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8, 201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심학산이 있다. 진달래가 한창이더니 철쭉들도 이젠 제철을 잃어간다. 그러나 모든 나무들이 이제는 앞다투어 새싹을 티워 연초록 봄이 한창이다. 연초록 새싹들을 키워내는 저 나무들은 누구를 위하여 저리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살아있는 나무인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온 산이 새싹으로 꿈틀거린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신비하고 아름답다. 생명이란 참 신비한 것이다. 그러니 귀하다. 숲이 하루 하루마다 짙어지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숲이 궁금해진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한 벗이 세상을 떠났다. 벗의 죽음은 나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존재임을 상기시켜 준다.

생명을 독자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힘이다. 그러니 힘이 치솟는 봄이다. 생명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것이 폭력이다.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람도 생명이니..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독자적 판단과 사고,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처럼 폭력이란 생명의 힘을 빼앗는 것이어서 죄스러운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생명력을 빼앗긴 것들은 힘이 없다. 그래서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모든 폭력 이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죽음을 영원한 폭력이라고 불렀던 시몬느 보바르. 그렇다 생명의 힘을 모두 빼앗아가는 죽음이야말로 무서운 폭력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폭력을 이기는 길은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지키고, 생명들을 지켜주는 일이다. 비록 죽을 지라도 생명의 힘을 잃지 않는 길이 예수가 일러준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힘들이 모여서 생명을 복돋우는 힘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 사랑과 정의라면, 그 모여진 힘을 가지고 편파적으로 다른 이의 생명력을 빼앗거나 훼손하는 것이 구조적 폭력이나 억압일 것이다.

진화론적 신학을 쓴 존 호트는 생명세계의 비극을 이겨낼 수 없는 긍정의 힘에 기댄 신학의 어리석음을 지적했다. 알수없는 신비로 가득찬 우주 세계에서 마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섭리하고 계시다는 가설적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비극 앞에서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덕 기재로서의 하나님도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표상도 선악에 기반한 가치판단도 그저 인간의 사유의 산물일 뿐이다. 비극앞에서 무릎을 끓는 불가지적 복종은 인간이 비극을 수용하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호트는 자연현상 속에서 일어나는 종의 몰살을 보면서 무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멈추어 선다.

과학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승리와 섭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고통에 눈물흘리시는 무력하신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만이 마치 죽어가는 아이를 품에 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 곁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너머의 것들은 신앙인의 가슴으로 희망하는 것이다. 승리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전사, 혹은 영원과 빗대어 표상하는 우리의 모든 언어들은 브르디에의 말을 빌리자면 어쩌면 신앙인의 장에서 형성된 아비투스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엔 하나님의 은총안에서 나의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인간은 참으로 무력하다. 삶의 문화적 구조 속에 갇혀서 관계를 맺고 사랑하며 다투다가 마침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같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젊음, 건강, 자신을 보살필 힘...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하여 "안녕"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과정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무력한 순간에 우리 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승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가을이 오고 차가운 겨울이 오면 모든 잎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나무들은 매년 생명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리라. 계절이 바뀌는 시제에 따라 부지런히 생명력을 드러내는 저 숲의 모든 생명들처럼 우리도 살아있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남을 해하지 않고, 저마다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옳다. 삶의 계절을 따라 생명을 예찬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행복해 하며, 축제를 즐기면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생명으로서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그러니 사는 것이 짐이 되지 않도록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욕심을 털어내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