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3, 2008

Asia, the Continent of Poverty and Pppression: Asian Religious Liberation Theology



알베르또 라멘토 감독, 그는 필리핀 농부들의 인권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2006년 10월 3일 살해 당했다.



가난과 억압의 대륙, 아시아 종교해방 신학


서구의 전(前)식민지 아시아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큰 땅과 인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의미 한다. 전 세계를 6대주로 나누어 본다면 아시아는 46개의 나라들이 모여 있는 집합체이고, 전 지구 인구의 약 60%가 거주하고 있는 광범위한 땅이다. 힌두교, 이슬람, 불교, 라마교, 유대교가 자리를 잡고 있는 대륙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구교와 개신교를 합쳐 3% 정도이다. 아시아에서 비교적 기독교 문화가 터를 잡고 있는 곳은 필리핀과 대한민국 그리고 레바논 정도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기독교 인구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하게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은 서구 열강들의 식민주의 세력의 팽창과 더불어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 졌다. 그러나 아시아에는 토착종교들의 뿌리가 깊어 서구 기독교 제국의 정치 종교적 동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나라에서 기독교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아시아를 향한 서구 기독교 열강의 식민지 정책은 근 4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5년 세계 2차 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독립을 얻기 시작한 아시아 각국은 정치적으로 새로운 민족주의의 발흥과 더불어 서구 제국의 식민 지배로부터의 벗어나려는 탈식민주의적 노력이 이어졌지만, 오랜 식민지배로 인하여 독립국가로서 자생적 지도력을 상실한 면모를 현저히 드러내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군부나 특정 세력에 의한 독재적 억압통치가 이루어져 왔다.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비록 독립국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구 제국들은 아시아 각국의 군부정치 세력을 통한 지배구조를 유지하였고,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을 지향한 양대 정치 세력이 충돌하면서 각국은 오랜 내전의 고통에 시달렸다. 우리 한반도 역시 중국제국주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고, 특히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에 강점되어 36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을 뿐 아니라 1950년부터 3년간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면서 분단 고착화의 비극을 겪었다. 아시아 이곳저곳에서는 아직도 미국과 구소련간의 냉전기류 속에서 형성된 양대 제국의 이념적 팽창주의가 부딪치는 이념의 전쟁터가 되었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아니라 아직도 여러 곳은 정치 군사적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시아 도처에서 정치, 경제적 긴장과 대립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남북대결,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긴장,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캄보디아 및 베트남에서의 전쟁, 그리고 다양한 종족간의 갈등을 풀지 못하는 인도, 종교적 이유로 분단된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긴장, 거대해지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최근 미얀마, 티벳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니 종교적으로 긴장관계 속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장이 아시아다.

아시아의 인권상황
아시아 46개국 중에서 1970년대 이후 비교적 기아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의 질을 어느 정도 이루어 낸 나라들은 몇 되지 않는다. 일본과 호주, 싱가포르, 대만, 한국, 홍콩,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에 속하는 중동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아시아 민중의 다수는 절대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은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연명하는 절대빈곤의 대중이다. 비록 아시아의 몇몇 개발도상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아시아 전체를 본다면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간의 빈부격차가 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축이 되어 전 세계를 시장화하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아시아는 생산적 경쟁자가 아니라 서구 제국들의 소모적 시장이 되어왔다. 아시아 각국에서는 소수의 특권층들만이 서구적 기준에 맞는 생활양식을 즐기는 한편 대다수의 민중은 절대빈곤과 영양실조에 방치되어 있다. 식민지배 구조 속에서 서구 국가의 대외정책에 의하여 비호를 받아 온 아시아 각국의 정치권력들은 자국민의 생존과 삶의 질 향상보다는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데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극우파들이 정권을 잡은 지역에서 반군들은 좌파로 몰리고, 좌파들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는 우파들이 반사회적 인물로 지목되어 억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각국에서 민중들은 독점적 권력과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사법부와 군부 그리고 자본가들로 인하여 법정적 정의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정의의 부재를 노골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아시아인권사무소에서 발간한 아시아 11개국에 대한 2007년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우상화된 권력의 온상이며, 무수한 대중들의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권력은 권력집단을 위하여 존재할 뿐 대다수의 아시아 나라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도, 자유와 평등이념도 그리고 복지사회에 대한 희망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대신 통치자들의 철권적 억압이 있다. 2006년 필리핀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는 이유로 무려 750명의 인권운동가들이 영장 없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다 죽거나 살해당했다. 2006년 내가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 교정에서 만났던 나발타 목사(E. Navalta)는 당시 정부군에 의하여 반군지원자로 지목을 받고 피신 중이었다. 그가 섬기던 교회의 평신도 대표는 정부군에 끌려가 죽음을 당하고 그의 아들과 아내도 체포되어 어디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피신해 나와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의 Sanctuary 프로그램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군부 세력은 영장 없이 체포, 구금,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시아 도처에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인식의 수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낮아 그 어디에서도 인권 보호를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저항하거나 비판하면 권력자에 의한 명예훼손 형사고소가 이루어져 합법적으로 구금, 고문을 겪는다. 이런 고소사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2005년 인권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무수한 대중들의 고난과 고통에 연대하여 인권운동을 벌리는 이들을 향한 협박, 언어 및 물리적 폭력, 강제실종, 그리고 비사법적 살인 등이 저질러지고 있다. 인도의 경우 공권력에 의한 잔인한 비인도적인 고문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문의 방법으로는 주먹과 장화, 긴 대나무 지팡이, 나무 손잡이가 달린 가죽채찍, 쇄 혁대장식이 달린 가죽 혁대, 소총 개머리판을 이용한 구타, 팔목이나 발목이 묶인 후 매달린 채 구타,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몸 전체가 천장에 달린 채 구타, 손을 짓밟거나 망치로 치기, 전기충격 사용, 인두로 살 지지기, 펜치로 손톱 뽑기, 다리를 강제로 180도 벌려서 고통주기...“

아시아 각국에서 공권력에 의한 공포정치로 인한 인권침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인도적인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는 정치폭력, 공권력 남용과 불처벌 특권, 원시적 수준의 사법제도, 정치적으로 동기화된 사법기관, 인권기관의 부재, 여성을 향한 심각한 수준의 폭력과 차별,그리고 재판 없는 임의적 살해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폭력적 사회에서는 권력 오용이나 남용에 대한 비판자들이나 인권옹호 기관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2005년 인권위원회 방화사건은 이러한 정황을 드러내 준다 할 것이다. 유럽에서 1940년대 홀로코스트가 있다면 대만에서는 1950년대 백색테러가 있었고,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1960년대 내전이, 한국에서는 1950년대의 한국동란 그리고 1980년 광주항쟁이 있었다.

아시아 신학의 컨텍스트
프리만 나일(Preman Niles)은 아시아 현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응답의 컨텍스트에 대하여 몇 가지 주요한 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이 요소들은 복잡한 아시아적 상황을 그려주고 있다. 그것들은 ①종교 문화적 부활, ②인종차별과 압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 ③ 마르크스주의의 도전, ④ 기술과학 발전의 압력, 그리고 ⑤ 독재정권과 자유의 제한이다. 서구 유럽의 문명사 속에서 성장해 온 기독교 사상이 아시아의 다차원적인 정황을 직면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기독교인 자체의 동일성과 더불어 문화적 상관성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즉 아시아적 상황에서 아시아 각 종교들과 기독교와의 상관성문제, 종교 정치적 억압과 차별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 기독교 선교와 더불어 지속되어 온 정치적 억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도전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 서구사회의 발전 모델을 따른 개발이데올로기에 대한 아시아 기독교인들의 입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랜 정치적 억압의 종식을 위한 투쟁에 관한 아시아 기독교 신앙의 응답과제 등이 직접적인 이슈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 신학을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거대한 아시아의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신학적 해법을 내놓을 수 없었다. 따라서 지난 50년을 살펴보면 다층의 아시아 현실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응답들이 나타난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응답들은 대부분 신학자 자신이 처한 정황에 대한 실존적 응답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전체 아시아의 해방신학적 흐름을 규명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아시아 해방 신학을 논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신학 사상을 연구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유형별로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네델란드 캄펜대학의 큐스터 폴커(Kuester Volker)는 아시아 신학의 유형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었는 데, 하나는 아시아의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적 정황에 관심하는 아시아 해방신학이라 칭한다면 다른 하나는 대화의 신학을 주장하는 문화종교 신학이다. 전자가 가난과 억압을 신학적 주제로 삼고 민중고난의 역사를 인간의 존엄함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 한다면 후자는 문화종교적 다원상황에서 문화적 가치를 재건함으로서 아시아인의 동일성을 신학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에 관심한다.

아시아 해방신학이 예수의 삶을 기독론의 핵심으로 읽는 반면 아시아 종교신학은 아시아적 종교성에서 신학적 유비를 찾는다. 이런 점에서 한편은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을 지향하고 있다면 다른 한 편은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을 지향한다. 아시아 해방신학은 아시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해방적 사역을 드러내는 데 반해 아시아 종교신학은 아시아 문화와 종교 속에 임재한 하나님을 증언하려는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적 맥락 안에서 그리스도는 해방자로 드러나거나 하나님의 여러 모습 중 한 측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문화와 종교 신학이 신학적 담론을 통하여 아시아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것이었다면 결국 그것은 아시아의 가난과 고난의 깊은 원인이 되어 온 아시아 종교의 억압적 내면을 보지 못한 오류를 지닌다. 또한 아시아 해방신학이 종교 문화적 해석학적 지평 없이 아시아의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였다면 그것은 아시아 종교가 지닌 해방의 역동성에 대한 진지한 이해 없이 이루어져 또 하나의 오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일련의 아시아 해방신학의 흐름을 통하여 아시아 종교와 해방 이라는 두 축이 아시아 신학 안에서 상호보완적인 해방의 지평을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아시아 신학의 근본 성격이 서구 종교의 콘스탄틴적인 해석학적 지평으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아시아의 구체적인 현실, 즉 사회 정치 경제적 현실로부터 지극히 적은 자들과 연대와 구원을 나누는 신학적 과제를 명료하게 지시하고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 종교해방의 과제를 수행하는 신학과 아시아 종교해방이 아닌 콘스탄틴적, 혹은 서구적인 호전적 선교를 신학의 주된 과제로 이해하는 신학은 마땅히 대별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종교 해방신학
아시아 신학은 서구 세계와는 달리 기독교 문명이라는 공통된 문화적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양한 국가들이 모여 있는 유럽에서 기독교가 그리스 로마 문화권 안에서 형성된 법질서와 도덕론을 받아들여 기독교 세계를 구성하였던 사례에 비한다면 아시아는 너무나 다양한 종교적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와는 유리되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이슬람, 회교, 유대교, 불교, 유교, 도교 등이 각 지역에서 주축이 되는 종교문화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서 아시아는 종교적으로 다원적인 세계이다. 이 종교 다원적인 세계에서 소수자인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인들과 공존하며 인간의 해방과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정치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일 뿐 아니라, 아시아 기독교인 개인의 자기 정체성을 규명하는 일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서구 기독교 신학이 어거스틴 이후 로마 문명권 안에서 절대 다수자의 종교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스스로를 세계의 구원 세력으로 신앙고백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있어서 단일 종교문화권의 논리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다원적인 종교들 속에서 소수자의 기독교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문화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한 평화를 위한 공동기여의 발판을 마련하거나, 유일무이한 기독론을 앞세워 정복주의적인 호전적 선교 운동을 벌이거나, 아니면 기독론적 해석지평을 넓혀 다원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창하거나, 혹은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을 흐리게 함으로써 하나님 중심의 다원적 종교론을 창안하는 방법 등이 있다.

첫째 방식이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화방식이라면, 둘째 방식은 근본주의적 선교신학이고, 셋째 방식은 포괄적 그리스도론이며, 넷째 방식은 신중심적인 초점을 가지고 기독론의 상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각기 장점이 있는 반면 심각한 비판과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기독교 신학의 교리적 배타성이라는 그물에 걸릴 때 그 작동 능력을 잃고 만다. 더구나 이런 신학적 논의는 아시아의 가난과 고난의 관점에서 본다면 탁상공론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성서적, 계약사상적, 예언자적 전통의 빛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축으로 한 비폭력 평화주의적인 기독교 복음의 본래 동기를 회복시키지 않고 지배신학의 연장선상에서 종교 신학적인 대화와 타협과 화해의 신학은 실제적인 행동양식을 유발하지도 않을 뿐 더러 종교 전통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거나 혹은 상대의 윤리적 약점과 문제들을 고의적으로 간과하는 에큐메니칼 거래 동기에 좌초될 수 있다. 서구에서 지배 종교가 된 기독교가 아시아의 종교성과 가난으로 육화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 비로소 아시아 해방신학은 선교 방식과 대화의 틀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정치 경제적 원리들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종교대화의 신학은 신학의 바벨론적 포로를 “문화적 포로”로 이해한 흔적이 역력하고, 그 바벨론적 포로 상태가 주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토착종교와 문화의 가치를 재해석함으로써 서구 신학적 개념을 새롭게 유도해 내거나 형성해 내는 데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콘스탄틴적 신학의 폭력성을 그대로 답습 모방하고, 기독교적 우월성과 승리주의에 버금가는 아시아적 가치를 사회 지배계층에 이식하는 작업을 결과했다. 이런 작업은 객관적인 사회과학적 데이타의 비교 없이 수행되어 매우 주관적인 복고주의를 초래하기도 했고, 서구와 동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본질론적인 대립의식을 초래하기도 했다.

송천성은 대만 타이난 신학대학의 학장을 역임하고 미국 신학대학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대만의 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신학적 사색을 한 데 비하여 윤성범은 한국의 군부 독재의 감시의 그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학 사상을 전개함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다. 윤성범은 바르트 개혁신학의 그늘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고난에 동참하며 정의와 혁명을 향한 강렬한 의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송천성에게 있어서 아시아의 가난과 부정의, 그리고 착취에 관한 신학적 분석과 권력 비판이 한 편에 뚜렷이 자리 잡고 있다. 신학자의 사회적 분석내용은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방향을 결과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사실 오늘날 아시아에서는 무수하게 많은 민중들이 여전히 가난과 불의와 착취 상황에 처하게 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삶의 의욕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제도, 사회적 관습,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종교적인 영성에 의해 길러진 문화적 가치들은 오늘의 인간 실존의 새로운 기반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아시아 문화와 종교가 남긴 오랜 관습과 가치들이 아시아의 빈곤과 차별, 억압과 고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시아 토착신학자들은 토착문화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 해석해 내는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그 토착문화가 가진 억압성을 지적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그들의 토착화 신학적 관심의 축이 일차적으로 아시아적 신학 형성과 그 변증에 있었지, 민중의 해방에 주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 땅에 창궐한 가난과 고난, 착취와 억압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나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이에 비해 송천성은 아시아적 기독론을 축으로 하여 개혁신학적 비판의 관점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에서 고통과 고난의 종말을 내다보는 희망의 미래를 본다.

천민 연대의 신학
아시아 해방신학은 한국의 민중 신학이 그러했듯이 아시아 신학의 주류는 사회의 최하층민들과의 연대를 신학의 주제로 받아들였다. 인도의 니르말(Arvind P. Nirmal)의 달리(Dalit)신학, 구리바야시(Teruo Kuribayashi)의 일본의 천민(Burakumin)신학, 한국의 서남동과 안명무의 민중 신학 등은 그리스도론을 비신화함으로써 내재적 기독론에 이른다. 그리스도는 유일화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사건으로 존재하며, 오늘의 민중, 천민, 달리들과 더불어 존재한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기독론의 탈신화화를 과감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가진 서구 신학에 대한 의심에 크게 기인하기 때문인데, 이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일회적인 교리화된 그리스도는 콘스탄틴 기독교가 지향한 지배세력의 도구가 되었고, 오히려 억압받고 있는 민중, 오클로스, 달리, 부라쿠민을 외면하는 정치 경제적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해방 신학은 고난 받고 천대받아 온 이들 속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고백함으로써 천민과 민중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고 그들의 인권을 회복시킨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주체(민중)들이며, 고난의 관을 쓴 그리스도(부라쿠민), 기존질서 유지적 기능을 해 오던 신학에 대한 개혁적 반신학 운동의 주체(달리)이기를 주장한다. 이 신학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론적 초점을 가지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을 해체한다. 그 대신 고난 받는 민중들 속에서 고난 받는 하나님, 그리스도의 현존을 고백한다. 콘스탄틴 기독교가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천민의 신학들이 아시아 해방신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데루오는 스스로 자신의 아버지가 백정출신이며 어머니가 기생출신이었으므로 백정과 기생사이에 태어난 자신이 겪는 다층의 차별 경험을 통하여 일본 사회의 천민인 부라쿠민의 경험을, 그리고 차별받고 있는 이들 중에서 한 단계 더 차별을 받는 여성천민의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을 가시관을 쓰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의 ‘가시’를 통해서 스스로 고통을 당했을 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가시’에 찔림을 당하는 무수한 무언의 사람들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의 끝날에 신앙인은 이러한 피차별민 안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함께 ‘가시관’을 쓰고 있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심판받는다. 고통 받지 않은 자신을 방향 전환하여 고통 하는 자와 고통하고, 고통 하는 자의 투쟁에 참여하는 회심의 삶을 살아왔는가가 물어진다.”

천민연대의 신학은 아시아의 고난 속으로 육화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증언을 통하여 천민들의 가난과 고통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읽혀지고, 아시아 고난의 잿더미 위에서 하나님의 고난(つらさ)을 이해하게 했다. 이렇듯 아시아에서 하나님은 승리와 영광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아니라 굶주리고 고난을 겪으며, 전쟁의 포화에 의하여 아픔을 겪는 이들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낮아지고, 고난을 겪으며, 버림을 받은 예수의 고난이 아시아인들의 고난에 겹쳐지고, 하나님의 고통이 울려나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들은 가난과 고난을 겪고 있는 아시아인들의 이웃이 되기위하여 영광의 그리스도론을 떠나 고난받는 그리스도론을 형성해 왔다. 아시아의 민중들의 고난과 가난을 그리스도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피에리스의 아시아 종교해방신학
스리랑카의 예수회 사제인 피에리스(Aloysius Pieris)는 다른 아시아 신학자들과는 달리 가난과 고난의 문제를 독특하게 그의 신학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아시아의 가난과 해방의 문제를 논의한 메델린 회의(1968)와 푸에블라 회의(1980)의 의제들을 검토하면서 제 3세계 해방신학의 연장에서 아시아의 종교 해방신학을 제시했다. 그의 출발점은 기독교가 아시아 전체인구의 3%에 지나지 않는 소수무리로서 절대 다수의 다양한 종교인들과 더불어 아시아의 가난과 고난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데 있다. 그는 아시아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된 바 서구 기독교의 자유주의적인 개발 이데올로기, 사회주의적인 혁명적 대안이 있지만 그 양자는 아시아의 가난의 영성을 거부하는 길이며, 맘모니즘에 아시아의 영성을 팔아넘기는 길이라고 보았다.

개발과 혁명이라는 두 대안은 필연적 귀결로서 아시아의 빈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아적 영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며, 또한 한 편은 맘모니즘의 노예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다른 한 편은 유물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대안은 가난의 영성을 통하여 맘모니즘과 싸워온 아시아인의 깊은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난을 악으로 보는 막스주의적 견해는 종교성의 깊이를 아편으로 간주하였고, 서구 자본주의의 개발 이데올로기는 가난 속에서도 지켜온 아시아의 영성을 경멸하고 비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방법은 아시아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해방의 지평을 열 수 없다고 피에리스는 생각한다.

성서적으로 본다면 경제적 가난은 비참함이며 저주이기도 하지만 복음적인 자발적 가난은 축복이기도 하다. 예수도 돈과 권력과 명예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의 영성으로 그 유혹을 이겨냈다. 따라서 성서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아시아 종교해방신학은 아시아인들의 종교성과 가난으로 육화되어야만 한다고 피에리스는 주장한다. 이 육화의 신학은 맘모니즘을 앞세우는 개발과 권력을 앞세우는 지배의 신학이 아니라 해방을 향한 육화와 겸비의 신학이다.

피에리스에 따르면 종교는 지배종교와 해방의 종교로 대별된다. 지배종교는 억압과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해방의 동기를 억압한다. 이 종교는 미신적인 가르침, 종교적 제의를 강조하고, 교조주의에 기반 하면서 타세계적인 초월적 구원을 설파한다. 반면 해방의 종교는 권력과 탐욕의 카르텔을 만들어내는 맘몬 숭배의 죄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과 비판을 담고 있고, 죄의 구조를 변혁시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지배종교는 가난의 문제를 저주라고 규정하고 이를 맘모니즘의 확대과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해방의 종교는 강요된 가난은 인간의 존엄성을 항구적으로 침해하는 악이라고 규정하고, 맘몬숭배로부터 해방되는 자의적 가난에의 참여를 통하여 연대와 해방을 이루어 냄으로써 극복해 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발을 통한 빈곤 퇴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불러올 뿐 아니라 문화 전체를 맘모니즘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며, 이런 문화는 결국 아시아의 고난 그리고 가난과 더불어 아시아인의 심성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가난의 영성을 외면하게 함으로써 아시아인의 종교적 실존을 소외시킨다. 그러므로 예언자적 운동을 결여하고 있는 지배종교는 아시아인의 종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아시아의 정신과 영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종국에는 아시아인들을 맘모니즘의 노예로 복속시킨다는 것이다.

연대와 참여의 신학
피에리스는 절대 다수가 불교적 심성을 가진 스리랑카인들의 종교적 심성은 그들의 사회적 공동성을 유지해 온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치 서구의 수도원주의와 방불한 승려/사회 공동체는 소유를 포기한 승려들이 소유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소유를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데에서 연대와 참여와 공동성의 가치를 가르쳐 왔다고 분석한다. 한편에서 소유의 포기,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소유의 나눔을 통하여 공동성과 유대를 지키는 동시에 맘모니즘의 유혹을 이겨내고 삶의 공동성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피에리스는 바로 이런 맘모니즘 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아시아 종교해방의 지평을 여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아시아의 맥락에서는 ‘부’의 반의어는 ‘가난’이 아니라 소유 또는 인색이며, 바로 이것들이 부를 반종교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제일 관심사는 가난의 제거가 아니라 맘몬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정체가 잡히지 않는 어떤 세력, 각 사람 안에 또 인간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부를 반인간적, 반종교적, 압제적 사물로 만드는 세력이 맘몬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서구 역사 속에서 제국과 식민지배의 틈 속에서 오랜 동안 습득한 “지배종교”로서의 특질을 내세워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라 아시아의 깊은 영성에서 먼저 “배우는 종교”가 되기를 권한다. 이런 종교가 되려면 자발적 가난에로의 참여, 가난한 대중 속으로 육화하는 신학, 즉 아시아의 종교성과 가난의 세례를 받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배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버리고 예수의 종교로 돌아가는 길이다. 마치 예수처럼 스스로 낮아지고 자기를 버리고 비움으로써 자기를 찾은 것처럼 아시아적 영성은 스스로 비우는 자리에서 경험되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야의 예수가 부와 권력과 명망에로의 유혹에 정면으로 대결하였을 때 그는 그의 영성을 통하여 단호히 포기함(detachment)으로써 그것들로부터 해방을 얻었다는 사실을 피에리스는 중시한다. 그러므로 참된 예수의 영성은 아시아의 영성과 만날 수 있고, 특히 가난한 이들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영성이라는 특질을 가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영성을 가질 때 비로소 억압적 권력과 탐욕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맘모니즘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난다. 이 해방 없이는 아시아의 가난은 계속 강요된 가난, 아시아인의 인권을 항구적으로 해하는 가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피에리스에게 있어서 가난의 반대는 부유함이 아니라, 소유욕이며 나누지 못하는 인색함이다. 소유에 집착하여 인색해지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도 이룰 수 없는 까닭이다.

피에리스는 개발과 과학적 발전을 통하여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논리는 아시아의 서행(徐行)적 진보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적 진보가 물적 확대와 팽창을 불러와 가난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자의적 가난에서 얻는 자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문명은 끝없는 욕망충족과 향락주의에 의해 좌초되거나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배가 아니라 연대와 참여, 나눔의 실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로부터 배우는 나눔의 영성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모든 강요된 가난을 낳는 맘모니즘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의 종교해방신학
제 3세계의 특징은 가난과 억압에 있다. 3세계 지역은 대부분 서구 기독교의 식민지배지였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기독교의 성장과 팽창이 일어났지만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주류 종교가 된 나라들은 필리핀과 한국이다. 필리핀은 가톨릭이 한국은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피에리스의 아시아 해방 신학은 소수자인 기독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아시아의 종교와 고난을 직면하는 데에서 형성되었다. 이 신학은 아시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아시아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영성의 깊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피에리스의 신학은 서구 기독교로부터의 탈식민화된 신학적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주류세력이었던 기독교가 그들의 막강한 제국주의적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이웃들을 향하여 요구했던 개종, 추방, 말살 정책은 아시아 기독교에 의하여 수용될 수 없다는 관점에서 피에리스는 아시아인들의 가난의 영성과 고난에로의 연대를 나누기 위하여 아시아 종교 속으로 육화할 수 있는 아시아 해방신학의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필리핀과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의 활성화와 더불어 기독교 선교의 팽창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 졌고, 이웃 종교를 향하여 개종을 요구하는 선교운동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동일한 과제로 이해하고 있다. 서구의 부유한 나라들을 선망하며 가난을 수치로 이해해 온 가르침은 삼박자복음의 성령운동으로 민중들 속을 파고 들어가고 있기도 한 것이다. 피에리스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신학운동은 아시아 가난의 영성을 비하하고 맘모니즘의 노예가 되는 길이다.

아시아의 싱가포르, 대만,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1960년대 이후 권위주의 정권을 통한 개발독재를 통해 상대적으로 빈곤으로부터 탈출한 나라들이다. 그 결과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비기독교적 삶의 양식을 벗어버리고 서구적 생활패턴의 한 양식으로서 기독교를 수용한 큰 무리의 계층이 형성되었다. 개발도상국이 가졌던 빈부간의 경제적 갈등과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에서 민중을 주제로 한 신학은 편만한 민중의 한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성격을 가지지만 아시아 고유의 영성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의 실체화에 빠지기도 했고, 민중과 지배자의 계급성을 극복할 대안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피에리스의 종교 해방신학은 개발주의로 인하여 민중을 잃어버린 민중신학의 공허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중 예찬에 머물다가 개발주의와 맘모니즘의 유혹에 빠진 민중 문제를 지적하지 못한 까닭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시아 대륙은 여전히 극심한 가난과 고난의 짐을 진 민중들의 땅으로 남아있다. 이런 현실에 더하여, 1990년 이후 불어오는 세계화 바람과 인도와 중국의 개발붐은 향후 10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아시아의 면모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볼 때 아시아를 덥쳐오는 거대한 맘모니즘과 개발주의의 힘과 맞서기에 피에리스의 종교해방신학은 이상적인 삶의 공동성의 지평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회 정체적 현실속에서는 매우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에서도 서구제국주의의 방법을 이어받은 적은 제국들이 형성되고 있고, 맘모니즘에 의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민중예찬과 가난예찬의 방식으로 이 두터운 가난과 차별의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문한다.

따라서 새로운 아시아 종교해방신학의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지난 400여년의 서구 제국들에 의한 식민 지배를 벗어내기 위한 오리엔탈리즘 비판이론과 탈식민 담론이 아시아 신학 담론 안에 적극 수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제한된 지구자원을 지난 한 세기 동안 소모해온 서구의 소비문명에 대한 비판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배와 성장이데올로기를 신학의 중심축에 받아들인 콘스탄틴 기독교에 대한 자성적 비판 없이 진행되는 신학담론은 식민지배를 통하여 풍요를 누려온 서구의 착취적 기독교 문화를 모델로 삼아 그 확장과 팽창을 하나님의 뜻으로 읽는 오류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콘스탄틴 기독교가 가르쳐온 지배와 정복으로 이끌어가는 기독교 승리주의보다 콘스탄틴 기독교에 억눌려온 탈 교의적인 평화교회 전통과 신학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전통은 피에리스의 종교해방신학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독교의 본유의 평화주의적 유산인 까닭이다.

나오는 말
이 글을 쓰면서 아시아 신학의 광범위한 내용을 좁은 지면에 담기에는 논자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수한 아시아 신학자들 중에서 소수만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아시아 극단의 가난과 다양한 차별과 억압의 현실을 다룬 신학을 축약하여 소개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보다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전통신학의 지배와 차별 문화를 비판하고 서구 식민제국의 정치 경제적 회심을 요구하면서 정의의 영성을 통한 새로운 세계질서 이론을 제시한 발라수리야(Tissa Balasuriya)는 그의 지구 신학(Planetary Theology)에서 그동안 신학이 급진적 정의의 영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학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의의 영성을 상실한 신학이 문제이고, 정의의 영성의 부재가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다움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강요된 가난과 억압 이야말로 하나님의 부재 증명과 같은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의 영성이 결핍된 신학은 가난과 억압의 정황에 침묵하고 묵인해 온 차가움(apartheid)의 신학이다. 그러나 가난과 억압의 제거를 신학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던 메델린, 프에블라 회의가 결의한 신학적 방향은 따스함(compassion)의 신학을 의미한다. 아시아 종교해방신학이 한결같이 증언해 온 것은 강하고 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가난과 억압에 신음하고 있는 아시아 민중들과 더불어 고통하고, 가시관을 쓴 하나님은 동정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자기를 버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아시아의 하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땅에 와서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한 하나님이시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 제기한 초기 주제처럼 아시아 해방신학에서도 정설(orthodox)이 아니라 정행(正行, orthopraxis)에 더 강한 초점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 종교해방신학은 전통신학이 로마 제국주의의 뜰에서 키워온 교의적 체계도 버리고, 심지어 종교재판소에서 무수한 이단을 정죄하는 데 기준이 되었던 크레도도 넘어선다. 그것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난과 고난으로 신음하는 지극히 적은 자들의 이웃이 되기 위하여 콘스탄틴 기독교의 정설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이 길은 “이 세상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없다”고 주장하는 바울의 주장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라 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가르친 예수의 말씀을 청종하는 길이다. 마태복음 25장, 예수의 마지막 설교에서 드러난 비밀은 지극히 적은 자를 차별 없이 섬기는 따스함의 신학이 옳다는 것이다. 아시아 종교해방신학은 맘모니즘에 정신을 팔지 않으면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이 길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