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 2010

인문학적으로 바라본 파리



-2010년 10월, 영산강가에서 정수복 박사와 함께 해남을 돌아보며-


[인터뷰] <파리의 장소들> 펴낸 정수복 교수


정수복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가 지난 2009년에 낸 <파리를 생각한다>(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읽고 한 블로거는 "나는 서울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어갈수록 마음이 무겁다"는 촌평을 내놨다. 이제 그는 한번 더 마음이 무거워질지 모르겠다. 정수복 교수가 '파리 연작' 2권으로 <파리의 장소들>(문학과지성사 펴냄)이라는 책을 들고 돌아왔다.

<파리를 생각한다>가 정수복 교수가 파리를 걸으며 느끼고 생각한 점을 망라한 일종의 '총론'이라면 2권 <파리의 장소들>은 정 교수가 걸은 16개 장소 각각에 대한 세밀한 기록, 즉 '각론'이다. 그래서 파리를 추상화로 바라봤던 1권보다는 세밀화인 2권에서 그의 '파리 사랑'이 더 많이 묻어난다. 그는 이들 장소를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파리와 파리 사람에 얽힌 사연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형식상으로는 여행기와 비슷한 듯하지만 정수복 교수는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파리를 서술하기 때문에 독자에게도 마냥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앞의 블로거가 말한 것처럼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의 도시, 가장 대표적으로는 서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정 교수가 높게 평가하는 파리의 특성, 매력은 한국에선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02년부터 파리에서 산 지 8년 째가 된다. 그간 '파리 읽기' 책도 두 권이나 냈다. 정 교수를 이렇게 사로잡은 파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얼마 전에 파리에 왔던 신경숙 작가가 '파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쓴 것은 파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 맞다. 이 책은 파리에 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파리에 살면서 대부분 두발로 걸어다녔다. 파리는 서울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곳이라 걸어다니기에 아주 좋다. 파리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걷기다. 걷기는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일이고 어디든 가까이 걸어다니다 보면 그 공간과의 친근감이 생기고 애정이 묻어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파리에는 파리만의 특별한 것이 있다.

파리의 역사는 세느 강의 시테 섬에서 시작해 동심원을 넓혀간 확장의 과정이이었다. 지금의 파리에는 그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다. 노트르담 성당으로 대표되는 중세 유적과 17세기 절대왕정기, 계몽주의 18세기, 격정적인 19세기, 급격한 변동을 거친 20세기 등 누적된 역사 층들이 켜켜히 겹쳐 있다. 파리에서는 한 장소에서 2000년의 역사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 파리의 '아우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 층이 겹쳐가며 생겨난다. 그리고 파리 내에서도 각 구역마다 특징이 다른 '다양성'도 파리의 매력이다."

파리와 달리 서울에선 이러한 '기억의 공간'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서울을 보고 나서 "600년 된 도시라는데 마치 30년 된 신도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에는 고궁과 종묘, 4대문이나 북촌과 같은 마을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의 공간에서 좀처럼 지난 역사의 흔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과거를 떠올리지 않고 살았다는 정수복 교수는 오히려 파리에서 좁은 골목길이나 언덕길을 걷다 자신의 유년기, 1950년대 말과 1960년 대 초의 기억에 젖는다고 고백한다.

"살지 않은 공간이 내가 살았던 공간을 생각나게 하는 까닭은 바로 그 시간의 흔적에 있었다. 나의 유년의 기억이 식민지 근대도시의 잔해 위에 이뤄진 것이라면 파리는 그런 도시 공간에 나타나는 근대성의 원형일 것이다" (<파리를 생각한다>)

"그런 식민지 근대성의 분위기에서 형성된 기본 정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잘라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나의 정서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의 근대성 안에 이미 식민지 근대성이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파리를 생각한다>)

이러한 정 교수의 질문은 서울, 더 나아가 한국의 모든 도시들이 갖고 있는 질문이다. 식민지 근대성의 기억은 '보존해야할 기억'인가 청산해야할 기억인가?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식민지 시대의 것이라고 청산하다 보면 시민들은 '기억의 장소'에 얽힌 정서적 뿌리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기억과 의미가 남아 있지 않은 공간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오늘의 서울이다. 마르크 오제의 개념을 빌자면 서울은 '비장소'로 가득찬 도시인 셈이다.

- 마르크 오제는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로,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비장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은 대표적인 '비장소'의 도시가 될 텐데, 과연 시간이 쌓이면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을까?

"글쎄… 서울에서 24시 편의점이 50년 넘게 있을 까닭도 없고 카페만해도 2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도록 자꾸 이름이 바뀌지 않나. 장소가 되려면 공간이 오랜 시간 유지되어야 하는데 빠르게 바뀐다는 게 서울의 특징이다. 그래서 비장소가 장소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파리에는 예외가 있다. 책에도 소개했지만 19세기 파리에는 공중 위생 차원에서 도로변에 남성용 변소 '데스파지엥'을 만들었다. 이것은 19세기 도시 곳곳에 다 있었는데 다 철거하고 상테 감옥 옆에 딱 한 개만 남겨놨다. 그로써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됐다. 19세기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맥도날드가 다 없어지고 딱 하나만 남아있다면 '비장소'가 '장소'로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 않은가." (웃음)


▲ <파리의 장소들>(정수복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서울은 살기에 편리하고 실용적이지만 특색없고 역사가 없는 도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에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며 많은 예산을 들여 반포대교 분수를 설치하는 등 여러가지 사업을 추구하는 것도 '밋밋한 서울에 특색을 부여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 교수의 두 번째 책 <파리의 장소들>에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추구하는 오세훈 시장이 읽어봤으면 하는 대목이 있다.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에 관한 이야기다.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된 두번째 이유는 무용성에 있다. 궁전이나 사원, 현재의 고층건물들은 어떤 기능이 있다. 그러나 에펠탑은 아무런 기능이 없는 순수한 상징이다. 에펠탑은 그 안에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방문의 장소로서의 에펠탑은 파리 전체를 보여준다. 순수한 상징으로 지어진 에펠탑이 파리 전체를 조망하는 장소가 됨으로써 에펠탑은 자연스럽게 파리의 상징이 되어 있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명성에 비례해 에펠탑의 상징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되는 과정에는 파리가 이미 오래된 기념비들로 꽉찬 기억의 도시라는 점이 작용했다." (<파리의 장소들>)

- 에펠탑과 같은 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도시 계획뿐아니라 창조적 영감과 우연성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에펠탑은 원래 1889년 박람회 이후 철거될 것이었는데 도시의 전체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파리의 상징이 됐다. 파리 도심의 나즈막한 6,7층 건물 사이에 높이 치솟아 있고 오래된 건물 사이에 새롭게 튀어나와 있다. 도시의 의미와 예술적 영감이 조응한 것이다. 그러면서 화가나 사진작가가 에펠탑의 이미지를 재해석한 작품을 여럿 내놨고 점점 세계로 퍼져나갔다. 결국 랜드마크는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고 의미가 커지면서 랜드마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 정책을 내세우면서 반포대교 반포분수 등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디자인 서울' 정책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포분수'를 보셨는지.

"일단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과연 저 분수가 오래갈 수 있을지, 시간이 좀 지나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패션에서 나온 것처럼 디자인이란 결국 유행을 따르게 된다. 그런데 분수는 5년마다 바꿀 것도 아닌데 10년 뒤까지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물론 랜드마크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의 사업들이 과연 서울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할 수 있느냐에는 의문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정 교수는 <파리의 장소들>에서도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어메너티(삶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장소의 양태나 특성)나 삶의 질보다는 시각적 효과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며 "우리 삶의 공간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 온몸으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월이 흐를 수록 의미와 기억이 누적되고 퇴적되는 '장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미 오랜시간 '퇴적'된 파리는 서울이 따라가기에 어려운 이상향 아닐까.

"서울이 연구해야할 도시로는 베를린을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베를린은 독일이 통일된 다음에 굉장히 바뀌고 있다. 길도 다시 만들고 좋은 건물도 세우고 도시 계획을 세운다. 베를린은 위치상 유럽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베를린 사람들은 '지금이야 도시가 새것이지만 세월의 이끼가 끼고 의미가 붙여지게 되면 훗날 파리보다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니까 시장 임기 5년이 아니라 50년 후, 100년 후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의 서울'이라는 별칭을 받고 싶다면 최소한 베이징이나 도쿄와 비교해서 서울이 어떤 특이성, 고유성을 가질 것이냐, 서울에서의 삶의 질은 어떻게 더 나은가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파리를 생각한다>(정수복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정 교수의 첫 책 <파리를 생각한다>에는 오세훈 시장이 참고 할만한 중요한 지적이 나온다. 파리에서 도시 계획을 어떻게 수립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파리 특유의 다양성은 바로 '참여'와 민주주의 속에서 나온다는 발견이기도 하다.

"2001년 자크 시라크의 후계자인 장 티베리를 제치고 파리 시장에 당선된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2008년 선거에서 재임되었다.(…) 들라노에 시장은 2004년 '정열로 사는 삶'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는데,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도시 행정을 자신의 주된 첧학으로 삼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도시계획, 당신의 의견을 주십시오' 파리 시가 도시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보낸 설문조사지의 제목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파리의 신규 건축, 개축, 보수, 토지 점유, 문화재 보전 등에 관련된 도시계획법을 만들기 위한 설문조사다. (…) 들라노에 시장은 파리 시의 도시계획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파리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그 문제에 대한 시의 대처 방안을 제시한 다음에 그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을 한단어로 말하자면 '목적 없는 방황'"

정 교수가 에펠탑을 두고 '무용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처럼 파리 연작 두 권에서는 공통적으로 '쓸모 없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정 교수의 전작 <바다로 간 게으름뱅이>(동아일보사 펴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책 곳곳에서 '쓸모 없음', '목적 없음'에 관한 성찰과 사색을 발견할 수 있다. 정 교수 역시 자신의 책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aimless wandering', 즉 '목적 없는 방황' 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쓸모 없음'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산업화를 거치며 외친 '선진국이 되자'는 구호에서 나온 개념이 '실용성' 즉 쓸모 있음이 아닐까 한다. 구체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화폐로 환산되고 양으로 잴 수 있는 것,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을 쓸모 있다고 한다. 반면 쓸모 없다는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으로 용도가 없는 것,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쓸모 있음'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쓸모 없는 걸 다 버렸다. 마당 없는 집으로 이사가면서 장독대, 댓돌, 다듬이, 이불을 다 버렸다. 오래된 것, 예전 부터 있던 것을 '쓸데 없다'고 버린 것이다.

유학에는 '군자불기'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구체적인 쓸모 있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연경관 앞에서 서늘하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 경관이란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쓸모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들은 쓸모 없다고 버리고 경시한 것들이 아닐까."


ⓒ프레시안(최형락)
그의 '쓸모 없음'에 대한 찬양은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2002년 그가 파리로 떠난 이유와도 연결된다. 그는 자신의 파리 체류를 '자발적 망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파리로 망명온 수많은 망명 작가들에게 애정을 표했다.

"20대의 풋풋한 나이에 파리에 유학 왔다가 망명 작가로 일생을 보낸 시오랑. 파리 정착 이후 모국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만 글을 쓴 사람. (…) 그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생계를 유지했다. 가난하지만 자기 세계를 지킨 고집스러운 전업 작가였던 셈이다. 그렇게 산 그의 삶에 나는 커다란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 파리에 다시 온 이후 나는 자기가 태어나서 살던 익숙한 장소를 떠나 자기가 선택한 낯선 땅에 와서 망명생활을 한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파리의 장소들>)

-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힌 시오랑에 관힌 글을 보면 망명 작가에 대해서 동질감, 애정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에 '자발적 망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에서 무엇을 피해서 망명을 떠났나?

"나는 나의 망명을 '정신적 망명'이라고 한다. (웃음) 앞서 낸 책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 펴냄)에도 썼지만 한국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피해 망명을 떠났다. 유학 생활을 하고 나서 귀국해 여러 대학의 교수 채용에 응할 때 한국 사회를 깊게 느꼈다.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 나의 능력이 아닌 어떤 이유로 교수 자리를 얻지 못했고 그 이후 시민운동도 하면서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피하려 한 것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쓴 것들이다.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 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 회피주의,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 중심주의, 속도 지상주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 수단 방법 중심주의, 이중 규범주의 등이었다. 그리고 정약용, 추사 김정일, 마르크스도 유배나 망명을 가서 작품을 쓴 것처럼 나도 자발적으로 살던 곳에서 떠나서 내가 살던 곳을 객관화, 대상화 해볼 필요가 있었다."

- 2002년 파리로 '망명' 하기 직전 시민운동과 생태 운동을 열심히 했다. 한국에서 대안 운동을 하다 '망명'을 떠난 셈인데 한국의 시민운동에서도 한계를 느낀 것이라고 보면 될까?

"환경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 이중적 태도다. '환경이 악화되서 인간이 못살게 된다'는 주장은 모두 맞다고 하면서 내 자식이 좋은 학교를, 내가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하고 승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더라. 말하자면 운동은 하고 있는데 그에 맞는 사고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떤 시민운동이든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운동을 하면 겉만 운동이 되는 거지 속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로 콕 집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좌절감이 깊다. 그래서 반정부 운동을 하면 금방 불이 붙는다. 택시운전사부터 대학 교수까지 이명박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그런데 자기 생활은 그대로 두고 이명박 대통령만 비판하니까 촛불 집회처럼 일시적으로 끝나고 마는 거다.

결국 모든 시민운동과 함께 일반 시민의 살아가는 방식 자체, 우리 안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는 운동을 해야할 시점인 셈이다. 인터넷이든 소규모 집단이든 진정한 토론이 일어나고 격려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래야 전체와 부분, 거시와 미시를 오가며 제대로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Saturday, October 2, 2010

순수의 이름으로 불의를 감행하는 배리에 관하여

기독교인으로서 경험하는 비합리적 배리는 대부분 타락한 교회 권력구조의 산물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이 전근대적 가치와 권위 그리고 질서를 신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정황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함이라는 신학적 방패 뒤에 숨어서 온갖 추태를 부리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 정치 경력이 오래되면 될수록 그들의 영혼은 파멸에 가깝고, 신앙과 권위의 외피를 입은 짐승과도 같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런 이들에 의하여 불미스러운 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이런 이들에 의하여 길들여진 기독교인들조차도 간혹 도덕주의적 인민재판에 앞장서면서 합리적 절차에 의한 징벌을 초월하여 사적 감정과 공격적인 행위를 감행합니다. 교회의 평화라는 미명 속에 억눌려 있던 가학적 본능이 특정한 이들을 향한 증오로 돌변하곤 합니다. 이들은 집단적인 행태를 갖출 때는 간혹 정의와 순수의 이름으로 매우 야만적인 행위도 불사합니다. 여기에도 비합리적인 배리가 있습니다.

최근 성희롱 사건이 회자되는 양태를 바라볼 때 나는 이 두가지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 권력은 주제넘게 오랫동안 신도들의 침실까지 엿보고 이를 재판해 왔습니다. 간통과 간음이라는 죄목을 일단 던지면 아무도 구해 낼 수 없었지요. 일단 혐의만 던져도 인권사각지대로 당사자를 던져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할을 했던 이들이 주로 성직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 구조가 바뀌어 신도들이 성직자들의 침실을 엿보고 고발 하는 것이지요. 일단 고발이 되면 그는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인권사각지대로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성직자들의 사법권이 박탈당한 오늘날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의 성적 일탈에 대한 심판자를 자처하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인권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국가의 권력들도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법정의 심판 대상으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권력이 아직도 오만을 떨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순결과 정조를 국가 권력이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교회 안의 도덕주의자들 역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는 짐승으로 몰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즈음 유일하게 남은 영역이 바로 성직자들의 성적 일탈에 대한 초법적인 공격입니다. 인터넷 세계의 모호함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건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한 개인의 삶과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박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의 도덕주의적 권고도 읽어 보았지만, 그것은 법률가로서가 아니라 한 신앙인의 읍소와 같았습니다. 서양에서는 통계상 성직자들의 약 4%가 성적인 일탈을 범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성적 일탈율은 그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남성중심적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군대에서 여성을 성적 도구로 바라보는 동료들이 벌리는 매춘문화를 보면서 나는 거의 50% 이상의 남성들이 성적 유혹 앞에서 도덕적 저항 능력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류의 사람도 성직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남성적 권위를 자랑하는 목화자일수록 위험도는 더욱 증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처럼 벌리는 도덕적 순수논쟁은 매우 위선적인 것입니다. 성적 일탈의 문제는 그것이 개인이든, 공인이든, 성직자이든 막론하고 그들의 사생활의 영역이고, 문제를 구지 삼아야 한다면 그것은 당사자간 법정에서 판단을 받아야 할 문제입니다. 제 3자가 이에 개입하여 심판자를 자처하는 것은 그 정당성의 근거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도덕주의자들이 되어 도덕의 이름으로 한 인간을 매장시키려 하는 것이 고작이겠지요.

나는 비일 비재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기독교인들 속에 내재된 성적 억압이 특정인에 의하여 저질러진 방종에 가까운 성적 일탈행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과도한 분노로, 혹은 지켜야 할 망루가 무너졌다는 일종의 처절한 몰락으로 보개 만드는 심리적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교인만큼은, 성직자만큼은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기대와 희망이 붕괴되는 데 대한 분노라고 할까요. 아마도 이런 생각은 성이란 여전히 타부가 되어야 하고, 결혼이라는 구조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하고, 반드시 남성과 여성 사이에만 일어나는 사건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보수적으로 집착하는 양태이기도 합니다. 하여 성직자들은 대리적으로라도 마지막 남은 망루가 되어야 하는 데 그것이 안 되어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자는 논리에 동의하거나 힘을 더하지 않은 예수가 과연 무엇을 생각 했는지 가끔 그 분의 속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의롭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타인의 실수를 나발불기가 아니라 나의 비판의 대상이 된 그 이 /그 녀의 인간다움의 고귀함과 권리도 잊지 않는 태도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 이 홈피에서 한 기자가 뉴욕의 어느 목사의 성적 일탈에 분노하여 기자로서의 객관성을 상실하고 오류를 범한 이의 자식들까지 대대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글을 쓴 일에 대하여 커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자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답 글을 달아 몇 번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후기를 쓰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이 그것을 대신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개인 성직자의 외도에 저리도 분노하는 그의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한 목회자의 불륜을 비판하고 드러냄으로써 그의 부적절한 처신과 사생활을 공적 영역에 드러내는 행위의 비윤리성과 부덕함의 심각성에 전혀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행위는 도덕주의를 앞세워 교회의 공공성에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한 개인의 오류를 침소봉대하여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의 오류로 과장 확대하는 부당함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당사자와 주변인에게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바,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몰수하는 행위를 벌리는 것이지요. 대형 교회의 목사일 경우 세간의 이목이 있어 가십의 깊이와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들에게 있어서 명분 있는 좋은 먹이감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런 사고 방식 자체가 매우 전근대적인 개인 이해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의식을 가지고 한 때는 목사의 영웅주의적 권위를 비난하던 이들이 목사의 일탈행위를 보면서 판단하는 기준은 왜 영웅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여 고발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이율배반을 보지 못하는 그 자리에는 정의로움보다 불의한 것이 더 많습니다. 정의와 순수를 앞세운 이런 공격행위에 담겨 있는 불의와 배리는 주로 황색 저널리즘이 가지고 있는 유치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로움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곰씸어 보아야 할 과제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잘못했다 할지라도 재판권을 행사하는 공적 기관이 있는 현대 세계에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하여 사적 형벌을 가하는 태도는 가학적인 자기 본성을 드러내는 일일뿐 기독교적인 것도 아닙니다. 동료 인간의 실수와 잘못을 비판할 때는 정중해야 하고, 상대의 동료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박탈하려 드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본성을 감추거나 억누름으로써만 가능한 행위로서 매우 위선적인 것입니다. 이런 위선적인 행위들을 과거의 성직자들이 무수히 범했는데 오늘날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이들에 의하여 인민재판식으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 정치적 오류는 다수의 사람들을 죽임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일임에도, 그런 오류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고, 너무나 관대하거나 심지어 의식도 하지 못하던 이들이 누군가의 성적 일탈이라는 주제만 나오면 흥분하며 앞장서서 돌을 던지며 야수집단처럼 한목소리를 내며 공격하는 양태를 보면서 나는 기독교인들의 이런 점이 간혹 너무나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마녀 사냥을 외쳐대던 중세기의 기독교인들, 퓨리탄의 후예들의 피가 아직도 흐르기 때문일까요? 실인즉 그들이 마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마녀라고 내심 규정하고 두려워하며 마치 "나는! 우리는 마녀가 아니야!" 라는 외침과 함께 상대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후예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의가 지나친 그런 이들의 참된 삶의 진면목은 얼마나 정의로운 것일까 나는 궁금해집니다.

1980년대 미국을 주름잡던 텔레비전 설교가인 지미 스왜거트는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던 짐 베이커가 교회내 신자와 가졌던 부적절한 성희롱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후에 지미 스왜거트가 매춘여성과 모텔에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는 텔리비젼 앞에 나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는 또다시 매춘행위를 하다가 잡혔습니다. 비범한 영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점은 자기 자신이 매우 특별하고 예외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위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완벽한 인간은 없는 데도 그렇게 늘 보여야 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경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한 인간으로 대우를 받기 어렵게 되지요. 그의 위선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까닭입니다. 위선자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일은 매우 힘이 듭니다. 그리하여 영웅적인 많은 이들은 정작 자신의 아내로부터 사랑과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성공한 목회자들의 비극의 이면에는 이런 속성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위선과 거짓이 싹트고, 점차 죄에 대하여 민감성이 결여되어 간혹 부적절한 성적인 위로를 구하는 초라한 인간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주변에 너무 영웅적인 목사를 숭배 할 정도로 따라다니거나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그들이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 이상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인은 인간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보수적인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만 지도자의 성적 일탈에 관한 사건들이 가장 큰 화제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인들이 인식하는 죄가 그런 문제에만 과민 반응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과도한 자기의 혹은 스스로에게 강요해 온 순수가 부정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혼란을 느끼고 이를 부정하며 분노하는 자기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양태들은 타인의 도덕성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경박한 판단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직자의 성적 일탈의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개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증오의 제전을 벌리는 것은 마치 범죄자를 사형시키면 교회 안에는 그런 죄와 악이 억제되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단순한 망상을 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공개되어 있는 왜곡된 성문화, 성인인증이 필요한 세계가 또 하나의 세상으로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무수한 네온사인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음주와 성매매문화, 노골적인 매춘문화 이런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가 지켜야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성적일탈에 대하여 분노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성이 무엇인지, 성애의 본질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그리고 몸과 성의 소중함과 인간의 소중함에 대하여 우리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Wednesday, September 29, 2010

피스 메이커와 트러블 메이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보수주의자들이 좋아 하는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트러블 메이커는 분명 반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용히 중용지도를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일러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런 이들은 조화로움 보다는

기존의 질서와 평화를 깨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들의 눈에 비치는 예수는 분명 트러불메이커 였습니다.

예수의 죽음 역시 그가 기존의 질서와 공생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요즈음 여기 저기서 평화라는 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평화란 명시적인 개념이 아니니 개념적으로 최소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사실 로마의 평화, 이스라엘의 평화, 미국의 평화 - 등 이런 개념들은 제국주의적인 평화를

지시하는 것이지요. 이런 제국의 평화를 지속시키는 질서에 순응하고 복종하면 좋지만 이에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들로 몰리기 쉽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명시적인 반평화주의자들로 규정되지요.



제국주의적 질서가 팽패하여, 너나 나나 힘과 숫자의 우위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사는 습속을 가진

제국의 시민들이 되어가는 이들은 제국의 질서를 넘어서는 더 큰 평화, 정의로운 평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곤 합니다. 제국의 평화가 있는 데 그 것을 넘어서 더 큰 정의로움을 요구한다는 것은 제국의

질서 속에서 용납되지도 않고 심지어 등골이 가끔 서늘해 질 정도로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제국의 위압적 힘과 논리 그리고 질서를 거스려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감이 기독교 신앙 속에

하나의 타협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신학적 언어가 그런 타협을 구속론적으로

잘 포장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기독교는 무수한 사회적 악을 멀거니 바라만 볼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악의 출현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는

아이러니까지 불러오지요.



피스 메이커라는 말은 나 역시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분명하게 just peace maker라는 말이

더 안도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의 삶을 바라보면 당대의 지도급 인사들과는 거의 벽을

쌓고 살았고, 심지어 그들에게 수회에 걸친 저주를 퍼 붓기도 했습니다. 그런 예수가 홀로 누어 자책하며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곰씹었을지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그가 느꼈을 죽음의 위협과 고독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결정론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정황에서 이렇게 반응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정의로움을

지키려는 책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소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불의한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는

정황에 연루된 자로서 침묵할 수 없는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은 거의 운명과 같은 것이지 싶습니다. 약삭

빠르게 기존의 질서와 정면 충돌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란 성품상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구요.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노력 속에서는 트러블메이커와 피스메이커란 서로 다른 대립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사실 한 편에 가깝습니다. 불의한 정황에서 정의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의를 조장하고 유지시키는 이들의 눈에는 가시같은 존재로서 트러블메이커로 규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러불메이커로 규정될 때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정의로움"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1958년 독일 출판협회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수상했던 칼 야스퍼스는 진리와 자유가 부재하는 평화란

참된 평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적 평화없는 외적 평화없고, 자유없는 평화도 없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 자유는 오직 진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유와 진리가 가져오는 선물이

정의로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피스메이커인가 아니면 트러블메이커인가 라는 이분적 질문은

우리의 사소한 그리고 중요한 다툼들이 과연 보다 나은 정의로움을 선물로 가져올 진리와 자유를 향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성찰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Friday, March 26, 2010

정진홍 교수의 강연을 듣고

오늘 나는 김진홍 종교학자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종교의 자리를 "위"라고 하며 아래를 향한 섬김의 본질을 가지는 것일 수 있다고 하면서 오늘의 신학교육이 일종의 신학적 다신론을 생산하고, 살아있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길을 찾기보다는 정형화되어 단순 반복되는 주술적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그리하여 우상타파적인 종교가 신학적 우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편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 나는 불편하다. 종교의 자리를 "위"라고 보는 시각은 일종의 제도화된 종교 일반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교회유형의 교파주의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최고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고, 자의적이며, 집단의 이익관계를 통하여 최고가 아닌 것이 될 때, 그리하여 소통이 불가능하고, 답답하며, 사투리적 게토 언어로 전락할 때, 그 신학은 결국 리챠드 니버가 말한 바 인간의 종족적, 혹은 집단적 이익에 매인 신을 생산하는 henotheism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학자들을 향하여 거룩한 모반이라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창세기 22장 아브라함 사건을 일러 문화적 모반, 즉 종족적 혈연적 가치에 매인 종족신적인 습성에서 과감히 모반을 감행하여 신중심적인 복종의 모습을 보인 사건이라 하였다. 칼을 들어 집착과 이익관계를 단절하는 아브라함의 비정함을 거룩한 모반의 사례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인간이 견디어 낼 수 있는 거룩함의 정도가 어디까지인가 묻게 된다. 성서적 진술이 가지는 추상성을 넘어 우리 스스로 거룩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을 만한 역사적 사례는 무엇일까?

나는 이 점에 대하여 물음을 가슴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