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나는 마크 엘리스 교수와 함께 전주 평화동 성당의 주임신부이신 문규현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 분이 엘리스 교수를 전주 신학원에 강연자로 초청했기 때문에 통역자로 함께 자리를 했지만 사실 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20년 전 분단의 선을 넘었던 문신부님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학기 내가 강의 할 한반도 분단 상황에 대한 기독교 사회 윤리학적 연구를 위한 "기독교와 통일운동" 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주 역에 도착하여 개찰구를 바라보니 문신부님은 햇볓에 그을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마치 오래 전 어느 섬에서 사목을 하고 계시던 호인수 신부님을 부둣가에서 만날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말끔한 학자의 얼굴도 아니고, 기름끼 흐르는 부유한 목회자의 얼굴도 아니었습니다. 촌부와 다름없이 검게 그을린 얼굴과 세련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고 계셨지만 그 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깊고 넓었습니다.
그 분은 1980년대 말 미국 메리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분단상황의 한반도로 삼았고, 민족 통일의 길들을 모색하고 있던 중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당시 국가 보안법을 어기고 북으로 올라 갔던 분이 문익환 목사님, 그 결과로 감옥에 같혀 계셨던 때 였습니다. 국가 보안법의 부당함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그 분은 민족통일이 국가 보안법에 우선한다는 문익환 목사님의 신념에 동조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러한 반민주적인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이 사건은 남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고, 찬반 논쟁들이 일어 났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은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신부님을 빨갱이나 친 공산주의자로 단순 매도하는 격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민족 통일에 대한 그 분의 비젼을 물었더니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문목사님은 문신부님에게 "통일은 이미 내 가슴에 와 있어. 이제 통일을 살아가는 거지..." 그의 가슴에도 민족의 통일이 와 있고, 그는 이미 통일을 살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주 신학원에 들어 섰을 때 약 200여명의 신학원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전주 신학원은 가톨릭 평신도 훈련원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약 700명의 재학생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엘리스 교수의 강연은 바티칸 2 이후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대화와, 종교와 권력이 손을 잡을 때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이해, 그리고 종교 공동체안에 머물고 있는 정통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진보주의자들, 그리고 양심적 신앙인의 특징을 이해시키는 데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나는 통역을 하면서 전주지역 가톨릭 교인들이 보안법을 고의적으로 어기고 북한으로 올라가 당시에 대학생 대표로 북한에 갔던 임수경씨를 동반하고 판문점을 경유하여 걸어 내려온 문신부님을 마음으로 퍽이나 존경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이런 행위를 한 목사가 어느 감리교 연회에서 평신도 신학교육의 자리에 유태인을 불러 강연을 시킬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 보았지만 아마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신부님은 3년 4개월을 그 일로 감옥에 갇혀 살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우리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둘러 보았습니다. 1980년 광주의거 당시에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잠들어 있는 곳, 나는 그 곳에서 윤한봉씨의 무덤도 찾아 보았습니다. 마침 미국에 거주하는 한 변호사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 무덤가에서 옛 일들을 함께 회상했습니다. 광주의거 이후 공동묘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하고 사망자들을 모셔 두었던 자리는 후일 정주가 주도하여 만든 광주 망월동 묘역 뒷 편에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만들어 준 자리로 이전을 하지 않는 채 초라하게 거기 더불어 묻혀 있었습니다. 민족의 자존과 민주와 평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담긴 플란 카드들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습니다. 정부가 만들어 세워 놓은 탑과 고르게 정리된 망월동 묘역에 비하여 이곳에는 많은 젊은 이들이 삼삼 오오 찾아와 외롭거나 휘휘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젊은 이의 주검 앞에서 나를 불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전주 시내 어디를 가도 문신부님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습니다. 한 때 문신부님의 선생이었던 엘리스 교수는 매우 고무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문신부님을 오히려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토요일 밤 우리는 전주 시내에 모인 촛불 집회 소식을 간간히 들었습니다. 주일 오전 나는 문신부님이 주임신부로 계신 평화동 성당에서 엘리스 교수의 강론을 통역했습니다. 문신부님은 유태교, 천주교, 개신교 연합 미사가 되었다고 좋아 하셨습니다. 강론의 시간을 마친 후 문신부님은 천여명의 교인들에게 광우병 소고기 반대 시위에 나올 것을 권유하고, 끝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여 민족의 자존심과 건강을 지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신교 목사들이 저렇게 천여 교인들 앞에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광고할 수 있을까? 하고 또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사를 끝내고 우리는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광우병 쇠고기 이야기를 나누고, 미국 대선 후보 이야기며, 어제 밤 광우병 시위에서 일어난 일들과 160여명이 연행되었고, 서울에서는 시위가 토요일 밤새도록 이어져 주일 오전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먹지도 않는 30개월 이상된 소고기를 멍청하게 수입하기로 계약한 이명박 정부와 그 관료들의 정신과 문신부님의 정신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한 편에는 온갖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민족의 자존심이나 국민들의 건강이나, 다음 세대의 생명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천박한 정치가들, 그리고 이 편에는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생명과 평화를 지키려는 이들의 소박한 믿음을 가진 이들입니다.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일러 친북 빨갱이에게 놀아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역사는 이런 의미에서 정치가들이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사상없는 이들에 의하여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매도되는 세태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는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이 되려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신부님은 민족 앞에서, 국민의 생명 앞에서, 그리고 분단된 한반도 앞에서 명료하게 자신의 내어 놓고 주변 사람들이나 자기가 사목하는 교회의 신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려 놓은 것이 평화이고 용기였습니다. 그 분은 휴전선을 넘을 때도, 그리고 북으로 갈 때도 "내려 놓는 일" 이 먼저 있어야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전주를 떠나 올때 옥중에서 집필한 세권의 한국 교회사를 주줍어 하며 나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 책들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민족을 배반해 왔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책과 달랐습니다. 기껏해야 "내 교단이 더 좋은 교단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잔머리를 굴려 쓴 한국 교회사들에 비한다면, 이 책은 매우 정직할 뿐 아니라 이해관계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쓴 책이었습니다. 이 책들 속에서도 나는 자신을 스스로 내려 놓는 문신부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Wednesday, June 4, 2008
THe Subject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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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Cow Desease Demonstration
생명과 국민 주권 회복을 위한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입장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 14-16)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 10, 42-44)
지금 대한민국은 촛불의 함성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주권과 생명권을 무시하고 있는 권력자의 모습에 그들 스스로 저항하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와서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웃으면서 잡혀갑니다. 또 지난 25일에는 전주시민 이병렬님이 촛불 하나하나가 횃불이 되고 횃불이 활화산이 되는 그날까지 촛불을 들자고 온몸을 불사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저희 사제들은 마음이 많이 아파옵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온 국토를 파헤치는 대운하 사업,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굴욕 협상을 맺었습니다. 쇠고기 문제는 국민들의 안정과 생명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으나 이명박 정부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장관 고시(告示)를 하였습니다. 광우병은 무서운 질병으로 걸리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광우병은 30개월 이상이 된 쇠고기에서 99% 발생하며 잠복기는 5년 이상으로 최대 30년에 이른다고 합니다. 때문에 장관 고시로 이제 학교급식, 군대 급식, 일반식당에 미국산 수입쇠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식탁은 안전이 보장 될 수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백성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아픔과 슬픔, 고통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하느님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우리는 역대 집권세력들이 국민의 소리를 막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핍박한 사례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핍박해도 결국 정의의 강물은 도도히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 전반의 안전을 위하여 국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함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하느님께 처절한 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오므로 이명박 정부는 즉각 고시를 철회하고 재협상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단은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1. 현재의 사태는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정정당당한 외침을 즉각 수용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광우병 위협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하여 고시철회와 재협상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2.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불복종 평화대행진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독재정권의 형태를 즉각 중단하고 평화대행진을 보장해야만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적인 행위는 더 큰 저항이 올 것임을 경고합니다.
3.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촛불은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평화의 행진입니다. 우리는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국민들과 함께하겠습니다.
2008년 5월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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