 (Carol Gillian)을 들 수 있습니다.

덕의 윤리학은 인간의 도덕성을 사회 전체 안에서 조망하면서 가장 행복한 삶의 원리를 행위자의 도덕 능력에서 찾았고, 이러한 능력을 키워내는 도덕 교육의 근간을 마련했지만 일면 언제나 사회적 정황에 적절한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급격한 변화나 혁명적 요구를 담아 내지 못하는 보수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동서를 통하여 덕의 윤리는 현존체제 유지적 기능을 담당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덕의 윤리는 행위자의 도덕적 질을 구별할 이론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고귀한 사람과 천박한 사람, 혹은 귀족이나 천민들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유교사회는 신분적 차별을 간과했고,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아퀴나스의 사상 구조 안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신분적 차별을 정당화한 역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Monday, November 12, 2007

Church, Politics, and the Authority of Pulpit





“교회와 정치, 그리고 강단의 권위”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는 기독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그리고 다양한 주제이다. 기독교 사상은 다양하게 정치에 영향을 주어왔고, 또한 정치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혹은 신학적 입지에 따라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기독교는 정치와의 상관성을 다양하게 형성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와 정치와의 상관성은 언제나 예수의 삶과 사상의 빛에서 숙고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독교적인 정치와 교회의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로서 혹은 신자로서 교회의 정치적 관련성을 생각해 보려면 우리는 “오늘의 한국 정치 상황 한 가운데에서 만일 예수가 여기 있다면 무엇을 말씀하실까?” 이렇게 내심 묻는 것이 매우 옳은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현장에서 말씀하는 듯 한 직접적인 예수의 말씀과 뜻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성례와 기독교인의 삶의 근거를 밝혀온 신학적 논의로 관심을 옮길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이 때 개신교 성직자들이 소위 비정치적인 정치적 발언을 이곳저곳에서 하고 있다. 비정치적인 정치적 발언이란 정치적인 발언이지만 사실은 비정치적인 종교적인 권위와 지위를 이용하여 성직자들이 신자들에게 정치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상에서는 지난 늦봄 설교와 정치에 관한 토론도 벌렸다. 하지만 최근 성직자들의 정치적 발언은 신학적이기 보다는 매우 정치색이 짙은 선동적인 성향이 강하다. 바로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일련의 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목회자 70인이 현 정부의 대북 평화정책을 비난하고 거짓평화를 추구하는 좌파 정권에 대한 경고를 던지는 레이블을 붙여 주었다. 이런 양태에 반하여 진보성향의 목사들은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현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입장을 표하기도 하는 등 기독교 진영 내부에서도 좌우의 편향성이 두드러진 양상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2007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교계의 우파성향을 가진 성직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신교 장로의 대통령 론”을 주장하며 신도들에게 지지를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부흥사는 막말을 섞어가며 신앙적 차원에서 구원의 조건이라도 되는 양 누구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고 을러대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가관이며, 비신학적이고,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하면 많은 성직자들은 “기왕이면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당연시하는 풍조를 만연시키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교회를 기독교 집단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이익집단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교회를 편협한 종교적 편견으로 물들임으로써 기독교인이 아닌 대통령 후보들에게는 노골적인 종교적 차별을 가하겠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역대 기독교 장로 대통령에 대한 기억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감리교 장로였던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운의 초석을 놓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독재와 부정부패로 점철하다가 젊은 학생들의 혁명에 의하여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그런가하면 장로교 장로였던 김영삼은 군부독재자들의 권좌를 이어받았던 노태우와 협력하며 정권을 잡았으나 군부 독재자들과 방불한 권위주의적 행태를 드러내다가 그의 아들을 통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모아 두는 등 참으로 부패한 기독교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순진한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기독교인 장로 대통령에 대한 참신한 기대를 외면한 채 그들 스스로 깊은 이율배반을 남겼다. 이렇듯 반민주적이고 부패한 정권의 상징으로 전락하고만 이승만과 김영삼은 과연 한국 기독교의 선교에 도움을 준 것일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뻔뻔스러운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된 기독교 정치인들을 향한 일반의 불신을 증폭시켜 기독교인들의 인격과 도덕적 성실성에 의혹을 던지는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나는 이런 기독교 공동체의 기대와 실망의 이중주를 바라보면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정치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심각하고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대만에는 대만 전역을 돌아보아도 감리교회가 거의 없다. 오직 대만 장로교회만이 백삼십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대만 기독교회의 중심에 서있다. 그런데 감리교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살펴보면 도나 시마다 하나 정도는 있는 데 그 힘이 매우 약하다. 현실을 살펴보니 대만 장로교회의 역사는 카나다 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이 대만에 상륙한 이후 대만 교회와 더불어 대만의 민주화를 위하여 여러모로 공헌해 온 데 비하여 감리교회 선교는 장개석 총통이 중국 본토로부터 쫓겨 오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장게석은 중군본토와 대립각을 세우며 반공이라는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강압적 독재정치를 이어오다가 그의 권력을 그의 아들에게 승계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대만에서 감리교회는 독재자들의 교회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이런 연유에서 대만의 감리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막대한 지장을 받아와 감리교회의 부흥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독교 정치가의 오류가 교회의 선교를 가로막은 경우이다.

교회와 정치에 대한 역사적 기억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습성은 기독교의 오래된 고질병이다. 어거스틴은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을 통하여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를 내심 반가와 했지만 정치권력의 본질은 기독교화 될 수 없다고 보았던 인물이다. 그는 정치권력은 하나님의 영원한 평화를 가르치는 교회에 비하여 그 본질이 악마적인 것이라고 보면서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에는 도무지 속할 수 없는 악마의 도성(civitas diaboli)에 속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권력의 폭력성과 기독교의 평화론은 본질적으로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일 어거스틴을 존경하는 성직자가 있다면 그는 정치와 종교의 본질을 혼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몇몇 부흥사들이 순간의 기지를 빌어 정치적 발언을 하며 신도들에게 권력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을 하나님의 도성의 지도자들로 혼동시킨다면 그 성직자의 영성은 매우 혼탁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는 사실상 정치권력에 아부해온 속성이 강했다. 어거스틴 이후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정치란 폭력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이권과 권력욕에 지배를 받는 세속적 판단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 여겨 거룩한 교회에 비견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죽 했으면 로마 황제가 눈 내리는 겨울 교황이 머무르고 있는 가놋사 성문 앞에 주저앉아 교황의 용서를 빌며 밤이 새도록 눈을 맞으며 고해를 했겠는가? 그러므로 로만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권위와 성례의 권위를 이용하며 세속 정치가들을 높이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와 정치간 영적인 본질적 차이를 신학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교회는 정치권력의 무모한 요구를 수용한 흔적이 많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는 가톨릭 교회의 예배에 주기적으로 참여하여 성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신교 성직자들은 권력자를 향한 아부와 첨언만이 아니라 독재와 합작한 역사적 기억을 많이 남기고 있다.

교회가 정치권력과 적절히 타협한 흔적을 우리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한편, 정치권력의 세속성보다 정치적 기능성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초유로, 기독교 정치가들인 독일의 귀족들을 높여 “정의를 집행하는 하나님의 왼손“이라 치켜세웠다. 성례를 행하고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오른 손이라면 정치가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위를 위임받아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일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이다. 루터가 이렇게 정치권력의 본질을 하나님의 것으로 높인 바로 그 전통은 결국 4세기 후 독일 기독교인들에게 히틀러조차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자라고 굳게 믿도록 만든 신학적 오류였다. 루터는 자신의 종교개혁 의지를 살려주고 교황의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귀족들을 부추겨 세워 자신의 전위대로 삼기도 했지만, 그의 행위와 사상은 독일 교회에 인류역사상 가장 흉악한 대량 학살을 불러온 히틀러 나치정권을 교회가 묵인하고 심지어는 협력했다는 치명적인 오욕을 남겼다.

루터의 보수적 정치해석을 수정한 이는 칼빈이다. 제네바에서 포렐과 종교개혁 작업을 하던 칼빈은 제네바 시의회 정치가였던 평신도였다. 그러므로 그는 성직자라기보다 평신도로서 교회의 개혁을 주창했다. 그는 하나님의 정치라는 성서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는 정치가들에게 심원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고, 만일의 경우 정치가들이 교회의 거룩함을 훼손할 경우 교회는 기독교인의 그리스도의 주권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양심에 따라 이에 저항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소위 그리스도 주권을 통한 저항권 행사 가능성을 설파한 것이다. 이런 칼빈의 입장은 개혁교회 전통의 좌파에 사회개혁 이상을 불러오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칼빈 역시 정치권력에 대하여 신자들이 정치적인 의도를 신앙적 저항으로 위장하는 태도에 대하여 강한 비판과 경고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강조해 온 그의 신학은 죄인들의 항변이 매우 그릇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빈의 저항권 사상은 기독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불의한 정권에 항거할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개신교회 정치윤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남아있다. 현대 정치신학, 민중신학, 남아공의 해방신학은 일종의 칼빈 좌파적인 저항권의 적용, 즉 정치신학적 산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 안에서 칼빈 우파적 교회들은 사실상 군사독재 시절 침묵을 일관해 왔고, 정치와 종교의 분리설에 기댄 흔적이 역력하며, 심지어는 독재자들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수시로 열고 아부와 첨언을 일삼았던 역사적 기억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일제에 의한 강점기 때에는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지지하며 교회의 동종까지 떼어 내 군수물로 징발하는 데 협력하기도 했다. 독재정권하에서는 침묵과 아부로 일관하던 교회들이 문민정부 이후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작금에 와서는 신학적 기초 상식에도 맞지 않는 정치적 요구들을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처럼 선포하기도 한다. 성직자들이 설교자의 권위를 남용하는 강단의 타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과연 이런 행태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밝혀온 신학적 사유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것일까 스스로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2차대전 직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을 때 독일 교회들이 그를 환영하는 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일련의 개혁교회 대표들은 1934년 바르멘에 모여 정치를 교회중심에 불러오는 행위에 대한 신학적 경고를 제기하였다.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 이외의 모든 수단을 하나님의 계시에 준하는 것으로 여기는 행위를 비신앙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독일의 대부분의 교회는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자, 그리고 독일 사회의 중심에 서있었던 성직자들이 히틀러 정권에게 기대를 걸고 그의 권력을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히틀러의 범죄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 교회는 종전 후 니뮬러를 중심하여 슈트트가르트 죄책선언(Stuttgart Schuldbekennis)을 하게 되었다. 이 두 개의 문서들은 그 후 기독교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매우 명료하게 밝혀주는 문서로 자리를 잡았다.

강단의 정치화는 영적인 오류
이 문서들의 항목마다 깊이 묵상할 의미가 깊이 배어 있지만 나는 강단을 정치화하려는 성직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하여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주님으로서의 주권을 세상의 다른 권위와 섞거나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여 그럴듯한 정치가가 나온다 하여도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를 대리하거나 그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이 더욱 확장될 것을 기대함으로써 거룩하지 않는 것을 거룩한 것이라 착각하게 하는 모든 가르침을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독일 기독교인들은 히틀러 세력을 하나님의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죄악에 동참하고, 전후 그 책임을 져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게 된 까닭이다.

물론 우리는 정치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인간의 존엄성이 확장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신앙과 정치를 혼동하여 이를 섞는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세워진 교회의 거룩함을 권모술수를 통하여 권력 장악에 궁극적 목표를 가지는 세속정치와 혼동하는 신학적 혼란과 영적 혼란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혼란에 대하여 폴 레만은 기독교는 메시아니즘적 정치,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는 평화의 정치를 지향하지만 세속 정치와 연계된 타락한 교회는 정치적 메시아니즘, 즉 정치가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영적 혼란을 불러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이 지적은 매우 타당한 것이라고 본다. 성직자들이 기독교 정치가들을 통하여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정치에 영적인 권위까지 부여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아니즘의 본색을 드러내는 매우 이교적인 행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만연한 “장로이니 대통령으로 세우자“ 혹은 ”이왕이면 기독교인을 찍자“라는 매우 단순한 편파적 발상은 기독교인이라는 단순한 전제만으로 정치적 신뢰를 던져주자는 매우 어리석은 구호이다. 기독교회는 모든 인간은, 나아가 성직자라 할지라도 죄스러운 경향을 벗어날 수 없는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를 받아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고백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를 종교인으로 착각하거나, 설혹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영적 신뢰를 던지며 신도들에게 특정한 정치가를 편들게 하는 것은 성직자 권위의 오용일 뿐 아니라 남용이며 심각한 영적인 범죄가 될 수 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동하는 행위는 한국 교회 안에 영적인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교회의 권위를 초라한 인간 정치가에게 위탁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와 신뢰를 추락시켜 기독교 선교의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성직자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정치적 행위는 신앙고백의 차원이 아니라 이성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는 이성의 영역이 현실이지 계시와 신앙과 신앙고백의 영역이 아니다. 교회는 궁극적인 관심의 빛에서 세상을 보게 하지만, 정치는 교회가 가진 궁극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즉 강단과 정치가들의 활동무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강단에서 성직자가 정치가들을 편들고 그들을 대변한다면 이는 곧 강단의 세속화와 정치화를 의미할 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빛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치, 곧 하나님의 정치와 세속 권력 장악을 지향한 이해관계에 동기를 부여받은 세속 정치가들의 정치를 뒤섞는 행위가 된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은 스스로의 영적권위를 포기하고 정치가들을 시중들고 편드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정치가들의 종노릇을 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성직자가 이런 행태를 반복하게 될 경우 교회의 정치적 다양성은 성직자 개인이 선호하는 편견에 지배를 받아 신학적 조명을 받기 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품은 설교들이 남발되는 영적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이 경우 정치적 신념과 이해를 달리하는 신도들 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어 교회는 하나님 현존에 대한 인식보다 정치적 의도와 의식들이 지배하게 되어 세속화될 수밖에 없는 불행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고 서야 할 강단에 선 성직자가 특정한 이의 정치적 욕망을 거룩한 것에 버금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정치설교는 강단을 어지럽히는 일이며, 신학적 기준을 잃은 처사이므로 당연히 삼가야 한다. 더구나 교단적 일치와 에큐메니칼한 대의 기관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성직자들이 개별적 선호도에 따라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특정한 편견이 가득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특정 정치집단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성직자로서의 권위를 오용하는 것이며 심각한 타락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교회와 성직자는 현실 세상에 대한 사회참여 없이 방관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와 성직자들의 사회 참여는 교회와 성직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밝힐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사회 참여에 적극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신학적 숙고 없이 정치참여를 일반화하는 것은 개인의 경우라면 방관하거나 개인의 선호도 문제로 간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교회와 그 교회의 영적 책임을 맡고 있는 성직자는 자기 규명에 있어서 분명한 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속되고 경박한 정치적 행위를 교회의 이름으로 혹은 성직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강단에서 대변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선교의 장애를 불어오는 불행한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의 정치적 책임에 대하여
둘째, 위의 두 선언문들은 정치와 교회의 관계를 밝히면서 기독교인의 정치적 책임의 과제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정치권력을 시중드는 일이 없어야 하며, 오히려 정치권력의 자기 의화를 비판하고, 그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음 몇 가지 사회윤리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1) 교회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에 참여할 수 있다. 만일 특정한 정치권력이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극도로 훼손한다면 교회는 적극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전사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복음이 명하는 이웃사랑의 행위로서 이웃의 생명과 권리와 그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을 지키는 책임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정황에 따라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 억압으로부터 인권을 지켜주는 역할, 그리고 인권의 확대를 위하여 연대를 나누며 노력하는 역할은 신앙공동체에게 위탁된 사회적 책임의 가장 구체적인 과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교회는 특정한 정권획득에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정치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사역을 중요한 정치적 사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자적 기능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빛에서 현존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격려하여 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회로의 진보와 변혁을 촉구하는 역할이다. 이런 사역을 감당하려면 교회는 무엇보다도 사회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도덕성보다 더 높은 도덕적 권위를 지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끊임없는 자기 개혁의 전선에 서 있는 신앙공동체이므로 일반사회의 도덕적 상식을 초월하는 높은 도덕적 이상을 정치 영역과 사회 일반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강한 자보다는 약자들의 편에서, 힘의 정치보다는 정의와 평화의 정치 편에서, 권력에의 집착보다는 억압적 권력의 해체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는 위선적 예언자 집단이 되어 사회의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교회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차별공동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공의 세계에서 보편적인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3) 교회는 사회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과 내용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결정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평화롭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되도록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제는 매우 전문적인 분석과 비판을 요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정책기관과의 협의와 토론을 통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얻는 태도를 요한다. 성서는 오늘의 세계현실 안에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설령 간혹 있다 해도 매우 추상적이며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그 명료함이 취약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학적 혹은 윤리적 해석학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하여 간학문적인 통찰들을 받아들여 교회의 사회적 이해능력을 높여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회 문제 이해에 있어 불성실하여 간혹 지적 무능력을 드러내며 과거의 판단기준만을 강요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사회적인 문제들, 특히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개입은 성직자 개인의 선호에 따라,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기회를 기습적으로 이용하는 임의적 자기주장의 차원이 아니라, 교단적 차원에서 각 정치가들과 정당의 정치수행 능력을 다양하게 평가하거나 그들의 정책의 현실화 가능성을 검토 분석 비교한 정보들을 공유함으로써 신앙 공동체 구성원 개인들의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돕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방법이다.

4) 교회의 예언자적 기능은 오늘날 목회자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선포하는 데 있지 않다. 이는 선거철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사회의 정의와 평등과 평화의 근간을 지지하는 민주적 법질서 형성을 위한 노력이라는 항구적인 과제와 직결되어야 한다. 즉 우리 사회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신앙 공동체로서 억압적 법조항의 폐지 및 보편적 인권의 확장을 기하는 입법 청원을 지향한 연대적 과제에 교회들이 예언자적 정신을 가지고 참여하고 앞장 서는 것이 필요 하다. 나아가 기독교 신앙 공동체들은 국내 문제만이 아니라 이웃 아시아 나라들과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 안에서 보편적인 인권의 향상과 평화 형성을 위한 노력, 그리고 그 확장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악한 전쟁에 대해서도 사회과학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는 그 선교의 지평을 정치적 책임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일들은 국내 및 세계 교회들과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책임의 문제는 정치 경제적인 문제들을 넘어서서 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변화 등에 관한 교회책임의 지평까지 열려 있다. 평소 이런 과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내던 성직자들과 부흥사들이 선거철을 만나 특정 후보자의 선전원 노릇을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희롱하는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가톨릭 교회와는 달리 개신교는 성직자의 교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신앙인의 개인적 결단과 합리적인 합의 능력을 존중하는 신앙 공동체를 지향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개별 성직자들의 설교자로서의 권위의 남용은 매우 심각한 영적인 오염을 불러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민주사회에서 기독교인 개인은 정치가가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밝힐 자유가 있다. 언론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안에서 정치적인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현대 민주 사회가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인간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는 그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에 혼동과 혼란을 주는 행위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보다 성숙한 신학적인 비판을 통해 보다 책임적인 기독교적 실천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선거철에 이러 저러한 자리에서 성직자들이 정치적, 파당적 발언을 일삼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개인의 정치적 견해와 강당에서 선포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질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강단에서 설교하는 성직자들은 교회의 신앙고백과 신학적 전통에 따라 역사적으로 검증된 건전한 신학적 기반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는 결코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정치적 관심에 동기화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특정인을 지지하기 위하여 설교자로서의 권위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영적인 범죄다. 신앙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는 성직자는 교회안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나 관심을 넘어서서 보다 심원한 복음의 지평에서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관심을 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접근하는 것으로 이끌어 올릴 의무가 있다. 이런 의무를 망각하고 특정한 세속 정치가를 편드는 행위는 교회의 성례를 어지럽히는 행위이며 신앙공동체의 일치를 깨는 행위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정치 사회적 책임은 결국 성직자들의 사회의식의 수준과 인권과 평화에 대한 신념에 따라 그 높이가 다를 수 있지만, 교단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책임 인식의 정도는 오늘날 그 교단에 대한 일반의 신뢰와 직결되는 결과를 불러온다. 교단적 차원에서 민주사회의 사회 정치적 책임의 지평을 찾아 확대하고,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판단능력을 높이는 일이야 말로 참된 의미에서 교회의 정치참여의 중요한 과제 이다. 만일 개체 교회의 성직자들이 그 신도수를 표밭으로 여기며 개인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주장하며 정치적 발언을 거듭 할 경우 그러한 비정치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밀착된 정치 집단으로 전락되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복음적인 사명이 가려지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일반의 신뢰가 무너지고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비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세상의 비판이 그 세속성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일부 성직자들의 신학적 판단능력의 오류의 결과에 대한 비판으로서 매우 합리적인 것일 경우 그 피해는 막심하다. 이 경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들이 소수 몇몇 성직자들의 정치적 발언으로 인하여 시대착오적인 후진 집단으로 매도 되거나, 합리적인 비종교인들로부터 비판과 교정을 받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2000년에 걸치는 장구한 역사적 기억을 가진 종교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무수한 신학적 논의들은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의 예언자적 기능을 바로 잡아온 전통을 형성해 왔으며, 간혹 지나간 오류들에 대한 비판과 다가올 일들에 대한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일부 성직자들이 품고 있는 현 정부의 성향에 대한 분노가 지나쳐 교회의 강단을 정치적 발언의 자리로 바꾸는 행위는 신학적으로 매우 그릇된 것이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죄의 현실은 기독교 비기독인을 떠나 보편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정치의 영역은 보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절차이므로 영적인 권위를 가진 이들이 정치를 대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교회의 영적 권위와 순수성을 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시대의 어둠이 깊을수록 오직 그리스도의 주권을 높이는 겸손한 신앙고백과 더불어 복음의 빛이 더욱 밝아지는 강단들이 되어야 한다. 강단의 권위를 이용하여 특정한 정치가를 높이는 일은 옳지 않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며, 강단의 권위는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그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12월 잡지에 실릴 글이므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삼가해 주십시요.

Sunday, November 11, 2007

A Reflection on Kantian Ethics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적용되는 윤리적 규범으로써 임마누엘 칸트의 윤리사상은 누구나 한번 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과제입니다. 칸트는 계몽주의가 인간의 우수함을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던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률 그것은 비이성적인 동물이나 자연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성의 법입니다.

칸트의 윤리 이론은 의무이론(deontology)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합리적 사유를 하는 인간이라면 일종의 도덕적 의무(duty)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두 가지 의무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으로 주어지는 요구로서 “명령” “지시” 혹은 대가성 “요구”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법과 규칙들도 일면 외적인 요구라고 본다면 여기 해당됩니다. 주어지는 요구 중에는 선한 요구도 있고 악한 요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서 나치 전범 재판소에서 이슬로 사라진 나치 친위대장 루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로부터 유태인 학살 명령을 받았습니다. 외적인 명령 계통과 군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상명하달의 관계에서 그는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국가의 수반으로부터 받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군인의 의무라고 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는 아마 나치로부터 훈장을 받을만한 좋은 군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뉴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고 그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법에 복종하도록 잘 훈련된 사람일수록 권위를 가진 자가 명령를 내리면 그것이 설사 반인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복종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곤 하는 데 아마도 아이히만이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복종의 죄를 지은 셈이지요.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군인다운 주장이지요.

“I had known the Categorical Imperative, but it was in a nutshell, in a summarized form. I suppose it could be summarized as, ‘Be loyal to the laws, be a disciplined person, live an orderly life, do not come into conflict with laws’—that more or less was the whole essence of that law for the use of the little man.” - Rudolf Eichmann -

(요약하자면 나는 매우 중요한 정언적 명령을 알고 있다. 그것은 법에 충실히 따르라는 것이며, 잘 규율된 인간이 되라는 것이고,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질서정연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자라도 따를 수 있는 법의 진정한 본질이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의무는 아이히만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타율적으로 주어지는 외적 요구가 아니라 내적인 것이며 자율적인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계몽이성을 가진 자율적 인간의 의무에 대하여 관심한 것이지요. 여기서 칸트는 인간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좌우되어 가치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은 집단의 이해관계나 개인적 야망, 혹은 이익을 전제한 가치판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칸트의 견해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연애가 비참하고 쓸쓸한 결말을 맺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칸트는 인간이 가진 최고의 도덕율은 경험과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이전의 순수한 내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면 우리의 경험은 우리를 약삭빠르고 순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경험을 통해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좋은지를 구별하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 익숙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구조를 뛰어넘는 보다 보편적인 도덕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보편성을 가진 정언명령(universal and categorical imperative)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부분적이거나 어느 한편의 파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사람에게 공정한 것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옳습니다. 즉 "what is fair for one is fair for all 이라는 공식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 공정함의 룰은 언제나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도덕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입니다.

이 보편성의 원리를 검증하려면 가역성의 원리(reverse-ability)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역으로도 적용이 되어야 하는 원리입니다. 도덕율의 진리인 셈이지요. 내가 공정하게 취급받고 싶으면 다른 이도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공정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다면 합리적인 사유능력을 가진 인간이 합의 공유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을 뿐입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윈칙을 적용하게 된다면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별은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입니다.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을 용인하는 사람은 약자들을 향하여 차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즉 성차별하는 사람은 이주노동자, 유색인종, 가난한 사람, 약자들을 차별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아무리 착한 크리스쳔이라 할지라도 타종교인을 차별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이미 “모든 이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보편성의 원리”를 깨고 있으므로 인간을 차별하는 위험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칸트의 이론을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세가지 명제를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첫 번째 것을 “보편성(Universalitaet)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것을 “존경(Achtung)의 법칙”, 그리고 세 번째는 “공공(Oeffentlichkeit)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1. Always act in such a way that the maxim of your action can be willed as a universal law of humanity -Immanuel Kant- (항상 너의 행위의 격률이 인간성의 보편적 법칙에 따르는 행동을 하라.)

2. Always treat humanity, whether in yourself or in other people, as an end in itself and never as a mere means. (항상 네 스스로나 다른 이를, 즉 인간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대해야지 단지 수단으로 대하면 안 된다.)

3. Always act in such a way that you would not be embarrassed to have your actions described on the front page of The New York Times. (너의 행위가 뉴욕 타임스 머릿 기사로 나와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행동을 하는 삶을 살아라.)

이런 요구들을 충족할 수 있는 행위는 보편성과 정당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를 촉발시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규범이지만, 게슈타포의 추적을 받는 이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추적자를 돕기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경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규범을 어기는 것이 될 수 있으나 생명을 구하는 행위로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예외적 경우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칸트의 윤리학은 철저한 자율성의 원칙이 존중될 때 더욱 명료합니다. 하지만 자율성이 결핍된 강요된 상황에서 칸트의 공리를 지키는 행위는 게슈타포의 추척자를 찾아주는 맹목적인 정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저속하고 비열한 편견과 가치에 물들어 보편적 합리성을 상실한 사람들 앞에서 칸트는 속수 무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칸트는 “어느 특정한 같은 상황에서” 하나의 행위는 언제나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 되어야 하며, 그 옳음은 공정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넘어서 합리적 "자율성"을 중요한 윤리적 행위의 조건으로 본 것입니다. 피차간에 합리적이며 자율적인 도덕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관계, 이것이 칸트가 말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며 윤리가 가능한 지평입니다. 반대로 합리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행위는 곧 비윤리적인 강요이거나 전근대적인 후견적 태도(patronizing)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은 칸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성숙"한 전근대적인 것이며, 힘의 불균형이 인간의 존엄함과 자유를 훼손하고 있는 사회를 지시하는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다움은 칸트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입니다. 남여, 인종, 학력, 신분, 재산... 등등의 조건을 가지고 질을 따져 사람을 차별하기 시작할 때, 한편의 자유가 축소되고, 평등한 관계가 깨어져 이미 공정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등의 반대는 차별이며, 동시에 차별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이런 부도덕은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죄악이고, 정치적으로말한다면 자유를 침해하는 억압이며, 경제적으로는 불공정한 특혜를 보장하는 것으로서 힘을 가지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에 의하여 언제나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에게 최고의 선한 의지는 경험된 것이 아니라 경험 이전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주는 편견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그는 진정한 평화란 이성적 합리성을 따라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세계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평화롭게 살려면 나의 행위가 공정하도록, 나의 자율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율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며, 모든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는 다양한 차별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을 향하여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는 실질적인 관계에 있어서 한 개인이 가지는 앎과 실천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즉 한 개인의 감정과 삶을 지배하기 위하여 특정한 사실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거나 조작하는 행위는 상대를 존경하지 않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한 개인의 자유로운 앎과 판단과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고 있는 존경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존경의 반대는 paternalism, abuse, 혹은 manipulation, 즉 인간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조작, 재단, 이용하며 수단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강조한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바라보라는 권고는 현대 인권사상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 준 이론이 되었습니다. 그의 공정성의 원칙은 보편성을 상실한 특권층과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론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칸트의 윤리학에서 간과된 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성적 판단을 구성하고 있는 도덕적 정직성이 보편적인 원리로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시대에 따라 인식의 구조를 달리하는 것인가를 묻는 데에서 나오는 문제 입니다.

즉 봉건주의적 세계에서는 왜 이성적인 인간의 보편적 규범이 사회의 법적인 원칙으로 작용할 수 없었는가라는 문제제기는 이성이 눈을 뜬 시대와 눈을 감은 시대의 차이를 전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다양한 감정에 지배를 받는 변화의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생각해 볼 문제가 됩니다. 인간은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은 것이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와 미움을 가진 사람의 행위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인간 주체의 감정과 합리적 행위 사이에 있는 상관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나가서 어떤 불이익과 곤경이 있더라도 원칙을 고수하는 강직함을 후원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곧고 공정할 수 있으나, 그런 정직한 행위 결과에 대해서는 칸트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의한 도박군의 세계에서 정직함을 표방하는 것이 간혹 깊은 상처와 막대한 손실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칸트 스스로 이 세상에서 선한 의지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바로 그 이유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후의 도덕적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따라서 윤리적 존재와 행위가 이 세상에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까지 연장되어야 하므로 그는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실천이성의 요구라고 하기도 하고, 요청적 유신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은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윤리이론을 구성하고 있으나 그의 윤리이론만으로 삶의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성품의 윤리학(Aristoteles)이나 결과론적 윤리학(ethics of consequentialism)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칸트가 이해했던 이성적인 삶의 격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그 외의 다른 원리들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