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현상, 2018년 겨울호>
박충구의 책읽기 (4)
필 주커먼, 『종교 없는 삶, Living the Secular Life』, 박윤정 역(판미동, 2018). 18,000원)
저자 필 주커먼(Pill Zuckerman)은 미국 캘리포니아 클래어몬트 피쳐 칼리지(Pitzer College) 종교사회학 교수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무종교성을 학문적 연구 주제로 삼아 다양한 저서를 냈다. 『신없는 사회, Society without God, 2008』, 『믿음은 더 이상 필요 없다, Faith No More, 2011』, 『비신앙인, The Unreligious, 2016』 등이 최근 저작들이다. 그가 2014년 출판한 『종교 없는 삶』이 올해 우리말로 번역되었기에 소개한다. 그는 세속성에 대한 연구 분야 학과를 세계 최초로 개설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서구 기독교 세계 인구 중 근 95%가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상당한 수의 신앙인들이 종교로부터 벗어나 비종교인 혹은 무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커먼은 참된 인간상과 인간의 도덕성을 담보해주던 종교 없이 어떻게 무종교인들이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 현상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인은 종교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어렵게 되어 이전에 종교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종교 없이 살아가는 길을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종교 없이 산다는 것은 일면 신이 인간을 더 이상 감시하거나 혹은 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간을 위협할 힘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편에서 본다면 하나님 상실의 시대다.
서구사회와 유사하게 우리 사회에서도 제도적 종교를 떠난 비종교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2015년 통계에서 종교가 없다고 답한 이들이 무려 전체 인구의 56.1%에 이르고, 지난 10년 동안 종교인구의 약 9%, 약 300만 명 정도 감소한 사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매년 전체 종교 인구의 약 1%씩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제에 『종교없는 삶』은 우리에게 현대인의 비종교화 현상에 대한 매우 탁월한 분석적 이해를 제시해 주고 있다.
『종교없는 삶』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사람이 종교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담겨있다. 전통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살던 이들이 종교를 떠나기로 작정할 때에는 ‘종교 없이 사는 것이 종교를 가지고 사는 것보다 낫다’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종교를 가지고 사는 이들은 종교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하여 염려스러워하면서 ‘종교 없이 과연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묻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상호 주고 받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하여 종교 없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종교를 가진 이들이 염려하는 여러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이며 영적인 지침을 마련해 주었다. 종교에 익숙한 이들은 종교 없는 삶이란 삶의 무수한 문제에 대하여 정답을 가지지 않고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종교가 없다면 종교가 제시해 주던 도덕성의 근거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다가 그 공동체를 떠나면 그와 같은 좋은 공동체나 사회 없이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다면 자녀들의 영성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가 없다면 죽음이나 고난에 직면할 경우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등등 무수한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낡은 질문에 대한 새 답변(New Answers to Old Questions)”이라고 달았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를 떠난 사람을 비종교인, 혹은 무종교인, 혹은 세속적인 사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의 세계는 종교적인 사람이 더욱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가 깨진 세계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종교를 가진 정치가들이 더욱 포악하고, 부정직하다는 사실, 그리고 종교성이 깊다고 여겨진 사회에서 폭넓게 일어나는 다양한 범죄가 종교인의 도덕적 우월성의 근거가 박약하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2장) 이런 경험적 사실들에 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서 종교를 떠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종교화의 요인
이 책의 1장에서 3장까지 주커먼은 급격한 비종교 혹은 무종교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무종교화를 불러온 요인들을 크게 보아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우선 그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우파 편에 섬으로써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인들을 소외시킨 데에서 그 첫 번째 원인을 찾았다.(3장) 기독교와 보수적인 정권과의 “노골적 합작”(124쪽)이 기독교 인구의 상당수를 실망하게 만들고 종교에 대하여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 째 무종교화의 원인은 종교인의 도덕적 실패다. 특히 주커먼은 성직자의 성적 범죄의 만연함과 그것의 은폐 문화를 지적했다. 감추어졌던 성직자의 성적 일탈과 범죄적 행각이 드러나면서 종교의 도덕적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동부에서 광범위한 가톨릭 성직자들의 소아 성애적 범죄가 드러나면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교구의 1/4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로 제시되었다. 주커먼은 무종교화의 세 번 째 요인을 여성의 사회화로 들었는데 이는 주된 종교 활동 참여자인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종교적 관심과 헌신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주커먼은 사람들을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두 가지 문화적 요인을 더 들었다. 그것은 종교인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비난 그리고 인터넷 영향력의 확산이다. 서구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비판이 한동안 확산되다가 그 강도가 많이 누그러진 데에는 많은 이들이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하여 악착같이 비방하는 이들은 그들의 전투적 거부의 이유를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서 얻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수적 기독교인은 종교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방하고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는 문화를 생산한다면 그러한 종교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127쪽 이하)
이에 더하여 인터넷은 무수한 종교인들에게 자기 종교 전통에 대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터넷은 종교의 편협성을 드러내고 맹목적 신앙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개인이 종교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게 하여 개인의 종교적 회의나 의심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돕고 그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줌으로써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은 현대인에게 다양한 관심을 촉발시켜 특정한 종교에 관심을 온통 뺏기도록 놓아두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종교인들에게 종교에 대한 확신보다 불신이나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이런 무종교적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는 셈이다.
종교 없는 생활
이 책 4장부터는 7장까지 저자는 종교를 가진 이들의 세계에서 종교 없이 사는 삶에 대하여 다양한 자녀교육 문제, 공동체적 관계, 삶의 위기극복과제, 그리고 죽음을 직면하는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여 종교를 가진 이들의 삶에 비하여 종교가 없는 이의 삶이 보다 정직하며, 초월적 개입을 기다리지 않는 인간적인 삶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위안과 사랑의 샘과 같은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종교를 가진 이들의 삶에 흔히 담겨있는 허구적 기대와 삶에 대한 미신적 해석의 부작용이 무종교인에게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무종교인은 종교에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삶을 선호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종교를 가진 이의 입장에서 보면 무종교적 삶은 인간의 유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초월적 구원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이들은 죽음 너머를 주제넘게 엿보려 하지 않고 인간의 유한성을 수납하며 자연주의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애적인 불가지론자인 셈이다.
주커만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종교인들이 종교를 통해 신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경외를 느끼듯이 무종교적인 사람들은 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삶에 대하여 경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연유에서 그는 진지한 무종교적인 사람을 경외주의자(Aweist)라고 부른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해서 이 세상이 덜 경이롭고 덜 싱그럽고 덜 신비롭고 덜 놀랍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무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학적인 영감과 신비함을 향한 경이, 줄어들지 않는 감사의 마음, 실존적인 기쁨, 타인과 자연 및 불가사의한 것과의 깊은 유대감 없이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302쪽)라고 평가하고 “이런 종교 없는 사람들은 신앙보다는 이성을, 기도보다는 행동을, 납득할 수 없는 확신보다는 실존의 모호성을,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는 생각의 자유를, 초자연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을, 신보다는 인류에 대한 희망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380쪽)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이 사실상 종교를 가진 이들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오는 말
탈종교적이라는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세속화”(secularization)라는 주제는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öffer)의 옥중서간에 나타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라는 ‘삶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되었고, 하비 콕스(Harvey Cox)의 『세속도시, The Secular City, 1965』는초월성 없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었다. 그 후 50년 만에 주커먼의 『종교 없는 삶』에서 ‘믿을 수 없는 종교’에서 벗어난 무종교적인 세속적 삶에 대한 이론으로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주커만이 본 무종교화된 현대 세계는 사람들이 종교 없이 삶을 살고 종교 없이 죽음을 맞는 사회를 향하여 가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 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세계는 종교적인 삶과는 상당부분 다르다. 예컨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도 매우 다르다. 미국에서 의사조력 자살을 최초로 허용한 주는 오리건 주인데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가장 무종교적인 성향이 깊은 지역이다. 오리건 주를 따라 캘리포니아 주, 하와이 주, 워싱톤 주, 버몬트 주, 워싱톤 디시에서도 말기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권을 결정했다. 종교 없이 죽는 이들이 점증하는 이런 현상은 가장 기독교적이라고 여기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 배후에는 무종교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324쪽 이하) 반면 다분히 종교적인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남부에서는 이런 경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도 종교적인 이유에서이다.
죽음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유럽에서는 약 50%를 상회한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종교가 주장한 내용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무종교적 성향이 증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종교의 윤리적 가르침과 초월적 유산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종교가 지닌 전체주의적 속성, 획일성 속에 내재된 폭력성을 경험하면서 많은 이들이 종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 주커먼은 이렇게 무종교화된 이들은 대부분 종교적 폭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편에 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들은 그런 혜택을 거부하지만 종교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인간의 유한성이 불러오는 불안을 해소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맹목적인 종교인,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깊이 내장하고 있다.
이 책이 가진 독특한 성격은 기독교 세계 속에서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서 장점과 한계를 뚜렷이 가지고 있다. 서구의 무종교화 현상을 깊이 조명해 주는 장점이 있지만, 아시아 다종교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과연 종교적 초월성을 거부하고 이성적으로 납득가능한 삶에 제약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이 책에 담겨있는 종교 비판적 시각들은 한국 종교, 특히 한국 기독교의 감추어진 실상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종교가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더욱 건강해 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신앙인이나 비신앙인 누구든지 진지하게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