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제자회 샤론 와킨스 총회장 지목
2009년 01월 1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식 다음날 열리는 국가기도회(The national prayer service) 설교자로 샤론 와킨스(Sharon Watkins) 목사(Disciples of Christ 총회장, 이하 제자회)를 지목했다. 여성으론 미국 주류 개신교계에서 처음으로 교단 총회장이 된 샤론 와킨스 목사는 국가기도회에서 설교하는 첫 번째 여성 목사이기도 하다. 기도회는 1월 21일 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에서 열리며,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열리는 국가기도회에서 설교를 맡은 제자회 총회장인 샤론 와킨스 목사. (출처 : 제자회 홈페이지)
와킨스 목사는 미국 교계와 사회에 그다지 지명도가 높은 인물은 아니다. 그가 총회장으로 있는 제자회는 화해와 연합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성향의 개신교 교단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3,800여 개의 교회가 이 교단에 소속되어 있고, 69만 명의 교인이 등록되어 있다. 타 주류 교단에 비해 교세가 작은 편이다.
와킨스 목사는 총회장이 된 이후 이라크전쟁과 고문에 반대하는 발언을 해왔고, 재작년 10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어린이 헬스 케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이를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다.
기도회 설교자로 오바마가 와킨스 목사를 선택한 것은 통합과 화합을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 축복 기도를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에게 맡기면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미국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 취임식 종교 분야 담당 디렉터인 조슈아 더비오스 목사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샤론은 모두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동성 결혼을 반대했던 릭 워렌 목사를 취임식 축복 기도자로 선택한 것에 대해 발끈했던 지지자들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처방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의식한 듯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회 수석 대변인인 린다 더글라스는 "와킨스 목사를 설교자로 결정한 것은 취임식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전이다. 그녀가 외쳤던 통합과 관용과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고 밝혔다.
오바마 당선인과 와킨스 목사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다. 다만 와킨스 목사는 짐 월리스 목사가 편집장으로 있는 <소저너스>의 이사회 회원이고, <소저너스>가 주최하는 'Pentecost 2006'에서 오바마 당선인과 함께 주강사로 참석한 바 있다. 작년 여름에 오바마 당선인과 교계 지도자들과 비공개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오바마를 매우 거칠게 몰아붙인 반면, 와킨스 목사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고, 신학적인 차이를 넘어서 공통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을 갖게 할 정도로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와킨스 목사는 교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견해와 무관하게 모든 미국인이 경축해야 할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분열된 세상에서 온전한 일치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치유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온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Monday, January 19, 2009
미국 국가기도회에서 여성 목사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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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16, 2009
미네르바를 구속한 이명박 정부는 너무 가볍다
그 이유를 김태동 교수가 아고라에 썼다. 조금 길고 지루해도 읽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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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2008 가장 뛰어난 경제스승인 다섯 가지 이유[김태동]
미네르바라고 검찰이 주장하는 박모씨가 체포된지 1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구속적부심이 있는 날이다. 지난 5일간 예정되었던 여행을 하고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많은 글이 언론을 통해 나와 있었다.
토요일에 여행을 떠났으니까 지난 주 목요일, 금요일에는 인터뷰에 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중동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면 결과가 더 안 좋고, 따라서 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가 짧은 공직생활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다. 휴대폰으로 어느 신문사에서 온 전화인지는 사전식별이 안되기에 여행전에도 휴대전화를 꺼놨었다.
미네르바 체포소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YTN을 통해서도, 인터넷을 통해서도 아니었다. 11월 어느날 인터뷰를 한 KBS 젊은 PD를 통해서였다. 검찰은 나이 31, 전문대 출신 백수를 미네르바라고 잡았다고 하는데 코멘트 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코멘트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사양하였다. 이어서 급히 미네르바의 글 일부를 다시 읽었다. 한 시간쯤 읽어가면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30의 전문대 출신 경제학 비전공자가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금융기업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이 쓸 수는 없다.
무역업체의 리딩, 리깅은 국제금융론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로 냈던 것인데, 맞추지 못한 학생이 많다. 투신의 다이나믹 헤징이나, 엔캐리 크로스 거래는 국제금융론이나 화폐금융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금융시장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전문용어이다. 물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런 용어를 뜻도 모르면서 인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글은 대부분 전문용어를 정확히 인용하고 있다.
나의 판단에 자신했을 때 머니 투데이에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글은 금융시장종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쓰기는 대단히 어려운 글’이며 따라서 ‘글을 통해서 느껴지는 미네르바와 검찰이 잡은 미네르바는 매치가 잘 안된다’는 요지로 인터뷰한 것이다.
미네르바 체포 뒤, 나의 첫 번째 아고라 글(11월 18일)이 계속 왈가왈부되고 있다.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해서 미네르바거품에 놀아난 조연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조중동이 기사로, 사설로 비난하고 있다. 다른 건전언론에서는 ‘미네르바 인기는 촛불시위처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를 이야기한 것도 환기시키고 있다.
11월 18일 ‘미네르바는 현재 가장 뛰어난 우리의 경제스승’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KBS TV가 나의 인터뷰 내용을 앞뒤를 자르고 찬반이이 불분명하게 해서 방송하였기 때문이다.
진짜 미네르바를 위하여, 그리고 미네르바가 누구로 밝혀지든 미네르바의 글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미네르바가 경제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자세히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검찰을 믿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구속된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라는 확신은 없다. 12월 29일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20억불의 손해가 났다는 검찰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검찰이 잡아 놓은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외환시장과 경제를 그토록 모르는 검찰이 미네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더욱 힘든 일이고, 그렇게 무리한 수를 쓰는 검찰이라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PD수첩 수사를 맡았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사표를 낸 일도 있지 않은가?
이 글에서는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든 가짜 미네르바든 상관없이 성립되는 이유를 주로 쓰겠다. 그러나 잡힌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라는 전제에서 쓰는 부분도 상당부분 있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런 점에 대하여 아고라인의양해를 구한다.
첫째, 미네르바는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옳은 글을 2008년에 누구보다도 많이 썼다.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경제관련 글을 쓴 사람으로는 으뜸이라는 것이 나의 평가이다. 이게 나만의 주관적인 평가인가?
스승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대학교수나 초중등 교사만 스승이 아니고 누구든 말이나 글로, 더 좋게는 행동과 실천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스승이다.
미네르바의 글은 아고라에서 단연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고, 최다 찬성수를 기록하였다. 나는 아고라에 초짜라서 확신은 없다. 누구 딴 사람이 있다면 제발 알려주시라.
아고라는 정보소통의 장이자, 교육의 장이다. 등록금도 없고 입학식, 졸업식도 없지만 어느 언론이든 교육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 교육의 장에서
미네르바는 본인이 스승이 될 의도도 없었을 텐데 학생수가 가장 많은 스승이 된 것이다.
하버드대등 미국의 일류대학들도 학생들이 학점 잘 주는 교수의 과목만 골라서 지금까지도 개선책을 찾지 못해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는 그런 문제도 없다. 자유의사에 의해 자기가 읽을 글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성적증명서나 학생수 많은 교수 순서보다 아고라 조회수, 찬성수가 ‘훌륭한 스승’의 잣대로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조회수나 찬성수는 공짜로 얻는게 아니다. 나는 이것을 미네르바 덕분에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이다. 나도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조회수가 많아져야 아고라에 글 쓴 보람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한다. 하나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네르바는 거의 매일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일정한 시점이 지나서는 많은이가 의례 읽어야 할 정도의 높은 믿음을 얻게 되었다. 많은 이의 공감을 얻느냐 못얻느냐가 관건이다. 미네르바의 인기도 남모르는 노력과 창의의 산물이라 짐작된다. 그에는 못미치지만 짱님이 제시한 1백인 경방의 고수들이 있다. 다른 네티즌은 다른 순위를 제시할 것이다. 그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조회 1위가 탄생하는 것이다.
미네르바 글이 다 삭제되어 지금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의 글이 첫날부터 많은 이의 사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 하나하나에 대한 조회수 추이를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댓글에 남겨 가르쳐주십시오) 인터넷 스승은 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독자의 격려 댓글은 그에게 힘을 주었을 것이고, 또 어떤 댓글은 미네르바에게 무엇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학구열을 주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훌륭한 스승이 인터넷에 등장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11월 18일 글에서 “현재 가장 뛰어난 경제스승”이라고 ‘현재’라는 말을 붙였던 것이다.
조중동은 내 개인이 경제스승으로 모신 사람이 나이 30, 무직, 비전공자라는 식으로 왜곡한다. 과연 왜곡의 달인들이다. 나는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평가했지 나의 경제스승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많은 경제학 지식과 경제철학을 가르쳐 주신 변형윤, 이현재, 조순 선생님 (가나다순)을 나는 모두 존경한다. 또 Yale대의 고 Tobin 교수, 거품붕괴를 예견한 Shiller 교수 등도 존경하는 스승이다. 나의 스승은 이런 분이고, 존경하는 스승이 많다는 것은 너무 복된 일이다. 내가 제자들에게 부족한 교수이어서 그것만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한 이후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네르바를 처음 알게된 사람이다. 신문기사에 미네르바 절필선언이 나오기 전에는 그런 사이버 논객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 아우가 아고라의 중요성을 피력할 때도 마이동풍이었던 사람이다. KBS 왜곡보도가 없었다면, 그리고 KBS의 왜곡보도에 네티즌 항의가 그렇게 거세지 않았다면, 지난주 체포전까지 나는 미네르바가 누군지 몰랐을 것이다. 내가 미네르바를 알게 해준 KBS와 아고라인들에게 감사한다.
절필선언 이전에 이미 미네르바는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수많은 글을 통하여 아고라인에게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나의 11월 18일 글은 이런 미네르바 인기를 대통령이란 쉬운 말 대신 경제스승이란 어려운 말로 표현 한 것뿐이다. 따라서 내 글 때문에 미네르바 거품이 커졌다는 조중동 어딘가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이건 아고라인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다. 인과관계를 뒤바꿔버리면 곤란하다. 나 때문에 미네르바가 유명해진게 아니라, 미네르바 때문에 내가 더 알려진 것이다. 왜곡보도로 진짜 미네르바에게 또한번 미안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2008년 경제스승은 아고라에만 해도 여러분 있는데, 미네르바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모두 망라해서 적어도 2008년에는 가장 사회적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라는 점을 ‘현재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온라인세계에서 개인으로서는 가장 영향력이 컸다는 점에 별 이견은 없을 것이다. 오프라인을 포함해서도 영향력 큰 개인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사람이 2008년에 더 큰 좋은 영향을 경제에 주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디 그 사람 이름을 댓글에 남기시라.
나는 미네르바 체포 하루전 일본 TBS와 한시간 넘게 인터뷰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네르바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중 하나가 “미네르바만큼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말씀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신중하게 대답하였다. “솔직히 미네르바의 절반만큼이라도 경제에 기여한 개인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는 참여연대나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를 생각하였다. 그들이 단체 전체로는 아마 미네르바보다 더 큰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개인으로는 어떨지 나는 모른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교수, 참여연대를 통해 재벌문제 개선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김진방교수 이런 분은 나에게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나의 스승이다. 그러나 미네르바만큼 2008년에경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박원순 변호사도 법률가지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이다. 장하준교수도 있다. 이런 훌륭한 분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내가 천학비재한 탓인지 지난 일주일 아무리 더 생각해도 1월 8일 TBS와의 인터뷰에 대한 대답을 바꿀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2007년 문국현씨의 영향이 컸다면 2008년은 미네르바의 영향이 컸다.
子曰,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자왈, 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원래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미네르바는 인본주의에 기반하여 글을 썼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악한자도 스승이 될 수 있다고 공자는 말씀하셨는데, 미네르바는 선한 자로서 영향을 준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면 선한 자일 가능성이 높다. 미네르바의 글에는 보통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잡히고나서 강압하에 쓴 글에서도 자영업자 걱정을 하는 사람이다.
미국경제학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나도 그런 부족한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다. 사회과학에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이 빠져있다는 것은 큰 결함이다. 분야로 나누어 노동경제학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노동경제학조차 자본의 논리로 본 노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주류경제학의 결함이 한국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경제학자들이 주권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고라에 작년 11월 처음 들어와 보고 놀란 것중 하나가 많은 분들이 자신을 천민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쓰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 짐작은 자신들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점, 그렇다고 뾰족한 희망도 안 보이는 점, 누구하나 위로하는 사람도 찾기 어려운 사회, 이명박 정권의 소수특권층 위주 정책에 대한 반감, 이런 것이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 싶다.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라면 본인의 생활이 팍팍하니까,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이 그만큼 덜 어려웠을 것이다. 검찰이 진짜임을 주장하려면 이런 걸 왜 부각시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구언론 덕택에 박모씨의 이름 석자를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시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박모씨라고 표현함을 양해하시라)
이런 사람들에게 미네르바의 글은 희망을 주었다. 천민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미네르바는 어려운 경제문제를 쉽게 써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도 난해한 시가 있고, 쉬운 시가 있다. 그건 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므로 호오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에 관한 글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게 쉽게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렵다. 지금도 궁리출판사와 책 한권을 준비 중이지만 지지부진하다. 내가 아는 것을 쉽게 표현하는 것이 열쇠인데, 그 작업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천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그들이 쓰는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정부정책의 잘못을 핵심을 잘 짚어 지적한 글을 미네르바는 많이 썼다. 제대로된 정부라면 MBC 신경민 앵커의 말대로 이런 사람의 주장에 경청해야 하는데, 반대로 잡아넣다니.....
2008년의 한국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미네르바는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였다. 이런 사람을 훌륭한 스승이라고 존경해야지, 나이 어린 백수라고 조롱해서 되겠는가?
넷째, 내용이 좋은 글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한 것도 많은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이유인 것으로 판단된다. 글을 읽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확하면서도 신속할 것을 요구한다. 언론사의 보도부문 일하는 사람은 속보성을 생명으로 한다. 신문사의 상임, 비상임 논설위원 중에서도 같은 조건하에서 남보다 빨리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나같은 사람은 이런 점에서 미네르바와 비교될 수가 없다. 너무 느리다. 워드치는 속도도 느리고, 검색하다가 헤매느라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글을 빨리 쓰려면 평소에 해당 이슈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모르면 알아내는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속성과 정확성은 상충관계에 있다.
그런데 미네르바는 신속하면서도 동시에 정확한 내용의 글을 써서 소비자를 크게 만족시킨 것이다. 짧은 기간에 어떻게 그런 자질을 키우게 되었는지 나는 그것을 배우고 싶다! 배운다고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배워야 산다.
박모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체포, 구속되었다. 박찬종 변호사가 지적하였듯이 12월 29일 미네르바가 썼다는 내용은 허위사실이 아니다. 12월 23일 전후로 환율이 하락세를 연말까지 보였는데, 그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 정부가 연말환율을 낮추기 위해 보유외환 매각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은행과 대규모 달러 수요처를 옥죄고 있다는 뉴스를 나도 접하고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미네르바 체포 뒤 한겨레 신문에 보도되었고, 내가 아고라에 1월 8일 올린 글 <한국, 4개월째 외환위기로 고통>에 인용한 이미란 기자의 ‘2008년 12월 30일 서울 환시엔 무슨 일이’라는 글에도 상세히 나와 있다. 여러분도 이미란이란 이름으로 검색해 보시라. 일부를 다시 한 번 인용한다.
- 당국은 개입과 같은 직접적인 방식 외에 은행권과 기업에 구두로 달러 매수 자제 요청을 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각 시중은행 선임딜러들과 모임을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현재욕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임을 강조하고 딜러들에게 결제 수요의 분산처리와 롱플레이 자제를 주문했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오후 늦게 각 은행에 전화를 걸어 불법 환거래 조사에 나설 것이라는 방침을 알렸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달 30일 각 은행에 전화로 수출업체 네고 물량의 규모를 파악하고 이를 신속히 처리할 것을 당부했다.
외환당국과 감독당국의 구두 요청은 시장 참가자들의 롱심리를 크게 약화시키는역할을 했다.
- 지난달 30일 서울환시에서 은행권 참가자들의 롱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일 대규모 결제 수요를 내놓았다가 당국과 언론으로부터 눈총을 받았던 대기업들 역시 달러 매수에 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한 대기업은 전일 달러를 대규모로 사들인 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자 다음날 속죄의 의미로 1억달러 가량을 내다 팔기도 했다.
나는 12월 29일 미네르바의 두시간 생명 글을 읽지 못하였다. 검찰이 문제삼는 구절 앞뒤를 모르는 한계하에 말씀드린다. 기획재정부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전방위 개입을 하던 상황을 이미란 기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뒤늦게 일주일 지나서 기사화하였다. 재벌까지 벌벌 떨게 만든 상황에서, 진짜이든 가짜이든 미네르바가 상황을 90%는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전달한 것이다. ‘달러매수금지 긴급명령’이란 표현은 부정확하였지만 위 이미란 기자의 보도 내용이나 재벌도 벌벌 떤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어딘가 누구에선가 미네르바는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한두다리 건너다 보면 일부 표현은 누락되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되는 게 통례이다. 미네르바가 진짜라면 알고도 의도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1월초 정부의 압력을 느끼고 절필선언을 한 사람이 다시 글을 쓸 때는 나릅대로 더 조심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상 부정확함이 있다면 그 책임은 쉬쉬하면서 몰래 전근대적 야만적인 방법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정부에게도 있다. 제1외환위기때도 나는 이런 야만적인 방법으로 외환수요자에게 개입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정부행태로 미루어 이번 제2외환위기는 12년전 제1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가 보다. 쿠데타가 휴대전화와 인터넷 때문에 불가능해졌다는 말이 있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외환시장개입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에 정보를 차단하고 개입하겠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세상은 앞으로 가는데, 거꾸로만 가려는 정부에 문제가 있고, 그런 시대착오적 행태를 반복하는 정부가 공익을 해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12월 19일 글로 나라가 20억불 손해를 보았다는 재정부와 검찰의 판단은 허위사실임이 분명하다. 이 말을 한 공직자는 미네르바를 나보다 백배는 더 존경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시장의 시자, 외환의 외자도 모르는 무식한 자이거나....
20억불의 근거로는 평소에 비해 높아진 달러 거래량을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 이런 기준설정 자체가 잘못이다. 시장은 연말까지는 정부개입으로 환율이 내려가고 새해가 되면 다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예상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29일, 30일에 달러수요는 증가한다. 따라서 30일 거래량이 폭주한 것은 순전히 정부의 개입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미네르바에게 덤터기 씌우다니!!! 이런 정부의 무지함과 옹졸함은 더 많은 사람을 MB정권으로부터 갈라 놓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누명을 썼으나, 재정부와 검찰이 여당이 아니라 야당을 도와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도 실시간으로 한국을 모니터하고 있다. 그들은 얼토당토 않은 허위사실 유포죄 씌우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국가신용도가 그들 마음속엔 이미 내려가 있을 것이다. 30대초반 백수와 무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한국정부, 이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격(國格)이 떨어진다. 한국이 이토록 후진된 나라인가?
허위이지만 20억불이 미네르바 때문에 추가로 보유외환을 판 것이라고 치자. 그게 왜 다 손해인가? 12월 30일 평균환율은 1,257원 50전이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려면, 재래시장 상인에게라도 물어보시라. Friendly한 재벌총수의 자문이라도 받으시던가. 2,500원에 산 것을 1,250원에 팔면, 절반 손해보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5년만에 이익이 났다는데, 그동안 보유외환의 취득가격이 얼마이길래 20억불 피해론이 나오는가? 한국은행이 분식회계를 했단 말인가?
앞으로의 예상손실이 그렇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환율이 2,500원까지는 올라야 정부 계산이 맞게 된다. 아아, 주가 3천을 예측한 대통령을 공무원들이 이토록 무시하고, 엄청난 환율 예측을 했단 말인가? 이런 공무원이야말로 대통령 욕보이는 괘씸죄로 잡아넣어야 하지 않는가?
(20억불 문제는 지면관계로 이만 줄이고, 필요하면 다음 기회에....)
다섯째, 잡힌 박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라면 이는 더욱 놀라운 일이다. 일류대학을 못나오고 젊은 사람이 그렇게 좋은 글을 썼다면 더 존경해야 할 일이다.
나는 금융경력이 없다는 것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지, 나이와 경제전공 여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나이 30에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 윤동주의 서시는 몇 살 때 쓴 것인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글은 사실 젊을 때 더 쓰기 쉬운 것이다. 이제 며칠 있으면 오바마가 취임식을 갖는다. 오바마의 취임연설을 누가 작성하고 있는지 아는가? 27세 (한국 나이 28세)의 Jon Favreau이다. 그는 5년전 Kelly 민주당 후보를 위해 좋은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뒤 Kelly의 추천을 받아 오바마 캠프에 합류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은 나이순이 아니다. 젊은 사람이 썼다고 무시할 일은 더욱 아니다.
Favreau도 박모씨처럼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유학했던 Yale대에서 멀지 않은 College of the Holy Cross를 나왔는데,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도 나는 그런 학교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University가 아니고 College이다. College 중에서 35위(US 뉴스 & World Report 평가)의 순위를 가진 학교이다. 박모씨 배출한 전문대는 박모씨를 자랑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글을 남긴 사람은 글로 평가하면 된다. 글이 정확했는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는지 그런 걸로 평가하면 된다. Favreau는 그렇게 평가되어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사까지 쓰지만, 우리 미네르바 또는 박모씨는 좋은 대학 못나온 젊은이라는 기준으로 그가 쓴 좋은 글들이 매도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이해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주권자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근대적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치원부터 영어몰입교육하는 것이 선진국되는 길은 아니다. 학력맹신경향, 나이들수록 유능하다는 생각, 이런 걸 버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나는 박모씨가 50대 증권맨 경력이 아니라 진짜 미네르바라면 더 존경할 것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큰 글을 어떻게 벌써 쓸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이라도 석방되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검색어를 입력해야 한다. 검색어를 잘못 선택하여 입력하면 바라는 검색결과를 얻을 수 없다. 어떻게 생소한 경제분야에 대하여 빠르게 검색이 되었는지 그 비결을 묻고 싶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Marshall은 ‘찬 이성, 더운 가슴’을 좋은 경제학도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어디 경제학 뿐이랴. 모든 사회과학, 아니 자연과학까지도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public interest 즉 공익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이들에 의해 발전해오지 않았던가? 짐작컨대 미네르바는 우리나라의 어느 누구보다 경제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걸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passion)이 컸기에 좋은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박모씨의 경우라면 많은 책을 택배로 샀다는데, 그런 열정이 학력과 나이와 비전공의 불리함을 극복하고도 남았으리라.
미네르바가 경제학 비전공자라면 그게 좋은 경제글을 쓸 수 없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머리는 1%, 노력은 99%’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의 학교성적이 우수하지 않았음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에서는 평범하였으나 사회에서 큰 그릇 역할을 한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공부란 숨쉬는 것처럼 죽을 때까지 하여야 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도
一日不讀書 口中生型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이라 말씀하셨다. 백년전에도, 아니 수천년전부터 이 말은 진리이다. 21세기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같은 노인들이 인터넷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지, 자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감추면서 인터넷에서 배우는 사람들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촛불시위와 함께 미네르바인기를 2008년의 가장 밝은 사회 현상으로 평가한다. 하나는 깨어있는 주권자의 행동으로, 하나는 깨어있는 주권자의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이런 수준 높은 주권자가 많아지는 한 한국의 장래는 밝다. 매일 어느 통로를 통해서든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있는 주권자가 많아지면 그런 정보수요, 교육수요를 충당해야할 공급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독재사회는 주권자의 눈과 귀를 막지마는 민주사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쿠데타가 불가능하게 된 것을 수구층도 믿게 된 것처럼, 이번 미네르바 추정인물의 체포구속을 계기로 정보의 차단이 그 어떤 악법으로도 불가능하며, 그걸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정권 인기도 떨어지고, 경제도 엉망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이 또 길어졌다. 14시간이 걸렸다. 준비한 것은 열가지 이유였는데 절반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 자신 힘들고 능력의 부족함을 새삼 느끼지만 공익을 위해 조그만 노력을 계속하겠다. 이 글이 부족하고 핵심을 비껴간 측면이 있을 것이다. 아고라인 여러분은 왜 그토록 미네르바에 열광하시는가? 제가 미처 지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가르침을 주시라.
미네르바의 적부심은 어떻게 되고 있나? 한가닥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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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9, 2009
스타벅스의 두 얼굴
현대 이스라엘은 성서민족인 이스라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로는 이를 구별하여 Israel과 Isralites를 구별하지요.
나치의 희생자가 되었던 유태인들의 고통을 역이용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인간성을 버린 야수같은 이스라엘이
장차 어떻게 존재할런지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서의 말대로 무고한 피를 흘렸으니, 스스로 갚아야 하겠지요.
유대인 어린 아이들의 죽음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저들의 눈물이
이제는 악어의 눈물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에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에 유태인이 참여했고
스타벅스가 노동이나 환경을 착취하지 않은 커피를 구매하여
판다는 점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 세계에 16,000개 정도의 가게를 열고
있어서 미국 경제의 제국성을 대변하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난 사례를 보면 스타벅스는 환경을 생각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이 아니라
현재의 CEO 슐쯔(Howard Shultz)가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를
지원하고,그는 또한 부시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경제 제국성과 군사 제국성이 뒤로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슐쯔는 거기에도
스타벅스 커피점도 열었습니다.
진실하게 환경과 노동문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인권을 옹호하는 평화주의자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스타벅스는 전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종적 배경이 유태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을 작정입니다.
가까운 이웃들과 일단 스타벅스 불매운동이라도 벌릴 작정입니다.
내가 사 마신 돈의 일부가 이스라엘 전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정치가들과 손 잡은 미국 정치가들,
두 그룹 모두 참 못된 놈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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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4, 2009
내가 Barenboim을 좋아 하는 이유

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극이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판단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적이고 진실하며 윤리적인 사유와 판단의 형식들은 현실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들에 의하여 추방된지 오래 되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나는 다소 비판적이며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정치도, 종교도, 심지어 교회의 강단도 목사들의 삶 깊숙히 이런 논리와 판단형식이 지배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도덕적 파산자들을 무수히 목도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은 이들이 가진 규범과 척도에 우리의 도덕성이 너무나 쉽게 오염될 수 있다. 그 증거는 정의와 평화의 부재와 그 현실에 대한 방임으로 드러난다.
한국 교회는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존재이유를 찾아야 하는 데 그런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다보니 개인주의적 영성과 천박한 교회이기주의를 관철시키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인양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의와 평화의 부재를 경험하면서도 긍정적인 사고가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이들은 긍정적인 사고가 불의의 힘을 얼마나 가공한 폭력으로 바꾸는지는 간과하고 있다. 이들의 삶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진리를 향해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반추하게 한다. 정의와 평화가 부재한 자리에서 불의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들을 칭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의 어리석음은 오늘의 종교가 얼마나 천박하고 헤푼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종교인으로서 진실한 의미에서 묵상과 명상, 사유의 깊이를 가진 이들이라면 오늘의 세계가 "성공과 승리"라는 표어를 앞세우면서 얼마나 인간 공동성을 해치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인간성을 파괴해 온 참혹한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향하여 칭찬과 화해와 평화를 노래한다는 것은 정신이 나가 미친 종교인이거나 현실 판단 능력이 없는 백치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이들은 정의와 평화가 부재한 현실에게 종교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바치면서 아부해온 종교의 오래된 습성이 낳은 자식들이다. 천박한 종교는 이렇듯 너무나 쉽게 천박한 자식들을 낳는다.
나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좋아한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그 배후에 서서 이스라엘 지지 성명을 내는 미국 정부 인사들의 부도덕성을 정확히 인식한다. 이들이 상실하고 있는 공동 인간성에 대한 비젼의 상실이 바로 인간성의 말살과 파괴의 힘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바렌보임은 알고 있다. 그는 며칠 전 오스트리아 빈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결집되어 살아가고 있는 가자(Gaza)지역 폭격을 위해 이스라엘 공군이 750회나 출격한 사실을 목도하고서 그들의 군사폭력에 의하여 무엇이 파괴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하는 글을 썼다.종교인들의 천박한 언어들에 비한다면 그의 현실인식과 대안적 사고는 인간됨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 지도자들의 망언에 이어 종교 지도자들의 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종, 정권에 의한 환경파괴, 천단한 실용성을 앞세운 경제논리의 허구성, 그리고 다원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사유의 무능함이 빗어내는 사건들이다. 역사적 경험을 망각한 지식은 천박할 수 밖에 없고, 진실한 현실인식에 근거하지 않은 도덕적 판단은 허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 경험을 반추할 줄 모르고 현실 인식능력이 없는 이들이 완장을 차고 거리를 행보하던 나치의 경험은 1940년대만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에서도 누군가가 겪고 있는 경험이다. 도덕적 판산자들은 악이 공유하고 있는 본질의 동일성을 매우 단순하게 수량적 차이를 들어 부정한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악의 배양과 증식을 돕기도 한다.
아렌트의 말대로 악이란 이렇듯 "비판적 의식의 결여"를 통해 치명적인 독을 품은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무서운 사실은 비판적 의식이 결여된 자들은 자신이 지금 치명적 독과 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국가주의는 나치의 국가주의로부터 배운 잔혹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속에 살아 남으려는 방법은 그들이 가진 서구적 문명의 우월성과 정치 세력이 낳은 오만을 승리주의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끝없는 증오와 분노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입증하려는 이스라엘 강경파들의 전략일 뿐이다. 거기에는 더이상 humanity가 귀한 가치로 자리를 잡을 곳이 없다. 고성능 전투기들을 동원하여 동류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 자들이 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나치처럼 비인간화 시키고 있다. 이와 동일한 본질을 지닌 악을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방임하고 조장한다. 간혹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소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너무나 쉽게 악을 허용함으로써 우리의 인간됨의 가치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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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이 신년을 맞으며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미국 택사스에 살고 있는 엄이재운님의 번역을 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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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a and the New Year”
By Daniel Barenboim
31 December 2008
I have just three wishes for the coming year. The first is for the Israeli government to realize once and for all that the Middle Eastern conflict cannot be solved by military means. The second is for Hamas to realize that its interests are not served by violence, and that Israel is here to stay; and the third is for the world to acknowledge the fact that this conflict is unlike any other in history. It is uniquely intricate and sensitive; it is a human conflict between two peoples who are both deeply convinced of their right to live on the same very small piece of land. This is why neither diplomacy nor military action can resolve this conflict.
저는 다가오는 새해에 단 세가지의 소망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수라엘 정부가 단 한번만이라도 군사적 수단으로 중동의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마스 진영이 그들의 관심사가 폭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이스라엘은 그곳에 존속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세번째는 온세계가 이 갈등은 역사적으로 다른 갈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이 문제는 유례없이 복잡하고 민감합니다. 하나의 아주 작은 땅에 살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깊이 확신하는 두 민족의 인간적 갈등입니다. 그래서 외교적이나 군사적 행위가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The developments of the past few days are extremely worrisome to me for several reasons of both humane and political natures. While it is self-evident that Israel has the right to defend itself, that it cannot and should not tolerate continuing missile attacks on its citizens, the Israeli army’s relentless and brutal bombardment of Gaza has raised a few important questions in my mind.
저는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들로 인해 인도적 정치적인 여러가지 이유들로 극심한 우려가 생깁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방어할 권리가 있고 자국민에 대한 연이은 미사일 공격을 참을 수도 참아서도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이스라엘 군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하고 잔혹한 폭격은 제 맘속에 몇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야기시킵니다.
The first question is whether the Israeli government has the right to make all Palestinians culpable for the actions of Hamas. Is the entire population of Gaza to be held responsible for the sins of a terrorist organization? We, the Jewish people, should know and feel even more acutely than other populations that the murder of innocent civilians is inhumane and unacceptable. The Israeli military has very weakly argued that the Gaza strip is so overpopulated that it is impossible to avoid civilian deaths during their operations.
첫번째 질문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의 활동에 대해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죄라고 할 권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자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한 테러러스트 조직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겁니까? 우리 유대인들은 선량한 시민들을 살인하는 것이 비인도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민족들보다 더 민감하게 알아야하고 느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가자 지구가 인구 과밀이라 자신들의 군사행동으로 야기되는 민간인들의 사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변명을 합니다.
The weakness of this argument leads me to my next set of questions: if civilian deaths are unavoidable, what is the purpose of the bombardment? What, if any, is the logic behind the violence, and what does Israel hope to achieve through it? If the aim of the operation is to destroy Hamas, then the most important question to ask is whether this is an attainable goal. If not, then the whole attack is not only cruel, barbaric, and reprehensible, it is also senseless.
이 변명은 저의 다음 질문으로 이끕니다. 만약 민간인 사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폭격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논리가 설령 있다고 한다면 폭력의 배후 논리는 무엇이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요? 작전의 목표가 하마스를 괴멸하는 것이라면, 물어볼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게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공격은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비난받아야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If on the other hand it really is possible to destroy Hamas through military operations, how does Israel envision the reaction in Gaza once this has been accomplished? One and a half million Gaza residents will not suddenly go down on their knees in reverence of the power of the Israeli army. We must not forget that before Hamas was elected by the Palestinians, it was encouraged by Israel as a tactic to weaken [Yasser] Arafat. Israel’s recent history leads me to believe that if Hamas is bombarded out of existence, another group will most certainly take its place, a group that would be more radical, more violent, and more full of hatred toward Israel than Hamas.
반면에 군사작전을 통해 하마스를 괴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은 괴멸후의 가자에서의 반응은 어떠리라 보는겁니까? 150만명의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 군대의 힘에 존경을 보내며 갑자기 무릅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선출되기 전에 아라파트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하마스가 선출 되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의해] 권장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근 역사를 볼 때 하마스가 폭격으로 괴멸된다면 또 다른 그룹이 그 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 그룹은 어쩌면 더 극단적이고 더 폭력적이며 하마스보다 훨씬 더 이스라엘을 증오할 지도 모릅니다.
Israel cannot afford a military defeat for fear of disappearing from the map, yet history has proven that every military victory has always left Israel in a weaker political position than before because of the emergence of radical groups. I do not underestimate the difficulty of the decisions the Israeli government must make every day, nor do I underestimate the importance of Israel’s security. Nevertheless, I stand behind my conviction that the only truly viable plan for long-term security in Israel is to gain the acceptance of all of our neighbors. I wish for a return in the year 2009 of the famous intelligence always ascribed to the Jews. I wish for a return of King Solomon’s wisdom to the decision-makers in Israel that they might use it to understand that Palestinians and Israelis have equal human rights.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움때문에 군사적 패배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군사적 승리를 거둘 때 마다 이전보다 정치적 입지가 더 약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급진적인 그룹들의 출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정부가 매일마다 해야 할 결정들의 어려움이나 이스라엘의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과소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장기적 안보에 대해 진정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계획은 인접 국가들로부터 용인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2009년에는 유태인들이 물려받은 한 유명한 지혜의 귀환을 희망합니다. 이스라엘의 위정자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는데 소용이 있을지도 모를 솔로몬왕의 지혜의 귀환을 소망합니다.
Palestinian violence torments Israelis and does not serve the Palestinian cause; Israeli military retaliation is inhuman, immoral, and does not guarantee Israel’s security. As I have said before, the destinies of the two peoples are inextricably linked, obliging them to live side by side. They have to decide whether they want to make of this a blessing or a curse.
팔레스타인인들의 폭력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극심한 성처를 주고 또한 자신들을 정당화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군의 복수는 비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제가 전에도 말했던 것과 같이 이 두 민족의 운명들은 나란히 옆에서 살아가도록 협조해야만 하도록 풀리지 않게 얽혀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축복일지 저주로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Vienna — 31 Decemb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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