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1, 2019

서슬이 시퍼런 한국교회

서슬이 시퍼런 한국교회
1.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그는 과연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당시 34살의 마틴 루터는 당시의 교회를 비판함으로써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 사상은 허무한 어둠의 힘을 물리치는 빛도 있었지만, 최고 선 그 자체는 아니었다.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 속에는 그 시대의 어두운 종교적 유산도 섞여 있어 시간이 한 참 지난 후에 보면 악의 숙주 노릇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은 진리 논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논쟁과 다툼을 불러왔다. 그의 주장은 인간 구원은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에서 비롯되며,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중명제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돈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라는 핵심 사상에 모아진다. 따라서 성서적 근거를 가지지 않은 모든 행위나 사상은 오히려 인간의 구원을 훼방하는 마귀의 작업이므로 엄격하게 차단, 배척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당화 했다. 루터는 교황의 세력을 적그리스도, 마귀와 거의 동일시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구교에 대한 극렬한 증오를 부추겼다.
루터의 주장은 네 가지 측면에서 당시 가톨릭교회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첫째, 성서에 근거되지 않은 성직자의 권위가 교도권(Teaching authority)과 더불어 거부되었다. 성직자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성직수임과 같은 예전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것. 둘째,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이 가르치던 공덕주의(salvation through works)가 성서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돈으로 면죄부를 사거나 파는 행위는 비성서적이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면죄부 효과가 부정된다는 것. 셋째, 카톨릭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sacrament)중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세례와 성만찬뿐이라는 것. 넷째, 그러므로 인간을 거룩하게 여기고, 비성서적 구원을 주장하며, 인위적인 성례를 만드는 행위는 마귀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2.
루터의 이와 같은 주장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론, 교회론, 성례론 등을 인간의 사유 이면에서 구원 사역을 훼방하는 마귀의 짓이라는 귀결을 불러왔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면죄부를 팔고, 신도들의 헌신을 요구하던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신앙 의인의 논거가 아니라 행위의인 논거에 세워져 있다고 판단하고 돈과 행위에 의한 구원을 약속하는 카톨릭 교회의 본질이 사탄적인 것이라는 루터의 주장에 경악했다. 경악하기는 교황 측도 마찬가지였다. 루터에 의해서 적그리스도라고 규정된 교황은 오히려 루터의 본질을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계시록에 나오는 사악한 세력을 의미하는 짐승의 숫자, 666, 혹은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악마라고 비난했다.
루터 측과 교황 측은 서로를 향하여 성서 본문을 인용하며 적그리스도, 악마라고 규정한 셈이다. 교황을 비판하고 교황의 행태에 불만하던 세력은 루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은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을 신뢰하며 기존의 가톨릭교회 편에 서게 되었다. 마침내 기독교 세계는 종교 개혁으로 인해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지고, 이따금 종교 갈등을 넘어 정치적 사건으로 이어져 상대를 악마화 하는 전쟁으로 빠져 들었다. 이에 더하여 루터의 의식 속에 담겨 있었던 중세기적인 유산, 곧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거나 맞지 않은 다른 주장을 할 경우 악마의 소행으로 몰아가던 악마화의 관행은 엄청난 증오의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루터로부터 시작된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와 진리 담론의 대척자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진리논쟁에서 촉발된 다툼은 이내 정치 사회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물린 제후들의 욕망이 더해져 30년 전쟁, 100년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상대를 악마의 졸개로 간주하는 시각은 종교 전쟁을 일종의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 사냥과 같은 성격으로 변환시켰다. 그 결과 상대에 대한 잔인한 살육을 정당화 하게 만들었다. 인간에게는 사랑과 자비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만 악마에게는 일말의 사랑과 자비를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대자를 향하여 인간적인 동정과 관대함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런 성향은 기독교가 오래 동안 내장하고 있는 악의 유산이다.
3.
루터가 기독교를 성서적 신앙으로 개혁한 것은 위대한 사상적 공헌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위대한 신학적 사상을 남긴 루터를 칭송하기 위하여 그가 범한 오류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비판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루터 속에 담겨있는 비이성적이며 비인도적인 규범까지 기독교 신앙의 모범 사례로 여기도록 만드는 오류를 유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루터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격하는 신앙을 깊이 각인 시켰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자신의 적대자를 악마화 하는 수단, 곧 중세기적 마귀론이나 마녀론을 개신교 안에 유입, 유통시키는 오류도 범했다. 그가 가진 편견과 시대 착오성은 그의 후예들에게 중세기적인 인종차별주의와 증오문화를 개신교 안에 유입시키는 것을 마치 신앙의 과제인양 여기게 만들었던 것이다.
루터가 1543년에 쓴 논문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루터는 유대인을 비하하며 박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대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편견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부터 연원을 두고 있지만 기독교 세계 안에서 더욱 강화되어 왔다.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자들의 후손이며, 개종을 거부하는 종족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적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집단, 저주받은 족속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루터는 기독교 안에서 습성화된 인종차별적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편견은 종교 개혁 세력에 의하여 더 강한 광기로 자리를 잡았다. 루터는 유대인 회당을 불 질러야 한다고 했고, 유대인의 기도서를 모두 불태우라고 했으며, 랍비의 설교를 금지하고 그들의 집을 불사르라고 했다 심지어 유대인을 게토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이나 현금을 몰수하며, 그들에게 어떤 자비도, 법적 보호도 베풀지 말라고 했다. 그들을 강제 노역을 시키거나 추방을, 심지어 벌레처럼 제거할 것을 교사했다. 이런 루터는 히틀러가 존경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루터가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했던 논문은 나치 정권에 의하여 교과서처럼 이용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리스트는 원래 히틀러의 것이 아니라 중세기를 거치며 형성된 증오 문화를 이어받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주장이었고, 히틀러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셈이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이런 문서를 남겼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루터가 이 논문을 쓴 후 정확히 400년이 된 시점, 공식적으로는 1942년 2월 26일자로 히틀러 정권은 유대인을 말살정책을 공식화했다. 그 결과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 90%가 죽었고, 유럽 전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 2/3가 야만적으로 살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학살의 명칭은 “The Final Solution"(마지막 해결책)이었다. 나치는 루터처럼 유대인과는 도저히 더불어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치는 루터가 그의 논문에서 주장했던 바,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유대인에게 조직적으로 시행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종교 개혁자는 유대인 학살의 교사범이었던 셈이다.
4.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루터의 사상을 이어받은 이들이 루터 이후 약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루터와 같은 위대한 선조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서적 신앙의 후예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백만 명의 생명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학살할 수 있도록 안내한 루터의 주장은 과연 신학적으로 정당하며, 성서적인 것이었을까? 나는 명료하게 아니었다라고 생각한다. 성서는 증오와 혐오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을 차별로 인식하고, 증오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은 성서적 신앙의 열매가 아니다. 나는 성서를 들고 혐오와 증오를 가르치는 이들을 보면 나치의 스승 역할을 한 루터를 떠올린다. 역사는 아니러니하다. 개혁자가, 성서를 든 자가 혐오와 증오의 교사가 되었으니. 오늘날에서 더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의 거친 소리에서 나는 또 하나, 나치의 출현을 예감한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악마로 몰았다. 생각이 다른 이를 악마로 몰아 혐오와 증오하도록 교사하고, 마녀로 몰아 죽이던 중세기적 종교의 습성을 개혁하지 못했던 것이다. 루터의 인종차별적 유대인 혐오주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루터가 가졌던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중세기적 마귀론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그가 신실하게 믿어왔던 종교 전통과 습성에서 받아들인 것이었다. 종교는 자명한 진리 담론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진리 담론에는 무서운 폭력이 숨어있다. 나는 루터의 이런 어두운 측면은 그가 중세 후기를 살아가면서 기독교 세계가 그리고 있었던 신화적 세계관과 유대인 혐오주의라는 편견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이용했다고 본다. 이처럼 종교개혁 사상은 옛 교회의 오류를 수정하고 비판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이처럼 인종차별적인 혐오와 증오를 유포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비텐베르크에 모인 사람들은 종교 개혁의 후세들이 서로 증오하며 사람을 살육했던 과거에 대하여 부끄러워했다. 서로 증오의 감정과 폭력을 주고받던 신 구교 지도자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렇게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교황청과 루터세계연합회)는 우리의 무수한 실패에 대하여, 그리고 종교 개혁이 시작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500년 동안 서로 적대하며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낸 것에 대하여 서로 용서를 구합니다.”
구교와 신교 지도자들은 분파와 분열을 정당화하고, 신앙을 빙자하여 종교 전쟁까지 불사했던 지난 500년을 돌아보며 부끄럽게 머리를 숙이고 서로를 향하여, 그리고 세계 앞에서 용서를 구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종교 개혁 500년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나누었을까?
내 눈에 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종교 개혁을 한 편에서 축하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비텐베르크 성 안에 있는 한 교회 벽에 1305년에 새겨져 700년이 넘도록 보존되어온 하나의 부조(浮彫) 형상(形象)을 제거하라는 항의도 있었다. 비텐베르크 마을 한 교회 외벽에 새겨진 부조물에는 누워있는 돼지의 젖을 빨고 있는 유대인들, 그리고 그 돼지의 다리와 꼬리 사이에 놓인 토라를 읽는 듯한 랍비가 새겨져 있다. 누가 보아도 유대인은 돼지 새끼 같고, 랍비는 음란한 자로 여겨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부조물이다. 루터도, 나치도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돼지(Schweine)라고 불렀다. 루터와 나치가 다른 것이 있었다면 나치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동성애자와 좌파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더했던 점이 다르다.
종교 개혁의 깃발을 든 도시 비텐베르크에서도 종교 개혁의 후예들도 오랜 동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대인을 돼지라고 여겼다. 이러한 종교적 증오와 혐오를 불어 일으키는 편견이 종교개혁 500년 주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치에 의하여 유대인들이 600만 명이 희생된 사실이 있음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데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며 항의한 것이다. 그러나 비텐베르크 교회는 그 부조물을 떼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적 편견을 이어온 자신들의 수치를 감추기보다는 후손 대대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치 집단 수용소를 없애버리지 않고 유적지로 남겨두고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독일 정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이다.
5.
한국 교회를 다시 들여다보자. 중세 교회로 돌아간 듯이 성직자 중심주의가 만연하다. 맘모니즘의 포로가 된 한국교회는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팔았듯이 각종 헌금을 받으며 축복 장사를 하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었다고 가르치면서 유대교나 되는 듯이 유대인 교육론을 유입시키고, 예수 이전처럼 제단을 차려놓고 각종 희생의 제물을 바치게 만든다. 기이한 기독교다.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리고 증오했던 유럽 기독교의 오핸 습성을 따라 한국 교회는 좌파 증오와 혐오증을 좋은 신앙의 증거인양 가르친다. 좌파와는 함께 도무지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북진 통일론, 멸공통일을 외치는 교회도 있다. 그 결과 6.25 전쟁을 치르며 좌파라면 모두 잡아 죽였다. 미국이 키워준 기독교 지도자들은 복음과 반공주의를 동일시하는 일에 앞장섰다. 마치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증오하듯 우리는 좌파를 증오하는 기독교인들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마치 반공 사상이 성서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독교 윤리”라고 여긴다. 예수가 이런 것을 언제 가르쳤던가.
어느 교회의 새벽기도 시간에 목사는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도륙한 엘리야의 승리를 설교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는 좌파 정권이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가 좌파들이 물러가고 우파 정권이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라고 요구하자 이어 우레와 같은 통성기도가 이어졌다. 목소리가 썩시근한 어느 중년 사내는 큰 소리로 주문을 외듯이 소리를 질렀다. ”오 주여, 이 땅에서 좌파를 도말하여 주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좌파여 사라져라!“
루터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좌파적 사상가 토머스 뮨쳐(Thomas Müntzer)나 그의 선배이자 옛 벗, 비폭력 평화주의자 안드레아스 칼쉬타트(Andreas Karlstadt)를 악마의 사주를 받는 자로 규정했다. 나치처럼 루터를 따라야 할까? 마치 나치처럼 푸르등등한 살기를 품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실한 루터의 후예가 되려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다. 루터의 어두운 그림자를 닮아서는 안 된다. 독일 기독교인처럼 사죄의 성명서를 내고, 우리의 정신세계 속에 새겨진 증오와 혐오의 조각들을 벗겨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우리 안에 있는 증오와 혐오를 신앙의 증표로 여기는 신앙의 악습, 악마화의 습성을 벗어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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