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3, 2011

새 책 "예수의 윤리" 출간준비를 마치고...

춥고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오랜 독재의 무거운 억압에서 헤어 나오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국들은 이런 기회를 틈타 더욱 유리한 정치 경제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눈치싸움이 한창입니다.
권력과 소유, 오만과 쾌락, 그리고 정복과 지배의 현대적 변형구조가 어느 곳에서나 그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판하는 책은 예수의 윤리가 제국주의적 가치들 속에서 어떻게 구축당했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해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논문들은 이런 관심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책 제목을 "예수와 제국주의"로 출간하려 했으나 너무 광범위한 주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 의미를 좁혀 "예수의 윤리: 혼란과 갈등의 시대에 생명과 평화의 길 찾기"로 고쳤습니다.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구도자입니다. 그런데 간혹 종교인들이 구도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버리고 너무나 세속적인 가치와 주장, 행태를 벌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는 날이 많아 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도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업보에 몸이 감겨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책을 한권 한권 출간할 때마다 나의 글과 나의 실존 사이의 거리를 느낍니다. 언어와 행위, 의식과 삶, 그리고 아는 것과 행할 능력의 불일치가 일핏 얼핏 나의 의식속에 떠 오릅니다. 진리와 자유와 정의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의 세양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 삼위일체라는 신학적 개념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며 참 좋은 교회라는 인정과 긍정의 느낌보다는 위기와 혼란을 먼저 느끼고 있는 오늘의 크리스쳔들에게 있어서 그 혼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생명과 평화의 길을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지만 결국 길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산길을 걸으면서 젊은 날 가지고 있었던 삶의 순수가 불순함에 의하여 더렵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와 불순이 구태여 나누어질 수 있는 차원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나의 실존이 희구하던 순수한 삶에 대한 갈구는 순수를 잃어버린 순간을 통하여 오염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슬프지만 그 오염된 삶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위기는 오염된 삶의 현실 속에서 삶을 사랑하지 않는 절망과 분노에서 오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절망과 분노는 오염된 삶을 정화하고 치유하기 보다는 유기하거나 외면함으로써 그것이 주는 고통도 더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 나의 가슴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선과 같은 그 순수의 세계가 더욱 깊이 불순한 삶의 구조를 부단히 정죄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길을 우리에게 일러주면서 이런 죄스러운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주장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사랑의 길을 가신 것이지요. 내 삶의 순수를 짓밟은 힘에 대하여 분노하며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이제 그쳐야 하겠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을 말하면서도 내 안에 생명과 평화가 불러오는 근원적인 긍정의 힘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공허한 것이 되겠지요. 생명과 평화의 길은 최고선의 길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그리고 더 배반받고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는 길과 만나는 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필요로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곤 합니다.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최고선은 언제나 최고선에서 멀어진 나를 정죄할 뿐입니다. 그리고 최고선의 관념을 가지고 스스로와 다른 이를 괴롭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의 윤리는 우리를 오만한 정복자로 이끄는 힘이 아니라 관념적 선을 접어 놓고 겸비한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를 불러내는 적은 목소리와도 같습니다. 두려움없이 이 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를 따라 조용히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