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없이, “하느님 나라”없이 메시아 앞에
전에 올렸던 글입니다만, 다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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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없이, “하느님 나라”없이 메시아 앞에
김강기명
1.
이 글은 논찬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의 발제문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 없이 급하게 써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슨 “논찬”을 할 만큼 벤야민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토론이 재미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하자면 “흥행”을 위하여, 우리 - “진보개혁”과 “좌파”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모두 - 의 현재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에 빚지고 있는 것들을 몇 가지 덧붙이는 보조 발제를 해 볼까 합니다. 벤야민에 대해 “썰을 풀만큼” 이론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그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가 제게 준 감동에 대하여서만큼은, 너무나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적들이 역사적 규범으로서의 진보의 이름으로 그 파시즘에 대처하기 때문이다.”(8테제)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냐구요?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진보’라는 허황된 역사철학에 기대어 메시아(들)의 도래에 눈을 감고 있다는 것입니다. 벤야민은 이 글에서 당시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노조 지도부가 갖고 있었던 진보 이념이 파시즘에게 승리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비판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글은 하나의 ‘유서’가 되고 맙니다. 이 글을 쓴 그 해에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고독하게 죽어야 했고, 파시즘은 수천만을 희생시킨 전쟁을 치르고서야 끝나게 됩니다. 제게는 오늘날,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소위 “진보 개혁”이라는 사람들, 또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성서한국”이니 “통일시대”니 하는 복음주의 운동의 모습이 벤야민이 비판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오늘날 이명박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적들이 역사적 규범으로서의 진보의 이름으로 이명박에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저는 이렇게 바꿔 쓰는 데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앞서의 목록을 “진보주의자”라고 잠정적으로 이름 붙여 봅시다. “진보주의자”들은 지난 50여년, 짧게는 지난 20여년의 역사를 이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민주화”라고.(기독교인들은 여기에 “하느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표현을 덧붙입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발전의 과정”, 즉 “진보”였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진보”이념이 적들의 “진보”이념, 즉 “선진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진보했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하던 시절을 지나 국민소득 2만 불을 훌쩍 넘어갔고, 독재는 ‘민주화’ 되었으며, 최근 삐끗하고 있긴 하지만 남북화해가 가까워지고 있으며, 교회의 ‘하느님 나라’운동은 더욱 활발해져 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는 ‘김연아’를 갖게 되었습니다.2) 그러나 정말 우리는 “진보”했을까요? 혹은 “누가” 진보했을까요?
Nein! 벤야민은 말합니다. “억눌린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Ausnahmezustand, 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상사태가 아주 가시적으로 드러난 모습을 ‘용산참사’를 통해 극명하게 보아야 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아직도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때문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만 민중대회”를 하자고, “지방선거에서 심판하자”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이명박 때문 아닙니다. 너희들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이 “억눌린 자”들에게 어땠는지 너희들은 좀 곱씹어 봐야 합니다. 대우자동자 공장 앞에서, 부안에서, 여의도에서, 울산에서, 차디찬 아스팔트와 한겨울의 굴뚝 위에서, 황새울 들판 위에서, 그리고 각종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지난 10년 동안 억눌린 자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말입니다. 그들에겐 지난 10년도 지금과 같은 “예외상태”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떠들 때 지난 10년의 “진보주의자”들은 “이거 촌스럽게 왜 이래? 여기 ‘대한민국’이야. 민주사회라고.”라고 넘겨버렸을 뿐이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 ‘민주화’도 촌스럽게 생각한 대중은 “선진화”를 꿈꾸며 이명박에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 그래요. 저도 ‘너희들’에 들어갑니다. - 지난 10년간 너무도 큰 착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 여전히 권력이 지랄 맞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고 있잖아? 지난날을 생각해 봐.”라고 말이죠. 그러나 우리의 진보란 결국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가 경악하며 목도하고 있는, 하늘로 치솟는 ‘잔해 더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9테제)
3.
“우리는 이(상례화된 예외상태)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8테제, 강조는 필자)
벤야민에게 역사는, 또 과거는 “구성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tzeit)으로 충만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과거를 읽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과거를 하나의 “희미한 메시아의 시간”(2테제)으로 읽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역사는 “진보해 온” 시간이 아닙니다. 그에게 역사는 무수한 구원의 “사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선적으로 진보해 온 과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섬광처럼 지나간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를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가 “원래 어떠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 아니라 이루어졌던 충만한 구원의 시간, “지금시간”을 붙잡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적들은 이 시간을 “진보의 시간”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광주에서 섬광처럼 지나간 메시아의 도래를 붙잡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민주화”라는 도정 속에 기입했습니다. 커다란 기념탑을 세우고, 매년 국가 기념행사를 열고, ‘유공자’들에게 보상을 해줌으로써만 말입니다. “노동운동”은 “전태일”이라는 “희미한 메시아”를 애도함으로써 그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속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메시아’는 간 데 없고, ‘조직’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를 기념하는 그 국가는 여전히 민중을 압살하고, 전태일을 기념하는 그 조직은 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폭력을 은폐하며 “진보”와 “민중”을 이야기합니다.
“성서한국”이니, “통일한국”이니 하는 복음주의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애초에 이러한 “희미한 메시아”에 대한 기억조차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주권자, 혹은 “꼰대 하느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네들이 그토록 상례화된 예외상태를 겪고 있는 민중들과 직접 마주하기보다, ‘통일운동’이나 ‘공명선거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 운동형식도 “위에서 아래로”의 운동인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오직 “꼰대 하느님”의 명령/약속으로서의 “하느님 나라 확장”이라는 진보이념일 뿐입니다.
때문에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지 않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 옵니다.(6테제) 메시아는 자신들이 메시아인 채 하는 “진보주의자”의 시간을 중단시키며 도래합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1970년의 전태일과 70년(마가복음의 집필시기)의 오클로스들에게서 본 것은 바로 그런 메시아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민중론’이나 8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이 민중을 어떻게든 정의하고 개념화하려는 것에 대해 끝까지 반대했습니다.3) 그가 말하는 “살아 있는 실체”로서의 메시아-민중은 사건과 분리될 수 없는, 사건적 존재였습니다. 역사는 ‘진보’해 온 것이 아니라, 작은 문을 뚫고 들어온 메시아에 의해 ‘구원받아’온 것입니다. 과거를 이렇게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 미래의 매초 매초는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부기 2)이 아니라 언제나 닫혀진 문, 그리하여 벗어날 수 없는 강제수용소(지르오지오 아감벤)의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4.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 속에는 이제는 침묵해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와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고, 과거는 이 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2테제)
가장 가까운 과거의 순간을 하나 짚고, 이 ‘보조 발제’를 마칠까 합니다. 5월 2일, 그리고 6월 1일의 새벽. 갑자기 거리로 뛰쳐나온 소녀들의 시간을, 물대포를 맞으며 모두가 섞여 있던 그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그 시간은 분명 “촛불집회 기간”이라는 지속의 시간으로 묶어낼 수 없는 사건적 시간이었습니다.
촛불이 터져 나왔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온갖 찬사를 쏟아놓고, 그들을 “민주화”의 새로운 도정에 기입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촛불이 사그라지자 이번엔 온갖 “비판적 평가”를 내 놓으며, 촛불이 중산층 이슈에 갇혔네, “민중”과 연대하지 못했네 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그러한 찬사와 평가 중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경험했던 그 시간이 ‘메시아의 시간’이었음을 기억할 때, 그리고 “진보주의자” 혹은 “지도부”가 그 시간을 닫아놓고 말았음을 기억할 때, 우리의 미래는 다시금 “희미한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열려진 작은 문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야 말로 우리가 지금 벤야민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고, 스파르타쿠스에게, 뮌쩌에게, 상퀼로트들에게, 파리꼬뮨의 전사들에게, 로자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쿠바의 민중들에게, 베트남 전사들에게, 사파티스타에게, 3.1절의 민중들에게, 광주꼬문의 시민군들에게, 전태일에게, 5월 2일의 소녀들에게, 또 이름 없는 수많은 촛불들에게, 그리고 “예수”와 예수의 오클로스들에게, 그 수많은 메시아(들)에게 빚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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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은 “역사철학테제”
3) “서구의 학문은 모든 것을 개념화해서 파악하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민중을 설명하면 개념이 되고, 개념이 일단 성립하면 그 개념은 실체와 유리된 것이 되어버려요. 그 다음에는 살아 있는 실체가 아닌 죽은 개념하고의 싸움만 남거든요. 그래서 나는 끝끝내 민중을 개념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박충구 :: [2009/04/27] 신학대학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강사들을 부르면
그들은 내면적으로 신학생들을 경멸하면서 가르칩니다.
자기들의 가지고 경험했던 의식, 사유, 능력에 비하여
현저히 저질인 학생들을 만날 때 가지는 태도이지요.
학생들은 그런 선생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선생의 제자인 것을 자랑하고, 또 그 선생의 이론을
도입합니다. 그리하여 오만할 수 없는 이들이
오만한 자의 논리를 가지고 자기를 경멸하기도 하지요.
반신학의 테마에서는 발터 벤자민과 안병무가 만날 수 있겠지만,
벤쟈민이 보는 유태인과 안병무가 보는
민중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이들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나는 벤쟈민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하지만 유태주의 사상의 특징,
그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불신이 인간(민중)에 대한 불신으로,
진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신비주의적인 유물론적 초월성을 기다리게 만들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에른스트 블로흐라고 볼 수 있어요.
나는 그런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태주의가 가진 깊은 배타성에 물든,
배타주의가 덧입혀지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동시에 자기 우월성의 오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헤셀이나, 부버, 그리고 아렌트나 레비나스의
언어를 부검해 보면 그들은 또 하나의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나는 유태인을 의심많은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저들이 하는 멋진 주장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곤 하지요.
나는 김강선생이 벤야민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한국의
현실을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왈터 벤자민이 진보주의자들을 업신여기는
오만과 우월성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은
역사 안에서 국외자로 살아온 이들이 가졌던
냉소주의나 자위적 정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벤자민을 스팔타쿠스에서 쿠바의 민중이나
베트남 전사들, 예수의 오클로스를 비롯한
역사적 저항자들을 감싸는 사상가로 보는 것이
정말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도 많은 유태적 지식인들이 있지만
오늘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아야 할런지....
그들의 사상은 자기 역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정함으로써 자기를 확인할 뿐입니다.
안병무는 민중을 개념화하지 않았다고 했지만,결국
그는 서남동의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민중신학을 자기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이 문제는 후에 오랜 시간 더 논의 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은 내일 강의를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박충구 :: [2009/04/28] 어설프게 강의 준비를 끝내고 돌아 왔습니다.
서구 역사 속에서 그 존재를 거절당해 온 오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유태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문명, 그리고 자신들을 향한 증오를
품고 있는 서구적 진보를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초월적인 하나님,
질문을 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해 신앙을 가지면서 사실은 자신들 존재의
아이러니를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은 타민족의 하나님일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켜온 것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도 경멸의 역사를 불러오고 있지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이들이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에서 유대-기독교 전선을 구축하고
온갖 전쟁과 폭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타자란 오로지
동족의 눈빛 안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팔레스타인이나
아시아 인은 낮선 존재요 교도의 대상이요, 진보이전의 존재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틴 부버도 팔레스타인 점령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진보를 부정한다고 하여 그들이 진보를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진보를 누리면서 진보를 거부하는 이중성, 누리는 것은 그들안에서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는 축복이고, 그렇지 않은 이방인들의 것은
불경건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진보를 부정하고, 민주화를 거부하는 것은 일직선상의 진보사관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들을 억압하는 타자의 진보인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진보를 조롱하고 민주적 합의와 원칙을 무시하는 메시아니즘이란
참으로 허개비같은 허구이지요. 메시아니즘이나 하나님 나라 표상은
유태적 현실부정의 원리로서 혁명적인 위대한 부정의 힘을 가지지만,
그들이 가지고 힘을 얻었을 때에는 억압의 원리로 둔갑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희년법을 만들어 기존 권력을 그렇게 조롱하더니, 자신들도
한번 지키지 않았지요.
나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니즘을 현실적 구원으로 이해하는 뮨처의 실패,
다양한 역사적 실험들이 실패한 이유는 다름아닌 역사적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추모할 수는 있어도 예찬할 수는
없습니다. 유태인들은 다른 종족을 믿지 못하도록 교육받았고, 선민이라는
믿음 때문에, 스스로 달라야 했고 그래서 다른 종족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고
간혹 다른 종족들을 업신여겼지요.
그런 강한 종교적 자기 정체성에서 비롯된 종교적 비약, 그리고 민족적 배타성이
어쩌면 홀로코스트의 깊은 원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릴 뿐 메시아의 도래는 믿지 못하거든요. 이런 점에서 하나님 신앙을 가지지 않었던
세속 유대인, 한나 아렌트가 훨씬 더 정당합니다. 유태인이나 독일인이나 막론하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함정인 악은 '비판적 의식"의 결여에서 생성된다는 보편적
선언은 사실 독일인만이 아니라 유태인들이나 민중을 향한 비판이었지요.
한국 사회와 같이 왜곡된 권력이해에 찌든 이들에 의하여 민주적 권리가 짓밟히는
세상에서 진보를 믿지 않거나, 민주화를 추상적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진보나 민주화의 불철저성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나 민주화 일반을 매도하는 비판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Tuesday, April 28, 2009
왈터 벤자민의 급진성에 대하여
Posted by
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at
9: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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