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도 "매력남"일 수 있다
만감: 일기장 2008/03/26 02:48
/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중국 정부가 영화 <색, 계>의 주연 여우이었던 탕웨이 (湯唯)에게 "영화에서 애국자들을 모독하고 친일파들을 찬양했다"는 죄목 (?)으로 차후 영화 출연을 금지시키는 강제로 영화계에서 퇴출시키고 말았다고 합니다 (http://www.cbc.ca/arts/film/story/2008/03/08/lustcaution-ban-tangwei.html?ref=rss). 글쎄, 티베트 독립 시위를 유혈 진압한 일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중국의 실체를 참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극단적 자본주의로 대다수 민중에게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중국의 공식 이데올로기 역시 극단적 민족주의입니다. <색, 계>의 죄악 (?)이란 바로 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작지만 큰 도전장을 던졌다는 것이지요. 이 영화에서는 주역이란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지요. 한 명의 남자인 친일파 리 (易默成)가 또 한 명의 남자인 애국 학생 쾅유민 (鄺裕民)에게 "조국 배신자"로 지목돼 제거의 대상에 오르지만, 결국 그 반대로 친일파 리가 애국자 쾅을 잡아 죽이고 맙니다. 애국자 쾅이 배신자 리를 제거시키기 위해 여학생 원 쟈지 (王佳芝 , 탕웨이 배역)에 접근하여 그녀를 애국적 수사로 자극시켜 "미인계"의 주인공으로 만들려 하지만, 원 쟈지와의 섹스에 탐닉하게 된 반민족 분자 리가 결국 선물 공세 등의 방법으로 원 쟈지로부터 자백을 끌어내 원 쟈지를 포함한 일체 그룹을 다 총살케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며는, "친일"과 "애국"의 차이야 있지만 원 쟈지를 "미끼"로 사용하려 하는 쾅도 그녀와의 섹스를 십분 즐긴 뒤에 그녀의 자백을 이용해 애국자들을 일망탕진한 리도 다 한 명의 여성을 이용한 남성들뿐입니다. 두 남성의 이데올로기야 서로 상반되지만 "배신자 제거를 위해서" 내지 "섹스와 지하 운동 관련 수사를 위해서" 여성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은 친일파와 민족주의자에게는 똑같습니다. 원 쟈지가 리에게 자백을 한 이유 중의 하나가 뭔가요? 그의 선물 공세에 넘어간 측면도 있지만, 남성 "애국자"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는 "인간 미끼", "인간 병기"로서의 자신의 신세가 가련하기도 했던 것이지요. 결국, 민족과 반민족을 넘어서 이 영화의 남성 주인공들은 일단 근본적으로 여성을 함부러 이용하는 마초들입니다. 민족주의라고 해서 여성을 꼭 자율화시키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이 영화에서처럼 "민족적 대의명분"의 도구로 잘 이용하는 것은 더 전형적입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남성우월주의적 본색을 고발하는데, 중국 정권으로서는 이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정권인지는 알 만한 일이지요.
중국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반민족 분자 리가 탕웨이와 "맛이있는 섹스"를 누리는 것은 아주 비위에 거스르는 일입니다. 친일 반민족 분자라면 마땅히 극악무도한 고문 기술자로만 묘사돼야 하는데, 탕웨이와 아주 환상적인 체위를 두루 다 실험해보고 선물을 마구 갖다주는 리는 차라리 "매력남"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원 쟈지의 자백이 나오자마자 당장 탄압자로 돌변하지만 말씀입니다. 어쨌든 친일파와의 섹스가 너무 좋아 즐거운 비명이 나오는 장면이란 중국 정권의 입장에서 "불순한" 것입니다. 원 쟈지를 "인간 미끼"로 만들려는 애국자 쾅의 공명심, 야망이 보이는 부분도 그렇고요. 그런데 조금 넓게 보면 "진보"는 꼭 인간적으로까지 완벽해야 하고 "반동"은 꼭 인간적으로까지 패악하기만 한, 거기에다 여성에게 즐거움을 줄 줄 모르는 무능력한 인물이어야 합니까? 글쎄, 그러한 등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란 역사 발전의 논리를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파악하여 이 논리대로 운동하는 걸 의미하고, 반동은 이 논리를 거역하는 걸 의미하는데, 역사의 논리도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이를 따르는 이들도 꼭 선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시대 치고는 김옥균과 서재필, 그리고 그들의 행동대이었던 이규완은 "진보"이었지만 갑신정변 때에 그들이 궁궐에서 보수파 대신들을 도륙했던 장면은 잔인하기만 했지요. 인간적으로 봐도 김옥균이나 서재필은 "자비심"보다 공명심과 성취욕, 야심 등은 훨씬 많았습니다. 반대로 보수파 최익현은 훨씬 더 충직하고 충실한 인물로 보입니다. 레닌은 인간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사람이었나요? 천만의 말씀, 똑똑하고 민주적 성품이었지만 권력욕과 야심도 아주 컸습니다. 이완용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만인의 증오 대상이지만, 이재명 의거 때에 자신을 몸으로 막아 결국 이재명의 칼에 죽은 인력거꾼 박모의 가족에게 아주 후한 보상을 주는 등 "의리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역사적 행위를 변명하려는 건 절대 아닌데, "역사적 행위"와 그 행위자로서의 "인간"의 관계는 아주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역사의 죄인은 꼭 유교적인 "역신전"에서 보이는 패륜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색, 계>에서는 여성을 "미끼" 내지 "성적 괘감의 도구"로 삼은 남성들도, 그 남성들에게 이용 당했다가 바보스러운 "반란"으로 모든 것을 마감한 여성도 "완전히 긍정적인" 인물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 뒤섞인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회색"을 민족주의자들이 아주 싫어합니다. 민족주의자들에게는 흑과 백 이외의 색깔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CK's comment: 박노자씨의 글 제목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민족주의자나 친일파나 한결같이 마쵸적 본성에 물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비인간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여성의 몸을 쾌락과 정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남성문화의 단면을 잘 드러냄으로써 친일파가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와 민족적 이해관계를 두고 피나게 싸우는 마쵸들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요. 박노자씨의 글 제목은 결국 남성 마쵸들의 세계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글 제목을 통하여 관능과 쾌락을 따라 사는 동양 여성의 가벼움과 어리석음을 비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유가 아닐런지....
Wednesday, March 26, 2008
Park No Ja's view of "색과 계"
Posted by
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at
9:52 AM
0
comments
Subscribe to:
Commen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