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6, 2010

정진홍 교수의 강연을 듣고

오늘 나는 김진홍 종교학자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종교의 자리를 "위"라고 하며 아래를 향한 섬김의 본질을 가지는 것일 수 있다고 하면서 오늘의 신학교육이 일종의 신학적 다신론을 생산하고, 살아있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길을 찾기보다는 정형화되어 단순 반복되는 주술적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그리하여 우상타파적인 종교가 신학적 우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편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 나는 불편하다. 종교의 자리를 "위"라고 보는 시각은 일종의 제도화된 종교 일반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교회유형의 교파주의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최고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고, 자의적이며, 집단의 이익관계를 통하여 최고가 아닌 것이 될 때, 그리하여 소통이 불가능하고, 답답하며, 사투리적 게토 언어로 전락할 때, 그 신학은 결국 리챠드 니버가 말한 바 인간의 종족적, 혹은 집단적 이익에 매인 신을 생산하는 henotheism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학자들을 향하여 거룩한 모반이라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창세기 22장 아브라함 사건을 일러 문화적 모반, 즉 종족적 혈연적 가치에 매인 종족신적인 습성에서 과감히 모반을 감행하여 신중심적인 복종의 모습을 보인 사건이라 하였다. 칼을 들어 집착과 이익관계를 단절하는 아브라함의 비정함을 거룩한 모반의 사례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인간이 견디어 낼 수 있는 거룩함의 정도가 어디까지인가 묻게 된다. 성서적 진술이 가지는 추상성을 넘어 우리 스스로 거룩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을 만한 역사적 사례는 무엇일까?

나는 이 점에 대하여 물음을 가슴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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