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현상> 박충구의 책 읽기 5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타일러 라쉬, 김정호 옮김. 『파시즘 (Fascism: A Warning』. 인간희극, 2018. 334쪽
“모든 시대는 그 시대만의 파시즘이 있다.”
-프리모 레비
이 책은 2018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1위를 점한 책이다. 저자 매들린 올브라이트(1937~)는 체코 유대계 출신으로 그녀의 조부모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 체코의 외교관이었던 그녀의 부친은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해 있다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체코가 공산화되는 정치적 격변기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메들린은 이 격변기에 유럽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 덴버에서 십대를 보낸 후 웰스리(Wellesley)대를 거쳐 콜롬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잠시 기자생활을 했던 매들린은 미국 백악관, 미 의회, 유엔 대사에 이르는 정치가로서의 화려한 이력을 쌓은 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역사상 최초 여성 국무장관으로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행정부에서 일했다. 그녀는 미국 역사에서 63명의 남성 국무장관을 거쳐 64번째 국무장관이 되었다.
원래 이 책은 오바마 정권 이후 민주주의가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일조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나(295쪽) 예상 밖으로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그 의미가 더 깊어진 책이 되었다. 책의 구조는 모두 1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서론부와 결론부를 제외하고 14개의 장은 20세기 전 세계를 휩쓸었던 다양한 파시스트들의 출현 배경과 그 과정을 살피고 있다. 저자는 각 장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모든 시대가 그 시대만의 파시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환기시킨다.
일반적으로 파시즘은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이끌던 파시스트 당명에서 유래한 정치 이념으로 세계 1차 대전 이후 일어난 극우의 전체주의를 지칭한다. 이 이념은 자유주의를 혐오하고 독재적 전제주의·국수주의를 정치체재로 삼았다. 대외적으로는 반공(反共) 이념을 내세우며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요했고 이견(異見)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가하는 특징을 가진 정치 이념으로 알려져 있다. 파시즘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개념은 마치 파시즘이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이나 지나간 시대의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파시즘 그 자체보다 “파시스트적“인 것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을 들추어내고 있다. 저자는 파시스트를 일러 ”자신이 한 국가나 집단의 전체를 대변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타인들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폭력을 포함한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고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27쪽, 284쪽)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주변에는 파시스트적이거나, 반(半)파시스트들이 너무 많다.
저자에 의하면 파시즘을 지지하는 일반 대중의 속성은 사회 변동이 일어날 때 겪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강력한 권위, 방향, 질서(42쪽)를 요구하는 데에 있다고 보고, 파시스트는 이러한 군중의 심리를 읽고 명시적인 공동의 적을 지목하면서 분노와 증오를 조장하는 동시에 보다 나은 그들만의 배타적인 사회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고 한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부유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에 버금가는 최상의 독일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이처럼 파시스트들은 인민과 제국에게 고통을 안겨준 요인들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대중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시스트 정권들은 화려한 약속과는 정 반대의 파국을 불러왔다.
파시즘은 민주적이며 자유주의적 지도자들이 절차적 정당성을 찾는 시간을 지루해하며 유약해 보이는 지도자를 싫어하고, 보다 강력하고, 출중하며, 확신을 가진 지도자를 찾는 군중의 심리에 기생한다. 따라서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군중은 강력한 권위를 앞세운 통제된 질서에 목말라 하는 이다. 파시스트는 군중의 이런 속성을 다양한 수단으로 자극하며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고 “믿어라, 복종하라, 싸워라!”(42쪽)라고 명령한다. 이런 속성들을 살피면서 저자는 “파시즘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려는 수단”(24쪽)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러했듯이 도날드 트럼프 역시 권력 쟁취를 위해 일반 미국 대중을 향하여 파시스트적 선동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마치 미국이 지금까지 우방들에게서조차 이용만 당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망상적 주장을 펼침으로써 지지자를 규합하고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지위를 격하시키며, 전통적인 우방들과의 협력관계를 해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트럼프의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받던 74%-86%대의 신뢰도를 11-24%로 추락시켰다(257쪽)는 것이다.
“트럼프는 열린 정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제도와 원칙에 관해 거칠게 언급해왔다. 그는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적 담화를 조직적으로 비하하고, 사실을 놀랄 만큼 무시하고, 그의 전임자들을 비방하고, 자신의 정적들을 ‘가두어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주요 언론인들을 ‘미국인의 적’이라고 칭하고, 미국 선거 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국수주의적 경제 및 무역 정책들을 분별없이 선전하고,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그들의 출신 국가들을 헐뜯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종교 중 하나의 신자들을 향한 피해망상적인 편견을 키워왔다.”(20쪽)
파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권위를 대중들이 확신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정책적 오류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트럼프에게서도 드러나는 이런 측면은 분노와 공포주의를 확산하여 권력을 쟁취하려는 전형적인 파시스트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지난날 비록 미국이 무수한 과오를 범하기도 했지만 현재 트럼프가 취하고 있는 정치적 향방은 그동안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우호적인 결집을 통하여 자유를 지키고 전 지구적인 화해와 평화를 추구해오던 노선에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트럼프의 파시스트적인 정책이 세계의 파시스트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파시스트적 사고와 행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개혁가로 포장하는 트럼프는 유럽과 세계 여러 곳에서 인종차별주의적 행태를 보였던 파시스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20세기 도처에서 출현한 파시즘은 그 권력이 크면 클수록 더욱 큰 폐해를 낳았다. 파시즘의 가장 큰 위험중의 하나는 파시스트적인 통치에 대하여 군중이 “민주주의의 자유조차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상(prize)”(84쪽)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간혹 민족적 자존심을 자극하며 파시스트가 군중에게 심어주는 환상은 자기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분노와 증오로 바꾸어 다른 부족이나 인종을 향한 공격으로 일순간 바꾸는”(122쪽) 힘을 가진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1993년에 있었던 크로아티아 인들을 학살한 세르비아인 집단, 후투족 무장 세력이 르완다에서 저지른 대학살, 그리고 스페인에서 일어난 프랑코 정권의 학살 등이 그런 결과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스페인의 프랑코에서 시작하여 북한의 러시아의 푸틴, 김일성 3대 일가와 도날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그 파시시트들의 역사를 간략히 살핀다. 책을 읽는 독자는 파시스트들의 반민주적이며 반인권적인 학살의 역사가 21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소말리아, 앙골라,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수단, 아이티,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일어난 비인도적인 학살 사건들은 모두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벌린 사악함의 예증이다.
저자는 파시즘은 대중의 사회적, 경제적 불만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이 불만에는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분에 넘치게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반면에 나는 받아야 할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믿음“(274쪽)도 포함된다. 이런 믿음은 저편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불러오고, 분노와 경멸은 동류 인간의 존엄성을 간과하게 만들뿐 아니라 낙인찍고 추방하며 제거하는 동력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와 증오의 정치를 불러오는 파시즘은 민주적 절차와 이웃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교사하는 교활한 파시스트와 교사 받아 행동하는 생각 없는 파시스트 추종자들을 통해 현실에서 막강한 폭력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에 파시스트들이 뿌려놓은 씨앗이 다시 싹을 내는 것과 같은 현실을 우려하면서 저자는 세 가지 형태의 악몽을 상상한다(269쪽 이하). 첫째는 억만장자들이 파시스트 정권의 탄생을 지원하는 경우, 둘째는 파시스트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 그리고 셋째는 종교전쟁을 유발시키는 파시스트 테러 정치의 출현이다. 이 세 가지 상상은 각기 인간성을 공격하는 끔찍한 독재로 이어지기 때문에 악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독자에게 파시스트는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 무대 위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일단 정권을 장악하면 그들은 파시스트 권력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극심한 경기침체, 부패 스캔들, 인종 갈등, 더 많은 테러 사건, 암살, 연속적인 자연 재해, 또는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 예기치 못한 전쟁 등 현실 속에서 목격되는 일들이(278쪽) 군중을 자극하여 새로운 파시스트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선명한 이해를 얻게 되었다. 하나는 일반 대중이 파시즘을 선호하게 되는 역사적 계기와 그 과정, 그리고 또 하나는 파시스트가 사용하는 선동적 주장과 그 비인도적 속성이다. 이러한 속성들을 드러내면서 저자는 참된 민주적 지도자의 면모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링컨과 같은 민주적인 지도자는 “짓밟힌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도, 개인적인 잔인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스트들은 링컨을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물처럼 약한”, 그리고 “의지도, 용기도 없고, 행정 능력도 없는 공인된 실패자”라고 비난했고, 심지어 “시골뜨기, 짐승, 고릴라, 멍청이 같은 별명에 더해 이제 명백한 겁쟁이”라고 낙인을 찍기도 했다.(289쪽 이하)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는 권력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리던 인종 차별주의자들에게 대항했다는 죄로 교도소에서 그의 황금 같은 시절 27년을 보냈다. 자신을 교도소에 가두어 두었던 백인 아프리카너들을 향하여 뿌리 깊은 증오심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는 오히려 아프리카너들의 언어, 역사,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증오대신 그들과 “소통하고, 공통점을 찾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리고 가장 놀랍게도 그들을 이끌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을 이렇게 평가했다: “링컨과 만델라는 둘 다 괴물들과 싸웠다. 하지만 둘 다 괴물이 되지 않았다.”
이 책을 매듭지으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열 가지 질문을 던진다. 파시스트적인 속성을 판별할 수 있는 아홉 개의 질문과 자유 민주주의자의 특질을 드러내는 한 개의 질문이다.
-그들은 민족, 인종, 신앙, 또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존중할 가치가 없다고 암시하면서 우리의 편견을 조장시키고 있는가?
-그들은 우리를 부당하게 대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복수심을 부추기고, 우리의 불만과 분노를 키우는가?
-그들은 우리가 통치제도와 선거과정을 경멸하도록 독려하는가?
-그들은 언론의 독립성과 사법부의 전문성과 같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 하는가?
-그들은 애국심의 상징-국기, 선서-을 이용하여 우리를 일부러 대립시키려 노력하는가?
-그들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증거도 없이 사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들은 우리의 표를 얻는 단계를 넘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모든 불안을 잠재울 수 있고,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자랑하는가?
-그들은 적을 날려버리기 위한 폭력을 구실로 남성성을 과시하며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우리의 환호를 얻으려 하는가?
-그들은 무솔리니가 말한 대로 “군중은 알 필요가 없다” 그저 믿고 “만들어지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는가?
- 아니면, 그들은 우리에게 권리와 의무가 공평하게 분배되고, 사회계약이 존중되며, 모든 이가 꿈을 꾸고 성장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중심을 함께 만들어 지켜나가자고 제안하는가?(292-293쪽).
매들린은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하는 현실을 직면하여 그동안 파시스트들의 길을 막으며 싸워온 미국을 80세에 의심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이 질문들은 우파나 좌파, 보수파나 진보파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우리 안의, 그리고 우리 밖의 파시즘을 판별하고 조기에 경고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전례가 없는 북한의 3대 파시즘을 직면하고 있는 우리 안에서도 더 강력한 지도력, 뚜렷한 방향, 확고한 질서를 요구하는 소리가 적지 않다. 어쩌면 미국 사회가 트럼프를 선택한 것도 그가 강력한 파시즘에 편승하기를 원하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 아닌 편협한 정치의 폐해와 산물을 남길 것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니체가 언급한바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된다.”는 오류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혜안을 가지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독을 권한다.
- 끝 -
Thursday, June 27, 2019
박충구의 책 읽기 5
Posted by
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at
11: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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