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이 다가오면 영락없이 나는 무수한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야 한다. 논문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던 때도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즈음에는 나를 감동시키는 논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대학원 학생들이 고민하지도 않고, 공부하지 않고 쓴 논문을 읽는 일은 참으로 피곤하고 지루한 일이다. 오늘도 세 편의 논문을 읽고 심사했다. 그 중에서 한 편의 논문이 내심 새로운 느낌도 있었지만 구지 그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글 쓴 이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출처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쓴 글, 그리고 논문이 다 끝나가도록 직접인용한 글이 별로 없는 글이라서 시덥지 않은 글로 여겼다.
그런데 논문심사를 받으러 들어 온 학생은 나이 오십이 넘은 목사로서 경북 어느 지방에서 목회하는 분이었다. 논문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며 나는 그가 민중의 한을 단해야 한다는 민중신학적 태제를 변형시켜 민중의 한과 체념을 연결시키고 있는 그의 생각을 발견했다. 한을 풀어야 한다고 여겼던 종래의 민중 신학자들의 투쟁적 단(斷)에 비하여 그의 주장은 단 보다는 “삭힘“이 더 옳다는 것이다. 절망과 원과 한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서 그것들을 삭혀지고 발효되어 해학이 되기도 하고, 푸념이 되기도 하고, 노랫말이 되어 허공에 떠돌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용주 선생의 글을 읽다가 “잘난 체”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느꼈다. 등자락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글이다. 나의 뒷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 역시 “잘난 체”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율배반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런 “체 함”에 대한 혐오를 주고받는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 동료 교수 한 분이 은퇴를 몇 년 앞당겨 명예 퇴직을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교수생활이 “재미없다”고 했다. 그 말에도 깊은 공감이 느껴졌다. 요즈음에 교수생활을 하려면 제자들의 안면몰수 하는 태도를 참아야 하고, 모욕적인 공개 대자보 정도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얼마 전 교단 홈페이지에서는 학교를 떠난 지 10년도 채 못 되었을 젊은 목사가 나를 향해 “그대가... 아는가?”라는 표현을 던지기도 하고, 얼마 전 교정에서 본 듯한 이름들이 교단 홈페이지에서 안하무인 무례한 글을 던지기도 한다. 간혹 나 역시 비판과 비난을 던지는 이들의 이름에 겹치는 “잘난 체”하는 모습에서 나는 정의와 진실로 포장된 비인격을 느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사소한 이득을 위하여 인간성을 배반하는 진면목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요즈음에는 정의와 진실을 수단삼아 동료를 얽어매고, 도덕과 윤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나는 옳고 그름을 잰체하면 주장하는 잘난 체 하는 이들의 경박한 진실이 동료 인간을 악마로 치부해 버리는 주장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편은 도덕적 인식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라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본 훼퍼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과 번영과 평화와 행복을 선물해 주는 마술방망이 같은 하나님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버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없이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선 존재처럼 사랑과 책임을 걸머쥐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용주의적 하나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겹겹이,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과 고통과 멸시를 안고 살아온 노예들과 하층민들, 그리고 이 사대를 살아가는 제 3세계의 민중들에게 있어서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유한 나라의 하나님은 가난한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부유한 나라의 하나님 없이 가난한 나라의 무력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은 그릇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이 빈 껍질과도 같이 텅 빈 것이지만 마치 가득 차 있는 것 같이 여겨진 까닭이다. 우리는 이렇게 빈 사랑의 껍질을 안고 살아갈 때도 있다. 나는 이런 것이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아닌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고 평생을 살아 온 삶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모든 것을 걸고 바치며 사는가. 그런데 그런 사랑이 기만을 당하고, 상대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 되었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허무의 골을 남긴다. 상대의 사랑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삶의 한 자락이 무너지고,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것임을 안다. 이런 허무의 골은 보복할 수도,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그저 삭힐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간을 향하여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하나님이란 보복과 정의의 심판을 선포하려는 지배자가 아니라, 도무지 메울 수 없는 무의미와 고통,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을 향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을 건네는 하나님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철없는 이들은 이런 하나님을 일러 “나/우리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규정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장사도 하고, 전쟁도 하며, 이름도 날릴 것이다. 나는 이런 모양이 종교를 그릇되게 이해한 이들이 필경 치러야 할 허무의 몸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한을 삭히며 살아가는 이들의 한을 읽을 수 있어야 참된 목회가 가능할 것 같다는 한 학생의 말 속에서 문자로 해명할 수 없는 큰 배움을 얻었다. 한을 삭히며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한 한을 품은 이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의무와 책임 또한 면제될 수 없을 것이다.
Friday, December 4, 2009
한을 삭히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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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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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9, 2009
다문화사회를 준비하려면...
이 글은 2009년 10월 8일-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개최된 <한독 민주시민교육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도표가 웹에 잘 나오지 않으니 첨부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독일 다문화사회 이행과정이 한국사회에 주는 함의
German Multiculturalism and Its Implications for Korean Society
Prof. Dr. Park, Choong Koo
Professor of Social Ethics, 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 목 차 -
1. 들어가는 말
2.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기에 처한 한국사회
3. 한국에서의 다문화성에 대한 토론과 연구
4. 한국 다문화 사회의 성격
5. 선진사례로서 독일의 다문화 사회적 경험
6. 독일 다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와 다문화 한국 사회의 미래
1) 통합정책과 다문화 정책의 거리
2) 다문화 성에 대한 확장적 이해
3) 타인종 공포증과 다문화적 애매성
7. 독일 다문화 정책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
8. 나오는 말
“다문화사회란 모든 거주민들이 그들의 성, 종족, 문화, 언어적 출처, 그들의 종교와 사회적 계급에 불문하고 동일한 법을 향유하는 일종의 구성체이다. 그곳은 다수자와 소수자간에, 내국인과 외국인간에, 그리고 국민과 비국민을 법에 따라 자별하지 않는다. 거기서는 ‘국민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모든 개별자를 차별하는 외국인 법이 없다. 거기서는 노동, 거주, 사회적 안전, 교육, 더 나아가 비록 그들이 동화되기를 꺼려한다 할지라도 노동이주자들, 망명자들, 그리고 난민들을 위하여 정치참여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1. 들어가는 말
독일 본(Bonn) 대학교의 사회윤리학자 마틴 호네커는 현대 사회를 일러 Eine Gesellschaft als totaler Verblendungszusammenhang 라고 명명한 바 있다. 모든 것이 섞여 혼재되어 있는 사회라는 의미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이해하던 인간의 삶은 국가, 국민, 국경, 언어, 민족 등과 같은 개념에 일정부분 제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우리는 새롭게 전개되는 문명사적 변화를 우리가 종전에 이해하던 방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전 지구를 일일권으로 묶어놓은 교통과 소통방식의 발달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고 있으며, 세계 도처로부터 국경과 인종과 언어를 넘어 이주하는 노동인구의 증가로 인해 전통적인 문화적 단일성과 통일성을 해체하고 급격히 다중문화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일러 나는 종교의 후견 아래 미성숙한 영역으로 이해되던 세속사회가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이 가르쳐온 해석지평을 넘어 합리적 이성의 자율성을 획득함으로써 근대세계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던 16세기 이후 서구 정신세계가 그 패러다임을 바꾼 변화와 유사하게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종교, 국가, 민족, 사회 등의 제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에로의 이행을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문화 사회적 강요(ein kutureller, geselschaftlicher Sachzwang)다.
이런 사회적 강요는 후기산업사회에로의 이행기에 일어난 인구구조의 변동과 더불어 일어났다. 20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선진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여온 경제적 번영과 발전의 논리는 새로운 노동인구의 수요를 급증시켰고, 개인주의적 삶의 질을 향유하려는 사회 구성원 대중들은 저출산, 고령화의 길을 택했다. 그리하여 피할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산업현장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외국에서 유입된 새로운 노동인구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선진 사회들은 다문화성을 긍정하는 새로운 정책을 추구해 왔다. 반면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토착 문화, 종교적 전통을 옷 입고 이국 땅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또한 유입된 노동인구가 동반해온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의 삶을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본토인들의 문화적 주체 역시 혼란과 혼동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이방인의 유입으로 인해 문화 주체가 겪어야 할 혼란에 비하여, 또 하나의 서로 다른 문화적 주체인 이방인이 겪어야 하는 혼란은 더욱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것이었다.
양자의 근본적인 성격은 문화정책의 입안자로서의 주체적 시각과 그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수 객체의 시각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다수집단과 소수집단, 능동적 주체와 수동적 주체, 사회경제적 기득권세력과 취약세력이라는 편차를 낳는다. 이러한 시각의 편차에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인종 및 종교적 편견,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요소들이 더해지면 그 편차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다문화 사회란 일종의 문화적 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는 갈등 사회를 의미한다. 이런 충돌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상호 인간다움과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것이 각 사회가 추구하는 다문화 사회 정책의 중요한 목표라고 판단된다.
2005년 유엔의 국제이주기구(IOM)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약 2.9%가 새로운 문화권으로 이주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가장 외국인의 유입이 많은 미국이나 카나다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타문화권의 노동인구 유입이 가장 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가 독일이다. 독일은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였지만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을 펼치지 못하다가 마침내 1998년 이민국을 신설하고, 2000년에 신이민법을 마련함으로써 다문화 정책의 쇄신을 기해 왔다. 이런 변화는 1990년대를 전후하여 독일 사회를 단일민족 사회로 보던 시각을 버리고,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들이 설득력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케슬러(G. E. Kessler)는 다문화 사회에 대하여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언어, 전통, 종교적 고백, 가치표상, 국적, 교육, 사회화, 그리고 삶의 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실제적인 관계를 받아들이는 정치 사회학적 개념”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독일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계라면 어디서든지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보아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좋거나 싫거나와 상관없이 필경 다문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다문화 사회에로 진입단계에 처해 있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미래를 생각하면서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독일의 다문화적 정황에 대한 독일 사회의 주요 대응 정책들을 살펴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찾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다문화 현실을 진단하고 선행사례로서 독일의 다문화 정책을 거울삼아 한국의 사회의 다문화적 과제를 가늠하려 한다.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하여 이 글은 1) 한국과 독일의 정신문화적 특성을 살펴보고, 2) 다문화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독일의 다문화 정책의 제요소들을 긍정/부정의 측면에서 진단하는 과정을 통하여, 3)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단계에 있는 한국사회가 독일의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함의를 찾아보려 한다.
결론부에 이르러 본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일종의 현실적인 강한 요구(Sachzwang)임을 밝히고, 이주민의 온전한 인간성을 옹호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적 적응, 혹은 문화적 통합 과제를 넘어서 한국민들의 민주적, 인권론적 의식의 성숙을 위한 시민사회 운동의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주민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상대화하거나 부정하게 만드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와 그 우월성의 논거, 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포풀리즘, 그리고 민족주의와 연관된 종족 종교적(henotheistic) 배타성과 같은 요소들이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현대 민주주의 이론과 인권론의 시각에서 그 허구성을 비판 극복할 수 있는 세계시민적(cosmopolitan)교육과정의 중요성을 제안하려 한다.
2.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기에 처한 한국사회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컫는 용어들이 있다. 20세기 이전에 이해하던 시공간적 거리가 무한히 좁혀진 이후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될 뿐 아니라, 가속화된 경제활동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더욱 가속시켜 이제는 피할 수 없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불러들였다.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 및 후기 식민주의이론들은 이전의 세계가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던 민족, 이념, 집단적 가치에 대한 집착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이에 부수하여 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더불어 성과 사랑과 가족에 대한 재래의 관념이 힘을 잃고 개인적인 자유와 삶의 질을 마음껏 향유하려는 현대인의 요구는 급기야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 산업인력의 수요가 급감하여 국경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국제적 상품이동을 원활하게 하면서도 노동력의 이동을 억제하고 있었던 국경의 의미가 바뀌었다. 상품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노동자들의 국제적 유입도 증대되는 사회로 변모해 왔기 때문이다.
오래 동안 단일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사회에서는 유입되는 외국인들의 수가 증가하면 할수록 다양한 문화, 언어, 종교의 유입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뿐 아니라, 외국인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질에 대한 국가적, 교육적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주민과 이주민간의 공존과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당위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논의는 한 사회가 다문화적 정황에 놓이게 된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아리안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정치적 환상이 강해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에 대한 불관용 정책을 감행했던 나치 정권이 존재했던 사회였다. 하지만 전후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독일 내 노동인구의 수요가 급증하는 데 반해 전쟁의 여파와 저출산 현상으로 인하여 총 노동력의 감소가 일어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이주민의 수는 점차 증가하여 오늘날 전 국민의 8.83%를 구성하고 있다. 카나다나 미국, 호주, 스위스 등 이미 선진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과정을 겪는 여러 나라들이 있지만, 독일은 사회문화적으로 우리나라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선진사례로 살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회다. 무엇보다 여타 유럽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독일은 근대국가로의 형성기가 다소 지체되었을 뿐 아니라, 게르만/아리안 민족 이념을 앞세워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이념적인 분단을 경험한 나라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독일이 경험해 온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과정은 이제 막 다문화 사회에로 이행기에 접어든 우리에게 하나의 선진 사례로서 다양한 의미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학자들은 우리나라는 독일에 비하여 외국인들이 전 국민의 2% 미만에 지나지 않지만 유엔의 예측을 따라 2020년에는 5%, 2050년에는 21.3%의 외국태생의 이주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예측은 우리 사회가 현재 보이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이상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에로의 이행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는 미구에 다가올 변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보다 나은 다문화 정책과 장기적인 교육적 지평을 가늠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된다.
3, 한국에서의 다문화성에 대한 토론과 연구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5년 4월 노무현 정부가 ‘혼혈 및 이주민 사회 통합 지원방안,’ ‘결혼 이미자 사회 통합방안’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이다. 이런 시점에 맞추어 교육인적자원부는 종래의 홍익인간 이념을 앞세워 단일민족으로서의 우수성을 강조하던 교육정책에서 다문화․타인종에 대한 관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선회시키는 지침을 세웠다. 같은 맥락에서 법무부는 이주민들의 이민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외국인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위한 법적 지원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초기의 대응은 외국인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지만, 그 정책의 방향은 외국인의 한국사회에로의 적응과 동화를 돕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특히 이 시점부터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차원적인 정책을 강구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문화적 평등, 인권, 다양성, 다원성을 상호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으로서는 많이 미흡한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주제를 정책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8월 18일 UN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는 한국정부에게 한국사회가 다민족적 국가(multinational nation)라는 성격을 인정할 것과 이런 실제 사회현실에 모순되는 단일민족국가 이미지와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있으니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권고 했다. 이런 유엔의 권고는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사회에 동화 적응하도록 돕는다는 국가의 동화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문화사회에 대한 한국정부의 자기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에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었다.
국가의 초기 정책이 이주자들로 하여금 한국사회에로의 동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지만,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다문화 사회에 대한 선진 사회의 이론들을 탐구하며 그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더불어 다문회적 정황을 폭넓게 살핀 연구는 사단법인 ‘국경 없는 마을‘이 후원하여 펴낸『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이다. 이 논문집은 우리사회의 국수주의적인 단일민족 이념부터 이주민의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동양 사상을 통한 다문화성의 수용 가능성까지 논의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주로 계몽주의적인 서구담론의 사회 경제적 평등과 자유를 지향한 것이었다면 시민사회가 바라보는 다문화성의 요구는 사회 종교 정치적 맥락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려는 다원적 윤리론(plural ethical theory)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인정의 정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내용을 더욱 구체화시켜 다문화사회에서의 교육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연구서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 교육원에서 펴냈고, 2009년 한국사회이론학회의 계간지, 『사회이론』은 다문화 시대의 사회윤리 이론을 학술적 토론의 주제로 삼기도 했다.
최종렬은 계몽주의적 다문화주의는 근대성이 성취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자국민을 넘어서 소수민족집단에까지 확대하고자 한다고 보면서, 그 핵심은 정의, 즉 계급, 젠더, 성별, 지역,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규범이 되고 있다고 파악한다. 여기서 정의는 주로 절차적 정당성을 의미하며 그 적용범위는 보편적이어서 자신이 지닌 고유의 가치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든 개인은 이를 따라야만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출신성분이 어떠하든 모든 개인은 평등하게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삶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계급정치학, 재분배의 정치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와는 달리 계몽주의적인 다문화 이해에 대항하는 견해는 원자적 개인관을 수용하지 않고 한 개인을 문화집단의 구성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그가 속한 문화집단 안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인정의 정치학 혹은 정체성의 정치를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최종렬은 바람직한 다문화주의 정책이란 이 두 가지 이론지평을 융합하여 양자택일의 태도가 아니라 통합적 적용의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문화적 정체성을 상호 인정하는 삶의 공간이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탈영토화된 영역이다. 전통적인 사회, 국가, 민족 이해를 넘어 새로운 논리와 대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흥순은 탈식민적 관점을 응용하여 현대 식민후기적 논의의 관점에서 다원적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려 한다. 문화 정치적 우월성을 자긍하는 문화적 주체의 기준에 의하여 문화적 객체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식민주의적 사고는 문화 지배적 주체와 객체를 동시에 비인간화 해 왔다. 그 결과 탈식민적 관점에서 볼 때 식민주체는 객체를 비정체화시키는 부작용과 더불어 객체를 진정한 동료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폐쇄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런 비인간화의 과정을 상쇄시키기 위하여 다문화 사회는 정신의 탈식민적 지평을 요구하는 영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체문화의 폭력적 획일화는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파괴하게 됨으로 이런 폭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문화란 차별이나 우월성을 앞세우는 단일문화가 아니라 문화적 코드의 다중성을 인정하는 문화로서 문화간의 상호의존과 침투를 통하여 일어나는 문화적 혼종 가능성까지 긍정하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는 다중적 언어, 문화, 종교 등의 요소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 주민, 이주민, 이주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평등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가진다. 하여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차이를 상호 인정하면서 온갖 차별과 지배논리의 극복을 위한 사회정책과 시민교육이 요구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문화 사회 이론은 단순히 이주민이나, 외국인, 혼혈인만이 아니라, 주․객체를 막론하고 사회 내 소수자와 약자들의 온전한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폭넓은 문화적 환경형성을 위한 사회정책을 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다문화 정책과 교육내용이란 현대 인권론과 민주주의 이론과 내면적 일치를 이루며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4. 한국 다문화 사회의 성격
서구 사회의 다문화적 상황이 대부분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 역사와 관련이 깊고, 서구의 사회적 성격은 종교와의 결합도가 높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의 이행 정도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진척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황과는 매우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에로의 이행과정을 오랜 기간 경험한 서구 사회들에서는 정치권력의 신화적 권위는 다분히 세속화되고 상대화되었다.
이러한 서구 다문화 사회의 특징들에 비하여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정도가 과거에 비하여 비교적 높아 졌지만 아직도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한국 사회의 종교 인구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그 성격이 서구와는 달리 매우 다원적이다. 또한 전근대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이행과정 자체가 서구에 비하여 매우 늦어 전근대, 근대, 근대 이후의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특히 36년간의 일본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 사회는 다소 지체된 민주주의/인권이해에 더하여 민족주의적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념이 강할 뿐 아니라,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이념을 필두로 하는 백의민족 관념은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주의란 서구의 사회 문화 종교적 맥락과 다르고, 역사적 경험이 다르다는 결론을 낳는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다문화 정책은 최종렬의 주장대로 실질적으로는 민주의식과 인권 사상의 보편적 적용과제와 더불어 문화, 언어, 종교적 차이를 가진 이주민들에 대한 상호 인정의 정치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가지게 된다. 민주화와 인권신장이라는 한국 사회의 지속적인 과제에 더하여 다문화적 신규과제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지난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된 국가적 차원의 다문화 정책은 아직 만족할만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은 한국 정부가 기조로 삼고 있는 순혈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서열적 통합정책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6월 18일 발족된 <국회 다문화 포럼> 출범식에서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분석한 김성희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의 임의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살펴보면 그때그때의 대중요법에 머무르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D 업종의 일자리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노동차들 받아들이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시행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문제가 되니까 고용허가제로 전환하고, 이중국적 연예인의 병역기피가 사회문제가 되니까 이중국적을 원천봉쇄하는 국적법을 만들고, 결혼 이민자의 인권 등의 문제가 되자 다문화 가족지원법을 제정하는 식이다.”
그는 2008년 한국 정부가 세운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한국의 다문화 정책의 명제만 나열했지 구체적인 대안이 결여된 것이며, 주관 부처를 법무부로 정한 것은 정책과 예산 편성의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다문화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수 있는 사령탑의 신설이 매우 긴급히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담긴 불명료한 영주권 문제, 이중국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국적법, 범위를 좁혀 놓은 다문화 가족 지원법, 취업 후 귀환을 예상한 외국인 고용에 관한 법률(2005)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문화 다인종 관련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기본법의 제정이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의 현실을 살펴볼 때 몇 가지 문제점들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1) 정부 스스로가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이행과정에 있다는 사실인식의 결여, 2) 다문화 사회에 대한 사회 정책의 결여, 3) 다문화적 흐름에 대한 포스트모던/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의 결여, 4)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의 결여, 5) 순혈주의와 민족주의적 관념에 대한 대안적 교육지침 결여, 6)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책의 결여 등으로 인해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형식적인 구조만 가지고 있을 뿐 실질적이고 변혁적인 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5. 선진 사례로서 독일의 다문화 사회적 경험
우리 사회에 앞서서 다문화 사회적 경험을 가진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선진사회에 속하는 사회들이다. 특히 이민자들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캐나다, 호주, 미국 등과 같은 나라들은 다문화 사회를 국가 형성의 문화적 본질로 삼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역사적으로 종족적 정체성을 중시해 온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들, 대표적으로 독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각기 다문화 사회에로의 이행과정을 격고 있지만 그 단계와 구조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독일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와 가장 유사성이 많은 사회일 뿐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서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을 겪은 경험을 지닌 나라이다. 독일과 한국사회의 연관성은 무엇보다 1) 양국이 단일민족 이념을 고수해 왔고, 2) 이념에 의한 분단 상황을 겪어 왔을 뿐 아니라, 3)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말미암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주하게 되었고, 4) 다문화사회에로의 이행과정에서 빗어진 이주자들에 대한 사회 정책적 혼란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임운택은 이주노동자를 중심하여 다문화 사회로 이행되어 나간 독일의 다문화 정책을 차별배제 유형(exclusionary model)로 이해하면서 프랑스의 동화모형이나 미국, 호주, 캐나다와 같은 다문화주의 모형과 구별한다. 주로 혈통주의를 채택하는 유럽의 국가들(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한국, 대만)이 채택하는 입장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러한 분류 유형론은 일반화의 위험이 있지만 대략적인 이해를 위하여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유형들이 다소 변형되어 진화되어 가고 있는 유형들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다문화사회에로의 진입이 시작된 독일은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독일이 초기 대응 단계에서 다문화 정책을 쉽게 수용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지적되었는데, 특히 순혈주의에 근거한 국민정신(Volksgeist)이라는 독일인 집단의식 속에 담겨있는 비기독교, 타인종에 대한 공포(xenophobia)가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고, 이는 지금도 이따금 독일의 극우 성향을 가진 인사나 젊은 세대들의 의식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불편함을 느끼는 성향은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독일의 경우 단일민족 순혈 이데올로기를 중시해온 전력으로 인해 독특한 독일인의 집단 배타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최근 SPD 정당 대변인이 “독일어로의 동화를 거절한다면 당신들은 이곳 독일을 잘못 택한 것이다“ 라고 공공연하게 이주민을 비난한 사실이 지상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비록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나치 후기적 징후를 보이는 사례로서 1965년에 결성된 독일 민족당(NPD: Nationale Partei Deutschlands)은 매우 노골적인 외국인 혐오 정책을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다. 이런 극우적인 사례로 독일 사회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독일 사회가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일면 이런 우파적 사고와 행태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의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과정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독일 외국인 등록청 통계에 의하면 1951년 독일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전 국민의 1%정도인 50,6000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10년 후에는 외국인들이 약 283만 명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를 지나면서 전 국민의 7.2%에 달하는 445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통계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독일이 많은 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점점 더 의존된 노동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외국인이 2% 정도에 달하는 수치를 가진 우리 사회에 비해 독일이 외국인을 2% 정도 받아들인 시점이 1965년대 가량이라고 볼 때, 독일 사회는 우리 사회에 비하여 40년 앞서 다문화적인 경험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독일의 다문화 사회 이행과정은 독일 정부가 취한 초기 대응 단계에서 노동 이주자들을 임금을 주고 ‘빌려 쓰는 인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안이하게 대처했던 결과 다양한 문제들을 거듭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기 대응단계에서 독일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독일사회에 정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여, 일정 계약 기간 노동 후 귀환조치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결국 이 예측은 빗나갔다. 유입 노동인구가 일정기간 고용되었다가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사회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인구가 자국보다 독일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점과 독일 사회 역시 여전히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인력의 정착이 구조적으로 심화되었던 것이며, 이에 대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독일내 외국인 수는 지난 50년 동안 전 인구의 1%에서 근 9%에 이르기까지 약 9배가 늘었다. 독일 다문화 사회 정책 변화의 다음 단계는 외국인 노동자를 소위 Gastarbeiter로 자국민과 다른 존재, 손님 대접하던 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로 보던 시각을 바꾸어 독일 사회에 정착할 이주민”으로 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이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독일 당국은 손님, 이주민, 자국민이라는 세유형의 대상들에 대한 세밀한 차별적 정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한 편에서는 불법이민자를 막는 정책이 진행되었고, 다른 편에서는 이주민을 독일 사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동화정책이 세워졌다. 또 다른 편에서는 이주민들은 자국민과 구별하여 참정권을 제한하고 새로운 동화과정에 참여해야 할 이주민들의 의무조항들이 신설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독일 정부가 다문화․다인종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소수의 비지배적 집단이 겪고 있는 차별적 정황을 치유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극소화하려는 정책을 세운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이주민을 독일 자국민과 같은 “우리“에 속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내 소수 이주자들은 영원한 타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독일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런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사회의 단일민족주의적인 성향은 이주민들을 향한 새로운 정책의 지체 혹은 갈등을 불러오는 장애적 요인들이 되기도 했다. 이는 1) 무엇보다 독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독일민족의 단일성에 대한 관념이 다양한 배타와 차별을 방임내지 조장했고, 2)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비선진 국가로부터 유입되는 데에서 비롯되는 바, 동일인들이 가지는 자국에 대한 우월의식과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를 촉발하는 문화적 요인들도 있었다. 3) 더구나 비기독교권에서 이주해 온 인종집단에 대한 종교적 혐오는 독일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간의 오래 된 갈등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독일 사회가 향유해온 경제 및 사회적 안정을 지속적으로 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연후에 비로소 독일은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단일국민국가에서 ‘다문화 ․ 다인종 사회’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독일은 다문화 가족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이민자 본인에게는 시민권 및 국적을 부여하고, 노동시장 접근 및 통합․ 차별시정․ 정착지원․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한편, 가족 2세대에게는 언어교육․ 학교교육 및 직업교육을 보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다문화 사회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모두 살피기에는 지면과 시간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온 장기적인 교육정책과 종교정책의 일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전통은 마틴 루터의 삼각대 이론(Dreistaendelehre: 정부, 가정, 교회)으로서 정부는 대외적인 국가의 권위를 행사함으로써 통제와 억압적 방법으로 공동선을 지향한다면, 종교는 독일인들의 내면적인 세계에서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공동선에 기여한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가정은 이러한 공동선을 실천하는 기초적인 공동체라 볼 수 있다. 이런 종교적 관점을 오늘의 세속화된 독일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공동체의 교육적 영향력은 학교교육과 병행하여 독일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적 기초가치를 형성하고 진작시키는 데 크게 공헌해 왔다. 그리하여 독일에서는 다문화 사회에로의 진입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부와 종교, 그리고 교육구조를 통한 입체적인 다문화 정책과 교육들이 시행되어 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6. 독일 다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와 다문화 한국 사회의 미래
1) 통합정책과 다문화 정책의 거리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독일은 무정책 시대를 지나, 다문화 사회에 대한 방어적 정책을 거쳐, 동화(assimilation)내지는 통합(integration)정책을 사용해 왔다. 그러므로 독일에서의 다문화 정책이란 이런 일련의 정책 변화의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질적으로 독일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문화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비판적 견해들은 독일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인종적, 다문화주의(multiethnic, multiculturalism)가 아닌 통합(integration) 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통합 규범은 여전히 기독교 서구의 유산(Christian occidental heritage)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독일은 독일 사회에 대한 자기 이해로서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을 긍정하는 것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수적 정치가들은 이 사실을 애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입장은 이중의 관점을 형성하고 있다. 독일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다문화주의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이 되는 한 편, 이주민들에게는 불충분한 다문화주의에 적응하라는 요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주민들은 독일 사회에 오래 동안 형성된 규범 문화 속으로 편입되던지 아니면 타자로서 그 사회에 존재해야만 한다. 이는 결국 독일 사회가 1980년대 노동자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통합 정책 시대를 거쳐 1998년 이후 그 정책 기조를 다문화 사회 정책으로 전환 시켜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문화 정책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2009년 9월 12일 독일의 주간 잡지, Die Welt의 언 라인 설문 조사에 의하면 94%의 독일인들이 독일 이주민 통합정책이 결점이 있고 불충분한 것(magelhaft und ungenuegend)이라고 답하고 있다.
2) 다문화성에 대한 확장적 이해
단일민족 신화를 오래 동안 유지해 왔던 독일 사회가 문화적 동질성(cultural homogeneity)을 넘어서 문화적 이질성을(cultural heterogeneity) 긍정 하려면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해온 독일 사회가 존속시켜 왔던 순혈주의적 민족주의 판다지에 대한 자기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자기 이해를 진작시켜야 한다. 독일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토론이 고조되었을 당시 균터 슐쩨(Guenther Schultze)는 통합정책과 더불어 다차원적인 과제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1)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이주자들이 중요한 사회적 자원의 일부가 되고, 2) 사회의 중요한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 3) 그리고 인식능력의 활성화를 위하여 언어교육과 더불어 사회규범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는 과제, 4) 사회적 차원에서는 독일 사회 안에서의 소통과 토착화된 관계들을 촉진하는 것, 5) 그리고 정체성의 차원에서는 이주민을 받아들인 공동체에 대한 정서적 연대의 범주, 국적부여 등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이런 균터의 이해는 독일인 주체와 이주자 객체간의 동일화가 이루어지는 차원이 이주민을 독일 사회의 규범과 특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보는 관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독일인 집단의식 자체의 변화 과제는 별로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94년 국회의장이었던 리타 슈스무트(Rita Suessmuth)는 이주법 개정안을 변론하면서 1913년 독일 사회가 혈연공동체라고 규정했던 법안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문화적 출처가 다른 소수 이주자들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문제 이전에 독일 사회 스스로가 다문화적 현실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기 이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다문화적 정황이라는 공간 안에서 여전히 문화적 충돌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주체문화에로의 유입, 동화, 통합을 요구하는 것은 지배문화를 공격하거나, 회피하거나, 조정하려 하려들거나, 혹은 변형시켜 공동의 문화를 창출하려는 네 가지 패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이 문제는 다문화주의란 지배 문화의 동질성(homogeneity)에로의 환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이질성(heterogeneity)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다원성에로의 체질개선과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확장적 관점을 요구한다. 1994년 “독일 사회는 다문화 사회다“라고 선언했던 리타의 명제는 ”우리는 이제 모두 다문화주의자들이다“(We are all muticulturalists now)라는 명제와 아직 퍽 먼 거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3) 타인종 공포증과 다문화적 애매성
다문화주의 현상은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요구다. UN통계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전 세계에서 약 19,100만명이 출생국이 아닌 곳에 살고 있는 데 이 수치는 1975년의 두 배다. OECD 통계에 의하면 이주민들의 비율은 오스트랄리아(24%), 스위스(24%), 뉴질랜드(19%), 카나다(18%), 독일(13%), 스웨덴(13%)이다. 유입된 이주민의 언어, 문화, 종교, 사회적 가치 등이 거주민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경우 문제의 소지가 적지만, 결정적인 차이들이 드러날 때 지정학적인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거주국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가질 수 있게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예민한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시민권은 세 가지 차원에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게 하는 것인데, 1) 법적 지위와 법적 권리, 그리고 2) 그 사회에서 정치적이거나 여타의 참여권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또한 3) 소속감을 부여하는 공인(公認)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런 시민의 유입이 이루어질 때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정체성에 대한 수정 내지는 새로운 이해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험으로 인지하거나 타인종의 침입으로 인식할 때 타인종 혐오와 공포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독일은 다원사회 정책의 일환으로 국적법을 개정하여 귀화하는 이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독일국민 자신의 국민국가의 성격에 대해서 그 틀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별로 없다. 따라서 국민국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독일은 다문화 사회의 요구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관용과 인정의 정치의 주체의 논리를 전개할 뿐, 주체 자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까닭에 간혹 정치가들은 국민국가의 이념을 되살림으로써 대중 속에 있는 다문화지향성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독일의 통독 이후 나타난 현상중의 하나였던 타인종 공포(xenophobia) 징후는 문화다원주의에 대한 독일인들의 적대적인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이클 버커트는 “독일에서의 다문화주의의 실패”라는 글에서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슬렘 문화 적대감이 결국 다문화주의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기독민주당(CDU)의 에드문트 스토이버(Edmund Stoiber)가 유럽공동체, 특히 독일 안에 있는 무슬렘들을 향하여 공개적으로 반다문화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사실을 인용한 바 있는 데, 스토이버는 “당신들이 독일적인 가치, 독일 문화, 독일적인 삶을 당신들의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이 나라를 잘못 택한 거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2002년 선거에서 걸 슈뢰더(Gerl Schroeder)에게 패하고 말았지만 이런 사례는 아직도 독일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외국인 혐오 내지는 반(反)다문화적인 정서가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2005년 독일 내 다문화 정상회담을 소집했으나 가장 큰 4개의 터기 이주민 그룹이 참가하기를 거절했던 현실에 직면하여 CDU Angela Merkel 독일 수상은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선언하는 한편 “우리는 무슬렘 외국인들이 수천만의 독일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다문화주의가 일종의 경사면(slippery slope)과 같이 명료하게 규정되기 어려운 정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은 독일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주민을 향해 어디까지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개방해야 할지 애매하고, 이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독일인에 비하여 여전히 차별받는 자신들의 지위와 관계를 받아들이기 애매하다는 관계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일인들이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집단적인 정신적 징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독일에서의 다문화주의는 여전히 애매한 지평을 남기며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이슬람 전통을 가진 터키인들이 독일 시민권을 얻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이슬람적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인의 정체성을 가지기를 거부하는 이상 다문화주의를 통합이나 동화정책으로 간주하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수적 우파들은 장기간에 걸친 다문화 정책이 필연적으로 국가의 통일성을 파괴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붕괴시키며, 개성 있는 종족 문화를 소멸시킴으로서 전지구적 통합을 초래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다문화는 무문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민족이나 종족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과정적 개념이라면 몰라도 궁극성을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우파적 견해는 다문화가 불러오는 새로운 차원의 문명사적 변종성의 도래를 두려워하고, 또한 타인종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심리적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7. 독일 다문화 정책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
다문화주의는 저출산 고령화의 길을 걸으면서 전통사회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형을 초래하는 사회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비하여 약 4-50년 앞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해 들어간 독일은 우리사회와 종교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정신적으로 단일민족 순혈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현대국가 사회에로의 이행기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다소 늦었으며, 또한 분단의 경험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하나의 선진 사례로 여길 수 있는 사회다. 이런 점에서 특히 카나다, 오스트렐리아, 혹은 미국과 같이 다인종 국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다인종국가의 정체성에서 다문화성을 찾아간 나라들은 대부분 모자익형 다문화 정책을 기조로 하는 경우가 많으나, 단일민족에 소수인종들이 유입해 들어오는 구조를 가졌던 독일은 동화 내지는 통합 정책을 다문화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이행되어 감에 따라 2050년경에는 독일사회와 유사한 인구구조를 가질 것으로 예견되는 바, 지금부터 다문화 사회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시민교육을 통하여 다문화성을 이해․수용할 수 있는 토양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중차대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독일이 선진 사례 없이 다문화 정책을 부단히 모색해 왔다면 우리는 독일 등의 선진 사례를 참고하면서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개선된 다문화 정책을 세워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문명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하여 우리 사회는 이미 다종교적인 상황을 경험해 왔으므로 다문화성에 대한 수용가능성이 다소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는 데, 독일의 종교가 다문화적 상황을 수용하고 이를 종교적 네트웍을 통해서 다양한 의식화 작업을 해왔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다문화성이 불러오는 다종교성을 직면할 경우 종교적 신앙고백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갈등을 초래해 왔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지적될 수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종교집단들이 병행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종교나 신앙고백의 자유를 수긍할 수 있는 데 비해 종교 집단들의 다문화성의 확대를 위한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기에는 아직 미숙함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독일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여전히 타인종 공포증후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단일민족 우월성에 기반한 국민국가 관념에 정서적인 일치를 느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듯이, 우리 사회도 단일민족국가 관념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배타적인 민족주의적인 정서와 자기 이해가 다문화적 현상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인종차별적인 외국인 공포 내지는 혐오감을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 된다. 이 문제는 독일의 사례를 살펴볼 때 끊임없는 갈등의 근원이 되어 왔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전개되는 시민교육,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 개발, 그리고 인권교육과 민주교육이 조기에 실시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독일이 동화와 통합이라는 다문화 정책을 세우면서 자국민에게는 관용과 수용의 태도를 넘어, 단일민족문화 구조에서 다인종 다문화성에 기반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취약했다고 우리가 평가한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서둘러 다인종․다문화성에 기반한 한국인의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정신적, 철학적, 종교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다문화 상황에 토착화된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명하지 못할 경우 독일 사회와 같이 주류문화와 유입문화 간에 갈등이 점점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다문화현상을 거부하거나 비하하는 국수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 비판담론을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주민들의 구체적인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 세워져야 할 뿐 아니라, 독일이 독일인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사회 복지적 혜택을 이주민과 그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과제와 더불어 체계적인 언어교육, 사회보장제도 보장, 교육적 혜택, 직업 훈련과정을 제공함으로써 이주민들의 정착과정을 돕고, 장기적으로 이주하여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 법적 사회적 장치의 마련하려 노력한 과정을 살펴 우리도 그러한 구체적인 정책이 세위지고, 실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절차는 독일의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바, 이주민의 인간다움을 보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필연적인 과정일 뿐 아니라, 민주사회의 보편적 책무라 보아야 할 것이다.
8. 나오는 말
한스 큉은 (Hans Kueng) 포스트모던한 세계, 식민후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세계윤리(Global ethic)을 제안한 바 있다. 자유 없이 정의 없고, 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그의 관점은 다문화 시대에서 종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중시해 오던 근대적 유산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를 제안하고 있다. 평화 교육 없이 대화능력이 주어질 수 없고, 대화능력이 없이는 공존의 윤리를 모색할 수 없다는 큉의 논제들은 다문화적 곤경에 빠진 사회를 향하여 다소 이상적이지만 매우 설득력 있는 실천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 안에서 전근대적인 정치적 중심을 찾거나 자기 민족만을 위한 배타적 이해관계만 추구할 수는 없다. 세계 자유무역의 열풍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 거대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더하여 전지구적인 재난의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관심을 앞세워 삶의 질을 높여온 개발과 발전 이데올로기는 급기야 인류의 환경세계를 파괴해 온 실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독일의 초기 다문화 사회 정책 입안 과정에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제이다. 다문화 사회 논의가 대체로 지역국가, 혹은 지역단위의 내부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의와 평등의 윤리, 혹은 인권과 민주화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전지구적인 생존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이차적인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다문화 정책을 세워야 하는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독일 사회에서 야기된 다문화 현실 인식과정, 대처과정, 비판과정들은 우리의 논의에서 한 단계 새로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이런 과제에 더하여 좀 더 포괄적인 평화와 인권사상에 기반한 다문화 논의가 새롭게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스 큉이 제안한 세계윤리의 여섯 가지 논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큉의 논제들은 다양성의 긍정과 새로운 종합을 통한 혼종성을 긍정할 수 있는 문화적 혹은 사회 윤리적 환경을 형성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과제들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 비하여 인권의 수위와 민주화의 수위가 다소 취약한 한국사회를 생각한다면 큉의 제안을 통하여 서구사회에서 수렴된 경험을 농축시킬 수 있다. 큉은 인간다움(Das Humanum)이 인류사회의 보편적 척도가 되기 위하여 민주적 보편가치를 긍정하는 문화 속에서 다양한 교육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데 이를 다문화적 정황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논제들, 즉 1) 자유만이 아니라 정의의 윤리, 2) 평등의 과제만이 아니라 다원성의 윤리, 3) 가부장적 가치 넘어선 파트너쉽의 윤리, 4) 공존을 넘어선 평화의 윤리, 5) 생산성의 가치를 넘어선 환경적 연대의 윤리, 그리고 6) 관용과 용서의 윤리를 넘어선 보편주의(ecumenism), 곧 지구윤리가 제안될 수 있다.
다문화적 경험을 가진 선진 사례들 그리고 다문화적 정황에서 수렴되고 개선된 제안들을 살펴보면서 다문화 사회에로의 이행기에 들어선 우리 한국 사회는 이제 하나의 실험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동화정책이 되든, 통합정책이 되든, 혹은 다문화주의 정책이 되든, 나아가 다인종․다문화 정책이 되는지 우리는 이제 피할 수 없이 다인종, 다문화적 정황에서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길을, 민주적으로/시민주체적으로, 하나의 문화민주주의(Demokratie der Kulturen)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이런 길목에 서서 이 모든 인류사회의 지혜로운 경험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해서 우리 정황에 응용하고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가 서 있는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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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 1 조
지난해 촛불을 천민민주주의니 선동포퓰리즘이니 하면서 집시법 등의 위반이니 모두 구속하자는 자들에 대항해 헌법 1조를 노래했을 때만큼 헌법에 대한 사랑이 큰 적이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90년 전의 독일 헌법 1조를 그대로 옮긴 이 조항에 대해 당시 독일의 브레히트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이 과연 어디로 가고 국민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물으며 1조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슬프게 노래했다. 그의 노래대로 독일 헌법 1조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을 짓밟고 결국은 ‘나치’로 끝났다. 나치가 끝난 뒤 헌법은 바뀌었다. 지금 독일 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기구의 의무다”라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살아 있다면 이 조항도 환상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나치에 의해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우리 헌법 1조를 노래한 우리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헌법 1조는 환상이 아닐까? 그 1조에 의해 무엇이 이루어졌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혀 무자비하게 붙잡혀 간 것 외에 무엇이 남았을까? 그것은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고작 1년이 지난 지금 환상의 신기루로 착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차라리 독일 헌법 1조처럼 바꾸는 것이 옳지 않을까? 개헌 논의가 야단법석이지만 그 중 헌법 1조를 바꾸자는 주장은 없다.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61년간 변한 적이 없다.
인간의 존엄성 짓밟는 권력
앞으로도 촛불을 들 때 우리는 1조를 노래해야 할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히고 무자비하게 붙잡혀가야 할까? 나 같은 자들이 수년간 아무리 외쳐도 무시된 것이 헌법재판소 한마디에 바뀌는 것을 보면 대단한 힘을 가진 듯한 헌법재판소가 헌법 1조를 근거로 삼아 촛불을 헌법합치라고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는 세월이 언제 올 수 있을까?(그러나 나는 헌법재판소의 다른 결정에는 대부분 반대한다.) 이미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은 헌법불합치라는 묘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잘못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니 그것을 이유로 잡혀간 사람들은 모두 당장 풀어주고 집시법 적용도 당장 그만두어야 헌법이 나라의 근본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나 같은 자들의 체면, 존엄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서지 않겠는가? 아니 최소한의 인간성을 모독당했다는 굴욕감을 느끼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여전히 추상적인 냄새가 나는 독일 헌법 1조보다 더욱 구체적인 프랑스 헌법 1조가 좋다. “프랑스는 비종교의, 민주의, 사회의,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이다.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에 대해 법 아래 평등을 보장한다.” 우리 헌법에도 9조에 유사한 평등조항이 있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평등이 헌법 1조에 규정된 것은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나아가 평등은 그 앞에 ‘민주 사회공화국’이라고 한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체의 가장 중요한 원리라는 점이 더욱 더 큰 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고 해도 국가보안법을 들먹일 정도로 천박한 인간들이 지금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61년 전 제헌헌법에서부터 우리 헌법의 원리였다. 물론 그런 원리에도 불구하고 그 실천은 전혀 반대였다. 헌법에 충실했던 조봉암 같은 사회민주주의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두 차례나 이승만을 위협하자 간첩이라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지금은 그 정도로 야만일 수는 없지만 권력이 저지른 용산참사를 권력이 아닌 당사자 문제라며 모른 체하고, 국가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시민운동가에게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몰염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나마 지난 10년의 이른바 두 ‘진보’ 정권이 평등권을 보장하는 사회민주주의 흉내를 처음으로 겨우 조금 내려 한 것을 두고 야단법석이고 그 흉내조차 깡그리 부정하면서 불평등의 나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환상
이를 두고도 헌법재판소가 헌법 1조 위반이라고 결정할 시대는 오지 않으리라. 아니 그런 시대는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좋다. 어둠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다시 촛불을 켜는 것 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
<박홍규 | 영남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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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4, 2009
인권 사상가를 비난하는 사회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 이임사 전문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7-09 09: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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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 이임사 전문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직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8일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 경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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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25, 2009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사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사 "사랑합니다..존경합니다"
- 문규현 신부 -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죄스럽습니다. 어둡고 안타까운 나라 걱정 속에 먼 길 떠나시게 해서 죄스럽습니다. 님께서 평생 동안 온 몸 온 정신을 다해 쌓아올리신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화해라는 그 장엄하고 숭고한 역사를 탄탄하게 발전시켜 더 좋아진 나라, 긍지와 희망 속에 님을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님께 빚진 역사, 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한없이 많은 저희가 이 무겁고 암담한 현실 앞에서 다시 님께 의지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통하게 보내드리고, 파괴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광장을 바라보며 저희 마음도 자근자근 부서지고 많이 아파서 다시 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님이 희망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오래 사시라, 조금만 더 저희와 함께 하며 이끌고 품어주시라 투정했습니다. 떠나실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가지 마시라 붙잡았고,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일에도 어쩌면 좋겠냐고 님께 기댔습니다.
님께서는 결코 국민을 탓하고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함없이 국민에 대한 신뢰,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하셨습니다. "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고 일기에 적으셨습니다. 걷기조차 불편하고 힘든 몸, 목소리내기조차 어렵게 날로 쇠약해지면서도 마지막 시간까지 국민에 대한 충실함, 역사적 상황에 대한 통찰과 과제 풀기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고 매일 정성을 다해 다짐하며 마지막 한 점 한 점의 기력조차 다 내놓고 바치신 님, 부족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는 저희를 그래도 믿으며 “후배님들, 뒷일을 잘 부탁합니다.” 하고 큰소리로 웃으신 님,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님께서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시던 199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방북하였다가 돌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된 바 있습니다. 당시 방북은 1989년 8월 당시,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고 있던 임수경 학생과 동행하여 남으로 내려오도록 사제단이 저를 파견한지 10주년 됨을 기념한 것이었습니다. 정부당국이 사제단 방북을 동의해주어 참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귀환한 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저는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보수세력을 의식하고 달래기 위한 처사였을 겁니다. 아픈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 쓰린 사건조차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민족의 역사를 위해 바쳐진 작은 희생제물이었습니다. 님께서 남북정상회담을 결단하시고 마침내 남과 북 정상이 평양에서 포옹하던 2000년 6월의 역사적 순간, 6.15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되던 그날 그 때, 저는 제 상처와 아픔을 다 치유했습니다.
님께선 민주주의와 민족화해, 민족통일의 큰 지도자이셨으나, 속내를 보면 우리 모두에게 참된 인생의 안내자요 다정한 스승이셨습니다. 무엇보다 님께선 진정으로 참된 신앙인, 하느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산 참 제자이셨습니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자 했던 힘의 원천은,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며 신념과 생명력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그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뜻에 대한 한결 같은 충직함이었습니다.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 들고 살아왔다.’-2009년 1월 15일 일기.
님께서는 이 시대 참 신앙인의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순교자의 길, 순교영성을 고스란히 온전한 제자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번듯한 말과 화려한 성당 안에 갇힌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억눌리고 고통받는 이들, 서민들, 눈물짓는 이들 현장에 머무신 예수님의 길을 끝까지 잊지 않고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님의 2009년 1월 6일자 일기를 읽습니다.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가택연금, 망명..., 개인의 삶에서든, 어느 역사에서든 그 무엇 하나 용납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허나 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겪으셨으니 이 나라 역사에 그 모든 인장을 자기 삶에 점점이 다 새긴 사람이 님 말고 누가 있습니까. 그 험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도 한 점 후회 없이 이토록 담담하고 아름답게 생을 정리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지난 6월 11일, 63빌딩에서 진행된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연설에서 하신 말씀을 또한 기억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도처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지금, 그토록 안타까워하시던 남북대결과 단절이라는 상황조차 님의 서거 속에 다시 조금씩 풀리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북 간에 하늘 길, 땅 길, 마음 길이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하신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의연하게 진실을 찾기 위한 치열한 싸움의 길에 있습니다. 그들도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님께서 언제나 믿어온 국민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조차 국민과 민족의 운명을 안쓰러워하며 나아가야할 방향을 안내하시는 님. 님과 함께 한 정의와 평화의 여정, 화해와 통일의 역사는 참으로 행복하고 위대한 시간이었습니다. 님과 같은 지도자를 만나 저 험한 세월을 이겨온 저희 인생도 아름다웠노라고, 발전하는 역사 속에 함께 했음도 크나큰 자부심이라고 고백합니다.
님께서 온몸으로 일구고 온몸으로 가르치신 인생, 역사, 사랑, 헌신, 이제 저희 몫입니다.
후세들은 님에게서 배웁니다. 일기에 적으신 것처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님을.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임을.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 2009년 1월 14일.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마지막까지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이제 한 가닥 연민과 눈물의 무게조차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십시오. 남은 역사적 과제들일랑 용기를 내어 예수님 뜻을 따르는 이들, 정의와 평화의 사도들에게 맡기고 주님 품안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에 드십시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하셨으니, 이제 민족의 혼, 민족의 정신이 되시어 남과 북 훨훨 자유롭게 다니시며 금수강산 온 산천 진달래랑 갖은 꽃 모두 누리십시오. 진달래 영산홍 지천일 때, 님을 보는 듯 활짝 반기겠습니다. 님의 영원한 반려자 이희호 여사의 연서를 빌어 저희도 님께 마지막 인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2009년 8월 22일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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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
창비주간논평. 8/12/2009 9:33:52 AM Comments (0)
조광희 / 영화제작자
신문을 읽다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프랑스어 표현을 주제로 한 칼럼들을 1년에 평균 3번 정도는 접하게 된다. 이 표현은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에게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그 예로는 각종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하여 숨진 귀족이나 고위층 자제들의 이야기가 단골 메뉴처럼 거론된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대학신입생 설명회 때였다. 어느 교수님이 칠판에 처음 보는 알파벳을 적으면서 "여러분들은 사회에서 선택된 사람들이니 사회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교수님이 전수해준 그 말은 이상에 가득 찬 어린 학생들에게 각별한 감정을 자아냈다. 나 또한 그것을 자긍심과 책임감이 뒤섞인 묘한 느낌으로 받아들였는데, 생각해보면 자극받은 선민의식 때문에 상기되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숭고함으로 포장된 그 감정에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어딘지 석연찮은 선민의식, 그 속에 숨은 욕망과 권력
그후 나름대로 세파를 겪으면서 그 표현에 내포된 불순한 점에 대하여 좀더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표현은 내게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이 언론 인터뷰에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법무부장관이 '불법시위나 파업을 엄단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공허한 수사로 여겨진다.
물론 나는 이 표현의 의미를 진실하게 체현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많은 고결한 인물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예외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레토릭의 이면에는 집요하고 끈질긴 사회적 욕망과 권력관계가 은폐되어 있다. 이 표현의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의 비평가로서 사상가의 반열에 근접한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주장 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근대국가를 '자본=국가=네이션'라는 삼위일체의 공식에 의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그의 논지는 자본, 국가, 네이션의 삼위일체가 완성됨으로써 근대국가가 형성되었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네이션'은 특히 감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 경기에서 자기 나라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놀라운 열기를 보라. 그 열정은 그들이 속해 있는 네이션, 즉 국민국가에 대한 공통의 소속감에 의하여 분출되고 있다. 깊이 성찰해보면 그러한 태도는 매우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집요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으며 그것은 비논리적이라는 지적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근대국가와 신분제 떠받치는 '교환의 양식'
한편 자본뿐만 아니라 국가나 네이션도 넓은 의미에서 경제적인 차원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코오진은 이 세가지를 '교환의 양식'에 의하여 구별하고 있다. 즉 자본제가 '상품의 교환'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면 국가는 '일방적 취득과 재분배라는 교환'에 의하여 특징지어지고 네이션은 '호수적(互酬的, 호혜적) 교환'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일상생활에서는 듣기 어려운 '호수적 교환'이라는 표현은 예를 들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 부모가 아이를 댓가 없이 양육하는 것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 세가지 교환양식은 근대국가에서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된다. 가령, 각자가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한 결과가 경제적인 불평등과 계급적 대립으로 귀결된다면, 국민의 상호부조적인 감정에 의해 그것을 완화하고, 국가가 자본의 방종을 규제하며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근대국가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코오진이 말한 호수적 교환의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신분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사회에서 지배하는 자가 지배되는 자로부터 복종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하여 모범을 보이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갸륵한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생각하면 결국 신분질서를 공고히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배자가 복종의 동의를 얻는 수단
어느 불평등한 사회든 지배하는 자가 힘으로만 씨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버겁다. 이때 소수의 지배하는 자가 다수의 지배되는 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은 그 지배가 정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강자이기 때문에 지배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하다. 그것은 지배되는 자가 힘이 더 세지면 뒤집을 수도 있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지배하는 자가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만큼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봉건제 사회도 아니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 민주공화국에서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소환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사회가 사람들의 집단적 무의식 수준에서는 여전히 신분사회이며, 그 부당성과 불안정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보완되어야 제대로 작동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한다. 혹시 고귀한 신분을 아예 포기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기꺼이 우리와 같아질 용의가 있느냐고.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우리를 위해 헌신할 수는 있지만, 우리와 같아질 생각은 없다면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차원의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표현과 기제가 수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이른바 '고귀한 신분'을 가지신 분들이 얼마나 자기희생을 하는지, 얼마나 높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시비를 거는 내 자신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대통령께서 재산을 헌납했지만 천하를 얻기 위한 건곤일척의 승부를 뒷마무리하는 것일 뿐이고, 어느 재벌의 사회공헌 약속은 형벌을 적게 받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하여 작은 것을 내놓아 마침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얻기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되었거나 임명될 뻔했던 사람들의 투기와 범법으로 점철된 삶의 궤적을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저잣거리의 평범한 이들보다 낫기는커녕 일신을 위하여 각종 편법을 실천한 결과일 뿐이다. 그들은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승리한 맹수이자 생존의 명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들의 천국에 사는 그들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 불평등한 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궁여지책일 뿐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여우의 지혜조차 없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배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천만다행이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견고한 신분질서 속에서 그저 강자일 뿐인 그들을 존경까지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은 반대로 이 사회가 결국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희망에 찬 전망으로 이어진다.
공화국 시민의 의무와 법이나 잘 지켜라
대한민국은 누가 무어라든 민주공화국이다. 만일 아직 아니라면 언젠가 반드시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별로 그럴 생각도 없는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간청하지 말자. 그들은 그런 수준이 못된다. 대신에 그들에게 누구나 지키는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제대로 하라고 말하자. 법이나 제대로 지키라고 요구하자. 살기 위해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방패로 내리찍지 말라고 외치자. 그리고 자원과 기회와 미디어를 독점하지 못하게 저항하자.
그러고 나서도 당신에게 마음의 여력이 있다면, 공화국 시민의 법과 의무도 준수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저들을 차라리 불쌍하게 여기자.
2009.8.12 ⓒ 조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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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14, 2009
노무현 최후의 인터뷰

펌] (시사IN)김용주http://yucheol.byus.net/xe/261932009.08.14 12:19:22 (*.87.60.104) 80
“검찰 장악 시도했다면 나도 미래도 타살당했을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인터뷰를 최초로 공개한다. 지난해 8월 진행된 이 인터뷰는 현재까지 알려진 생애 최후의 인터뷰이기도 하다. 한·미 FTA, 검찰과 언론, 남북 관계 등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100호] 2009년 08월 10일 (월) 13:50:34 정리·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지 난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퇴임 이후 한 번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친노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는 지난해 8월27일 봉하마을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한 시간가량 단독 인터뷰를 했다. 당시는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된 논란으로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진이 소환되는 등 전·현 정부 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때다.
서프라이즈는 당시 주간지 <시사 서프라이즈> 창간을 계획하고 있었고, 창간호 기획으로 노 전 대통령 인터뷰를 준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프라이즈에 대한 마음빚을 갚는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했지만, 창간호 발간이 불발되면서 이 인터뷰는 공개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인터뷰에서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과 만나는 생전의 노 전 대통령.
<시사IN>은 서프라이즈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인터뷰 전문을 입수해 최초로 공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편집은 최소한으로 했고 원문 그대로 경어체로 정리했다. 인터뷰는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진행했으며 이기명 서프라이즈 회장도 배석했다.
이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진보 진영과의 관계, 이라크 파병, 대연정, 한·미 FTA 등 굵직한 정치적 고비에 대한 소회, 검찰에 대한 생각 등을 담담하게 밝혔다. 임기 중 아쉬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고, 참여정부 인사 솎아내기와 남북 관계 경색 등 당시 현안을 두고 날 선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검찰에 대한 생각을 밝히면서, “검찰 장악을 시도했다면 나도 미래도 타살을 당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퇴임 후 6개월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제 일 중점을 뒀던 게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인데, 그게 예정보다 반년이나 더 지체됐지만 어쨌든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봉하마을에 생태농업을 도입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재임 중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가고 있고…. 그 외에는 주로 뜻밖의 상황이 이런저런 일들을 지체시키고 있는데, 손님이 생각보다 많이 오시는 것하고, 그 다음은 정부에서 좀 보자는 거 그런 거지요.
정부에서 보자는 것은 뭘 말하시는 건지?
(웃음) 기록물 얘기라든지 그런, 조금 생각지 않았던….
찾아오시는 분들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예 상하지 않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차질이 생기는 게 사실이죠. 좀 놀고 싶었는데, 그것도 조금 차질이 생기고, 농사일에도 좀 타이트하게 참여했으면 싶었는데 어렵게 됐고, 민주주의 2.0도 초기에는 시스템 개발 과정을 주도하다가 지금은 나는 놓쳐버렸습니다.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가지고 몸서리가 쳐져요.
지난해(2007년)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에서 ‘시민민주주의’라는 화두를 꺼내셨습니다만, 사실 민주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 하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 내가 인제… 민주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이라는 구분을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런 구분을 들어도 기준이 뭔지 얼른 감이 오지 않고 그렇습니다. 그거는 내가 그쪽을 대체로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구별을 하지도 않고 또 얼른 감을 못 잡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보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다”라는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획기적인 진보의 역사거든요. 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진보의 이념들도 본래 민주주의의 가치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 때나 참여정부 시절 진보 진영과의 관계를 보면 그렇게 포괄적으로 보기만도 어려운 것 아닙니까?
나 는 뭐 그 문제에 대해서 고심을 참 많이 했던 편인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 오늘의 현상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 “내버려둬라”입니다. 논의로써, 토론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란 거지요. 결국 정치에는 진보 노선과 보수 노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또 항상 점진주의와 급진주의가 존재하거든요. 어느 세력이 더 커지나 하는 것은 역사적인 조건, 그 시기의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정치 세력의 그 시기의 노선, 여기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데, 그 흐름을 결정하는 힘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로 풀 문제가 아니라 각자 갈 길을 가다보면, 그 갈 길 중에는 협력도 있고 통합도 있고 분열도 있고 그런 것이 정치의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론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검찰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위는 지난 4월30일 검찰에 소환되는 노 전 대통령(가운데).
임기 동안 흡족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꼽는다면 어떤 점일까요?
흡족한 게 뭐가 있을까? 그게 참, 지금 뭐 완결된 것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리 정치 풍토에 국민의 선택을 교란하는 요인이 있거든요. 지역주의라는 것은 국민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교란하고 방해하는데, 그런 지역주의를 비롯해서… 아마 그런 것이… 그런 것이 완전히….
아쉬움으로 남으시는….
너무… 예, 완전히….
누구나 인정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께서 권위주의를 타파한 부분인데요. 하지만 지금 검찰의 모습을 본다면 너무 빨리, 속된 말로 풀어줘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 두환 대통령 이후로 검찰을 장악했던 정권은 없습니다. YS 정권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검찰을 많이 활용했죠. 활용했는데 결국 검찰권에 의해서 무너졌지 않습니까? 그 다음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말하자면 정권을 도와주던 검찰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정권을 흔들었던 검찰 또한 존재했습니다. 다 검찰 아닌가요? 그걸 인정해야 됩니다. 일사불란하게 검찰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언론을 때려잡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언론 권력과 검찰 권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언 론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검찰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자꾸만 옛날 생각 하고 나더러 왜 검찰을 장악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걸 하려 했다면 일부 검찰과 결탁하는 결과를 낳았을 겁니다. 일부 정치검찰과 결탁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검찰을 장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걸 사람들이 참 몰라요. 장악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장악하고 일부 검찰과 결탁했을 때, 그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결국은 정치에서도 민주주의에서도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나도 미래도 타살당하는 것이죠. 난 그렇게 상황을 봤기 때문에 검찰은 자기 갈 길 가도록 내버려두고, 검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그렇게 관리를 한 것이죠.
(이기명 회장)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아주 기막힌 직관력을 가졌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뭐, 법대로 가는 거죠.
(이) 법대로요? 법대로 안 가면요?
뭐 내 얘긴, 무슨 큰 정치적 이변은 없을 겁니다. 국정 운영의 본질적인 문제로 어려움은 계속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점점 안정되어갈 거예요.
(이) 자꾸자꾸 정부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다보면….
내 가 대통령 하고 있을 때,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저만 찾아오면 한나라당 깨질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 전제를 가지고 자기네들 할 일은 게을리 하고 있었어요. 내가 한 번도 응수를 안 했어요. 한나라당이 깨지긴 왜 깨져,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들인데. 쇠고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퇴진할 거라는 생각은,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를 하거나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만날 낙관적이었다 깨지고, 상대방이 몰락할 거라고 그러는데.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더러 해야 됩니다. 이라크 파병이 그렇습니다.” 2004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노 전 대통령.
대연정 제안을 현 시점에서 평가하신다면?
그건 뭐 헛발질 한번 한 거지. 이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어쨌든 그 당시에 적절한 행보는 아니었다고 봐야지요.
어제 봉하마을을 찾은 손님들에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은 진보 성향이지만 아주 보수적인 정권이었다”라고 하셨는데요.
내 가 얘기했던 건,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이 유럽의 아주 보수 정당 수준만큼도 못 됐으니까 결과적으로 보수적 정권 아니겠느냐 하는 그런 역설이지요. 진보 정책 한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한나라당과 비교해서 명확히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정부의 성격상 유럽의 어떤 보수 정권보다 더 보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으로 얘기한 거거든요. 말하자면 그만큼 우리가 보수에 기울어 있다, 진보가 그만큼 미미하다 그런 뜻이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같은 부분이 대표적인 예가 될까요?
이 라크는 그냥 그렇게….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더러 해야 된다, 이라크 파병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는 기분 좋아서 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 한·미 FTA는 결국 개방이냐 쇄국이냐 이 논쟁은 의미 없는 것이고, 개방의 속도를 어떻게 할 거냐 이거 아닙니까? 난 속도가, 그만한 속도가 필요하다고 봤다는 것이죠. 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이것은 약간 도전적인 선택으로 적절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과 FTA를 한다고 하면 언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 그걸 언제로 할지 전제를 해두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거든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구조조정이 아니고 경제의 체질개선을 해야 하거든요. 아무 충격 없이 준비가 되냐? 충격 없으면 준비를 안 해요. 그러니까 그 앞에 그보다 충격이 작은 FTA들을 거치면서 국내의 구조조정을 강요해나가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한·미 FTA는) 중국과의 FTA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것이었고, 우리 민족의 수준과 역량을 봐서는 다소 도전적인 선택으로 나는 뭐 적절하다, 그리 생각합니다.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큰 문제라고 보신 건가요? 일부 반대론자는 중국·일본과 먼저 한 다음에 미국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그건 현실적인 조건을 전혀 도외시한 얘기입니다. 품목 하나하나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죠. FTA라는 것은 그 분야와 품목을 하나하나 따져서 예측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참여정부 초기에 여당 내에서….
FTA 한 가지 더 얘기할게요. 개방 반대론자들이 걱정했던 일은 여러 번 개방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IMF와 금융개방 사태는 상관관계가 있죠. 그러나 당시 거기에 대해 예견해서 반대한 목소리를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한·칠레 FTA까지, 그렇게 떠들었던 사태는 다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참여정부 초기 여당 내에서 이른바 ‘개혁과 실용’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또다시 그 논쟁을 재연하는 분위기인데요?
개혁과 실용의 차이를 아직 모릅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존중한다는 것이 실용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개혁론자 중에 현실에 맞지 않는 개혁을 하자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걸 구분하고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죠.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안 지켜주고 사표를 내버리니까 엉뚱한 결과가….” 지난해 8월6일 해임 압력을 받던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의 기자회견.
참여정부 초기에 당정 분리를 너무 일찍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거는 내가 한 게 아니고, 이미 다 당정 분리가 되어 있었어요. 내가 당선될 시절에 당정 분리가 거의 국민적 합의 수준까지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헌·당규에 당정 분리가 돼 있었고요. 물론 나도 동의야 했고, 존중해야지. 당정 분리를 안 하겠다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공천권 행사하겠다? 당직을 내가 임명하겠다? 당헌상 불가능해요. 그 다음에 정무수석 가지고 자꾸 그러는데, 총재가 당을 지휘할 때 승지 노릇을 하는 사람이 정무수석입니다. 옛날 승지 시절 정무수석이란 게, ‘대통령 의중이 이거요’ 하고 은밀히 말 전하러 다니던 사람이죠. 세상이 바뀌었는데 생각을 안 바꾸니까 자꾸만 정무수석 부활하라고 하는데, 그거 부활하면 당정 관계가 풀리나 어디? 본질의 문제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당장 부활시키겠어요. 당정 협의는 장관들이 다 분야별로 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정무수석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곧 10·4 선언 1주년이 됩니다만, 정권이 바뀌자 남북 간 합의가 연속성을 갖지 못하는 듯합니다.
분 단 국가에게는 통합이 지상 명제지만, 현실 권력은 통합을 위해 자기 권력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통합이라는 대의는 정쟁의 수단이거든요. 지상 명제가 실제로는 수단이 되어 있는 이 모순관계를 뛰어넘게 하는 것은 국민적 압력이죠. 이런 모순관계를 이해한다면, 정치인들이 통합이라는 것을 두고 ‘무슨무슨 방안’ 하며 갖고 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과 역사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이 국민의 요구는 ‘대화’인데 권력이 대결적 사고를 가지고 남북 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게 본질이거든요. 남북이 다 그렇지만, 적대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외교의 일반 원칙조차도 지키지 못한단 말이에요. 기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의 피로도가 높습니다. 민주주의의 큰 틀마저 위협받는다고 걱정합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국민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수준이 2002년에는 높았는데 갑자기 낮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하 지만 문제는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감사원장이 사표 내버렸지 않습니까?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안 지켜주고 사표를 내버리니까 감사원에서 정연주씨를 두고 엉뚱한 감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또 KBS 이사회 이사장이란 자리가 무슨 보통자립니까? 무책임하게 사표 내고 나와버리니까 이사회가 저렇게 굴러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직분에서 그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일을 해줘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보니 뭐 일괄사표 내라니까 줄줄이 내버리고 그러니까 자유를 지킬 수가 없는 것이죠. 권력기관에 있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국민이지 않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눈치보고 꼬리 내리고 그게 지금 행동양식이지 않습니까?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쉽게 무릎을 꿇으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퇴임 이후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록물 문제라든가, 여러 모로 정치적 발언을 요구받는 분위기가 됐는데?
나 는 정치행위를 하는 게 없어요. 그냥 당사자로서 내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시민으로서 진보가 뭐냐 보수가 뭐냐 그런 거 설명하고, 필요할 때 그런 해설 글도 쓰고. 가끔 하는 얘기죠. 엊그제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 그런 거. 특별히 정치 현안에 대해서 내가 말하는 게 없어요. 정치행위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 행사죠. 내가 요즘 정치 얘기 한다고 해도 현실정치에 대해선 전혀 얘기 없이 ‘사고의 프레임’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사고의 프레임을 제대로 잡아나가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갖출 수 있거든요. 그러나 사고의 프레임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원리적이고 딱딱하거든요. 그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설명해 나가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저 스스로를 교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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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11, 2009
종교 공동체는 초법적 기관이 아니다
전과 있는 이는 차별의 대상일까?
비록 크고 작은 전과가 있는 이라 할지라도 한 국민으로서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법률로 보호된다. 즉 민주사회에서는 전과자라 하여 공개적으로 배타 차별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행위를 하는 사회 집단이 있다면 제아무리 종교라는 미명아래 스스로를 감춘다 하여도 반인권적인 집단의 속성을 버릴 수 없다. 법률이 보호하는 한 개인의(전과자의) 인권을 종교 집단이 거룩의 이름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법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을 어긴 이에게 일정기간 범법행위의 정도에 따라 벌금, 강제노역, 구금, 징역형에 처할 수가 있고 특정한 경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반드시 공정하고 투명성 있는 공개재판을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받고 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그 죄를 근거로 다시 재판에 붙여 추가로 죄를 물을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사유를 들어 공개적으로 낙인을 찍는 행위는 야만적 습성일 뿐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그런 야만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교 공동체가 종교 공동체의 거룩함과 도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종교집단 구성원의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을 사회법에 의하여 저촉 받은 사실을 근거로 제한하려 한다면 이것이 거룩의 이름으로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비록 종교 공동체의 거룩함과 도덕성을 지키려는 충정에서 나온 합의라 할지라도 이는 근대 인권론과 민주사회의 기본권 이해에 미달하는 조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법은 전과가 있는 이들을 민주사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인권법을 어기면서까지 차별 배제함으로써 종교집단 안에서 피선거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크고 작은 전과 사실이 있는 이들은 감리교회 안에서 평등권을 누릴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결코 자랑 거리가 못된다. 이런 법의 지속을 요구하는 논리는 결국 교회법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원한이나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된 이를 민주사회 안에서 낙인찍고, 영구히 참정권을 박탈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가 감독회장이 되고 안 되고는 논자들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투표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총대들의 몫이 아닐까?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비난을 섞어 인신공적적인 언행을 일삼는 이들을 나는 설득할 생각이 없다. 이 문제는 인권에 대한 자신의 인식 정도의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인식능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 개인의 지성과 이성 그리고 감성을 따라 판단할 문제로 남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각기 나름대로 색다른 이해를 가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자도 있고, 내 편 제 편 갈라 싸우는 이도 있는 까닭이니 어찌 이 모든 일에 간섭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평소에 차별적 인식과 행동에 익숙한 이들은 쉽게 교정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일이 쉽게 교정될 수 있었다면 어찌 보편적 인권선언문이 나치의 잔혹한 역사를 경험한 후에 나왔겠는가? 나는 평생을 목사요 교육자로 살아온 분이라 할지라도 인권감수성이 취약하면 공동체 내의 소수자의 인권과 생존권을 함부로 박탈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에 꺼리낌이 없는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과연 전과자를 전과자라는 이유로 낙인을 찍고 차별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교회는 거룩의 이름으로 전과자의 피선거권을 영구히 박탈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민주사회에서는 전과 사실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빌미로 인격과 존재를 차별하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 그렇다면 전과 사실이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차이가 없는가? 이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인격과 신앙과 신념에 따라 답할 문제이지 교단법을 만들어 교단 구성원 모두가 담합적으로 차별해야 할 책무를 가지는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전과사실을 근거로 그에 대하여 선호의 판단을 개인적으로 내리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과 양심의 기준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제도적으로, 집단적으로 그런 기준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집단이 한 개인을 차별하기로 약속한 야만의 증표다. 이런 증표를 가지고 있는 집단은 그 논리가 양심과 종교공동체의 도덕성과 영성을 지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변명할지라도 야만의 증표를 가진 집단의 속성을 버릴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하면 일각에서는 논리를 단순화시켜서 전과자를 그것도 고의로 다른 이를 해한 사람을 감독회장으로 뽑으라는 것이냐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단순한 논리를 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이의 정당성에 대하여 진실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전과가 있는 분을 감리교회의 수장으로 뽑느냐 안뽑느냐는 논자들의 책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재의 구조대로 한다면 총대들이 할 책무다. 총대들이 그런 분을 감독회장으로 뽑을까 두려워서 그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는 오히려 인권침해의 논리일 뿐 아니라 누군가에 대하여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리교회의 총대들의 인격과 그들의 공정한 판단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의회적이며, 반민주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도대체 전과가 있는 분이 교회의 지도자를 뽑힐 것을 “두려워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는 교단이 어디에 있는가? 감리교회의 도덕성은 그런 방식의 반인권적인 통제, 배제, 차별의 원칙을 통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감리교회는 감리교회의 신학적인 기반위에 세워진 교회다. 죄인들을 구속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거듭난 이들이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義認)을 받은 자가 되어 [의인(義人)이 아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감리교회다. 부디 누군가 무엇인가 주장을 하려면 개신교의 신학적인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내에서 주장하시기 바란다. 죄인을 구속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사회법을 근거로 “네 죄가 내 죄보다 크다 아니다“를 외치고 있는 이들은 사실상 복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돌을 든 자들이 예수의 권고를 거부하며, 집단의 의와 개인적 의를 지키기 위하여 돌로 치겠다는 율법주의자들의 형국과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 이런 주장들을 하시는가?
감리교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회에서 대표자를 뽑는다. 게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전과 사실이 있거나 이를 감추려 했던 이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전과가 없다 할지라도 교묘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생을 살거나 혹은 비겁하게 다른 이를 제물 삼으며 살아온 파렴치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감리교회 안에는 사회법이나 교회법에 저촉을 받지 않고 살아온 분들이 절대 대다수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감리교회는 유독 왜 피선거권자의 자격을 제한하기 위하여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차별조항까지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이런 법이 없으면 살인죄라도 저지는 사람이 감독회장이 될까 두려웠던 것일까? 이런 논리를 수용한 태도에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떳떳함이 없다. 그런 분이 교회의 수장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만든 궁여지책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크고 작은 전과가 있는 이를 영원히 낙인찍으라는 법이 민주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과연 그런 원칙을 따라 목회를 해 왔고, 그렇게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할까?
나는 우리 감리교회법에 담겨있는 차별조항은 복음의 정신이나 떳떳한 정신에 기반 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파당성을 쫒아 온 이들이 상대 정치 파당이 영성과 도덕적 질문을 파기하고, 정치적으로 동기화되어 흠결이 있는 이를 대표로 뽑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법은 정치적인 술수를 계산한 법이지, 감리교회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법이 아니다. 왜 민주적 선거과정에서 전과가 없는 이들이 전과 사실이 있는 이에게 패할 것을 예견했을까? 이런 초라한 논리에 감리교회가 휘말려들어가도 좋은 것인가? 따라서 나는 이런 발상 자체에 대하여 합리적인 동의를 보낼 수 없다. 민주적 원칙도 없고, 진실함도 없으며, 나아가서 정정당당함이 없다. 이런 현실이 초래된 것은 우리 감리교회 안에 있는 정치적 파당성이 영성이나 도덕담론보다 우월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누군가 개인을 차별 배제함으로 화근을 막아야 한다는 발상에 앞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4년제 감독제가 도입된 이후 이런 노력을 과연 진지하게 해 왔는가? 그런 진지한 노력보다 전과기록이 없는 이들이 담합하여 전과기록이 있는 이의 신분과 자격을 제한하기 위한 담합을 벌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전과사실이 없는 지도자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를 짓고, 교단에 해를 끼치고, 사람을 차별하며, 공적 예산을 낭비하고, 심지어 더욱 더 큰 불의한 일을 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인간론이 밝혀주는 죄를 향한 경향성은 이런 논리가 틀린 것이라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러한 속성을 애써 모른체 하면서 과연 누군가의 지난 흠을 들추어내어 모욕하는 일을 강단에서 복음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강단에서 외치는 사랑과 용서가 교회의 질서 속에서는 불통(不通)된다면 그야말로 강단의 신학과 교단 정치 신학은 달라야 하는 것인가? 정말 감리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렇게 스스로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란다: 왜 “우리는” 문제가 있는 사람을 감독회장으로 뽑을 수도 있는 총대들을 뽑아 총회장으로 보내는 것일까? 그런 총대들은 누가 키워 낸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두 가지일 수 있다. 비록 흠이 있어도 이 사람이 감독회장이 되어야 감리교회에 변화가 있겠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거나; 둘째 우리 감리교회의 총대들이 민주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그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는 이런 사실을 뚜렷하게 반영하지 않았는가?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무수한 전과 혐의가 있었지만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민주적 절차는 이 분의 통치방식에 대하여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비판을 제기할 수는 있을 지언정 그에게 위임된 권한을 부정하기보다는 그의 임기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다른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달라야 하는 이유는 거룩함을 빙자하여 소수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를 옹호함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정신이 아니었던가? 과연 우리 사회의 민주투사들이 민주적 절차와 질서를 무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전과 사실을 트집잡아 얄팍한 도덕주의적 논리를 내세우며 연일연야 신문에 그의 전과를 반복적으로 나열하면 모욕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다. 왜 그런가? 세상이 속되어서 감리교 게시판에서처럼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겠다면서 온갖 비인격적인 언어들의 난투극을 벌리는 열사들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진실한 결과는 - 국민이 그를 사소한 전과기록을 포함하여 십여건에 이르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뽑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전과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보다 그가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소수자들이 전체 국민을 싸잡아 비난할 것인가? 아니다. 비록 소수자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국민의 민의를 존중하는 것이 더 민주적인 것이며 옳은 일이다. 진정으로 감리교회를 바꾸려면 우리는 비난과 모욕이 아니라, 교인들의 도덕적 판단 의식을 높이고, 참된 영적 기준을 정중하게 지켜온 분들을 진정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원칙을 지키고 존중하도록 도울 일이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높은 법을 만들어 두고 민의를 재갈 먹이는 일은 도덕주의적일 수는 있으나 민주적인 것도 아니고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입장을 야유와 비난을 일삼으며 감리교 홈피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이 가진 신율법주의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감리교회 안에는 복음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신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들이 난폭한 언어를 사용하며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교회를 정화하겠다고 주장하며, 무수한 교회 구성원들의 정서를 파괴하고 있다. 파당성으로 인하여 교회법이 무능해지니 겨우 한다는 것이 사회법을 꼬뚜리 잡아 상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헐뜯는 것이다. 교단을 개혁하겠다는 이들이 이런 식이라면 어떤 교단을 만들려는 것일까? 합리성도 없고, 인권의식도 없고, 정중함도 없는 그런 교단인가? 히틀러처럼 소수 유태인들의 역사적 전과를 나열하고 그것을 빌미삼아 그들을 차별하고 축출했던 논리를 모방 답습하려는 것인가?
감리교회의 도덕성은 지금 감리교 논객들이 점령하고 있는 교단 홈피에서도 여실히 초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 서로를 모욕하는 그런 논쟁은 삼가하시는 것이 좋다. 피차의 인격과 인간다움을 지키기에 유익함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자신들이 지도자로 모시고 싶은 분을 자랑하고, 그 분이 정말 교단을 아름답게 가꾸고, 진정한 복음의 정신으로 개혁해 나갈 수 있는 분임을 설파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누군가가 상대편을 모욕하고, 상대편의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할 경우 오히려 총대들은 그런 비인격적인 행위를 하는 이들이 지지하는 이를 교단 대표로 뽑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오늘의 감리교회 현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이들이 우중(愚衆)민주주의를 두려워하여 민의에 판단을 맡기지 않고 특정한 이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될 반민주적인 법을 옹호하는 논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전(前) 감독회장은 이런 논리에 뒤 밀려 임기 말 반민주적인 권위의 오용을 기함으로써 교단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는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전과가 있는 이가 영원히 파렴치한 전과자로 보이면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전과가 있더라도 그가 오히려 전과가 없는 이보다 더 나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지면 그를 지지하여 그가 선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이들이 감리교회의 민의를 담아낼 수 있는 의회적 기능을 맡고 있는 총대들을 젖혀두고 도덕주의적 잣대를 내세우며 절차에도 없는 심판을 내리고 공개 재판을 하며, 일종의 사형(private punishment)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나는 이런 이들은 감리교회의 총대들의 합리적이며 영적인, 도덕적인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반민주적인 분들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이들은 반민주적인 도덕주의자들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질서는 민주적인 것이냐? 이렇게 반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감리교회의 총대들을 우중민주주의의 주도자들이 될 수 있는 우려를 가지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로 서 있는 목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모아 한 개인에게 보복하고, 스스로 의로운 자 인양 주장하는 모습은 무수한 영혼을 돌보아야 할 목사들의 진면목은 정녕 아니다. 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초법적인 행위를 주장할 수 없다. 초법이 아니라, 법보다 높은 인간애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데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진실로 감리교회를 바꾸려면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방법을 찾아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모욕을 일삼는 비난과 근거와 논리가 결여된 불평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의 변화를 초래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혁이거나 혁명이다. 혁명적인 방법은 물리적인 폭력구조가 존재하는 정치사회에서는 가능하다. 헌법적 질서를 정지시킬만한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교회는 물리적인 폭력구조가 없으므로, 즉 경찰과 군대를 가지지 않으므로, 이런 발상 자체가 허구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개혁을 하려면 이전보다 더 졸렬한 방식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사회법에 호소하며 정치적 이해타산을 하는 방식도 아니고, 온갖 불평과 비난을 쏟아내며 상대를 모욕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성서적인 원칙을 따라서 보다 나은 감리교회를 위한 길을 지혜롭게 모색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서로가 진실하고 정직할 수 있을 때 가능하고, 서로를 원수나 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협력자요 동역자로 받아들이는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동역자라는 점에서 감리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일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는 한 우리는 파당성의 논리를 추종하는 난폭한 언어의 잔치를 벌릴 뿐, 진정 모두가 바라는 바 합리성과 합법성을 요구하는 교단의 변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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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10, 2009
삶의 현장에서 실력을 쌓은 후보자
글쓴이: Hugh H. Mo (휴 H. 모우)
번역: 박지현 (New York University Law school 재학)
인준절차가 진행되면서 미국 대법원 후보자 소니아 소토마이어의 법경험과 법철학이 모든 관점에서 자세히 해부되며 분석될 것이다. 특히 그 동안 소토마이어 판사를 묘사하는데 사용된 말들 혹은 본인이 쓴 모든 언어가 자세히 분석될 전망이다.
대법원 후보자가 갖추어야 하는 요건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지목한 “동정심”이라는 가치의 의미에 대해 정치적 논쟁은 계속되고 있고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과 소수인종이라는 사실이 소토마이어 판사의 자격요건, 법사상, 그리고 그녀의 헌법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란도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나는 대법원판사 후보자로서 그녀의 자격을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녀가 범죄율이 상당히 높았던 뉴욕시의 검사로 활동했을 당시 그녀의 직무수행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약 30년 전에 맨해튼 지역 검찰청에서 소토마이어 판사와 함께 조검사로서 일을 했다. 소토마이어 판사와 우리의 동료들은 60년대 민권운동과 70년대 베트남전쟁대세대의 부산물이었다. 우리는 이상을 추구하며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페리메이슨,” “드렉넷,” 그리고 “네이킷시티”와 같은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우리는 검사들이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검사로 활동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당시 뉴욕에는 난폭한 범죄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전설적인 맨해튼 검찰장청이었던 로버드 모건다우에 의해 임명되어 범죄의 물결을 막을 직무를 맡았으며, 그 의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형사법체계 안에서 늘 공정심(성)과 정의를 지키도록 지시를 받았다.
나는 소토마이어 판사를 1980년도에 만났다. 당시 그녀는 신임검사로 임명을 받아 내 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녀의 동료들보다 뛰어났다. 소토마이어는 늘 열심히 일했고, 뛰어난 안목이 있었으며, 복잡한 사실관계들을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명료하게 정리하여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곤 했다.
맨해튼 검찰청에 있는 젊은 검사들은 경험부족 때문에 선배검사가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배운 다음에야 살인사건을 맡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당시 소토마이어 판사는 벌써 다양하고 복잡한 형사사건을 맡은 경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동 포르노그래피 사건과 검사측과 D’Alessio and Hyman 사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살인사건을 아직 맡아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녀의 첫 살인사건은 나와 함께 맡게 되어있었다. 사건 명은 ‘People v. Richard Maddicks’ 였는데, 사건명의 ‘매딕스’는 ‘타잔 강도’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1981년에서 1982년 사이에 할렘 한가운데서 3개월 동안 건물옥상에서 줄에 매달려 총을 쏘며 창문을 깨부수며 타인의 집에 침입하여 강도와 살인을 저질렀던 인물이었다.
매딕스의 일인 범죄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다. 세 명이 살해당했고,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경찰이 12개월 동안 23건의 사건을 조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매딕스가 구속되었다. 그 가운데 11개의 사건은 37건의 범죄가 적힌 기소장의 대상이었다. 그는 살인, 강도, 상해, 그리고 다른 범죄 혐의를 받아 재판에 회부 되었다.
타잔 사건은 사실 검사로서 가장 이상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다양한 범죄와 파편적인 증거들을 모아 피고인의 정체와 범죄행위를 증명 해야 하는 중요하면서도 도전이 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타잔 사건에 대해 뉴욕주 하위법원의 배심원 앞에서 재판이 열렸다. 4주 동안 시민, 경찰, 병리학자, 수의사, 탄도 전문가, 그리고 심지어 지도제작자를 포함하여 40명의 증인들을 세운 결과 리쳐드 매딕스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주 교도소에 62년6개월에서 종신형까지 갈 수 있는 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녀의 첫 번째 살인사건 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토마이어 판사는 본인이 능력 있는 변호사이고 조사관이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수사관들과 함께 범죄현장을 방문하면서, 수사관들, 피해자들의 가족, 그리고 모든 증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의 이러한 활약은 매딕스의 형사재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이 복잡한 다수 살인 사건의 수 백개의 파일과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분석했으며, 인민1호라고 불려진 사건 다이아그램까지 만들었다. 이 다이어그램은 배심원을 위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실관계들을 분명하고 기억하기 쉬운 시각적인 자료로 요약한 것이었다.
그 당시 소토마이어 판사는 다른 검사들, 심지어 선배 검사들보다 법정에 설 수 있는 능력이 확연하게 뛰어났었다. 그녀의 법정능력과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에 나는 40명의 증인 가운데 20명이나 그녀로 하여금 법정에 소개하고 심문하도록 했으며, 내가 사용한 모두 진술을 쓴 사람이 바로 소토마이어였다. 소토마이어가 살인피해자의 여동생을 심문했을 때 배심원 가운데 눈물을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소토마이어 판사는 타잔사건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했으며, 법정에서 인상적이고 권위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능력있는 실무자로서 복잡다단한 사실관계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종합했으며, 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절대로 잊지 않았다.
수많은 검사들처럼 소토마이어 판사는 검찰에서 직무를 수행한 다음 그곳을 떠나 법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추구했다. 사실 나는 1991년에 그녀가 남뉴욕주 미국 연방법원의 연방판사로 임명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녀의 어려운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자수성가의 본보기로 볼 수 있는 그녀의 다분히 미국적인 이야기는 많은 면에서 중국계 미국인이 나의 이야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앞으로 소토마이어판사의 자격, 법철학, 인격, 인종 그리고 성(gender)은 면밀하게 분석될 것이다. 그러나 맨해튼 지역 검찰청에서 강인하고 능력 있는 검사로서 그녀가 쌓아 올린 경험이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삶의 현장’에서의 경험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를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비판의 대상이 되나,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이 땅 가장 높은 법원인 대법원에서 현재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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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30, 2009
하나님의 교회를 자유케 하라!!
< 이 글은 현재 기독교 타임스에 연재중입니다. 2009년 8월 10일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삼가해 주십시요.>
하나님의 교회를 자유케 하라!!
박 충구 교수 (감신대 기독교 윤리학)
I. 불평과 비난을 넘어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라는 표제어를 내 걸고 시작했던 4년제 감독의 실험무대는 감리교회의 고질적인 파당성, 반인권적인 불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행태 그리고 비판이 아닌 비난 일색의 경색구조를 온 세상에 드러내고 표류하고 있다. 교회를 섬기기 위한 교단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교회를 섬기기는커녕 한국 감리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가로막는 현실로 드러나게 된 것은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주님을 섬기며 한국 감리교회의 위상을 지켜온 무수한 목회자 평신도들에게 참으로 유감스러울 뿐 아니라 통탄스러운 느낌을 남기고 있다. 교회법과 사회법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단 정치가들의 법정시비남발 사태로 인하여 한국 감리교회는 솔로몬의 재판을 견주어 말한다면 어린 생명을 차라리 쪼개 나누자는 무자비한 어미에 볼모 잡힌 듯하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 우리들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심”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감리교회 정치구조가 묵인해 온 죄와 허물과 거짓과 파당성이 이처럼 골고루 드러난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인간의 죄악의 구조보다 훨씬 크고 깊다”는 어거스틴의 명제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제아무리 우리들의 죄가 깊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깊다는 믿음만이 오늘의 감리교회를 진흙탕 속에서 건져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불러오는 데에는 세 가지 기본적인 태도가 있다. 첫째는 불평불만 하는 냉소적 태도다. 사건과 문제를 지적하며 나열은 하는 데 정작 본인은 책임의 구조에서 빠지는 경우다. 불평불만과 원망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선동해 놓고 막상 책임적인 변화를 도모할 자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말과 행위가 다른 무책임한 이들이다. 둘째,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낱낱이 드러내며 도덕주의적인 비난을 일삼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과 약점은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이들은 저열한 이들이다. 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이 상대편을 몰락시키기 위하여 가지는 습성이다. 이런 행위는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며 불신앙적이다. 참으로 불행한 것은 이런 행위에 익숙한 이들이 우리 감리교회에서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당적 집단을 등에 업고 교단정치를 해온 이들이 언제나 감리교회의 교권을 장악해 왔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야말로 교회를 타락시켜온 가장 위험한 집단이요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는 내부의 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감리교회의 어지러운 형세는 바로 이런 이들이 교단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벌려온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입장이 있다. 보다 넓은 하나님의 은총을 인정하는 세계관의 지평에서 우리의 허물과 오류를 비판하는 이들이다. 정당한 비판은 오류를 바로잡고 거짓을 버리게 하며, 회개를 통하여 피차에 더불어 진실을 직면하게 하는 나침판이다. 하지만 비난이란 그것이 정치적 목적에 결부될 때 사실판단보다는 정치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감정을 섞어 부풀리고 확대한 추정적 판단을 동원하는 습성을 가진다. 비난자들은 그러므로 간혹 도덕주의적인 논리나 거짓과 거짓증언까지 동원한다. 하지만 진정한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은 사실판단에 사유를 근거 짓는다. 사실에 근거한 판단만이 진실한 것이며 공동체의 정당함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독일 본 대학의 신학자 마틴 호네커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판단근거는 반드시 두 가지 위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실과 성서”다. 진실한 사실에 적합한 판단 그리고 성서에 적합한 판단만이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사실에 근거하여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공동체라 할지라도 비판담론을 가로막는 행위는 스스로 부패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비신학적인 위선이 된다. 비판담론이 열려있는 공동체는 비판을 통하여 보다 공정하고, 진실하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신앙 공동체로 성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판적 사고를 혼란이라고 과장하고, 보다 나은 길을 제안하는 것을 권한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초상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뿌리 깊은 오류가 된다.
II. 파당성에 눈이 먼 지도력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선의의 공동체를 가장 위협해 온 악의 힘은 파당성이다. 사탄의 역사는 개인의 범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파당적 판단과 힘을 통해서 전개되어 왔다. 교회 역시 파당성에 의하여 그 존재의 위기를 수없이 맞아왔다. 인간 공동체가 운용해 온 파당성의 기초 공리는 혈연과 지연과 학연 그리고 이와 맞물린 이해관계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입증해 주듯, 그리고 근대 한국 정치사가 입증해 주듯 혈연은 부자지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가치구조와 맞물려 있고, 혈연을 중심하여 뭉쳐진 관계가 지연이며, 이 위에 학연이 더해지면 매우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해 왔다. 이렇게 뭉쳐진 집단은 집단의 크기에 따라 정비례하는 권력을 생산한다.
라인홀드 니버는 기독교적 인간관에 근거하여 “개인은 다소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부도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감리교회 안에 기생하는 무수한 정치적 집단은 니버의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 부도덕하다. 이런 부도덕한 집단에 의하여 생산되는 교회 정치가가 도덕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판단은 교회 지도력을 매도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집단은 부도덕한 것일까? 집단의 권력구조가 부도덕할 수 있는 것은 파당적 집단이 가지는 반민주성 때문이다. 파당적 집단의 수장들은 전근대적인 억압적 구조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은 파당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파 구성원과 타인을 차별하는 데 민첩해야 한다. 즉 자파에게는 관심과 이익을 타파에게는 무관심해야 그 집단의 수장으로서 존재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파당성의 핵심이 아니라 파당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 민주적 절차와 정의와 진실을 앞도 하는 계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파당성만 있으면 무능한 이도 지도자로 옹위되고, 아무리 유능한 이라 할지라도 파당성이 없으면 도태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파당성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므로 파당성을 구성하는 논리는 매우 원시적이다. 충성과 복종의 관계를 통하여 그 파당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자가 유능한 구성원으로 이해되고, 이런 자들에게 이해관계의 떡고물을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파당적 판단으로 인하여 무능한 목회자들이 아름다운 교회에 부임하여 그 교회를 황폐화시켰던 사례가 한둘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선거철마다 누군가의 앞잡이가 되어 동분서주하는 이를 보라. 그를 움직이는 것은 장차 권력을 부여잡을 이를 시중들면 그 권력자가 주는 권력의 부스러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부도덕한 파당성은 인류사회가 이루어 온 정의와 진실과 민주적 절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민주적 질서란 다양한 가치판단과 이해를 전제한다. 따라서 보다 나은 선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로를 설득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합의에 이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성숙과 진보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사회의 구성원은 사회적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파당성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보다 나은 합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이 생략된다. 파당성에 소속된 이들은 이미 이익집단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파에 이익이 되는 것은 선이고, 자파에 해가 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악이라고 분류하는 습성에 빠져있다.
그들은 차이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른 것은 악이나 거짓이나 자신들의 권위를 거부하는 적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수사(修辭)하는 진리와 정의와 자유와 공정함이란 명분상의 표현일 뿐이다. 파당성은 오로지 자파를 강화하고, 자파에게 가장 커다란 이해관계를 불러올 수 있는 정치권력의 형성이 선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파당성은 궁극적으로 감리교회 구성원 전체의 민의를 배반하고, 보다 나은 성숙을 가로막게 되기 때문에 이에 위배될 수밖에 없다. 소심한 자들은 파당성이 강한 수장의 그늘 아래 서 있을 경우 신분과 자리가 보장되는 안전을 직감한다. 가끔 이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의 결과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당성의 위험은 파당성이 사탄의 도구가 되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를 망신주고, 파괴하며, 선교의 길을 가로막는 데 있다. 오늘의 감리교회를 보라. 오늘의 감리교회는 사람들의 신뢰와 믿음의 대상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감리교회 구성원들조차도 수치와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는가? 결국 오늘의 감리교회의 현주소는 선으로 악을 이기지 못한 한국 교회의 한 실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 교회 구성원 각자가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입으로는 진리와 사랑과 정의를 외쳐왔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능력이 고갈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끼리 상대를 불리하게 하기 위한 전략전술로서 사회법을 이용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벌리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까닭이다. 과연 이런 이들이 우리의 영적 지도자요 영혼의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파당적 정치로도 모자라서 교회의 자율적 능력을 훼손하더니 이제는 사회법에 제 편을 들어달라는 판단을 구하고 있는 가난한 영혼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일 년간 감리교회 안에 있는 파당성은 무수한 죄와 악을 범하면서도 그것을 진실로, 정직으로, 그리고 참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후안무치한 역사를 초래해 왔다. 누가보아도 상대에게 불리하게 법을 만들고, 교회의 법과 절차를 무시할 뿐 아니라 언어적 물리적 폭력까지 동원하는 자리가 될 정도로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켰다. 이것이 어느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나는 이런 모든 일이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거룩함에서 떠난 파당적 집단의 본질, 부도덕성의 표현일 뿐이다. 그 결과 이제는 교회의 젊은이들조차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예의와 존경과 신뢰를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주님을 진실되게 사랑하는 주의 종들이 아니라 저들은 파당적 권력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일소(一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파당성을 등에 업고 이합집단하면서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주고받기로 합의하는 내용이 우리 감리교회를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위태롭게 만들어 온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III. 교회법을 부정하는 파당성
감리교회 정치의 파당성을 가장 노골화한 객관적 표현을 나는 감리교회의 교리장정에서 읽는다. 감리교회의 부도덕한 파당성은 교회 정치의 핵심인 감독 선거에 그 초점이 모아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파당자들은 어느 법이 자파의 수장을 모시기에 적합한 것인지 파당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4년제 감독이 2년제 단임 감독제로 바뀐 것은 누가 보아도 나누어먹기 식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어느 감리교회가 감독을 2년제 감독으로 선출하고 단임제로 규정하는 데가 있는가? 2년제 단기 감독 제도는 교단정책과 운용에 있어서 지속성과 교단 선교의 장기비젼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는 바 감리교회의 본원지인 영국감리교회는 권위주의적인 감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합감리교회는 감독을 뽑되 종신제 감독으로 선출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2년제 단임 감독을 선호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교회 지도력의 항구성과 정당성을 우리 스스로 믿지 못하고 부정해 왔기 때문이다. 감독으로 선임된 이들이 감리교회의 신학과 유산을 지키고, 교회를 돌보아야 한다는 감리교회의 지도자가 아니라 파당적 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피차에 노골적으로 인정한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4년제 감독제로 법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또다시 2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 반대의 주요 논리는 결국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파당적 지도자가 4년 동안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합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4년제 감독이 파당적일 경우 그 폐해가 더욱 극심하기 때문에 그 임기를 단축시켜서 권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파당성의 극복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2년제 감독제도안에서의 파당성은 이제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 감리교회 의회 정치는 증발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 사분오열된 교회정치의 파당성안에 갇혀진 것이 본질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그 많은 감리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이 정작 파당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적 결단과 양심을 가지고 판단할 지성적, 도덕적, 영적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많은 이들이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를 막론하고 파당적 정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교회의 각종 지도자로 피선되기도 어렵고, 그 직을 수행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아는 이들은 이 현실에 순응하여 강한 파당성을 가진 이들을 선출해야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정작 스스로 질문해야 할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능력은 막상막하 그 떡이나 이 떡이나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노골적인 파당성이 도덕적이며 영적인 판단을 압도하게 된 것이 오늘의 감리교회의 현주소다. 이렇게 되면 보다 나은 교회를 위한 변화와 갱신이란 선거를 위한 허구적 표현일 뿐 진정한 개혁을 위한 비판담론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비판담론이 재갈 물려지게 되면 모든 의회 제도를 지배하는 파당성의 정치가 불러오는 교회법 부정현상이 만연해 진다는 것이다. 감리교회의 법은 일종의 교회법으로서 신앙 공동체의 교리와 교회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자치법이다. 크게 보아 감리교회의 장정은 교회 조직을 규정하는 법과 교회의 존립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규범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헌법과 선거법 그리고 재판법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법은 합리적 토론을 통해 감리교회의 민의를 수렴하는 각종 의회제도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감리교회의 법에 의한 자치능력이 파당적 교회 정치에 볼모잡혀 버린 셈이다. 파당적 권력은 자파 구성원들에게는 제아무리 부도덕해도 결코 해를 끼치지 않으며, 파당적 거래를 통하여 교회 규칙 적용의 원칙을 부정하기도 한다. 교회법에 의하여 범법행위를 한 사실이 명료하게 드러나도, 파당성에 사로잡힌 교회의 권위자들은 이를 치리할 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들은 파당적 권력간의 거래를 통하여 모든 의회 제도를 뛰어넘는 야합과 밀약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치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란 그저 파당성의 구조에 속하지 못한 어설픈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파당성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정의와 공평이 사라지고 무자비한 폭력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도 행사된다. 파당성을 등에 업고 교단 정치를 하는 이들이 내리는 판단에서 이해관계가 나누어지고, 관심과 무관심의 영역이 나누어지고, 자리다툼의 우열성이 나누어질 때 필연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파당적인 인사들은 정의와 공정함에 관한 신앙적 물음을 파당성안에서 굴절시키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불공정함에 의하여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불의하지만 하나의 현실적인 공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를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교회의 일치와 거룩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IV. 교회법을 부정한 지도자들
그렇다면 이번 감독선거의 최대 쟁점을 분석해 보자. 많은 이들이 교회법과 실정법(사회법)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혼란을 느끼고 있다. 우선 오늘날 교회법은 지난 중세와는 달리 민, 형사적 강제력이 결여되어 있다. 교회법은 오직 교회의 교리와 직제를 보존하고 교회 내 질서를 자치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교회법은 우리나라 헌법과 실정법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칼바르트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국법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교회 구성원으로서 교회법의 저촉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법에 교회가 호소할 경우 국가의 법은 일단 교회의 자치법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한계 안에서 판단을 내릴 뿐이다. 다만 그 판단의 적법성과 타당성은 3심 제도를 통한 절차 속에서 일회적 판단에 전적인 무게를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다툼의 당사자인 양자(兩者)가 법정의 판단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1심 판단이나 2심 판단의 유효성은 유보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툼이 종료되지 않을 경우 법원의 1심 그리고 2심 판단은 잠정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잠정적 판단의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사안에 대한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번 감독 선거 후 교회법과 사회법 파장이 일어난 소이를 살핀다면 이는 결국 교회법을 제대로 준수 했는가 못했는가의 문제가 사회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 것인데 이런 법적 다툼이 생긴 것은 다름 아니라 교회의 지도력이 교회 자치법의 자율성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증거가 되거나, 무능하여 이를 포기한 경우를 의미한다. 더구나 사회법의 판단 주체인 판사의 소양과 교회법에 대한 인식의 정도, 그리고 종교와 정치의 야합구조에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정황을 참작할 경우 세상의 법정에서 내린 판단을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보다, 교회 의회의 판단보다 더욱 신봉하여 우위의 선이라고 여기는 것은 참으로 반(反)교회적이며, 불신앙이고, 심지어 어리석은 일이다. 더구나 교회법의 자구(字句)들에는 매우 애매한 표현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회법의 1심 혹은 2심 판단의 적절성은 대법원 판단에 이른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감리교회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파당적 판단을 강화함으로써 교회법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힘의 대립을 초래한 결과다. 법정 시비를 벌린 이들은 사회법이라는 힘을 불러들인 것이고, 감리교회의 다양한 의회제도의 기능과 역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평소의 습성을 보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법에 대한 법정 시비는 수년에 걸친 지루한 법정논란을 불러올 뿐이며 이 기간 중 교회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거나 박제화 될 수 있다. 따라서 교리나 교회직제 혹은 선거에 관한 사회 법정 시비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벌려서는 안 되는 법정 게임이다. 평화주의를 신앙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퀘이커들은 사회법정에 호소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법정에 호소하는 행위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적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은 감리교회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 벌리는 법정시비에 감리교회의 전 구성원이 볼모로 잡힌 모양이 되고 말았다. 사회법 시비 그것은 파당성에 볼모잡힌 교회정치의 무능이 불러올 결과일 뿐 감리교회와 모든 구성원을 위하여 아무런 실익(實益)이 없다. 솔로몬의 재판에는 자비로운 어머니가 등장했건만, 우리 감리교회에는 과연 무자비한 아버지들만 있는 것인가?
V. 감독회장선거법의 위헌성
교회법은 만능이 아니다. 교회가 국가의 보호아래 있듯이 교회법은 사회법의 감독과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교회법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교회법을 이유로 그 법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시하여 모든 민주국가의 헌법은 국가권력의 소재를 국민들에게 두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위법하거나 위헌사항으로 규정하고 이를 법으로 다스리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법도 모든 권위와 권력의 소재를 의회 제도를 통한 합의에 근거를 둔, 교회법에 규정된 민주적 절차에 두고 있다. 따라서 교회법은 교회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교회 법의 실질적 내용과 그 법을 제정한 법리적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결여될 때 교회 지도자들이 간혹 법리에 어긋난 상식 밖의 판단을 옹호하는 실수를 범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망신시키게 된다.
비록 다수결의 합의를 얻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여도 민주사회에서는 민주적 원칙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예컨대 국회에서 어떤 법을 여야(與野)가 합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하여도 그 법이 헌법에 위배될 경우 위헌적인 것이 되어 그 법의 유효성과 타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법은 사회에서 최소의 규범을 규정하고 있지만, 종교 공동체는 종교적 이상을 담고 있어서 높은 신앙과 양심에서 우러난 덕과 영적 가치들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교회법은 더 높은 인권옹호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법은 헌법과 실정법에 상위할 도덕적 당위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만일 교회법 자체가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훼손할 수 있는 조항들을 두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교회의 법이 인간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하위할 경우 교회법은 사회법의 저촉을 받고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교회법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일반 상식을 파괴하게 되어 그 반인권성으로 인해 온 사회의 지탄과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서울 YMCA가 여성참정권을 부정하는 규정을 옹호하다가 세계 YMCA연맹으로부터 강제 탈퇴를 당한 수치를 당했다. 이런 수치를 당해도 파당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을 옹호하는 후안무치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런 부끄러운 결정의 주도자들이 대부분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YMCA이사들이 인류가 이루어온 평등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거부한 것은 다름 아닌 당파적 판단에 그들이 몸을 던진 까닭이다. 남성중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졸렬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온 사회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는 몇 가지 위헌적 조항들이 담겨있다.
그 첫째는 부부목회 금지 조항이다. 이 조항은 결혼한 신분이나 관계를 빌미로 하여 부부의 공동 목회 가능성을 부정한 평등권 침해 조항이다. 비록 입법총회에서 대다수인 남성총대들이 부부목회의 부정적 측면을 그르다 여기고 이에 합의했다 할지라도 부부의 공동 목회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은 부부 이전에 목회자로서 개인의 인격과 소명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구세군의 경우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서적 전례를 들어 부부목회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부부목회 금지 조항이 어떻게 성서적 전통과 감리교 전통 그리고 현대 인권사상에 어울릴 수 있는 것인지 입법의회 총대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둘째는 감독회장 후보 자격에 대한 소급입법 문제다. 현 교리와 장정이 명시하고 있는 감독회장의 입후보 자격에서 25년간 무흠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고 이를 사회법에서 약식 기소되어 벌금을 선고받은 것까지 포함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까지 소급하여 그 자격의 유무를 판단하겠다는 졸렬한 소급입법적 사고의 결과다. 과연 이러한 법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급입법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경우는 오직 그 법을 제정하는 정신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경우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소급입법이 어느 누군가의 자격과 신분을 제한할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질 경우 이는 법적다툼의 소지가 있고, 위헌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소급입법은 교회가 이용할 법정신이 아니다. 흠이 없는 이를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러한 소급입법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할지라도 나는 이런 법은 이미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을지라도 선거권자들이 공동체의 대표를 선출하기 위하여 선관위가 입후보자의 전과사실을 나열하고 밝히는 것은 투표에 앞서 후보자들의 진면목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소 공익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사회법에 저촉된 범과가 그 법에 의하여 징계 효과가 오래 전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법이 그 죽은 효과를 다시 살려내어 교회 안에서 한 개인의 사회권, 참정권, 피선거권을 영구히 제한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우리 헌법은 제13조 1·2항에서 ‘①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訴追)되지 아니하며…, ②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 또는 재산권의 박탈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은 행위 당시의 법에 의하여 형법이 적용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의미와 상관되는 법적 원리로서 25년 전의 행위를 빌미로 신분을 제약하기 위하여 오늘 법을 만들어 특정인의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든지 혹은 재산권을 박탈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보다 도덕적인 감독회장을 뽑겠다는 취지를 가졌다는 궁색한 변명을 할지라도 25년 전의 행위까지 소급하여 신분을 제한하고 개인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법리적 타당성이 없는 일이다. 교회법이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교회 구성원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므로 반드시 이 차별 조항을 폐기해야 한다.
교회가 지켜야 할 법은 사랑과 용서에 근거한 거룩한 법이다. 사람을 차별하는 법을 만들어 두고 이를 소수의 약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정치적인 파당성이나 인권감수성이 무디어진 집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가사회나 심지어 사법영리단체인 회사에서도 차별금지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데, 어찌 교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보편적인 인권옹호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는가? 전과가 있거나 허물이 있는 이들을 영원히 구제불능의 사람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복음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거늘 어찌 감리교회가 이런 법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에 부끄러움을 자초하는지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VI. 교회지도자의 권위남용의 문제
국가를 비롯하여 한 집단의 수뇌로 피선된 이들은 당연히 법적 권위를 가진다. 따라서 감리교회의 수장이 되는 감독이나 감독회장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한 공동체의 대표나 지도자로 선임된 이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를 특권처럼 오용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행사하는 권위가 어떤 권위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인류 역사가 증언하는 권위는 다양했다. 세속적인 권위를 비하하며 성직의 권위를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높였던 중세의 교권은 명시적으로 추락했다. 개신교 전통은 그러한 신적 권위를 옹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권위에 저항하고 부단한 개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위자들은 자신이 가진 권위의 소재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감리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라고 부여된 권위다. 간혹 시대 착오성에 빠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에 비하여 한없이 보잘것없는 인간의 일회적인 생명에 온갖 특권과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영혼을 파는 이들도 있다. 상속적 권위란 중세시대의 귀족들이나 행세하던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권위는 민주적 권위다. 어떤 이는 교회와 신앙의 세계가 주장하는 진리는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인 것이며 신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지위와 사고만이 신적이며 신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릇된 이들이다. 기독교 신앙의 신본주의는 인간들 집단 안에서는 모든 개인을 죄인으로 간주하는 민주적 의식의 기초가 되는 법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 특히 개신교적 사고에는 성자(聖者)란 없다.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신본적인 교회 구조와 성직자 우월주의를 옹호하고 있어 성직자들이 교도(敎道)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개신교회는 성직자의 영적이며 도덕적인 우월성을 강조해 온 가톨릭의 교도권을 교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틴 루터의 그 유명한 명제,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라는 교설이 인간 본성의 깊이를 통찰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구태여 개신교회라는 것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신교의 인간론은 영웅이나 도덕적인 우수한 종자를 찾지 않는다. 그런 논리는 성서의 인간론에 위배된다. 오직 우리는 모두 한결같이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 앞에 존재할 뿐이다.”
교회의 수장이 되고 감독이 되면 그 본성이 변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큰 유혹에 직면한다. 오랜 기간 진실함을 찾아온 깊은 영적인 내공이 없다면 그들의 자색 옷은 위선과 탐욕의 기회를 확대할 뿐이다. 목사가 평신도보다 우월하지 않고, 감리사와 감독이 일반 목회자에 비하여 우월하지 않으며, 남성 목회자가 여성 목회자보다 더 질이 좋은 종자인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죄인으로서 복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직무가 다르고 주어진 권위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권위는 오직 교회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다. 그런데 파당적 지도자는 이 권위를 주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파를 위한 것으로 삼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므로 파당성이 불러오는 편협함은 보편적 진리를 거부하게 되어 있고, 정의와 진실과 공평함과 공정함을 쫒기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이미 공정한 룰을 버리고 파당성에 몸을 던진 이들이 어찌 공정과 공평을 외칠 수 있을까?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고 복음에 대하여 깊은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남다른 길을 걸어온 이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뿌리고,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뽑히는 한 교회법의 높은 정신이 존중될 리가 없다. 교회법에 의한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법은 은연중 버려질 수밖에 없다. 교회법이 교회 지도자들에 의하여 버려지면 교회는 불법이 판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감리교회의 법적 무능이 세속 재판정에 걸려있지 아니한가?
이렇게 되면 법은 있으나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하여 무시되고,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 인식될 수 있는 기반이 부정당할 뿐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이행하는 속도가 늦어지거나 방임된다. 파당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교회의 선교를 위한 신앙적 의무와 책무를 이행하라고 주어진 직무와 권위를 자파의 영달과 이익을 위하여 남용한다. 국가라면 국력의 낭비라 할 것이지만 교회이므로 거룩한 교회의 능력을 헛되이 소모하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가 헌금하여 보낸 공금을 자신의 쌈짓돈을 쓰듯 남용하기도 한다. 구약성서의 벨사살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교회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판공비가 개인적 판단에 따라 한없이 낭비되도록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은 참으로 전근대적이며 반민주적이다. 그러므로 사용(私用)할 수 있도록 방임되어 있는 이런 저런 판공비야말로 또 하나의 반민주적인 특권과 권위의 남용구조라 아니할 수 없다. 권력의 주변인들은 이런 판공비를 자꾸 확대하려 든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특권을 보장하고 이 특권구조에서 자신들의 잔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의 교단장이나 학교장은 개인적인 용도로 공금을 사용할 수 없다. 하다못해 자신의 개인적인 용무로 해외에 전화를 걸어도 공과 사를 구별하도록 요구받는다. 미국연합감리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일단 권력을 잡으면 공과 사의 간격을 애써 못 본 체 한다. 그러니 자신의 권위를 행사함에 있어서 사견과 공적 견해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업무추진비, 개인 판공비, 특별 판공비 명목을 만들어 공금을 개인적 판단과 요구에 따라 물같이 쓰는 것이다. 이런 물질적 특권을 향유하는 습성에 물든 이들은 결국 영혼에 깊은 병이 들 수밖에 없다. 구시대 왕족들이 누리던 특권을 현대 사회에서 이어받고 있는 모양이니 어지간이 양심적인 인사가 아닌 한 이 특권의 유혹에서 벗어날 자 누구겠는가? 무엇이 공의로운 것인지에 대하여 신념을 가지지 못한 심약한 이들은 이를 부러워하고 장차 그런 특권을 가질 수 있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국인 교회에 초청되어 설교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어느 주일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뚫고 처음 가는 교회를 한 시간 여 헤매다가 간신히 교회를 찾아 설교를 마치고 받은 사례비는 50불이었다. 마음에 적잖은 실망을 했지만 그 교회가 누구에게나 그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담임 목사의 설명을 듣고서 오히려 실망한 자신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다. 미국교회의 감독들이나 감리사들이 교회의 치리를 위하여 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는 사례비나 교통비를 준비하지 않는다. 논리는 간단하다. 감리사는 감리사 봉급을, 감독은 감독의 봉급을 받고 있으므로 설교를 하러 오가는 것은 그의 직무의 연장이기 때문에 별도의 사례비를 받거나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감독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감리사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신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려 한다. 감독과 감리사의 직무가 공적인 봉사인가 아니면 사적인 봉사인가 우리는 물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교회의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습성이 교회의 민주적 절차와 공적 직무의 한계를 소홀히 인식하게 한다는 점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민주적 권위는 공과 사를 구별하고, 주어진 권위를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감독과 감시를 받는 원칙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교회 지도자들의 판공비가 어떻게 사용되는 지에 대하여 우리는 형식적인 감사만 할 뿐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적으로 사용하라고 주어진 목사의 권위와 특권을 사사롭게 행사하는 이들은 직무를 남용을 하는 이들이다. 이런 행위를 방임하는 한 특권의 오용은 증가할 것이고, 그 특권을 둘러싼 싸움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청렴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이 교단 정치를 위하여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VII. 감독선거를 전후한 절차의 문제
이제는 해가 바뀐 감독선거 현장으로 돌아가 우리가 얼마나 절차를 존중했는지에 대하여 비판적인 이해를 해 보자. 감독선거 당일 연회마다 혼란이 일어났다. 한 후보자가 자격이 없다는 대자보가 붙어 있는 곳도 있고, 어느 투표소에서는 그런 대자보를 누군가가 제거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법원의 판결문이 투표 당일을 앞두고 나왔다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자격박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 후보의 자격사항이 다른 후보의 법정시비로 박탈되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감독회장이 선관위에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이를 무시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감독회장은 선관위의 고유 업무에 직권으로 개입하여 모후보의 자격을 박탈했을 뿐 아니라, 모 후보에게 투표한 절대 다수의 표를 死票(사표)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장정에도 없는 논리를 만들어 차점자를 감독회장 당선자라고 선언했다. 그런가하면 감독회장에 의하여 임명된 선관위위원장은 감독회장의 직권에 의하여 불신임되었다고 했으나 감독회장의 선관위 업무 개입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모후보의 다수 득표를 유효한 것으로 선언하고 모후보가 감독회장이 되었다고 공표하였다. 이로서 감리교회는 두 감독회장이 출현하여 혼란이 촉발되었다.
이 일을 두고 모 후보의 자격시비를 중대한 사안으로 보는 견해와 다수표를 사표화한 감독회장의 권위가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는지에 대한 시비가 일어났다. 이 와중에 감독회장 측에서 인정한 갑후보와 선관위에서 인정한 을후보가 서로 정당한 감독회장이라고 주장하며 한 후보측에서 교단 본부를 물리적으로 점거하는 극한 대립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여기서 감독회장은 어느 편에 선 것일까? 교회의 법적 치리를 바르게 하려는 의중을 가졌을까 아니면 을후보를 버리고 갑후보를 선택한 것일까? 적어도 교회의 치리를 담당한 감독회장이라면 제아무리 사법부의 판단이라 할지라도 일심 판단 자체에 감리교회의 운명을 거는 일은 경솔한 일이거나 적어도 파당적 결정이었다는 의혹을 벗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주변의 율사들조차 파당적 판단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개했다. 법원의 일심 판단이 교회법의 구조와 특성을 압도하게 만든다면 이 순간 감독회장에 의하여 교회법은 버려진 것과 다름이 없다. 게다가 을후보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항간의 비판이 파다하고, 학연이나 지연이 달라 견해가 다른 이들도 있을지라도 감독회장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사회법 수용에 있어서 신중했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감독회장이 선거기간에 선관위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선관위를 대행할 이들을 새로 임명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였을까? 그 순간이 지나가면 불법적인 것이 합법적인 것으로 화학반응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왜 감독회장은 감리교회의 의회제도와 그 무수한 결정기관의 합리적 판단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일까? 선거 순간이 지나가면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 없는 현실적인 세력이 구성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일까? 나는 여기서 파당성에 피차 물든 정신을 가진 이들이 가진 교회 법치적 신념의 증발을 본다. 나는 이들에게서 합리적으로는 불법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읽고 감리교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법치의 부재를 본다. 법치보다는 권모술수가 유효하다고 본 것일까?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파당적 정치에 익숙한 이들은 일단 사건이 지나가면 힘의 정치만 남아 파당적 힘이 정의와 진실을 재갈 물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고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매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선관위의 기능을 파기하고 긴급조치를 내린 것이다. 그 당시 감독회장은 만의 하나 선관위가 불법을 행했을 경우 이를 절차적인 합리성을 통하여 바로 잡을 능력이나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이런 개인의 직권개입 행위는 감독회장에게 주어진 권위 행사의 바른 방법이 아니다. 감독회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교회법의 수호에 있고, 교회법이 규정하는 각종 의회의 기능을 통해 교회의 법치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는 감독회장직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감독회장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회장은 교회를 위하여 오직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은 감독회장이 대행으로 긴급 구성한 선관위에 의하여 감독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공표한 갑후보의 감독직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온 감리교회가 기대를 걸고 4년제 감독으로 선임되었던 한 교회의 수장으로서 크나큰 역사적 오류를 남긴 셈이다. 같은 공리(사회법)를 가지고 상대를 침묵시켰는데, 그 공리가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한 것이다. 이 책임을 이제 그가 어떻게 질 것인가? 그런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리를 파당적인 비난이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 다수의 총대 표를 死票(사표)화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1심 법원의 판단에 따라서 교회의 질서를 파기하고 법원의 종복이 된 결과 무수한 총대들의 표를 사표로 만들었다면, 그 감독회장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직무를 가진 것인가? 법원의 판단에 충실하게 복종하여 갑후보의 감독회장직 조차 보존되지 않고 상실되거나 유보되었다면 이는 결국 감리교회의 감독선거 표 모두가 사표(死票)처리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나는 이 점에서 이번 선거는 매우 잘못된 소수자의 판단에 의하여 엄청난 재난을 초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당성의 보호막아래 있는 이들은 공동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서도 무사할 수 있다. 파당성의 전사로 추앙되기 때문에 그를 파당성이 지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선관위가 장정에 따라 감독회장 자격심사를 정확하게 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면, 그리하여 감독회장이 그릇 선출되었다면 과연 감리교회는 이런 오류를 바로잡을 의회적 역량이 없다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절대다수의 표를 획득한 을후보를 추대하는 총대들을 의식하는 한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보다는 권모술수를 택하고 주어진 권위를 남용하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감리교회의 수장으로서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경우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도 위헌적 행위를 했을 경우 탄핵대에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우리들이 아닌가? 상대편의 자격이 문제가 된다면 왜 그것을 감독회장이 개입하여 막아야 했는가? 과연 감독회장은 그런 긴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된 사람일까? 나는 이런 비민주적인 권위행사의 본질을 인정할 수 없다.
감독회장 선거를 앞두고 감리교회 안에 을후보를 비난하는 비공식적인 고발문건들이 파다하게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을후보가 절대다수의 표를 얻었다면 비록 자파의 사람들이 을후보에 강한 반대의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감독회장은 민의를 존중하는 방향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독회장 스스로 바로 그 총회의 총대들 표를 받고 감독회장으로 선임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의무를 가져야 했다. 비록 을후보가 다양한 전력이 있다 할지라도 선관위는 공식적으로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무수한 비난 여론이 있었을지라도 총대들이 그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자신들의 도덕적 판단에 반해 그 많은 총대들을 싸잡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민주적인 견해라 볼 수 없다. 또한 을후보는 종신직이 아니라 민의에 따라 선택되어 4년 단임제 감독회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해야 할 책무를 가질 뿐이다. 심지어 그가 흠과가 있다고 하여 소급 입법한 법을 앞 세위 올가미를 만든 것은 법정신과 인권이해에 무리가 있는 것이다. 감리교회의 혼란은 이렇듯 소급하여 법을 입법한 그 시점부터 불행의 씨앗이 뿌려져 있던 것이라고 나는 본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코 영웅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간에 죄를 향한 경향성을 인식하고 서로 서로 선의의 비판을 제기하며 견제하면서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절대 권력의 형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리교회의 교회정치의 습성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권위의 오용을 옹호하는 파당적 구습에 찌들어 있다. 이 파당성이 감리교회를 유린해 왔고, 감리교회를 망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당성을 쫒는 이들이 권력 장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무엇이 교회를 지키는 것인가? 그 답은 매우 단순하다. 사상과 신념도 없이 개인적 권력욕을 앞세우는 이들을 지도자로 세우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이 길은 교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야 하는 멀고 먼 길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사상과 신념이 결여된 인사를 교단의 대표자로 세우면 그 주변인들이 기득권을 나누기 쉽고, 파당성이 짙은 인사를 대표자로 세우면 파당자들의 이익이 증대할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모욕하며 비하하는 파당성에 눈이 먼 이들이 존재하는 한 교회 지도력은 혼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VIII. 법정관리에 들어간 감리교회
법원이 결정한 임시방편으로 현재 감리교회의 총대들이 뽑지 않은 대행자가 그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임시 대행자는 민의에 의하여 선출된 민주적인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교단의 헌법적 질서를 회복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임시 대행이란 영어로 말한다면 “interim authority”다. 옛것은 가고 아직 새것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 그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임시대행의 직무는 과거를 반복하려 하거나 혹은 새 것이 되려하거나 이를 대치하라는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임시대행체제는 대내외적인 교단적 정상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행 체제가 짧으면 짧을수록 혼란과 행정 공백이 덜할 것이다. 임시대행 체제가 오래 갈수록 정상적인 교단의 업무가 지체될 것이므로 감리교회가 더욱 더 표류할 수밖에 없다.
소수자의 표를 유효표로 인정하여 무리한 절차에 의하여 인정을 받아 부분적 감독회장이 되었던 이는 반드시 민의를 되물을 자신을 가져야 하고, 다수자의 지지를 받았으나 불합리한 교회법을 주장하는 소리에 부정당하여 역시 부분적으로 감독회장이 된 이는 법적 절차를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일 년 동안 두 후보는 감리교회의 헌법적 절차와 과정을 버리고 상대를 법적 위하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정시비를 벌림으로써 감리교회의 자치능력을 스스로 부정해 온 과오를 가지게 되었다. 교회의 자치능력에 호소하지 않고 여전히 법정시비를 벌리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교회의 수장으로서 교회의 권위와 자율성을 지킬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매우 단순한 논리이지만 나는 감리교회를 이리도 병들게 한 사탄의 책략은 우리 안에 있는 뿌리 깊은 파당성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탄의 종이 아닌 우리는 이제 파당성에서 자유한 겸비한 주의 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감리교회를 병들게 해 온 혈연, 지연, 학연의 파당성에 몸을 담는 이들을 서로 경계하고 서로 권면하여 편협한 파당성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파당성은 정의와 공평과 진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고, 민주사회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양심과 존엄함을 박탈하고 파당적 가치의 노예로 전락시켜왔기 때문이다.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 파당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다수의 목사와 장로들이 우리 안에 있는 뿌리 깊은 파당성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면 감리교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감리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파당성을 버릴 때에만 비로소 정의와 공평과 진리의 정신이 감리교회를 강하고 견고하게 바로 세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06년 나는 대만의 한 시장(市長)의 초청을 받아 “쟈이 시(市)”의 의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쟈이 의회 의원들의 선서문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보았다: “나는 나의 친척이나 친구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혈연, 인연, 지연에 얽혀 일하던 관습을 끊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선언이 왜 필요했을까? 필리핀 유니온 신학대학 도서관에 담긴 학생들의 선언문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는 우리 학문 공동체에서 나의 동료를 구설수에 올리지 않는다.“ 동료의 인격과 성품을 비하하는 생활태도를 버리자는 학생들의 합의이다. 이런 합의는 그릇된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게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는 희망의 등대가 되기 위하여 우리 감리교회의 모든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정신력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옛것을 보내고 새것이 오는 하나님의 미래는 과연 어떤 사유와 판단을 통하여 열리는 것일까?
IX. 돈과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합리성과 자율성
감리교 감독선거의 치명적인 부도덕성은 후보자를 옹위하기 위하여 벌리는 직간접적인 돈거래, 금권선거에 있다. 나는 오래 전 한 감독 후보가 전해 준 뭉치 돈을 돌려보내며 고심한 적이 있다. 돈을 받지 않으니 그 교회 장로가 다른 자리에서 고급 양복표를 두고 갔을 때도 나는 다시 그 표를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후보는 월 천만원 대의 판공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히 그 후보와 관계가 나빠 진 것 같아 마음이 오랜 동안 찜찜했다. 물질이 넉넉할 경우 우리는 궁핍함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물질은 구매력을 가지는 권력을 뜻하고, 궁핍과 필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교회의 거룩한 수장이 되겠다는 이들이 자신의 신앙과 인격 그리고 비젼과 신념을 밝힌 후 정중하게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돈 봉투를 돌려 측근들을 움직이고, 돈 봉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가 생각하는 선거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도덕하고 불신앙적인 것이 아닐까? 그 감독 후보가 사용하는 돈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나님 앞에 드려진 헌금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돈을 각출해 내는 방법이 민주적이고 진실한 과정이었을까? 이 부정한 길에 대하여 왜 무수한 감리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은 침묵하고, 또 이런 풍조를 관용 인내, 심지어 허용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정도와 차이가 있을지라도 한국교회 일반의 풍조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체교회 목사가 개인적으로 판단하여 사용하는 교회 예산 항목, 용처를 묻지 않는 목회비, 그리고 적지 않는 교회들이 일반 회사의 중역 급들에게 주는 특혜와 유사한 특전을 담임목사에게 주는 교회들도 있다. 이런 특전을 받은 이들은 당연하게 여길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교회를 꾸려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교회에는 그럴 예산이 아예 없기도 하지만,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목사가 사용할 수 있는 눈먼 돈들이 적지 않다. 가난하고 궁핍한 신자들이 드린 헌금을 목사의 교단 정치 활동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또 게 중에는 담임목사가 교회의 수장이 되는 영광을 나누기 위하여 교회가 예산의 일부를 배려하는 것이 무엇이 잘 못인가 되묻는 장로도 있다. 이정도 되면 그 겉모양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수천, 수만명 교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거의 구제불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중세기에 지어진 화려하고 장엄한 교회가 그 위용에 걸 맞는 영적이며 도덕적인 능력을 상실했을 때 종교 개혁의 열풍을 맞았고, 그 가득 찼던 교인들이 모두 떠나간 후 오늘날 한낱 관광명소에 전락했다는 사실을 되새기지 못하는 지적이며 도덕적 천박함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리교회의 감독들 중에는 진심으로 예의를 다하여 존경하고 싶은 분들이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인격과 성품보다는 교회의 파당적 권력과 금력을 이용하여 다수표를 획득함으로써 교회의 감독이 되거나 정치적 야합을 통하여 순번을 나누듯 감독 자리를 탐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교회의 크기가 목회자의 성공을 암시하는 가치로 은연중 통용되는 것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힘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선교를 목사의 교권쟁취와 연계시켜 그 힘을 轉用(전용)하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행위는 목회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목회자의 권위의 오용이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가 오래 된 독일이나 미국 교회에서는 이런 일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리도 부도덕한 목회자의 권위오용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권위의 오용과 남용이 일상화 될 경우 청렴한 목회자상이란 한낮 허구에 지나지 않아 교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없는 불행한 교회가 된다. 제아무리 금권선거를 막아 보겠다는 구호를 외쳐도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파당적으로 이해하는 이들로서는 “우리”에게는 적용하지 않을 규범, 오직 “다른 편”을 향하여 적용할 규범이라는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리하여 감리교회 내부에는 선거를 앞두고 공공연한 향응과 대접 문화가 일어나고, 거지근성에 찌든 일부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들은 남보다 더 큰 것을 얻을 기회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하는 이들마다 위대한 영적 지도자 편에 선 사람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성속의 가치구조가 전도(轉倒)된 정도가 너무나 지나치다. 이런 양상은 서구의 교회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야의 교회와 다름이 없다. 당시 성직자들은 세속권력과 야합하고, 교회의 특권을 대를 이어 세습하며, 교회를 사고파는 행위가 일반이었다. 당시 교회의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이 가진 권위에 도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면 그 결과는 교회에서 추방되거나 교회 재판에 붙여져 그들의 시민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이었으니 당시 프랑스 혁명군이 제 1의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계급이 성직자들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혁명군들은 종교귀족들의 옹호를 받던 임금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성직자들의 모든 특권을 폐기했다. 그 결과 유럽의 교회들 안에서 목회자들의 권위 남용과 오용의 구조를 말끔히 청산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목사나 감독은 눈먼 판공비를 일체 사용할 수 없다. 오직 투명한 예산만 투명하게 집행될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교회 권위의 오용과 남용이라는 종교적 퇴폐풍조가 만연한 것일까? 우리는 이 21세기 한 복판에서 시대 착오자들이 되어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전근대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도덕적 낙오자들인 것일까? 국가나 교회를 망치는 것은 물질과 권력의 오남용에서 시작된다. 이 두 가지를 재갈물릴 수 있는 방법은 근대 정치사나 교회사를 통하여 볼 때 오직 국가 권력과 교회 권력을 민주화하는 길이었다. 그런 까닭에 교회는 민주적 합의에 근거하여 대표를 뽑고, 그 대표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교회의 대표로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시행할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기고 이를 빌미로 온갖 특권을 부여하고, 그 특권을 남용할 수 있도록 방임 한다면 우리는 겉만 민주적인 것일 뿐, 내면은 온갖 사리사욕과 부정 부패로 썩을 수밖에 없는 전근대성에 물들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교회나 교단 지도자들에게 부여되어 있는 특권구조의 폐기는 교회의 타락을 막고 참된 교회의 민주화를 위한 지름길이 된다.
제아무리 특권을 폐지한다 하여도 한 집단이나 공동체가 그 존재이유와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하여 근본적인 권력구조는 폐기할 수 없다. 여기에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과 평가라는 감시구조가 요구 된다. 따라서 이 감시구조는 두 가지 근본적인 기능을 가진다. 공적 비판은 모든 정보의 공개와 집단의 투명성을 필요로 한다. 범죄 집단은 투명성이 없고 모든 것을 비밀로 붙인다. 그러나 교회와 교단의 모든 재정구조는 그 돈의 출처가 개체 교회들이 낸 의무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모든 개체교회에까지 그 용처가 상세하게 밝혀져야 한다. 미국이나 독일의 목사들은 목회를 위한 목회비란 도서비와 교통비가 거의 전부다. 목회를 위하여 도서를 구입할 비용은 일년 예산에 따라 목사가 영수증을 첨부하여 필용한 경우 언제나 그 한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목사가 심방하기 위하여 오가는 비용은 목회자가 거리에 따라 교통비를 계산하여 청구하면 이를 재정부에서는 당연히 지급한다. 연회나 총회 회의비 또한 필요한 경비를 적절하게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원칙은 감독이라 할지라고 원칙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감독의 급여가 감리사나 다른 목회자들보다 높은 데 비하여 사사롭게 오용할 수 있는 불투명한 예산은 전혀 없다. 따라서 미국의 감독이나 목사는 근본적으로 눈먼 돈을 자기 돈처럼 쓰면서 보스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질에 관하여 엄격한 원칙을 지키면 우리는 물질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교회 지도자의 품성과 인격과 지도력 자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가 그 직위와 권위를 가지고 재임 기간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가 가장 커다란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 지위로 인하여 사회의 존경을 받고 또한 높은 봉급을 받는 교단장이나 학교장은 그러므로 자신의 공적 업무 수행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비판과 평가를 했다고 하여 간혹 사회법에 명예훼손 당했다고 고발 고소를 제기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도 있지만, 이런 고소 고발은 별로 효과가 없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개인적 비난이나 감정이 다소 있다손 치더라도 공익적인 동기와 성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나은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특별한 지위와 권위를 가지는 사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성을 가지고 모든 지혜와 정성을 다하여 교단의 발전을 기하고, 교단 구성원들에게 감사에서 우러난 높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교회가 성숙하여 발전하고 따라서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처럼 교단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이 교회 구성원의 자긍심과 명예를 극도로 훼손하고, 교단법을 스스로 파기하며 사회법 시비를 벌린다면 이는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성직자나 교회 지도자로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과 권위를 남용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교회적 혹은 교단적 감시와 비판기능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회 예산과 권력 행사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개체 교회나 교단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담보할 투명성의 원리는 집단적 파당성으로 인하여 붕괴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X. 대안적 사고와 실천가능성
기존의 감리교회 체제의 무능은 그동안 드러난 비인격적인 폭력성을 초래했고, 감리교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등 혼란을 가중시켰다. 누가 이런 현실에 대하여 도덕적이고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누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가? 급진적인 개혁적인 의식을 가진 이들은 한결같이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그 기능을 혁명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총회 혹은 입법총회라는 방법을 요구하는 입장이다. 또 다른 견해는 총회의 성격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총회를 구성하는 기존의 총대들에게 더 이상 신뢰를 보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 구조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 그 주장은 옳다. 모든 감리교회 구성원들이 교단정치 구조의 변혁과 변화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사회에 존재하는 교회로서 이런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민주적 절차와 원칙을 지킬 수 있는지 어려움을 느낀다. 군대와 경찰과 같은 합법적인 폭력구조를 두고 있지 않은 교회에서는 구테타적인 헌법정지 상황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면 누가 나서서 감리교 기존의 의회 제도를 파기하거나 정지시킬 수 있는 것인가? 떼를 쓸 것인가? 아니면 기존 세력을 향하여 비난과 모욕을 던짐으로써 뜻을 관철시킬 것인가? 이런 방법은 기존 총대나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그 방식 자체가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이다. 따라서 합리적 실천 가능성은 없다.
같은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모든 총대들이 오늘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총대들의 자격을 무시하고 새로 총대를 구성하는 방식도 감리교 교회법상 절차적 문제가 있다. 또한 새로운 총대를 구성을 하는 과정에 고질적인 파당성이 개입하여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파당성에서 벗어난 이들로 총대들이 구성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온갖 도덕주의적인 비난을 던지면서 개혁 총회를 요구한다 하여도 정작 합법적인 투표권을 가진 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문제 해결의 길을 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의 감리교 사태에 대하여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이 전원 나서서 서로 서로 파당성을 버리고 모든 기존의 총대들을 설득하는 방법이 가장 민주적이며 절차상의 하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워싱톤이나 유엔에서 무수한 로비스트들이 활동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개혁 의지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 파당성을 구성하는 일은 반대다. 그들의 도덕적 정당성이 의심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제에 대하여 비판은 제기하되 현재의 의회 제도와 총대들을 더 이상 비난하거나, 모욕하지 말고 신앙과 민주적 관점에서 진지한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그리고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책임 앞에 신앙을 가지고 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에 의하여 합리적인 결정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만이 감리교회를 위하여 공동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공동의 미래를 열어 나가기 위하여 우리의 악습을 폐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과 법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참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하여 나로서는 다음과 같은 5대 과제를 제시하고 싶다. 한국 감리교회의 영성이 민주적 틀 위에서 성숙하기 위하여 긴급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를 해체하는 길로서 탈파당화, 탈서열화, 탈특권화를 통한 교회정치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이를 풀어 제안한다면 첫째, 교회의 대의(代議)성에 있어서 민주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반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연장 서열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총대 구성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파당적 총대 구성의 가능성도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처럼 매 2년마다 대표들을 순환시킬 수 있도록 연차적인 대표를 3조 선정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이들이 교회 정치에 탈서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감독선거에 제비뽑기를 도입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할 수 있으므로 나는 반대한다. 그러나 총대들을 3반으로 나누어 제비뽑기로 뽑은 것은 가능할 것이다. 둘째, 정직과 청렴함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따라서 눈먼 돈으로 그릇된 교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남용될 수 있는 판공비는 최대한 삭감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개교회와 교단의 모든 예산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한 편으로는 교회 지도자의 경제적 특권을 약화시키되 다른 편으로는 합리적인 결정과정을 통하여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회의 기능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당파성 있는 인사가 교단장이 되어 자파 기용을 위한 권력 남용, 인사권 남용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런 비민주적인 인사권 남용을 차단하기 위하여 최소의 기능을 위한 인사권을 제외한 교단장 인사 특권을 폐기해야 한다. 교단장이 바뀔 때마다 임직원들의 신분이 공공연하게 위협받는다면 교단을 위하여 일하는 임직원들이 어떻게 감독 후보자들을 개관적인 눈으로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넷째, 공교회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교회의 매도 매수 관행, 불처럼 번지는 변칙적 교권 세습 관행을 합리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세워져야 한다. 또한 세습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들어 부자간의 건실한 목회나 교회의 진지한 합의조차 묵살하려는 논리도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모든 교회와 교단의 회의록은 최대한 공개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무책임하고 비성서적인 행위를 한 이들에 대한 치리가 파당성을 넘어 현실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파당성에 관여해 온 인사들을 교단 재판위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섯째, 민형사상의 고발 고소를 제외한 교회적 다툼을 사회법정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금해야 한다. 교회법에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교회 재판을 통하지 않고 사회법의 위하력을 불러들이는 행위는 교회 정치가로서 부적절한 행위임을 감리교회 공동체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신앙 공동체 집단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교리와 장정을 전면 검토하고 감리교회의 성화적 전통을 담은 교회법을 제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법을 강화하되 범법행위가 있는 후보자의 범법사실을 공시하는 한편, 당사자에게는 이를 공개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회법의 기능과 효과를 교회법이 과장 확대하여 이용하는 것은 파당적 사고의 결과다. 따라서 파당적인 사전 선거 운동과 금권 정치적 합의를 도모하는 이들에게는 교단 임직원으로 임명될 자격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제제 조치도 명시되어야 한다.
이 밖에도 파당성을 극소화하고, 서열문화를 넘어서 특권화된 종교 귀족을 더 이상 옹위하지 않는 이상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조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로운 의회적 기능은 비의회적인 담합에 근거한 폭력과 위협과 야합의 시대를 마감하고 정직, 공정, 평화, 생명 가치를 옹호하기 위하여 교회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폭력적 권위나 권력보다 교회 지도자들의 인격과 신앙적 가치가 높여지고, 판단과 절차에 대한 신뢰가 확립된다면 2년제 혹은 4년제 감독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종신제 감독을 두어도 공정함과 신뢰가 있는한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나는 우리 감리교회가 오늘의 불행을 딛고 더욱 아름다운 교회로 비약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려는 총회는 하나님께서 이번에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신 뜻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겨 반대한다. 국가 선관위에 그 절차와 과정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 절차와 과정에 대한 엄격한 감독이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으나 교회의 자율적 능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목적이 기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논리의 결과이므로 찬성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역시 오늘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비판, 과오에 대한 책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 총대들은 모든 파당성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길을 여는 소중한 직무를 수행할 새로운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교회를 구성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데 남은 힘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집단적 사리사욕을 앞세운 파당성에서 우리 스스로를 자유케 할 때다. 불평과 비난을 던지는 자리에서도 일어나야 할 때다. 우리 모두 파당적 행위를 버리고 진리와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아 상처투성이인 감리교회를 끌어안아야 할 때다. 이제 모두 나서서 하나님의 교회를 자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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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22, 2009
Desmond Tutu의 No Future without Forgiveness를 읽고...
“정의의 윤리를 넘어서 ‘우분투’의 윤리로...”
가장 잔인한 인류 역사는 백인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흑인 노예제도였다. 그리고 그 노예제도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잔혹하고 포악한 사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6년간 저질러진 인종차별정책이었다. 흑인노예제도는 수세기에 걸쳐 약 4000만명의 흑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희생시켰다. 남아공에서는 암암리에 시행되던 차별정책은 그것이 공식화된 후 36년간 약 150만 명의 흑인들에게 잔혹 행위를 한 포악의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포악의 역사는 지속될 수가 없는 법이다. 남아공에서는 흑인들의 참정권을 거부하던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1994년 4월 27일 흑인들이 참여한 투표에 의하여 의회가 결성되었고, 이어 감옥에서 27년을 갇혀 있었던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만델라 정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과제는 백인 정권이 흑인들에게 가한 잔혹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자칫 잘못하면 기존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의 저항과 힘없는 흑인들의 변혁의지가 부딪혀 역사적인 참극이 일어날 수 있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역사의 장면에 하나님은 성공회 남아프라카 대주교였던 데스문드 투투를 준비해 두셨다. 투투 감독은 깊고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이었다. 그는 “진실과 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깊은 신앙에서 우러난 맑고 투명한 통찰과 지혜로 남아공의 신생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사람이다. 그는 아프리카인들의 내면 깊은 곳에 담겨있는 용서의 능력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수 십년간 흑인들을 노예로 삼고, 학대했으며 심지어는 고문하고 살해해 온 역사를 들추어내면서 그리고 무수한 흑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 끔찍한 잔혹 행위들을 진실의 이름으로 불러내면서도 그는 용서만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남아공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위원회는 그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협력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책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르는 잔혹함의 역사를 마치 내 목전에서 목격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박탈된 자리에서 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인간의 추함과 악의 깊이에 대하여 경악했다. 남아공의 고위 정치가들이 “처리하라”는 말 한마디가 정의를 요구했지만 아무런 힘이 없었던 흑인들에게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포악은 포악을 낳았다. 백인 정권에 저항하던 흑인 저항 운동가들에게서도 백인들의 포악과 유사한 포악이 행해졌다.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두 가지 포악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했다: 억압자들의 포악과 피억압자들의 포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정치화될 때 얼마나 부도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라인홀드 니버의 통찰이 적중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인간의 영혼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더 깊이 감격했다. 진실과 회해 위원회에 나와 증언하는 이들을 통하여 너무나 엄청난 잔혹한 인권침해 사실들을 알게 되자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면서도 투투 감독은 정의의 윤리보다 용서의 윤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아들과 딸, 형제 자매에게 고문, 강간, 살인 등 짐승같이 포악을 행한 자들에게 징벌을 요구하는 대신 용서를 선택하고 복수를 꾀하기보다는 아량을 베풀며 기꺼이 그들에게 사면을 베풀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프리카 토착민들의 영혼 속에 담겨 있는 “우분투”의 정신에서 나온 관대함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저 사람 우분투가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최고의 찬사이다. 우분투란 용서와 아량을 베푸는 마음과 태도를 의미한다. 2차 대전 직후 유태인들이 가졌던 보복의 윤리와는 사뭇 다른 윤리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고문, 강간, 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던 잔혹행위자들을 향하여 아프리카인들은 “우분투”를 실천했던 것이다.
투투는 말한다. 우리는 보복을 위하여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기 위하여 진실을 규명한다고. 온통 가해자와 피해자로 얼룩진 남아공의 악몽과 같은 포악의 역사를 청산하면서 투투 감독이 추구했던 것은 가해자가 동료 인간의 권리를 무참하게 훼손했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 그에게 사면을 베푸는 것이었다. 관대하여 친절하고, 남을 보살피며 자비롭게 살아야 한다는 아프리카인들의 평화와 화해의 정신, “우분투”의 정신은 자칫 남아공이 빠질 뻔했던 폭력에 의한 보복과 피의 악순환을 영원히 멈추게 한 아름다운 영혼의 힘이었다.
나는 이 책을 고통스러운 피해의 아픔을 가진 이들, 혹은 다른 이에게 고통을 준 기억으로 인하여 잠 못 이루는 밤을 새기도 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2차 대전 직후 나치에 의하여 포악을 겪다가 죽임을 당한 동료 유태인들을 대신하여 유태인들은 정의를 요구했고, 그들은 뉴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서 나치들을 처형할 것을 요구 했다. 유태인들이 타자를 향하여 요구했던 것이 정의와 보복의 윤리였다면, 유사한 고통을 겪은 아프리카인들은 정의와 보복의 윤리보다 관대함과 너그러움의 윤리를 선택하고 실천했다. 아마 어떤 이는 이러한 용서의 윤리에 대하여 정의의 부재라고 영리하게 비판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 편으로는 정의의 윤리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하여 불의를 행하는 유태인들에 비하여, 자신들을 가해한 이들에게 까지 관대함과 보살핌의 태도를 실천하는 “우분투” 정신이 보다 높고 고귀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그릇 행한 이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정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우분투”의 부재일 따름이다. 그리고 간혹 우리 자신이 누군가를 가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우분투”의 결여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스문드 투투 감독은 잔혹한 인종차별정책, 아파헤이트를 멈추게 하는 것은 정의의 힘으로 피의 보복을 불러와 또 하나의 미움과 원한을 남기는 길이 아니라, 그런 잔학의 폭력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 인간다움의 실천에서 그 비결을 찾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우분투”의 실천으로 인하여 세계의 주목과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우분투의 정신을 가진 이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 온 지난 역사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참으로 놀라운 정신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려면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또한 용서를 해야 한다. 이 귀한 가르침은 이 책의 내면에 흐르는 영혼의 소리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누구나 이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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