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4, 2008

[박홍규칼럼]촛불을 끄려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어두워진 세상을 밝힌 촛불에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국민과 대화하겠다던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대신 촛불을 불법이라 몰아붙이며 당장 끄라고 신경질적으로 위협하면서 원천봉쇄와 강경진압만을 일삼는 언관정상배(言官政商輩)들만이 설치고 있는가?

광우병의 위험을 그리도 강조하던 어용 언론이나 관료나 정치인이 한 치의 양심도 없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표변해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어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켜든 비폭력의 촛불을 그들은 불법으로 몰며 폭력으로만 대응하고 있다. 그 표변의 변명으로 걸핏하면 쇠고기 안전의 국제기준을 들먹인 그들은, 유엔(UN)이나 국제노동기구(ILO)의 집회시위나 파업의 국제기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거나 철저히 무시한다. 실질적으로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라는 이상한 기술부서가 제멋대로 만든 국제안전기준이란 국제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

반면 유엔과 ILO가 보장하는 사전 허가 없는 시위와 파업의 자유는 세계적인 보편성과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데도 현 정권은 이를 완전하게 침해하고 있다.

국민과 대화 약속후 폭력진압

국제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헌법은 이를 보장하며 또한 국민주권이라는 원리하에 국민건강권을 검역주권과 함께 완전하게 보장하고 있는데도 현 정권은 위헌적인 법률, 심지어 법률보다 훨씬 하위인 장관 고시라는 것으로 그것을 완전하게 침해하고 있다. 이런 정권이 어찌 국민의 정권, 그것도 소위 선진화 원년 정권인가. 국제법과 헌법을 무시하는 반국제, 반헌정의 야만미개 독재정권이 아닌가.

아니 국제법이나 헌법의 엄중한 약속을 들먹일 것도 없이 작금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광우병 쇠고기를 먹고 그걸 수입해 우리 국민에게 먹이겠다고 경박하게 약속한 탓에 야기됐고, 이는 대통령 스스로도 이미 인정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약속 자체가 국제법과 헌법의 위배였을 뿐 아니라 그 뒤로도 대통령은 오로지 지극히 경솔하게 한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제법과 헌법이라는 더욱 중차대한 약속을 어기며 국민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 촛불 저항이 극에 달하자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어기고 언관정상배가 통발에 사로잡힌 피라미 떼처럼 정신없이 설쳐 나라를 온통 폭력의 아수라장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그 특기인 장사꾼 밀실꼼수를 아무리 부려 봐도 촛불은 꺼지지 않자 과거 독재정권에서 배운 유일한 해결책인 강경대응 공안정국을 언관정상배가 주도하고 있지만, 삼척동자도 그것이 대통령이 시킨 짓인 줄을 잘 안다. 대통령과 언관정상배는 오로지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 달을 허송세월로 보내 경제가 엉망이 되고 장마와 방학이 오기만을 노려 마지막 공안 카드를 꺼낼 때를 기다렸으리라.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설령 공안정국이 잠시 먹힌다고 해도 그 앞날은 더욱 더 어두울 뿐이고 촛불은 다시 끝없이 켜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촛불은 이명박 정권의 숙명이 됐기 때문이다.

진솔한 소통 이뤄지면 꺼질것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어둠이 가기 전에는 그 어떤 초강경 대책으로도 끌 수 없다. 총리나 장관을 모두 바꾸어도 촛불은 어둠이 계속되는 한 꺼질 수 없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국제법과 헌법의 명명백백한 원칙을 지키고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국민과의 대화로 풀지 않는 한 촛불은 영원히 꺼질 수 없다. 대통령에게 유일한 희망은 지금이라도 국민과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뿐이다.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사과하고 국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은밀하게 숨어 속삭이는 언관정상배들을 물리치고 TV로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민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길뿐이다. 그러면 국민에게 독이 아닌 득이 되는 모범을 보여줄 뿐 아니라 TV시청률 100%와 함께 같은 지지율도 기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스스로 국민과의 대화를 약속한 바도 있으니 최소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저 촛불을 켠 어린 학생들에게라도 최소한의 어른대접,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대통령을 뽑아준 다수 국민들의 망가진 자존심이 회복되어 새로운 아침을 환희로 맞아 새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홍규|영남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