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불량 기독교 그리고 불량 사회
- 시오니즘를 거부했던 한나 아렌트 -
사람이 사소한 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대의를 그르칠 경우가 있다. 공자는 사소한 이익에 집착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이를 소인배라고 보았고, 이익보다 대의를 존중하는 이를 군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간혹 사소한 이익이나 대의를 구별해 낼 객관적인 기준이 애매해 질 경우가 있다. 시장판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경우 조그만 이익을 소홀히 하다가는 자신의 가업이 기울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정치적인 긴장관계 속에서 강한 자 편에 서지 않을 경우 간혹 냉혹한 차별을 받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익과 대의를 나누는 논리에 앞서 무엇보다도 사익을 택할 수도 있고 대의를 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의 조건이 우선해야 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런 자유를 박탈당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양심과 지성적 판단에 따라 사안을 결정해도 될 자유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이미 누군가에 의하여 구획되어져 있는 셈이다. 거대한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양심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이 편견을 조장하고, 이 편견에 의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의 미움과 감시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에 신뢰를 가지기보다 누군가의 판단에 스스로를 맡기는 도덕적 자아의 상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칸트는 자유를 가진 인간은 양심의 법에 따라 보편적 격률을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만일 이미 사회적 압력이 무거운 짐처럼 내려 누르고 있는 정황, 곧 일정부분 자유가 박탈당한 정황에서 답을 내려야 하는 강요된 상황은 보편적인 격률보다 집단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천작하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집단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소외와 차별과 배제를 당할 것이라는 예측을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집단의 폭력이 암시하는 가치판단의 구조가 작동한다. 마치 깡패들이 눈짓만 해도 입을 다물고 머리를 조아리는 양상과 유사하다.
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기독교인은 누구보다도 양심의 자유를 이해하고 있는 존재다. 그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고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신앙 안에서 이미 굳게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의미가 이와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의로운 삶보다는 안전과 행복과 축복을 추구하는 삶의 연장 선상에서 영적인 안전망을 확보한 존재라는 자기이해를 가지는 경우가 십중 팔구인 까닭이다. 조용기 목사의 삼중축복론은 아예 대의와 사욕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 불량 기독교인을 양산하는 체계로 작동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대의와는 상관없이 오직 나의 교회에 대한 헌신의 질에 정비례한다고 믿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불량 기독교인들은 대의와 의로움의 지평에 대한 자각과 인식에 있어서 매우 후진적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성직자들에 의하여 교도받기를 즐겨하며 길들여진 존재가 된다. 성직자들과의 거리는 안전의 척도처럼 이해되고, 성직자의 요구라면 거절할 수 없는 요구로 해석된다. 이를 거절하는 것은 결국 삶의 안전와 축복망을 상실할 위기를 초래하는 까닭이다.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한 성직자를 만날 경우 불량 기독교인이 직면할 위기는 적다. 하지만 저질의 성직자를 만나는 경우 어떤 기독교인들은 깊은 불만과 더불어 공포와 두려움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자유를 행사할 주체적 의식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의존성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럴 경우 그들은 선과 악, 대의와 사익을 구별하지 못한다. 다만 성직자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들의 지시에 따라 깃발을 들고 움직일 뿐이다.
불량 성직자에 의하여 길러진 불량 신자의 경우 신앙인으로서의 자유와 희열, 깊은 자각과 은총에 대한 감격, 그리고 사죄의 복음이 주는 평화를 일면 가지지만 그 신학적 해석 지평은 매우 편협하다. 나와 내 가족과 내 교회가 그들 신앙의 축이 된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트뢸치가 이해했던 기독교 사상의 핵심인 급진적 개인주의도 없고, 에큐메니칼한 보편성도 결여되어 있다. 급진적 개인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 집단의 위기를 인식하고 이의 갱신과 변혁의 힘을 불러오는 힘이 된다. 그러나 축복을 통한 삶의 안정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변혁과 개혁이란 종교적 회심일 수는 있어도 옳고 그름에 대한 삶의 판단구조의 변혁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이미 그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가는 순화의 종교적 경험을 축복과 획득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버림과 자기 부인의 이름을 가졌으나 그들의 시선은 이미 약속된 축복에 가 있다. 그리하여 자기 버림의 좁은 길이 아니라 축복의 증거를 가진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불량 기독교인은 이렇게 그 본래의 이기적 동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오히려 신앙의 이름으로 그 이기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강화하려는 것이다. 어느 교회 버스에 쓰여진 광고 문구를 보고 나는 참으로 놀란 적이 있다: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 부자 되십니다.” 갈데까지 다 간 불량 기독교다.
오늘 미국에 계신 홍상설 목사님으로부터 성탄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 안에는 노목사님의 우려가 담겨 있었다: Lewis Mumford 의 경고가 떠오릅니다. '한 때는 인류의 한 부분으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바르게 걸어가기를 가르쳐 주던 교회가 오늘 또 하나의 암흑시대를 이기고 전진할 만한 능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지난 날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은 교회나 신자가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과연 기독교가 사회적 신뢰를 받고 있는 종교인지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대의를 잃고 이기성에 빠진 개인으로서의 불량 교인, 불량 집단이 되어가는 교회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기성에 빠진 집단은 이기성을 내려 놓으라는 권고를 거절한다. 따라서 사소한 이익을 넘어선 희생과 봉사의 대의를 무시한다. 적선을 하고 동정을 하면서도 그는 심리적 혹은 사회적 대가를 기대한다. 교회 주보들이 나열하고 있는 위선도 대단하다. 학문적 성취를 통하여 얻은 학위가 아님에도 박사임을 광고하고, 박사가운을 입고 강단에 서기를 즐겨한다. 이런 가치들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이미 하나님의 교회가 사소한 이익관계를 일상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익관계를 비판하고, 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그 집단에 의하여 따돌림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나는 근래 들어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 집단 속에서 유대인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교회, 그리고 대학, 그 어느 곳에서든지 개인이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누리려면 그 소속 집단의 가치와 충돌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소속 집단의 질서를 존중해야 하고, 소속집단의 전통을 인정해야 하며, 소속 집단의 결정에 이의를 달거나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만일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집단으로부터 눈흘김을 당하며 무언의 비판과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더구나 힘없는 개인이 왕따를 당하고 있는 특정인의 편에 선다는 것은 스스로 왕따를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단이 정직하고, 대의를 지키며, 스스로를 부단히 갱신함으로써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을 재고할 경우 이 집단은 양심적인 진실의 소리를 수용하고, 이를 통하여 더욱 진실한 가치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집단이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불의를 행하며 불투명한 결정을 해 나갈 때 그 집단으로부터 생존의 조건을 부여받고 있는 그 집단의 구성원은 자기 판단을 포기하고 집단의 불의한 의식에 동조 참여하거나 심한 경우 앞장서서 불의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에서 무수한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를 희생시키는 제의를 묵인하거나 소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그러나 양심이 지지하는 보편성을 상실하는 것을 방임할 경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우 무거운 형벌로 되돌아 오게 된다. 자각과 인식구조의 붕괴가 일어나 그 스스로도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낮추어 잡게 되는 까닭이다. 그릇된 관행을 반복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도덕적 자아의 붕괴를 드러내고 있다. 양심과 진실, 투명성과 정의가 없는 삶에 찾아오는 것은 결국 불의와 억압과 배제와 차별의 논리가 되고, 이런 삶에 젖어든 이들은 이내 불의한 판단의 주체자가 되어 그 불량집단을 불량한 방법으로 존속시키는 것이다. 도덕적 보편성이 결여된 집단 안에서 힘을 가진다는 것은 더 큰 이익관계를 얻기 위해 집단의 힘을 강화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을 양산해 내는 대학과 그 대학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었던 대기업들의 몰락은 바로 이렇게 보편성을 상실한 집단의 유희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던 까닭이다. 대우와 신동아의 몰락에 이어 삼성의 비자금 사건들은 이런 사실이 우리 사회에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은 우리 사회 권력기관에 뇌물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며 그들의 불투명성과 불의를 묵인받아 왔다. 그들로부터 뇌물을 받아온 검찰은 사건이 보도된 지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이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물론 게중에는 정직과 투명함을 기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직과 투명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예찬하는 사회인 것이 이상하다. 결국 정직과 투명함을 지키는 이들이 소수자로서 예외로 취급을 받는 불량 사회가 된 것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한 후보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의혹과 문제가 제기되어도 이에 개의치 않겠다는 우리 사회의 의식에 놀라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개혁 정권에 대한 비난을 일삼는 깡패신문 조중동에 시달려 온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개혁정권 기피증에 감염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조석으로 애써서 정부를 비방해온 신문들이야말로 그들의 전력을 살펴보면 결단코 우리사회의 목탁이 될 만한 양심과 지성과 도덕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권력에 기생해 온 천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에 아부했으며, 독재를 옹휘했고, 상업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이런 신문들이 중앙지가 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신문들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와 진실, 그리고 투명한 사회 공동체를 위한 노력에 대하여 이들은 조소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이며, 권위주의 정권의 시녀가 됨으로써 누리는 특권의 향유와 더불어 그들의 본질적 성격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민주적, 평등적, 탈권위적인 정책을 좌파라 몰아 세웠고. 적색 알러지가 있는 국민들은 좌파라는 말만 들어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소리높여 매도하기 십상이었다. 이들은 그간 전 국민을 세뇌시키더니 선거철이 되자 반민주적, 특권적, 권위적 지배세력을 양성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상대의 조그만 흠은 잡아 늘이고, 그들이 선호하는 이의 결점은 철저히 덮어 주는 기가 막힌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공정한 잣대를 버리고 굽은 펜을 든 이들이야 말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망치는 반민족적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지는 우리사회가 과거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FT.COM) 권위주의적 권력을 옹휘 함으로써 그 권위의 국물을 나누는 집단의 이기성이 전 세계적인 보편적 정신의 기틀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나고 있는 과거로의 회귀가 결국 가진자. 특권을 누리는 자, 그리고 권력 근친성을 가진 자들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민중은 그들의 선전과 책략에 춤추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민중의 어리석음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조작과 선동에 의한 착취와 억압을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과거로의 회기를 재촉하는 집단이기를 자처하고 있다. 이런 기독교 안에서 어떻게 미래를 위한 새로운 예언의 메시지가 나올 수 있겠는가?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들 편에 서는 정권이 가져오는 부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겠는가? 나는 극명한 집단간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사례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서 본다. 이스라엘은 자기 집단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팔레스타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중기준의 윤리를 담은 정책을 앞세워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빼앗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인과 같은 운명에 빠질 수밖에 없는 민중들이 오히려 강압적인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중의 자기혐오와 배반이다. 그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유태인 해방신학자인 마크 엘리스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스라엘 정부를 거역하는 강연을 하고 글을 쓴다. 즉 그는 유태인으로서 유태인들의 집단 의식을 해체하고, 그들의 특권을 거부하며, 유태주의의 반보편성을 비판해 왔다. 정의와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한, 유태주의는 고립될 수밖에 없으며, 나치가 벌렸던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반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까닭이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일본과 싱가포르가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보편적인 민주적 의식 없이 경제적 특수를 누리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증오하는 자기증오의 덧을 놓아야 한다. 권위적 권력에 의하여 통제를 받고, 도덕적 이상은 버려야 하며, 이기적인 동물들이 되어 단지 좀 더 나은 우리 안에 가두어지는 것을 행복이라 여겨야 한다.
나는 지난 10월 엘리스 교수의 해방신학 모임에서 비록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양심적 지성인의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그의 신념의 타당성에 동조하는 많은 유대인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집을 파괴하는 이스라엘 정부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몸을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에 묶어 놓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려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참된 인간의 얼굴이란 강한 힘과 소유의 크고 적음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 우리의 이익보다 더 큰 보편적인 진리를 위하여 나를 포기하고 우리도 포기함으로써 더 큰 평화의 연대를 이루어 나가는 데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집단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집단의 이익에 집착하는 이들은 자기 집단을 의롭게 여기고, 그 집단을 비판하는 개인을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자라고 몰아 세운다. 사적 이익에 집착한다면 그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왜 집단에게 저항하겠는가? 삼성의 비리를 제보한 김용철 변호사를 비난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 - 나는 이것이 우리의 자기혐오, 혹은 자기증오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옳은 것을 주장하는 이를 싫어하는 행위는 곧 자기 안의 옳지 못함을 인식하고 있는 자기를 혐오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집단의 몰매를 맞아 본 사람은 권력과 이익에 앞서 옳고 그름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예수도 바로 그렇게 집단의 몰매를 맞았던 이가 아닐까.
예수를 죽인 유태인들 처럼, 우리는 양심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더 가지기 위하여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우리 사회의 방향을 되돌리는 어리석은 국민이 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명박 씨 같은 기독교인, 무수한 의혹을 안고 사는 그에게서 정치적 메시아를 보려하는 목사들을 보아도 참 슬프다. 불량 기독교인, 불량 성직자들이 다량으로 생산된 한국 교회 현실을 바라보면서 나는 성서의 구절을 기억한다. 가라지와 알곡을 함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가라지와 알곡이 언젠가는 나누어지고 구별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에서 위로를 얻지만, 그 때까지 견디고 참아야 할 일이 벌써부터 염려된다.
Friday, December 14, 2007
Immoral Christian and Immo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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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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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About Liberation Theology in the 21st Century 1
# "영성일기의 허망함"을 썼더니 몇 분이 의분에 차서 매우 혹독한 비난을 내게 던져 오셨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이 동의해 주셨고, 수백분이 이 글을 가져가 나누셨다. 뭘 알고 나무라면 내가 경청하겠으나, 신학의 세계를 이해할 능력도 없는 이들이 공연한 분노를 배설하듯 비난을 던지는 것은 그저 ‘목사 잘못만난 까닭’이라고 나는 본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욕설을 하는 것이 의로운 것인 양 배웠으니, 그렇게 가르친 자들이 문제지, 그들은 사실 무례하기는 하지만 큰 죄가 없다. 이 글은 14년 전 2008년 <기독교사상> 신년호에 실렸던 글이다. 텍사스 왜코, 베일러 대학에서 열린 해방신학 컨퍼런스에 초대되어 참석했다가 내가 쓴 참가기다. 근본주의 신앙을 배운 신자들은 세 상 넓은 것을 깨닫고 조금은 겸손했으면 한다.
긴 글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란다.
“현대 해방신학의 동향과 그 흐름에 대하여/ 박충구”
남미 식민지화와 나란히 이루어진 가톨릭의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식민지배와 선교가 동일한 이해관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미 식민지 선교 역사를 연구한 자료를 읽다가 나는 “행진하는 군사들 뒤에서 열정에 불타는 선교사들이 걷고 있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그들은 군사적 정복과 영적 승리주의를 함께 나누고 있었고, 식민지민을 향해서는 군사적 우월감과 영적 우월감을 당연한 것인 양 주장했다. 심지어 맥시코를 점령했던 헤르난 코르테는, “우리는 하나님과 왕을 섬기려 이곳에 왔고, 그리고 또한 금을 얻으러 왔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남미 가톨릭 선교 역사는 그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열등한 것으로 여겨 송두리째 부정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인이 정복했던 마야, 아츠텍, 그리고 잉카(Maya, Aztec, Inca) 문명은 열등한 신을 섬기는 이교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기독교 정복자들은 토착민을 노예로 삼았고, 토착민은 서구에서 찾아온 이들이 가지고 온 수두와 같은 전염병으로 떼죽음도 겪었다.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지난 식민 정복의 잔혹한 역사에 대하여 사실상 침묵하고 모른 척했다. 이런 까닭에 해방신학은 500여년에 걸친 남미 가톨릭 선교 역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기조로 삼고 있다.
해방신학은 가난과 억압의 현실에 침묵해 온 교회, 그리고 교회의 침묵을 깨뜨린 예언자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이 출간된 직후 교회와 신학의 영역에서 세계는 직간접적으로 해방신학에 대하여 스스로의 입장을 해명해야 했다. 해방신학은 방법론적으로 막스주의적 경제철학을 빌어 현실을 분석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순수한 신학적 사유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또한 영혼 구원이야말로 교회의 책무라고 여겨온 복음주의적이며 보수적인 교회들은 해방신학이 교회 안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를 갈라놓고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교회에 적대적인 것이라 간주하기도 했다. 심지어 도처의 독재 정권은 현존하는 질서의 사회 경제 정치적 정당성에 깊은 의혹을 제기하는 해방신학을 반체제적인 신학이라고 규정하고 해방신학 서적 판매금지는 물론 해방신학에 관심하는 이들의 사상을 감시 통제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 정권은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을 독서 금지 불온 도서로 규정 했었다. 지금도 필리핀이나 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을 반체제적인 막스주의자들의 혁명 전략의 일환으로 규정되고 있다.
해방신학을 필두로 하여 지난 20세기는 다양한 해방신학의 장르를 생산해 냈다. 신학적으로 아시아 신학 담론이 서구 신학이 축으로 삼아온 서구적 경험, 즉 서구의 시간과 장소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 지평을 열었다면, 이어진 후기 식민 담론과 제국주의 비판 이론은 권력과 지배의 본질을 해체해 드러내는 시각을 제공해 왔다. 특히 페미니즘은 지난 역사 속에서 모든 학문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남성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와 가치 체계로부터의 해방 담론을 불러왔다. 식민담론, 제국주의 이론, 그리고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유방식이라기 보다는 20세기 해방 신학적 과제의 확대 과정에서 분기(分岐)하여 출현한 것으로서 방법론적인 유사성과 연대구조를 나누고 있다. 해방 신학과 맞물려 유럽에서 논의되었던 정치 신학은 신학의 정치적 중립성과 애매성을 넘어서서, 기독교의 정치적 책임성을 논구하기 시작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히틀러 정권의 형성과 존립과정을 복기하면서 교회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일어났고, 이어 요한 메츠(Johann Baptist Metz), 유르겐 몰트만(Juergen Moltmann) 등이 전개한 유럽 정치신학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60년대를 지나면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시민권 운동은 인종 차별의 사슬에 묶여 있었던 흑인 인권을 재조명하는 흑인 해방 신학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아시아의 신학적 인식구조에도 영향을 끼쳐 1970년대 한국 민중 신학 운동을 불러왔으며, 인도의 달리 신학, 일본의 천민 신학 등으로 진화해 왔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1960년대 이후 대두된 해방신학은 전통 신학이 결여하고 있었던 ‘사회윤리학적인 취약성’을 비판 신학 담론을 통하여 극복함으로서 신학의 시대착오적인 억압성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시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제도화된 교회의 신학이 지나치게 지배 권력과 결탁하여 억압받는 사람들, 착취를 당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 차별을 받아온 계층과 성에 대하여 냉혹할 정도로 무관심했던 까닭이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교회는 ‘가진 자들과 지배자들의 요구를 담아내는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가진 자와 억압자에게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착취와 억압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구원, 즉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해방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인간의 죄스러운 경향성을 강조함으로써 억압받는 이들이 벌이는 저항과 비판을 죄인들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려드는 불신앙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규정의 배리는 인간의 죄성의 깊이를 오직 억압받는 이에게만 적용하고, 가진 자와 억압하는 자를 향해서는 적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교회는 억압자 편에 서있었고, 억압받는 자들을 종교 메시지로 침묵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오랜 악습은 기독교인들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를 궁극적인 해방인 동시에 참된 구원의 지평을 여는 타세계적인 것으로 교도함으로써,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불의와 억압을 방관하며,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종교를 통한 억압과 지배의 강화를 일삼아 온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입고 있는 인간의 존엄함을 강조하면서도, 교회는 권력을 가진 이에게는 억압적 기능을 승인해주고, 권력이 없는 이들을 향해서는 복종과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는 이중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성서에서 가리키는 해방의 지평은 현실세계에서는 도무지 열릴 수 없는 꿈일 뿐, 사후 천국에서나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르쳐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반해방적 신학은 지나치게 제도적 신앙에 스스로를 묶어 두고 있었다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해방신학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제도화된 기독교의 신학적 구조를 제공해 온 ‘유럽 신학으로부터의 신학적 해방’을 요구하며 “비판적 성찰(critical reflection)"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서구 신학의 이론적 체계의 타당성을 일체 거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구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깊이 반영된 서구인들의 인식과 경험이 만들어 놓은 ‘기존 질서 옹호적, 체제 옹호적 신학’에 대한 비판을 전개함으로써 해방신학은 그 정당성을 찾으려 하였다. 해방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이 침묵하며 왜곡하고 있었던 신학적 이해를 수정하거나 재해석함으로써 기독교 신앙과 체험을 보편적인 하나님의 해방적 사역에서 해명하려고 하였다. 여기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역사적 예수 이해 방법이 해방 신학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교리보다 역사적 실천이 강조된 까닭이다.
구티에레즈와 보니노(José Míguez Bonino), 보프 형제(Clodovis Boff, Leonardo Boff) 등이 전개한 초기 해방신학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페루, 주로 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맞물려 억울린 자들의 해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당시 남미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중앙화된 권력이 개발을 가열차게 촉진하려는 전략을 최우선시하는 ‘개발 독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무수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었다. 제 3세계의 가난한 농민과 도시의 노동자들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되고 있었지만, 제 3세계의 지배계급들은 서구 자본주의 지배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자국의 국민의 노동을 착취하는 저임금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국민들의 저항을 극소화시키고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국가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였고, 이를 정치적 억압기재로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착취에 더해 정치적 억압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와 신학은 이러한 정황을 충분히 파악할 능력도 없었고, 상당수는 영적 과제만 중시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교회는 지배계층과 밀접히 연계되어 정치 경제적으로 억압받고 있었던 민중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하며 오로지 영적인 고결함과 지복을 가르치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세계 교회 일각에서는 서서히 ‘기독교의 사회책임’이라는 과제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소수의 신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민중 억압의 현실에 대한 교회의 무감각과 무책임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이라는 책을 쓴 파울로 프레리가 제창한 ‘억압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불러오는 비판 교육이 도처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전통적인 신학에 대한 반성과 패러다임 변화가 다양하게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요구들은 당연히 서구신학 일변도의 신학적 해석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해방신학자들은 일종의 신학 방법론으로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과 억압, 그리고 차별에 침묵해온 신학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담은 신학이 담긴 책이 바로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쓴 <해방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은 대부분 가톨릭 교세가 주조를 이루는 남미에서 수행되고 있었다. 반면, 개신교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대부분 해방 신학을 막스주의에 경도된 좌파 신학이라고 규정하고 정죄했을 뿐, 해방신학에 담긴 예언자적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구티에레즈와 같은 초기 해방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신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해방의 과제를 밝히려 애썼지만,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적 현실 분석은 신학적 방법만을 가지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명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해방신학자들은 가능한 사회 경제 이론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다양한 경제이론을 빌어 억압과 착취의 현장을 비판적으로 규명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궁극적인 과제는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었으며,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성서의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억압과 불의를 향해 비판의 소리를 발해온 예언자적 전통을 다시 규명 하려 했으며, 가난하고 약한 자들 편에 서기를 요구하는, 성서의 계약법 사상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증엉하려 하였다. 이는 마치 한국의 민중 신학자들이 성서해석을 통해, 그리고 민중의 역사적 전거를 밝히면서 민중 해방을 추구했던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대부분의 초기 해방신학자들은 가톨릭 신학이 지배적인 지역, 그리고 가난과 억압이 뿌리 깊은 남미라는 상황에서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지성사적인 흐름과 맞물려 신학외의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심화된 연구 성과들이 해방 신학적 관심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문화 분석은 서구 사상가들의 정신세계 속에 뿌리 깊게 각인된 서구우월주의의 뿌리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해온 부끄러운 서구인의 자화상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 주었다. 서구에서는 로마제국주의가, 아시아에서는 중국 제국주의가 오랜 기간 자기 영역을 지배 해온 사실에 대하여, 기독교는 사실상 이십세기에 이르도록 침묵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침묵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를 정당화했고, 이에 편승한 선교이론을 전개해 온 사실들도 드러났다. 이런 과정에서 신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과도한 기독교 우월주의에 빠져 다른 세계 현실을 진실하게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기독교는 오랜 기간 정복주의적인 선교정책을 펴왔으며, 성서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무수한 오류투성이인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해방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이 안고 있었던 교리적 선교 개념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기독교의 사회 윤리적 책임의 지평을 중대한 선교지평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 하였다. 이런 점에서 해방신학은 서구 정통신학이 지니고 있었던 주요 논제들을 비판적으로 수정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비인간화된 이들(non-persons)의 경험에서 나온 해방의 틀을 가지고 새로운 신학적 해석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 신학적 해석학에서는 교리적 정론(orthodox)에 앞서 바른 실천(ortho-praxis)을 규명해내는 과제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했다. 기존의 교리적 예수나 하나님 이해보다 잊혀 졌거나 생략된 하나님의 뜻을 성서 해석을 통하여 되찾는 일에 주력한 것이다.
따라서 바른 실천을 위하여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말해온 정통 신학은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바른 실천을 낳는 하나님을 해명하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가난과 억압과 착취와 차별에 눈을 감은 신학은 그러므로 비판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불가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구띠에레즈는 ‘신학은 가난한 자와의 연대 속에서 정의를 위한 실천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부터 신학은 가진 자, 힘 있는 지배자, 억압과 착취의 주인공의 눈과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신학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가난하고. 억압받고, 차별 받아온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해방신학 이전에 자리 잡고 있었던 기존의 신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지배자들의 신학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신학, 부유한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신학이 아니라, 억압받고 착취를 겪어온 가난한 이들의 신앙과 실천이 해방신학의 기본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근본적인 과제는 계급적 혹은 계층적 대립을 초래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의 관점에서 억압과 착취와 차별하는 이들을 바로 잡고, 억눌린 이들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목적과 맞물려 있다. 해방신학은 편파적인 어느 한 편이 아니라 ‘모두의 해방’을 지향한다. 이런 해방적 신학의 기능은 단순한 해방신학의 형성과 전개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복음 선포의 지속적 과제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론(正論)보다 정행(正行)을 중시하는 해방신학은, 신학의 주된 주제로서 신학하기(doing theology)를 ‘예수를 따라 사는 삶’과 연관 짓는다. 하나님의 신비는 이론적으로 이해되거나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사는 삶에서 경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삶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은총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행복을 담는다. 이 행복은 해방의 감격과 경험이며, 거저 받은 은총이므로, 거저 나누어 주어야 할 과제, 곧 해방적 과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구티에레즈는 이 해방적 과제는 가난하고 천대받았던 갈릴리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과제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은 가난하고 멸시 받는 이들 편에 단호하게 서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편파적 사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하나님이시므로, 억압받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편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건강한 사람보다, 병든 이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고난과 착취와 차별의 현장에서 하나님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티에레즈는 여기서 이중의 언어를 강조한다. 묵상의 언어와 예언의 언어가 그것이다. 묵상의 언어(language of contemplation)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신비로부터 유래함을 드러내지만, 예언의 언어(language of prophecy)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이들이 경험한 불의와 착취의 정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의 언어가 없는 묵상의 언어는 무능할 수 있고, 묵상의 언어가 없는 예언의 언어는 경박할 수가 있다. 묵상의 언어가 없는 예언의 언어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평을 협소하게 이해하는 오류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언어는 두 가지를 균형있게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감사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로움으로 지키는 일은 기독교인의 실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두 언어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길을 열어가는 두개의 축이다. 고난과 죽음이 있는 이 세계에서 생명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은 반드시 우리들의 믿음이 정의를 만나는 해방의 지평으로 이어져야하는 것이다.
1990년을 전후하여 세계 신학계에서 “해방신학“에 대한 관심은 유행에 따라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2007년 전 세계에서 해방신학 컨퍼런스는 하나만 열렸다.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미국 택사스 왜코에 있는 베일러 대학교(Baylor University)에서 열린 해방신학 컨퍼런스가 그것이었다. 이 모임에 초대된 나는 전 세계에서 모인 60여명의 신학자들을 만나고 발제와 토론을 통한 대화를 이어갔었다. 특히 남미 해방신학자의 저작들은 후속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고, 해방의 주제는 다변화되어 기독교 사회 윤리학이나 페미니즘적인 해방신학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했다. 최근에는 해방신학 관점에서 복음과 인간해방의 과제를 생명윤리학의 지평에도 적용하는 이론도 나오고 있다.
해방신학이라는 명사적 주제는 신학 지평에서 다소 사라지고 있지만, 해방적 실천 과제들을 담은 ‘동사적 신학’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었던 셈이다. 해방적 지평은 새로운 컨텍스트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신학들은 서구중심의 신학이론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세계현실 속에서 서구신학의 해체와 더불어 다양한 신학적 논의를 불러왔다. 이런 논의들은 결국 지정학적인 자리에서 해방적 구체성을 찾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초기 해방신학이 사회 경제적 해방에 관심을 가지며 촉발되었다면 오늘날의 해방신학의 과제는 사회윤리적인 간학문적인 과제로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만델라를 중심으로 남아프리카에서 일구어낸 흑인 해방 운동이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불러왔지만, 경제 사회적 불평등과 법적 책무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이름뿐인 해방으로 그치는 현상도 있었다.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인 법적, 사회 공동체적 해방의 합의를 찾는 데 그리스도인들의 힘이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노력은 사회 경제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문화 종교적 지평에서의 해방적 인식변화와 실천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복음의 선포는 인식의 변화와 사회 문화적 변혁으로, 그리고 제도적 정의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래된 억압 구조는 이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남아프리카에서 보고 있다.
해방신학적 견해를 가진 이들은 보다 인간화된 정의와 진실의 세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질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에 의하여 미움과 증오의 표적이 되기 쉽다. 특히 해방신학자들은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 비판적 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외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이번 컨퍼런스에서 중요한 토론의 주제이기도 했다.
로즈메리 류터(Rosemary Ruether)는 70이 넘은 여성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해방신학이 죽지 않았는가? 그리고 누가 해방신학을 죽이려는가?”라는 역동적인 제목의 강연을 했고, 만델라(Nelson Mandela) 뒤를 이어 남아프리카에서 해방 운동의 과제를 이어가는 개혁신학자인 알렌 보잭(Allan Boesak)은 “땅에 부딪친 진리는 다시 솟구쳐 오른다 : 21세기 해방신학의 필연적 요청”(Truth crushed will rise again: The Necessity of Liberation Theology in the 21st Century)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나는 “한국 민중신학의 역동성과 그 한계”에 대하여 강연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이슬람권의 해방운동,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방운동, 전 지구적 지평에서의 영성과 정의, 아프리카에서의 해방신학 등의 소주제에 따른 다양한 발제들이 이어져 전 세계적으로 각기 구체적인 정황에서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적 실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주제를 접하면서도 나는 이 컨퍼런스에서 아시아 해방신학의 과제들이 누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날 전 지구상에서 가장 곤경을 겪고 있는 나라들은 주로 아시아 지역에 있다. 스리랑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경우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들은 대다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법 행정 관료들의 부패 또한 극심한 형편이다. 작년 한해만 해도 필리핀에서는 약 750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암살당했고, 스리랑카에서는 850명가량이 작년 한해 재판 없이 죽임을 당했다. 법은 있으나 법적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현실이 있다. 그런데도 필리핀의 가톨릭교회는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심지어는 시끄러운 쇼핑 몰에서도 공개 미사를 드릴 정도로 열심이다.
민중의 고난을 외면하는 교회는 남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도 있다. 억압과 가난과 차별의 현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여성들이나 소수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은 신학으로 존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억압과 차별의 세계를 예언자적인 영성을 가지고 정의와 동정의 세계로 바꾸는 데 진정한 해방신학의 목적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난과 억압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역은 모든 교회들이 동참할 사회 윤리적인 선교 사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선교의 힘을 부여받은 우리 한국 교회가 ‘묵상의 영성’에 더하여 ‘예언자적 영성’을 더욱 깊이 키워 나간다면 향후 우리 이웃들의 해방, 아시아 해방의 과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책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만이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의 현장에서 거리가 먼 “묵상의 영성과 영혼 구원”만을 되뇌며 억압자와 착취자를 축복하는 부도덕한 영성가의 길이 아니라, 불의한 억압자과 착취자 편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이들 편에 서서 성서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약자보호법의 전통”을 이어가는 예언자적 영성가가 많아져야 한국 기독교의 영성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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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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