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신학 이야기 3
로즈메리 류터의 해방신학
지난 3월 8일은 여성의 날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출발점을 기념하여 여성의 날을 제정한 후 꼭 100년이 된 셈이다. 지난 2008년 2월 27일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교 이사회는 예일 대학 신학부 여성 교수인 죤스(Serene Jones)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은 2008년 대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톤을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 중의 하나로 추대했다. 이런 사례는 미국의 대학과 정치 세계에서 여성을 차별 배제하는 악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변화는 성차별의 역사에 저항해온 지난 100년의 여성운동에 크게 힘입었다. 미국 여성신학의 흐름을 주도해 온 신학자들 중에서 특히 로즈메리 류터(Rosemary Ruether)는 다른 여성신학자들과 달리 여성과 신학이라는 협소한 학문적 범주를 넘어 전 세계의 해방신학자들과 연대하면서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의 폐지를 위하여 해방의 지평을 넓혀 온 학자다. 이 글은 지난해 10월 미국 베일러 대학에서 열린 해방신학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류터의 논문에 근거하여 그녀의 해방신학에 대하여 살펴본다.
위기의 기독교
서구 사회 위기론은 신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2차 대전 이후 거듭 제기되어 온 주제다. 서구 사회의 위기에 대한 비판철학의 해명은 도구적 이성의 비도덕적 오용이라는 주제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이성은 정치와 도덕이 나누어진 현실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비판철학이 도구적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이성을 동원해도 인간의 도덕적 정당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순환적 비판을 통하여 자기점검을 요구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세계는 여전히 합리적 이성이 납득 할만한 수준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의 세계 현실 한 가운데에서 약자들에 대한 지배와 착취와 억압과 소외를 불러오는 현실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현대 신학과 철학의 주제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비판이 주된 흐름을 이루어 가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기한 오리엔탈리즘 논쟁에 이어 후기 식민주의 논쟁, 그리고 제국주의 비판이론들이 대두된 것은 이런 현대의 정신사적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류터의 신학적 사고는 이런 서구의 현대 지성사적 흐름에 정통해 있다.
그동안 서구 중심의 역사가 계속 진보할 것인가 아니면 몰락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한 조망들이 여기저기서 논의 되어 왔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21세기에 들어서서 인류역사에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악의 출현을 들어 서구 사회의 위기를 지적한 바 있다.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상대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지속되어 온 서구문명의 근 삼천년의 전통의 흐름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서구 문화의 모든 구조가 몰락하여 그것이 담지하고 있었던 믿음, 전통 그리고 판단기준들이 비틀거리며 우리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서구 사회의 위기를 언급하며 아렌트가 전거로 드는 것은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악의 현실, 곧 홀로코스트 경험이다. 나치의 거대하고 잔악한 악이 출현했을 때 서구의 철학, 신학, 역사학, 윤리학과 예술들은 침묵했고, 방조했으며, 심지어 협력했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근 오천만 명이 죽음을 당했고, 나치에 의해서는 1,100만 명의 생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중에 600만 명은 유태인이었고, 그 나머지 500만은 사회부적응주의자들로 낙인찍힌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었다. 기독교 서구사회에서 일어난 이 학살 사건은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적 의심을 초래했다.
사실상 서구사회의 위기는 서구 사회의 사상과 법과 도덕적 판단의 초석이 되어 온 기독교의 위기였다. 기독교는 거대한 악의 출현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그 악의 현실을 신의 뜻으로 오역하기도 했다. 이런 위기를 맞으면서도 2차 대전 이후의 기독교 역시 자기 성찰적 비판에 게을렀다. 해방신학 운동이 신학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한 것은 신학적 담론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신학이 인간의 역사와 삶의 전체성을 상실하고 그 일부만을 재현하곤 했던 습성에서 벗어나려면 신학적 방법론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기독교는 개인적 영성과 사회악을 분리시키고, 개인과 교회의 영역에 적용 가능한 신학적 방법에 몰두해 온 결과 교회들은 교회주의의 팽창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다양한 차별의 악을 인식하는 데 대부분 실패했다.
신학의 비판으로서의 해방신학
1971년 구티에레즈는 그의 책 해방신학에서 이런 과거의 오류로부터 신학 자체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신학은 역사와 정치,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정치와 역사를 배제한 신학은 그 유효기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교리중심의 단일한 체계를 가진 하나의 신학이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인종, 성을 중심하여 다양한 해방 담론을 불러오게 되었다. 비록 해방신학이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경제적 현실에서 발아되었다 할지라도 해방신학을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단일한 하나의 신학으로 이해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다. 해방신학은 억압과 착취와 차별이라는 불의를 지속시켜온 과거에 형성된 교리와 교회의 역사를 배우는 학습과정이 아니라, 그 과거의 교리로부터 해방되어 바른 실천으로 나가는 정행(orthopraxis)이라는 방향을 지향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억압과 착취와 온갖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기독교적 실천 과제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해방신학은 이런 의미에서 종교적 전통과 문화 그리고 피부 색깔의 다름을 이유로 인간을 차별하고, 이 차별이 사회 전반에 차별적 구조 악으로 자리잡아온 인종차별주의의 역사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악이란 모든 권력구조에 기생하면서 차별과 배타와 착취와 억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모든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묵시적 힘을 가진다. 그러나 이 악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그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생체세포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인간이요 인간의 집단이며 인간의 역사다. 비판적 인식이 결여되고, 자기 반성적 비판 능력이 취약한 모든 개인이나 집단은 깊은 악을 재생산 해 내는 숙주가 될 수 있다. 이 악은 간혹 종교 경전의 이름으로, 사회와 국가의 이름으로, 그리고 도덕적 정당성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장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대두는 기존의 기독교 신학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 위기의 원인은 신학담론 속에 담긴 사회 윤리학적 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다분히 사회윤리학적 관점을 응용하여 불의한 기독교의 위기를 드러낸다. 이런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해방신학이 기독교를 훼방한다고 간주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주장이며 아전인수라 아니 할 수 없다. 사실상 기독교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은 해방신학 그 차제가 아니라 기독교 신학 그 자체가 다양한 차별의 악을 조장하거나 받아들이는 악의 숙주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는 기독교는 위기를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논리를 따라 기독교가 자신들의 부유함을 향유하기 위하여 가난한 생명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하며 외면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차별의 숙주가 되어 있는 기독교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성차별주의적인 기독교는 어머니와 누이들을 차별하는 남성성을 통해 남성적 권위를 옹호하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종을 차별하고 약자를 차별하는 기독교는 사실상 성서의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독교이기도 하다.
21세기 신학 교육을 위하여 공공의 신학 이론을 제기해 온 신학자들이 역어 낸 책 “21세기 공공의 신학 (Public Theology for the 21st Century" 은 현대 신학적 담론이 억압, 착취, 차별, 배제, 분리, 지배를 옹호하던 논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인간의 자유, 정의, 평등, 인권, 다원성 등의 주제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이 논의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신학적 부분들만으로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향후 신학 교육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과 규범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부분(fragments)에 만족하지 않고,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대변하는 신학에 대해서는 비판신학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과 착취와 억압을 받아온 약자의 경험에서 전통신학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해방신학은 여성들의 피억압자 체험에서 생성된 여성 해방신학에 연대하고, 약자의 체험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리고 정통주의 신학의 오류에 대한 비판에서 방법론적인 상호연관성을 가진다.
해방주의 신학자 로즈메리 류터
사회윤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류터의 여성신학 형성에 크게 영향을 준 사상적 배경은 최소한 네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먼저 그녀가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했던 미국 클레아몽트 신학대학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학문풍토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전통이다. 성서와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그녀로 하여금 교부신학이 형성한 교리적 체계의 위선과 허위를 넘어서서 콘스탄틴 신학의 오류를 날카롭게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게 했다. 둘째, 그녀가 학위 취득이후 10년 동안 가르쳤던 미국 워싱톤 DC의 하워드 대학에서 조우하게 된 흑인 해방신학에 대한 그녀의 지지와 공감이다. 흑인 해방 신학은 그녀로 하여금 여성 해방적 시각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다. 셋째, 예수에 대한 해방주의적 이해위에서 그녀가 영적 구원자를 넘어서는 해방주의적 예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성서 본문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비롯된 하나님 나라 사상과, 그 사상을 촉발시켜 온 예언자 신학과 메시아사상의 적극적인 수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터에게 미친 이 세 가지 신학적 흐름은 그녀의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성차별로부터 여성해방, 인종차별로부터 흑인해방, 그리고 반유태주의로부터의 해방을 학문적이며 실천적인 과제로 삼게 해주었다. 이에 더하여 넷째,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인 교리체계를 가진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그녀의 경험이 19세기를 전후하여 발아된 여성신학적인 비판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그녀로 하여금 여성해방주의자가 되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녀를 1980년대 저작에서 보이는 여성 해방적 관심을 넘어서서 해방신학자들과 실천적 관심을 나누는 해방주의적 신학자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류터의 신학과 사상에서 지난 1900년 동안 기독교 안에 숨어 있었던 성차별,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의 악을 제거하기 위한 비판적 작업이 중추적인 관심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차별의 기독교적 뿌리
일반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의 출발점은 기독교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 출발점은 여성의 성서(Women's Bible)가 출간된 1895년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성서를 출간한 캐디 스탠턴(Elisabeth Cady Stanton)은 성서를 고쳐 읽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초기부터 성서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하나님에 의해 위계 지워진 영역”에 여성을 붙잡아 두기 위하여 이용되었다. 경전과 시민의 법; 교회와 국가; 사제들과 집정관들; 모든 정치 정당과 종교적 정파들은 여성을 남성에 후위 하도록, 남성의 소유가 되도록, 그리고 남성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열등한 존재,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신조들이나 법전, 성서 그리고 규칙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유행이나 형식, 축제, 사회의 관습, 교회의 직제와 훈련도 모두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을 긍정하지 못했던 전통적인 신학적 이해와 가르침은 성서 그 자체보다 성서를 기록하고 해석해 온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앞서 1872년 윌스톤크라프트( Mary Wollstoncraft)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 부정되어 온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여성의 권리 옹호>를 출판 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기독교 여성들에 의하여 주도되었고 마침내 다차원적인 해방을 촉진하고 연대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노예제도 폐지와 인종차별 폐지운동은 역사 속에서 억압받아온 여성의 관점에서 당연히 연대를 나누어야 할 중요한 해방운동으로서 동일한 요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해방운동적인 맥락에 서서 류터는 그녀의 대표적인 책 <성차별주의와 신론: Sexism and God-Talk: Toward a Feminist Theology>에서 죄스런 인간들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채색된 성서적 지침들이 어떻게 성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불러왔고 신학적으로 체계화되어 왔는지에 대하여 밝혔다. 그녀는 이 책에서 기독교 안에서 여성차별과 억압을 조장해 온 신학적 사고는 여성의 몸과 자연에 대한 비하의 전통을 지녀왔으며, 하나님을 가부장적, 위계 질서적, 제국주의적 언어와 밀접하게 연계시킴으로써 다른 한 편을 차별적 존재, 하위적 존재, 그리고 피지배적 존재로 귀착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평화와 생명의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게 하는 지배와 억압의 길로 치달았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열등한 본질을 가진 존재로 간주된 이들이 분류되었고, 그 결과 여성들의, 백인이 아닌 인종과 자연의 권리가 가부장적 위계질서 안에서 박탈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신학적 사고는 “역사 안에서 여성의 종속이란 여성의 열등한 본성과 죄책에 대한 징벌“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류터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시각에 의하여 포로가 된 하나님 이해는 예언자적 혼을 상실한 신학적 구조 안에서 기존질서에 편입되어 버린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 주의적 기독론을 형성했다고 규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가부장적으로 이해된 그리스도는 여성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왜냐하면 가부장적이며 위계 질서적이며 제국주의적 그리스도론은 현실세계에서 여성/몸/자연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당연시하고, 지배의 대상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곡된 하나님 이해, 왜곡된 기독론의 수정은 류터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러한 신학적 수정 작업은 하나님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일어나야 하는 우상타파(iconoclasm)적 작업이다. 이 우상타파적 작업은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제국주의적 억압과 통치로부터의 해방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실천은 온갖 종류의 억압과 착취와 차별로부터의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며, 그러한 해방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해방적 전통의 맥락 안에서 억압적이며 차별적 현실을 긍정해 온 신학을 비판 해체하고, 성서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예수와 예언자적 전통을 재현하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사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은 인류의 길고 긴 역사와 함께 해 왔다. 남성의 사랑과 연모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억압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 온 여성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는 흑인에 대한 차별보다 더욱 심원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가히 신학과 교회에게 있어서 자기모멸적인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차별구조를 조장해 온 신학에 대한 그녀의 이런 비판적 시각은 북미만이 아니라 그 앵글이 넓혀질 때마다 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정황을 분석 비판하는 폭넓은 신학적 시각으로 진화해 왔다.
전통신학으로부터의 해방
류터는 대학에서 고대사를 연구하고 1965년 미국 클래아몽 대학 대학원에서 고전학과 교부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그녀는 아프리카-아메리카인 들이 많이 공부하는 워싱톤 DC의 하워드 대학 종교학부에서 10년 동안 가르쳤다. 이 기간에 류터는 흑인 해방신학에 깊이 관심하여 1970년대에는 시민운동과 평화운동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했다. 교회의 가부장주의에 절망하여 교회를 떠난 메리 댈리(Mary Daly)와는 달리 류터는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가톨릭 교회내 개혁 운동을 전개해 온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나 그레고리 바움(Gregory Baum)과 같은 운동가들과의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
류터의 첫 책 <스스로에게 적대적인 교회>(The Church Against Itself)가 1967년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가톨릭교회의 성윤리를 형성하고 있는 교리에 대하여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녀의 학문적 노력은 기독교 고전과 교부학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초기 기독교의 교리 형성과정에서 벌어진 인종, 계급, 성역할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기독교의 편견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고, 특히 기독론과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가톨릭교회가 기독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기독론적 원형인 유대 메시아사상과의 연관성과 불연속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믿음과 형제살해 (Faith and Fratricide)"라는 책을 1974년 출간했다. 여기서 그녀는 유태인들이 가졌던 메시아사상을 제거하고 유일한 하나님의 구원자라는 개념을 형성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이 유태인들의 메시아사상을 이단시하게 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결국 근친적 종교적 전통을 모두 제거(살해)하는 배타적인 기독론이 결과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통이 지시하는 선과 악, 우월과 열등의 분리도식에서 악(evil)이란 일종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배척하는 대상들이 된 것이다.
류터는 기독교의 기독론적 성취라는 사상이 콘스탄틴 대제 이후 어떻게 기독교의 이념적이며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보편성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이 책에서 밝혔다. 결국 제국주의화된 가톨릭교회는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 지배하는 종교로서 자신을 정위시키고, 노예와 여성과 자연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다고 보았다. 기독론적 성취론에 근거하여 발전한 가톨릭교회의 교설은 가부장적이며, 위계질서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므로 류터는 참된 예수를 다시 만나는 데에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일단 메시아로, 전통적인 남성적 상상력과 더불어 거룩한 로고스로 그려진 예수에 대한 신화가 벗겨내져야 비로서 공관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가 페미니즘과 주목할 만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인물로 인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다시 만난 예수는 우상타파적인 예언자로서 기존의 차별적인 사회질서의 전폭적인 변화를 지향하며 가부장주의의 겸비(Kenosis of patriarchy)를 드러낸다고 한다. 그러므로 교리적 예수가 아닌 성서의 공관복음이 드러내고 있는 참 예수는 새로운 또 하나의 억압적 사회질서 형성에 관심을 가진 이가 아니라, 전적으로 억압이 해체된 해방지평을 우리에게 가리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계급차별이 결코 예수와 나란히 공존할 수 없다.
류터는 기독론적 해방의 지평만이 아니라 성서적 전거를 통하여 성서의 메시지를 예언자적 전통의 빛에서 재조명한다. 제프리 시커(Jeffrey S. Siker)는 류터의 성서해석 방법을 분석하면서 그녀가 구약과 신약 성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매우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프리의 분석에 따르면 류터는 구약성서에서 창조와 타락, 레위기의 희년 사상, 지혜문학 전통, 그리고 예언자들의 문서를 중요한 성서 신학적 근거로 삼았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류터는 다섯 가지 그룹의 텍스트를 중시하는 데, 그것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전통, 남성을 향한 여성의 복종을 지시하는 전통 (고전 11장, 에베소서 5장, 그리고 디모데전서 2장), 그리고 보다 평등주의적인 양성간의 관계를 지시하는 전통(갈 3: 28, 행, 2장),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눅 10: 38-42)등이다.
이상과 같은 성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류터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와 이에 반하는 반-유대주의, 노예제도, 전쟁, 그리고 권력의 오용, 가난한 자에 대한 부유한 자들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기독교인의 실존을 예언자적 성품과 연관 시킨다. 류터는 성서를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와 계약사상, 그리고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거역,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자의 음성을 들려주는 전거로 이해한다. 죄스런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예언자들의 음성에 깊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있어서 예언자적 혼을 상실한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되기 어렵다.
한 사람의 로만 가톨릭 교인으로서 그녀는 기독론적인 구원론이 아니라, 예언자적 기독론을 강조해 왔다. 이는 유대교와 차별화된 기독교 안에서 가부장주의를 옷 입고 교리화 된 예수의 해체와 더불어 공관복음서에 그려진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서의 예수를 재조명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 볼 수 있다. 하나의 성서를 가지고 두 가지 종교가 이루어 진 셈이다. 기존의 질서와 타협하여 억압과 지배의 종교가 된 체계, 그리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는 예언자 정신이 살아있는 종교이다. 물론 류터는 후자에서 기독교의 진정성을 본다. 따라서 그녀는 해방신학적 전통이 담고 있는 예언자적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죽었는가?
류터는 그녀의 논문에서 해방신학을 향하여 이단시하며, 그것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북미나 유럽의 신학자들을 향하여 “비록 피상적인 관점이지만 해방신학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해방신학이 살아있었던 것을 결코 보지도 못했거나 혹은 처음부터 해방신학이 죽어버리기를 열렬히 기다렸던 이들”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해방신학의 출현이나, 그 전개과정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럽의 교조신학은 해방신학을 거절하고 기존의 질서와 타협한 교회유형의 신학만을 정통한 것이라고 주장해 온 까닭이다. 또한 유럽 신학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신학은 신학의 파괴자요 그들이 만들어 온 배타적 기독론에 대한 부정인 까닭이다. 하지만 류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신학의 출현은 복음의 회복이며,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 나타난 예수의 소명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해방의 과제가 있는 곳에서 복음은 해방적 복음으로 나타나고, 예수에게 해방적 사역의 소명을 불러일으켜온 예언자적 전통의 부활이다.
신학의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를 비판하며 해방신학 전통을 강력하게 수용해 온 류터는 해방신학의 현대적 전개를 분석적으로 해명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신학의 새로운 형태로서 지난 20년간 나타난 온 신학운동에는 페미니즘, 토착민들, 아프로-캬라비안, 아프로-브라질 인들에 의하여 전개된 생태신학과 다소 낮선 진기한 신학들의 출현이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신학들은 대부분 그들의 인간됨의 존엄함을 지켜온 토착 종교적 관심, 그리고 해방신학이 불러온 경제적 분석과 비판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신학들이다.
이 신학들은 과거 근 500년 동안의 식민지주의 그리고 근래의 신식민지주의에 의하여 착취를 받아온 땅에서 꽃핀 것으로서 착취당해 온 그들이 정녕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인간과 자연을 또다시 착취하는 “개발”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었던 자신들이 또다시 그것들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착취의 관계의 해체가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는 신학임을 밝힌다. 따라서 새롭게 형성되어 온 해방 신학은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의 지평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여성해방신학을 포함하여 현대 해방신학은 다양한 차별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자연에 대한 차별들이 불러오는 착취와 파괴의 해체와 종식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빈곤과 억압에 대한 관심
그러나 류터는 남미 대륙은 서구 세계를 모방하는 개발주의, 서구세계의 권력구조에 의지하고 있는 식민 파시즘, 토착 엘리트들과 손잡고 있는 외국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권력, 시민사회를 억죄고 있는 국가보안법,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그리고 농민들의 연대운동을 진압해온 억압적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제 3세계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정치적인 지원을 받으며 국가보안법을 만들고 이를 마치 기독교 문명을 수호하는 것인 양 여긴다는 점이다.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극 보수주의 연대를 형성하고,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구조를 조장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에 의한 국가 전복을 막아내고 기독교 문명권을 수호하는 선의 도구인양 자신들을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파적 연대를 통하여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의 남용과 오용이 일어날 경우 해방신학은 혁명적인 사유를 통하여 신 식민지적 억압구조에 대한 비판과 해방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류터는 그녀의 논문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남미의 정치적 상황을 개관하면서 미국에 의한 신신민주의(neo-colonialism)에서 벗어나려는 남미 국가들의 노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남미의 상황에서 일어난 해방적 변화는 1970년 칠레의 막시스트 사회주의 정권은 남미 가톨릭교회의 사회주의 연대를 주장하는 사제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미국 CIA의 지원을 받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몰락하고 말았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스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독재자 소모사정권을 몰락시키고 문맹퇴치, 국민 건강보험제도, 토지 개혁 등을 통해 니카라과의 개혁을 도모했다. 새로운 개혁을 위해 싸웠던 엘살바도르에서도 내전이 일어나 75,000 명이 살해되는 등 피에 젖은 진압사태가 벌어졌다.
이렇듯 국가보안(national security)을 앞세워 국민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억압해온 정권이 있는 남미 나라들의 교회는 어쩔 수 없이 민중과 더불어 국가안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연대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양심적인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정황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고문하며 살해해 온 잔인한 정권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해방하는 사역을 긍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 1970년 대 남미의 상황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지배계급과 엘리트들이 장악한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민중적 저항을 불러왔으며, 따라서 해방신학은 제국주의와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에 대한 신앙적 저항과 비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제 3 세계의 민중들은 하루 생활비 1달러도 안 되는 극빈의 정황에 처해있다. 아시아 대륙도 무수한 민중들이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고, 정치적 억압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고 있다. 이 가난의 대륙 아시아 곳곳에서는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3세계 민중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2006년 내가 필리핀 다국적 기업 네슬레의 부당한 착취적 경영에 저항하는 노동운동가를 만났을 때, 그의 전임자 두 명은 살해 되었고, 그 자신도 공안당국의 눈으로부터 숨어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인 식품 회사 네슬레가 필리핀 노동자들을 매 6개월마다 대량으로 해고하고 있었다. 6개월 이상 임시직으로 쓰면 불법이라는 노동법 때문이었다. 지속적으로 노동자가 필요하다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데, 네슬레는 노동자들을 전임으로 쓰면 더 많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6개월 고용했다가 무참하게 대량 해고시키는 악습을 일삼고 있었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용불안과 가난으로 인해 미래의 희망을 상실하고 있었다.
서구기업들이 자국의 고용인들에게는 매우 높은 차원에서 인권을 보장하고 복지혜택을 주면서 제 3 세계 노동자들에게는 극심한 저임금과 해고에 시달리게 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인종차별의 또 다른 형태라 아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이런 부당하고 불의한 정황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이들을 반사회적, 반정부적인 정치범으로 몰아 영장 없이 인신을 구속하고, 심지어는 수년간 재판도 없이 구금하는 등 자국민에 대한 극심한 인권유린을 조장하고 있었다. 권력을 독점한 소수 지배자들이 제국주의적인 정치 및 경제적 지배구조에 편승하여 자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극도로 훼손하는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 인권사무소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2006년 한 해 동안 필리핀에서는 무수하게 많은 인권운동가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고, 법정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정의를 집행하는 데 무관심하고 방관하고 있다는 정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미의 정치 경제적 지배구조가 기독교(가톨릭)도들에 의하여 장악되었듯이 필리핀도 동일한 종교적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비기독교적인 사회인 스리랑카, 네팔, 등등의 나라들의 실정도 필리핀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서구 기독교 세계만이 아니라 아시아 땅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권리가 부정되고, 그들의 존엄성이 유린되는 현실이 있기에, 애급의 포악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해방적 사역은 필연적인 역사적 요청으로 이해되고 있다. 남미와 아시아 대륙은 억압과 가난으로 인하여 무수한 민중들이 신음하고 있는 땅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이 가난의 땅을 시장으로,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제국주의 논리 이면에서 작용해 온 기독교 신학의 오류와 죄악을 류터는 자신의 논문에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교황청의 보수적 정책과 해방신학
1980년대 남미의 상황을 분석해 보면 일면 희망이 새롭게 소생하는 시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잔혹한 진압의 시대였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미의 지식인들은 민중 속에서 소생하는 희망을 짓밟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외치는 소리들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존 체제 질 서적 억압에 가톨릭교회도 동참했다. 류터가 이해하는 해방신학의 자리는 바로 이러한 억압과 해방의 힘들이 부딪치고 있었던 1970-80년대의 정황이다.
이런 혁명적 정황에서 과연 가톨릭교회는 무엇을 했는가를 살펴보려면 1978년 선출된 교황 바울 2세(Paul II)의 남미 정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교황은 진보적인 사제들을 보수적인 사제들로 교체하고, 사제들의 교육을 당당하며 해방신학적 작업을 해오던 연구소들의 문을 닫게 하였다. 예컨대 부라질 북동부의 진보적 감독이었던 헬더 카메라( Helder Camera)는 은퇴를 하고 동시에 보수적인 우파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새로 임명받은 감독은 성직자 교육기관을 폐쇄하고 해방신학적 성향이 있는 모든 교수들을 해고했으며 전통적인 신학교로 전환시켰다. 이 때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사제직을 버리고 평신도로 돌아갔고, 파블로 리챠드(Pablo Richard)와 힌켈라머트(Franz Hinkelammert)는 코스타 리카에 개신교가 세운 에큐메니칼 기관으로 적을 옮겼다. 1980년대에 일어난 해방신학의 퇴조는 바로 이런 정황이 왜 벌어졌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동구권이 자유를 얻기 시작하고 마침내 1991년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냉전 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은 공산주의적 전복으로부터 남미의 국가들을 지키려는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그리하여 남미의 상황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관심이 적어진 남미에서는 조금씩 제한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미국의 대외적 관심은 남미에서 중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남미의 국가들은 냉전체제 안에서 지켜오던 국가안보 이데올로기 대신 자본주의적 개발과 경제문제에 관심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칠레나 아르헨티나, 과테말라는 민주화 되었고, 구소련의 지원을 받던 쿠바 같은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더욱 깊이 고립되었다. 그리하여 한 편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증대되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미국 제국주의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류터는 이런 변화 속에서 해방 신학 운동은 대중운동을 통하여 확산되어 왔다고 평가한다. 이 운동은 남미에서의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번져갔고,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어지고 생태운동으로 번져 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미의 대부분 나라에서 1919년에서 1955년 사이에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류터는 인간의 권리가 박탈당한 여성들의 해방운동은 필연적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볼 때 급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성(gender)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기반 한 사상의 대두는 결국 가부장적이며 남성 중심적으로 위계질서 지워진 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급진성을 거부한 가톨릭교회는 결국 그들의 전통적 가부장적 신학의 고수와 보수라는 과제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류터는 바로 이들이 해방신학은 죽었다고 간주하려 하는 이들이며, 이들의 눈에는 해방신학이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반기독교적인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아예 해방신학의 생명력조차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오는 말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이들이 해방신학이 퇴조하거나 죽은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신학이 대두된 1970년대에는 해방 신학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제들이 해방 전선에 따라 나서기도 했다. 부분적인 성취가 있었지만 이런 시도들은 많은 경우 진압되고 말았다. 그러나 1990년대를 전후하여 자유/사회 및 공산주의간의 이념적 대립이 붕괴된 이후 냉전체제하에 형성되었던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이 조금씩 사라지게 되고, 냉전적 대립보다는 새로운 경제적 지배구조의 억압성이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남미나 아시아에서 많은 국가들이 부분적으로 민주화를 성취했고, 일부는 정치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자본주의적 지배가 새로운 식민지배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남미와 아시아 대륙의 민중들은 또 다른 억압과 가난에 맞서게 되었다. 류터는 이런 맥락에서 해방신학은 죽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참여와 응답의 구조들을 불러오고 있다고 믿고 있다. 류터는 해방신학 운동이 도처에서 살아 있음을 밝히고서 다음과 같이 그녀의 논문을 매듭지었다.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죽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신학은 남미민중들의 다양성에 응답하는 업적을 내고 있다. 남미 해방신학은 지구적인 경제 지배에 대립하여 국제적인 대화의 일환으로 경제적 분석을 새롭게 하고, 남미의 독립과 복지를 위한 새로운 투쟁의 단계에서 남미 지식인들과 대중지도자들을 위하여 그 투쟁의 기초를 놓아왔다.”
기독교 복음의 근본적인 과제는 영혼과 삶을 위한 해방적 사역에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소명에 대한 선언은(눅 4: 18-19)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 억압받아 감옥에 같인 이에게 자유를, 가난한 이에게 자유의 복음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는 복음은 다름 아닌 억압과 가난과 캄캄한 절망으로부터의 구체적인 해방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억압받은 이들이 있다면, 가난한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방의 과제는 정황에 따라 지체될 수는 있을지언정 폐기되거나 무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 신학적 작업에서 출발한 류터의 신학적 여정은 그 신학의 장을 넓혀 남미 해방과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억압, 인종차별,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신자유주의가 또다시 새로운 경제 제국주의적 지배를 불러오고 있는 현실 비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이렇듯 해방신학은 신학과 현실세계간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함을 지키는 사역의 기초를 놓고 있다. 만일 해방신학이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도래하여 억압과 소외와 착취가 사라지고 더 이상 가난과 억압에 의하여 고난을 겪는 이들이 없는 세상에 우리가 머물거나, 아니면 복음의 해방적 능력을 상실한 기독교로 전락하거나 양자 중의 하나의 경우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류터는 그녀의 논문을 통하여 해방신학의 현대적 존재이유를 밝히고 그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존재증명을 밝힌 것이다.
Tuesday, March 18, 2008
Rosemary Ruether and Her Liberation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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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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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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