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4, 2016

사회이론(2015년 봄/여름 통권 47호. pp. 33-59.    

 "탐욕의 문화와 한국 기독교의 변종성"

 
* 이 글은 2014416일 침몰한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기독교가 깊은 윤리적 무능에 빠져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기독교의 윤리적 변종성을 살피고 있다. 본 연구는 우선 4세기 이후 주류 기독교가 제국주의 사조와 타협하면서 권력과 탐욕의 문화를 인간의 죄성의 표현형으로 수용하고 사죄의 방편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 초기의 경건과 청빈의 영성과 강한 실천성을 상실해 온 과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주류 종파적 기독교가 교회의 사회적 관련성을 위하여 초기 기독교의 윤리적 유산을 폐기하거나 변개하고 스스로 제국주의적 종교를 지향 했던 그 유산을 이어받은 한국 기독교도 또 다시 기존의 유교적 사회윤리와 타협함으로써 더욱 현실적 종교로 변종되어 왔다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교회가 생명력 있는 윤리적 실천 능력보다는 탐욕과 권력 종교가 되어 신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구사죄의 영성을 앞세워 탐욕과 성장을 예찬하는 번영신학에 빠짐으로써 예수의 가르침과 초기 기독교가 지녔던 생명력 있는 사랑과 금욕적이며 경건의 영성을 외면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기독교가 이 오류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력 있는 종교가 되려면 역사 속에서 망각해 온 예수와 초기 기독교의 윤리적 유산을 되찾을 수 있는 회상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우둔함은 악보다 더 나쁜 선()의 적이다.”
(Bonhoeffer, 1985: 14)


1.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경제윤리의 측면에서 기독교가 지니고 있었던 본유적 가치가 어떻게 기독교 역사 속에서 희석되어 한국교회 속에서 해석되고 있는지의 문제에 관심한다. 이 관심은 지난 20144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의 사회윤리적 근본 원인을 정제되지 않은 탐욕의 문화에서 읽어내면서 이런 비극 앞에서 한국교회의 도덕적 자기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함으로써 한국 기독교를 새로운 사회적 책임의 지평으로 이끌어 내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하여 탐욕의 문화와 기독교의 상관관계를 성서신학적, 교회사적, 신학사상사적인 관점에서 약술하고, 서구 기독교의 탐욕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정을 살핀 후, 한국기독교와 탐욕의 문화의 상관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과제를 전개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탐욕의 문화가 담지하고 있는 사회윤리적 속성이 한국 사회 속에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비인간화하고, 보다 근원적인 기독교 사회 윤리적 가치체계와 어떻게 상충하며 모순관계에 있는지를 규명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윤리적 자기 비판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려 한다.
 
2. 탐욕의 문화와 한국 기독교
인간의 본성을 죄로 향한 경향 속에 있다고 보는 기독교 전통은 오랜 기간 탐욕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해 왔다. 예수 자신이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제자들에게 청빈한 삶을 살아가기를 권유했다. 탐욕을 버리라는 예수의 요구는 기독교 역사에 금욕주의적인 수도원 전통을 낳았고, 금욕주의적인 수도원주의 영성은 현실 기독교의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경향은 소종파적 영성이나 가톨릭교회의 영성에 깊이 배어 있을 뿐 아니라 개신교의 윤리 사상에도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대개 금욕주의적인 삶을 영위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과 가깝게 지냈던 어거스틴 역시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족이 살던 집을 수도원으로 만들어 동료들과 더불어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퀴나스 역시 금욕적인 삶의 원칙을 영성의 근본으로 삼아 가톨릭교회의 확고한 도덕적 토대와 영성의 기초를 놓으려 했다. 특히 금욕적 수도원주의 전통은 7가지 성덕과 7가지 대죄에 대한 이론을 남겨 기독교인들의 도덕적이며 영성적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게 했다(Panati, 1996; 신 원하, 2012).
주류 기독교가 세상의 현실을 포용하기 위하여 일종의 타협적인 원칙을 적용해 왔지만 적어도 종교개혁 직전까지만 해도 교회 내부의 도덕적 정체성의 근원은 예수와 수도원주의 전통에서 흘러나온 현세적 금욕주의적 요소를 다분히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세 차례의 역사적 전환기를 지나면서, 즉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된 382년 이후,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풍요와 재화획득의 기회가 확대되던 시점,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원칙들이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면서 기독교 전통 안에서 영성과 도덕적 삶의 원천이었던 금욕주의적인 윤리적 가르침은(Weber, 1992: 53)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런 윤리적 쇠퇴는 노동의 분화와 급격한 사회변화기에 인간의 욕망이 과거의 도덕적 규범에 제약되지 않는 도덕적 아노미 현상(Durkheim, 1951: 248, 256)과 맥을 같이 했다. 그 결과 기독교적 금욕주의 대신 진보와 성장과 풍요라는 이념 속에 담긴 물신적 탐욕 문화가 소유와 권력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영성을 관계적이며 공동적인 것으로 해석해 온 동방교회 전통은 새로운 물질문명의 확대 과정 속에서 개인주의적이거나 착취적인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공동성에 토대를 둔 기독교 사회 윤리적 가치들을 옹호해 왔던 데(Karras, 2004: 47-53) 비하여 서방교회는 개인주의적이며 착취적인 관계와 사회적 환경을 개인적 죄라는 차원에서 수용하고 성례(聖禮)를 통한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문화와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마련했다.
물론 기독교 초기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양대 전통은 탐욕의 극복이라는 실천적 신앙 지평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사회주의적인 세계관 속에서 서방에서는 자본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탐욕의 극복과 기독교적 구원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동방교회보다 서방교회 전통에 뿌리를 내린 개신교 신앙은 신앙의인이라는 개인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 전통에 힘입은 교리를 강조함으로써 경제 윤리적 차원에 다소 소홀하였고 따라서 탐욕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첨가했다. 따라서 개신교 전통은 동방교회나 서방의 가톨릭교회보다 더욱 극심한 개인주의적인 속성을 강조했다. 소유와 탐욕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재화를 통한 섬김의 윤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박 충구, 2013: 215-260).
특히 17세기 이후 산업 혁명기를 지나면서 개신교 운동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봉건세계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생산과 소비 방식 속에서 형성되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주류 집단의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때 기독교는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발전과 성장 그리고 진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신의 역동성이 함께하는 역사발전 과정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런 해석은 특히 칼빈의 하나님 주권론의 연장선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이런 견해는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종교적인 해석을 가함으로써 자연을 정복하고 진보를 이루는 것은 곧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에게 신이 내린 권리요 축복이라는 이해와 연계되었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주류교회의 신학자들은 제국의 힘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지 못했다. 반면 제국이 주는 온갖 혜택을 당연시했으며 기독교 스스로 또 하나의 영적인 제국으로 작동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자본과 권력이 손을 잡고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던 시기에 기독교는 정복주의적인 신학으로 식민주의자들의 정신을 막후에서 지원했다. 17세기 이후 자본주의 문화와 기독교 사상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정신의 실질적 동인으로 작용했다.
 
기독교는 제국과 상관없이는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로마 제국은 최초의 기독교 시발점의 자리였고 후속한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전개과정의 대개가 제국의 힘의 지평 어딘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신학자들은 기독교 전통과 제국 사이에 있는 상관관계와 긴장에 대하여 대부분 숙고하지 못했다. 양자의 상관관계를 당연시하거나 그저 간과해 왔다(Kwok, 2007: 2).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문명 속에 담겨진 집단의 탐욕에 대하여 죄와 악의 개념보다는 신의 축복과 보상이라는 성공적 신앙을 고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초기 기독교가 예수를 이해하던 고난 받는 의의 종(이사야 421-9; 53: 2-9)으로서의 그리스도론은 약화되고 효과적인 성공과 지배를 보장하는 효율적 신앙의 주님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초기 기독교와 수도원주의를 통하여 근 1800년 동안 존속되어 오던 청빈의 가치는 일반적인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가 받아들인 복음은 바로 이 시점을 전후하고 있기 때문에(박 충구, 1995: 131-159) 기독교 전통 속에서 청빈의 윤리가 실질적으로 첨삭된 변종적 복음의 수용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독교 초기의 청빈의 영성이나 자의적 청빈의 전통은 생략되고 진보와 발전, 풍요를 불러오는 효용적 신앙에 기독교적 청빈과 평화의 영성이 구축당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점에서 18세기 후반기에 형성된 미주의 보수적 선교신학의 여파로 인해 파송된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수용하게 된 한국 기독교는 미주의 근본주의 신앙을 영성적 모태로 여기는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김 정규, 2007: 25).
서양의 교회와는 달리 한국-아시아적 종교문화 유산 속에서 자리를 잡은 한국교회는 피할 수 없이 윤리적 혼합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은 에른스트 트뢸취의 시각을 통해 좀 더 확대하여 토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19세기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맥락에서 한국의 토착종교 윤리와 서구 기독교의 보수신앙이 담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기독교 윤리가 만나 새로운 형태의 기질을 가진 한국기독교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현세지복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유교윤리가 자본주의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독교 개인주의적 영성과 만나면서 유교적 현실지복적인 가치를 기독교화 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 사상의 초기 수용자들은 인간됨 바탕을 이루는 교양으로서의 유교적 가치(이 황직, 2010)는 수용하되, 차별과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이었다. 이런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유교와 기독교, 두 사상 체계가 만났을 때 서구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오랜 동안 기독교의 윤리적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던 실천적 금욕주의적 전통이 유교적 청빈이나 선비정신과 만나 신자들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성숙시키기도 했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유교의 현실주의적인 가치에 구축되어 서구보다 더욱 극심하게 침묵하게 된 셈이다. 그 결과 주류 한국교회는 유교적 가치와 습속을 체질화하여 남존여비, 가부장적 질서, 지배와 복종의 윤리를 유통시켜왔고, 1970년대 이후 급속도로 산업화되어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사회 속에서 새롭게 발아한 탐욕의 문화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탐욕의 윤리를 자극하고 확대하는 번영신학을 개발하고 확대해 왔다(류 장현, 2010).
 
3. 성서적 관점에서 본 탐욕의 문화
트리블(Trible, 2001)은 성서를 테러의 텍스트라고 지칭했다. 성서는 해석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서 폭력과 탐욕을 조장하는 논리의 전거를 마련해 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폭력과 탐욕을 비판하는 논거를 제시해 줄 수도 있다. 초기의 기독교 전통이 약화되면서 성서는 폭력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박 충구: 2013).
탐욕의 죄에 대한 예수의 언급은 성서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구약성서는 아간의 탐욕에 대한 정죄(7: 1-13),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사건(19: 1-29), 그리고 아합과 이사벨의 탐욕(열상 21: 1-10)에 대한 정죄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간의 가솔들이 아골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돌팔매를 당하여 죽게 된 사건에 대한 기록은 아간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윤리를 파괴하고 사적 탐욕에 빠진 사실에 대한 정죄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반()유목민적인 삶이 요구하는 공동성의 가치를 지키려는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반면 롯의 아내 사건은 롯과 그 가족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속적인 물적 관계에 탐닉하던 삶을 살아가던 습성에 대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소유에 대한 집착에 매였던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되돌아본 연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일화는 롯의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종보다 자신의 탐욕에 일상화된 삶의 습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사벨의 탐욕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후 사적소유가 제도화된 사회에서 타인의 소유를 탐하는 권력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듯 탐욕의 죄는 삶의 공동성을 파괴하고, 영성적 가치보다 물질의 노예로 만들며, 타인의 소유를 착취하려는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탐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착취적이고 유물론적인 삶의 속성을 가진다. 탐욕이 깊어지면 삶의 공동성이 깨지고, 영성적 삶이 황폐해지며 나아가 이웃의 삶을 착취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구약성서는 이런 관점에서 탐욕의 문화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신약성서는 주로 예수의 어록 속에 그리고 사도들의 서신에서 탐욕의 죄에 대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성서는 예수가 광야의 단련기간을 통하여 인간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물욕을 영성으로 극복하고, 허영과 오만을 불러오는 권세욕을 하나님 신앙으로 극복하며, 자기 안전의 욕구를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극복했다(4: 1-13)는 기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이미 경제적 탐욕, 권력의 탐욕, 종교적 탐욕이라는 세 가지 탐욕의 시험을 극복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무소유의 삶을 요구했고(9: 3), 어느 부자 청년의 비유를 통해 영성적 삶의 장애가 된 소유에 대하여 경고했다(19: 16-24). 그리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현세성에 집착한 부자의 심판을 설파했다(16: 19-31).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과 재물중 양자택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심지어 부자를 향해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예수의 탐욕에 대한 경고는 이렇듯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탐욕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삶의 결과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제자들에게는 재물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의탁된 삶을 살아갈 것을 명한 것이다. 그리고 부자청년을 향해서는 소유와 하나님 사이에서 양자택일 할 것을 요구했다. 부자와 나사로 등 부자들에 대한 비판적 교설들은 부유함에 빠진 이들의 삶에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차단된 비인간화된 삶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예수의 탐욕에 대한 경고는 탐욕은 하나님과의 단절과 이웃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탐욕이 있는 삶에서는 권력의 집중과 인간 공동성의 파괴가 일어나 영성적 삶도 사랑의 길도 가로막힌다는 것이다. 이런 삶은 신학적인 의미에서 영성적 삶의 죽음을 의미한다. 영성적 삶의 죽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탐욕과 억압과 오만의 길을 청산하고 희년의 영성을 사는 것이다. 이 정신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의 영성이다. 예수는 그의 첫 설교(4: 17-19)에서 그 영성을 자신의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성서 속에 담긴 탐욕에 대한 경고에 대하여 가장 민감했던 이들은 초기 교부 영성가들이다. 그들은 종말론적 시각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제자직의 실천적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종말론적 관점에서 철저한 금욕, 무소유적인 삶을 훈련의 목표로 삼았다. 3세기가 지나면서 세속을 떠난 철저한 고행과 금욕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수도원운동을 시작했고 이 운동은 기독교 역사에 면면히 이어지는 영성의 샘이 되었다. 기독교 초기 교부들이 동방교회의 전통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은 죄에 대한 책임과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 이들은 원죄(original sin)의 교설보다 원의(original justice)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운 삶의 가능성을 긍정했고 따라서 현실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적 영성을 중시했다.
 
4. 서방교회의 변질
반면 서방교부 중 최초로 원죄설을 제기한 터툴리안(Tertullian)과 이를 이어받은 어거스틴은 죄를 선의 결핍과 부재로 간주함으로써 본질적인 속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악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장소를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보아 동방교회 교부들이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보았던 것과는 다른 견해를 취했다. 다시 말해 어거스틴에게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죄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장소를 마련해 주는 자리가 육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의 정욕과 탐욕이 죄를 향한 의지를 발동시킨다고 보았다. 타락 이후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posse non peccare)이 아니라 이제는 죄를 짓지 않으면 안 되는(non posse non peccare)능력으로 전락했다고 그는 주장했다(Antonie, 1989: 522).
원죄로 타락한 인간의 죄현실을 드러내는 죄의 불가항력론은 로마 제국의 세속적 속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신학적 준비를 한 셈이다. 죄는 원죄의 필연적 부속물이지만, 모든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회의 사죄의 제의의 필연성을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고하를 막론하고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황제와 국왕, 귀족들이나 영주들도 사제를 통한 사죄의 길을 찾아야만 구원에 이르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동시에 어거스틴- 아퀴나스 전통은 로마의 자연법론자 시세로의 정치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을 수용하여 그들의 사회적 비전의 한 축을 삼았다. 그들은 시세로의 국가 정의론을 수용하여 국가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합의, 즉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존속할 수 없다는 논리를 뒤집어 역으로 적용하였다. 어거스틴은 시세로가 요구하는 진정한 정의는 로마 제국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로마 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진정한 정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도성에서만 온전한 나라가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Augustine, 1984: 881).
기독교적인 신국(神國)에서만 올바른 정의가 이루어 질 뿐 현실 세계에서는 불의한 폭력에 의한 잠정적인 평화만을 도모할 뿐이라는 어거스틴의 현실주의적 사유는 마틴 루터를 거쳐 라인홀드 니버에게 이르도록 역사 변혁 가능성을 배제해 온 기독교 현실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지상의 불완전한 나라와 천상의 완전한 나라의 대비는 지상에 사는 이들에게 악과 선이 공존하는 현실을 조명해 줌으로써 천상의 나라가 아닌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나 환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기능을 초래해 왔다(Brown, 1986: 123-141; Niebuhr, 1953). 따라서 인간은 7대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부정적 인간론이 기독교적 구원론에 앞서 전제되고 말았다. 죄인인 인간이란 탐욕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탐욕을 버림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는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를 지향하는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사죄함을 얻어야만 하는 종교적 실존으로 이해된 것이다.
 
5. 행위무용론과 도덕폐기론
서방교회 전통은 이렇듯 동방교회의 반-개인주의적, -원죄론적 성찰과 훈련을 통한 도덕적 완전을 추구하는 길을 행위의인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단시하며 신앙의인의 길을 선택했다. 탐욕의 죄는 필연이니 탐욕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 안에서 사죄의 길을 찾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비록 피할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실존적 죄책을 고백하고, 다른 편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의 그늘 아래에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죄의 교설이 더해져 죄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보다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신앙인의 삶이 더 중시되었다. 이런 관점은 교회 내부에 실존적이며 개인주의적인 깊은 죄의식을 심화시키는 대신 기독교 역사 안에서 사회의 구조적 악에 대한 예언자적인 비판을 약화시켜 묵인하고 침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구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악과 죄의 현실이 공존할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구조 속에서 그 힘을 더해가도 기독교세계 안에서 최상의 권위를 확보한 교회는 교회를 통한 사죄의 길만이 인간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주장했다. 이런 성향은 종교개혁 전통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었다. 루터와 칼빈을 축으로 하는 개신교 신학은 사회의 외적 질서에 대해서는 일종의 질서신학(Theologie der Ordnung)을 제시하고, 인간 실존의 구원에 대해서는 신앙 의인론을 제창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기존의 가톨릭교회가 현존하는 정치질서를 교회에 하위하는 것으로 가르쳐 왔던 전통을 바꾸어 정치적 권위에 신적권위를 옷 입혀 교회와 병립하게 하는 방편, 즉 두 정부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박 충구, 1995: 161-186).
이런 관점에서 보면 루터의 두왕국설과 칼빈의 그리스도 주권론은 정치질서를 통해 불신앙을 제거하고, 교회를 통한 기독교적 구원론을 강화하는 데 모아진 것이지 사회의 불의나 부정을 제거하려는 동기를 가진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질서란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죄성을 억압하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억제 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현실적 불의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이 가장 공분을 느껴 칼과 창을 뽑아들게 된 대상은 이단사상과 기독교 세계의 안정에 적대적인 세력이었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은 전근대적 봉건적 세계관의 맥락에서 루터의 질서신학에 후위 했고, 칼빈의 그리스도 주권론은 기독교적 포악정치를 낳았다(Grimm, 1973: 281). 이런 논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본질적 관심이 사회적 진보와 성취에 대한 희망보다 인간의 죄를 향한 경향을 재갈 물리고 교리적 확신을 통한 영원한 구원의 길을 찾게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이후 기독교 사상 깊은 곳에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기독교 현실주의는한 편으로는 인간의 정치 경제적 성취에 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우상 숭배적 태도를 제거하는 순기능도 지녔으나 다른 편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어두운 평가로 인해 인간의 성취 가능성과 그 긍정적 이해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역사 현실 속에서 인간의 개인적 및 집단적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더욱 강조되는 문화를 파급시킨 것이다. 이런 신학사상은 삶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어 가려는 노력에 대하여 종교의 영역을 벗어난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인식하게 만들었다. 어거스틴 이후 라인홀드 니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은 인간의 오만(pride)과 이상주의에 대하여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니버는 왜 교회는 평화주의적이 아닌가?”(Niebuhr, 2004)라는 논문을 통해 죄인의 한계를 벗어난 인간의 낙관론을 날카롭게 비판하기에 이른 것이다.
칼빈이나 루터에게서도 죄인인 인간이 자기 구원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것은 화려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신앙의인, 기독교 은총론의 내면에 깔린 행위무용론은 실질적으로 도덕폐기론(antinomianism)에 가깝게 보인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덕론을 행위를 통한 구원의 길이라 이단시했던 개신교 전통이 불러들인 필연적인 결과였다. 루터, 칼빈, 웨슬리에 이르기까지 신앙의인에 대한 강조는 복음주의 전통을 강화해 왔지만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사회 윤리적 우둔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인간의 선행에 대한 비하나 경시풍조를 불러와 도덕폐기론을 초래할 위험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Biéle, 2005: 313-314); 둘째 은총을 통한 구원의 수단을 확보한 교회의 진리 소유에 대한 오만을 불러들여 인문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적인 지성세계를 무시하는 지적 불성실을 초래했다는 점(Kueng, 2011: 94); 셋째, 신앙 의인(義認)론은 기독교 문명의 상대성을 간과하고 절대화하는 자기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제 영역에서 절대화된 신앙의 무비판적인 적용은 기존질서를 옹호하는 질서신학을 앞세워 정치, 경제, 문화적 영역에서 지배자의 포악을 후원해 왔다는 점이다.
종교 개혁적 구호들은(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 sola gloria) 윤리적 오류나 실패로 인해 장차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에서 어떻게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주어진 일종의 종교적 답변이었다. 구체적인 사회의 구원, 평화, 정의, 평등, 연대, 생명 가치에 대한 관심은 신학적 관점에 따라 하나님 신앙에 대한 2차적 해석의 지평에서 열릴 수도 있고 닫힐 수도 있는 문제였다.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과 20세기 중반 이후 대두된 다양한 정치신학, 해방신학 운동이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현실적 불의의 제거보다 영적인 구원의 길을 교사하는 일에 만족했다.
 
6. 은총의 길과 죄인의 길
예수의 어록과 초기 기독교가 명료하게 이해했던 실천적 금욕주의와 더불어 강조되었던 탐욕에 대한 경고와 거리두기는 사실상 교회의 역사 속에서 교리논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16세기를 지나면서 개신교 신앙운동은 교회역사 속에 흐르고 있었던 금욕주의적-완전주의 윤리 전통을 외면했고, 권력과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일부 고위 성직자들의 삶 속에도 깊이 파고들어 일상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신자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해결책은 윤리적 개선이나 응답이 아니라 교리적 답변으로 매듭지어졌다. 18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의인의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의 윤리적 실전 지평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로 전개했지만 칼 바르트를 위시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반격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를 통한 구원론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말았다.
결국 복음주의 노선에서 주장하는 기독교 신앙의 단순한 논리는 주홍빛과 같은 죄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효용성에 감격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학은 교의학의 한 부속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 결과 주류 교회의 신앙의인 신학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완전주의적 전통을 약화시켰고, 죄의 문화를 부정적 인간론을 통하여 수용했다. 트뢸취에 의하면 이 변종성은 기독교가 도덕적 연단을 통한 거룩한 삶의 종교, 즉 소수자의 종교이기를 포기하고 죄스러운 인간의 기호에 적합한 대중 기독교가 되기로 그 이정표를 삼은 결과다. 그리하여 18세기 이후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새롭게 타협하는 논리를 형성하게 되었다(박 충구, 2005, 259-292).
이렇듯 타협주의 노선을 선택해 온 주류 기독교는 주변화된 타자들을 희생시키고 나아가서 근대이후 세계 속에서 모순에 빠져있는 근대서구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 한통속이 되었다.”(Kwok, 2007: 19-20)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타협의 과정에서 역동적인 하나님 표상이 강조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약자가 아닌 영향력 있는 강자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일하시는 위로부터의 하나님혹은 질서의 하나님으로 해석되었다. 이렇듯 지배세력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지배세력을 편드는 하나님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개신교 세계에서는 교회에 의하여 지배세력의 윤리적 불성실, 탐욕, 포악이 감추어지는 대신 그들이 하나님의 대행자를 자처할 수 있는 논리 즉, 루터의 두왕국설, 칼빈의 그리스도 주권론 등을 이용하여 교회는 현실적인 지배세력을 수단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교회는 지배세력의 탐욕, 위선, 세속성을 묵인했지만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혁명가들에 의하여 지배세력과 교회의 탐욕과 위선이 끊임없이 폭로되고 비판받았다.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 사회의 지배계층을 몰락시켰을 때 교회가 그 타도의 일차적 대상이 되었던 까닭은 바로 교회 지도력의 위선과 탐욕, 뿌리 깊은 보수성, 그리고 비민주성 때문이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기독교는 역사 발전의 걸림돌로 간주되었던 것이다(Anderson, 2007: 148).
프랑스 혁명 이후 서구 기독교는 실제적인 몰락의 과정을 밟아 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전근대, 근대성에 천작하고 있는 기독교의 자기모순이 거듭 비판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권력과 탐욕에 저항해옴으로써 이런 비판에서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기독교 전통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주류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발흥과 사회의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역사는 소극적으로 수용해 들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인간의 역사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신념 체제에 대한 체계적 비판과 반성이 일어났다. 그 결과 종교가 장악하고 있었던 세계는 서서히 깨어나면서 탈종교화되고 세속화되었으며, 종교의 권위는 많은 부분 해체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 기독교 안에서는 스스로 급변하는 세계 현실을 구체적으로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자유주의 신학 운동이 태동되었다. 반면 기존의 전통에 고착된 기독교는 영성으로 퇴각하여 종교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보수적 신앙운동을 강화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근본주의 신학 운동은 영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 상당부분 예수의 전통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제국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타협을 이루어 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타협은 제 이념들의 본질을 통찰하고 파악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중이 선호하는 것에 기독교가 동조하는 성향의 결과였다. 따라서 교회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기능과 영향을 비판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오히려 그러한 이념들을 교회의 효과적인 성장과 세력 확산을 위하여 이용했던 것이다. 이 점은 근대 이후의 철학과 신학이 권력종교가 된 기독교 역사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갱신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되었다. 은총의 길이 죄인의 길을 강화한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셈이다.
 
7. 한국기독교의 변종성과 그 윤리적 성격
1884년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래된 것은 기독교 1900년의 역사가 아니라 다분히 근본주의신앙에 경도된 서구교회 유형의 신앙이었다. 아래 # 1 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앙운동은 금욕주의 전통을 약화시킨 끝없는 타협을 추구한 신앙운동이었다.
초기 기독교를 지나 4세기 후반 기독교는 로마 제국주의를 품에 안기면서 제국주의적인 절대종교를 자처했고, 자본주의 문화와 타협하면서 식민주의를 수용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종교의 후원을 받던 절대 권력들을 옹호하던 교회와 이에 반대하는 교회가 나누어졌다.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지 않으려는 교회들은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현대 교회에로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 1 주류 기독교의 타협적 윤리의 구조
직사각형입니다. (null)
개체 연결선입니다. 1-3 C 예수의 종교사상 ----- 비타협 타협 ------- 로마제국문화
 
개인주의적 신비주의
3C 금욕적 수도원주의운동
4C-15C 제도적 가톨릭교회(+++)
 
16C 개신교종파운동(++=-)
식민주의
17C 퀘이커(+)/재세례파(+)
 
18C 자본주의/민주주의
서구개신교(+++++)
19C 조선유교사회
20C 일본제국주의, 군민독재
19-20C ........................................ 한국개신교(+++++++)
21C 포스트 모더니즘
한국개신교의 미래 (++++++++ ?)
 
 
한국 교회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면 우리는 19세기 말 미주 선교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조선의 복음화에 대하여 몇 가지 점에서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선 미주에서 도래한 선교사들의 복음 이해에는 서구 교회의 오랜 타협의 유산 즉 제국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를 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내한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18세기 이후 합리적 사유를 수용하려 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권고와 비판을 외면하고 기독교 선교의 사회적 지평을 약화시켰던 전통에서 나온 이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전근대에 젖어 있던 조선 사회에서 정치 사회적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복음을 더욱 개인주의화하여 영혼구원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신학적 관점을 유통시켰다(박 순경, 1986). 따라서 이들의 선교적 사유에는 이중적 구조가 담겨 있었다. 서구 기독교의 정치 경제적 속성의 제국성과 식민주의적 기질이 내장되어 있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주의적 영혼구원을 방편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제국주의적 기획의 구조 안에서 개인구원을 표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 교회가 영혼구원에 관심하는 사이 기존의 사회윤리적 규범의 고질적 폐해, 즉 유교적 차별론의 유산인 사회계층간의 차별과 남녀의 차별, 전근대적인 지배방식, 당파적 관계윤리를 수용했다. 이런 결과에 이른 것은 서구교회의 근 2000년에 이르는 지난한 역사를 살펴볼 때 한국 교회에 전승된 기독교 신앙이 완전주의적인 금욕주의 전통이 약화될 때로 약화된,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운동의 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기독교 선교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은 기독교 역사 전반을 살펴 서구 교회의 진리관이 오랜 역사 속에서 역사적 상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2000년에 걸치는 서구 기독교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결여한 한국교회는 신앙 유형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상대화되기 시작한 기독교 주류 유형의 신앙인 죄인-은총-구원론을 중심축으로 삼는 신학적 사유를 절대시하게 되었던 것이다(박 충구, 2009).
조선 기독교는 제의적으로는 전통종교의 유산을 거부하면서 전통종교의 사회 윤리적 유산을 교회 내 깊숙이 유통시켰다. 이는 마치 어거스틴이 로마 제국의 야만성과 비기독교적 속성을 세상의 도성에 속한 것으로 한계 지으면서도 하나님 섭리에 따른 존속의 이유가 있다고 간주했던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조선 기독교는 유교적 삶의 방식조차도 주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을 수용한 방식, 즉 죄인의 삶의 현실로 수용해 들일 수 있었다. 이런 타협적 결과는 선교사들이 지니고 있었던 18세기 이후 서구의 개인주의나 민주주의적 사고가 당시 조선의 사회구조상 수용이 불가했던 데 원인이 있었다. 또한 영혼구원론을 중시했던 선교사들은 유교적 세계관과 질서이론을 교회 안에 유통시킴으로써 당시 사회와 교회간 갈등을 극소화하려 했던 타협적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고관들의 삶의 방식을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질서로 규정하면서도 하나님의 도구적 섭리로 인정했듯이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유교 철학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넘어 이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영혼구원에 초점을 둔 선교론은 영혼구원의 복음만을 수단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서구 선교사들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었고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향유하는 이들이었다. 선교사들은 자국의 문명과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함으로써 토착민으로 하여금 한국사회의 물적 후진성과 선진 서구성의 대비를 느끼게 해 주었다. 정치경제적으로는 19세기 아시아는 이미 서구 기독교 세계의 강제적 개항요구를 피할 수 없는 정황에 처해 있었다(이 광래, 2003: 157). 조선 사회 역시 끈질긴 서구의 개항요구에 밀려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일제와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고, 개화파, 동도서기파 그리고 위정척사파 등이 서로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화파의 입장에 서 있었으나 서로 다른 세 파벌이 지니고 있었던 사회 윤리적 가치판단의 바탕은 다분히 유교적인 것이었다.
당시 주요 기독교 인사들은 서구의 문물을 보다 일찍 받아들인 일본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개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시대의 흐름은 개화파에 유리하게 흘러갔고 개화파는 조선이 일제에 합병되어 일제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 서구 기독교 문명을 유입시켜 조선을 개화하고 근대화하려는 그들의 전략은 무능한 조선왕권을 제거하고 일제의 지배를 통해 조선을 개화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가졌던 내적 논리는 보다 강한 정치 세력의 지배를 받아 보다 나은 조선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아마 그것이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하나님의 뜻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영혼구원의 복음이 기독교의 형식논리라면 구원받은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조선을 개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힘을 가진 일제세력을 도구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이유에서 1910년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에서는 1919년 민족 자결운동인 3.1운동이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지배 속에서 일제를 하나님의 도구라는 뜻으로 읽어냈다. 이들의 방식은 어거스틴 이후 아퀴나스, 루터, 칼빈을 통해 기존질서의 존재 이유를 하나님의 도구로 이해하던 제국주의적인 식민지배 사관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일은 정치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지 않았던 완전주의적 윤리 전통을 외면한 주류 교회 안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도식은 거듭 일제 식민 통치 이후 등장한 이승만 독재정권이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의 타협을 이루어내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권력이 어떠한 것이든지를 막론하고 이를 현실주의적인 하나님 도구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의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며 성장을 도모했다. 제국주의적인 정치 경제적 힘에 의한 이해관계를 나누던 서구 기독교의 행태와 다를 바 없이 한국 기독교 또한 힘의 정치와 부유함을 향유하는 문화에 대하여 타협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군사정권에 의하여 유발된 경제개발은 한국사회를 농업국가에서 급속히 산업화된 자본주의사회로 편입시켰다. 곽퓨란의 주장대로 주변화된 타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얻었던 경제적 및 정치적 이익관계를 나누는 데 주류 한국 기독교 역시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에 저항해 온 세력은 지극히 미미했다.
 
8. 나오는 말: 망각된 전통의 회복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교회가 아직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그의 책에서 가톨릭교회는 병들었다. 거의 죽을 병에 걸렸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교회를 죽게 만드는 병의 원인을 로마제국주의적인 권력과 진리 독점론, 율법주의와 성직자주의, 성과 여성에 대한 거부, 폭력성과 십자군정신, 교황권의 옹호, 개혁의지의 결여 등을 꼽았다(Kueng, 2011: 93-114). 그는 이 질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부차적 병인(病因)으로 교회가 품고 있는 성향, 즉 과학적 사유 적대성, 진보적 사유 거부, 민주주의를 적대하는 성향, 그리고 과거의 로마-카톨릭적인 세계로의 회귀정신을 칭송하는 태도를 지적했다(윗글, 121-136).
교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이어 큉은 이 책에서 몇 가지 측면에서 교회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적인 급진성의 회복, 지속적 개혁, 그리고 강력한 응집력을 통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의 과제에 집중하는 교회, 가부장적이며 배타적인 남성중심적 구조에서 여성과의 협력관계를 지닌 교회, 폐쇄적인 신앙고백 공동체가 아니라 에큐메니칼하게 열려있는 교회, 유럽중심적인 교회가 아니라 세계 각처의 교회의 자율성을 긍정하면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서로 존중하는 풍토를 가진 교회가 되려 한다면 오늘의 교회는 죽을 병에서 다시 살아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
1911년 트뢸취가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주류 교회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았었다. 당시 트뢸취가 대표적인 모델로 본 교회는 사실상 가톨릭 교회였다. 그는 비록 타협을 통해서라도 사회에 기독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회가 소종파나 신비주의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Troelsch, 1960: 328-30). 그러나 트뢸취의 분석이 나온 지 100년이 지나 한스 큉은 교회가 죽을 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타협주의 기독교의 전통이 그리스도의 삶과 사상에서 유래한 기독교 초유의 실천적 사상을 망각하고 새로운 목표 즉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기독교의 핵심적 실천과제로 삼았던 결과였다. 이런 오류는 오늘날 가톨릭교회나 개신교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의 종교가 사회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종교 자체의 권력화가 아니라 그 사회 속에서 종교를 통하여 생명의 존엄함이 옹호되는 경우다. 그래야 생명을 구해낼 수 있는 종교의 힘이 살아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생명 구원의 전통이 비()역사화되고,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목적이 될 때 종교는 타협의 정신에 포로 잡혀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지키기 어렵다. 교회는 예수가 예견했던 것처럼 겉을 화려하게 치장할 수는 있지만 회칠한 무덤처럼 생명력을 상실한 도적들의 소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이 차가운 물속에 빠졌을 때 과연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했을까? 성장과 부흥이라는 목표 아래 교회를 위한 종교 생활을 강조하면서 예수의 비유(마태복음 25: 25) 속에 나왔던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 지극히 적은 자를 품어주는 신자들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거부하기 어려운 정황이다. 세월호 사건은 조난당한 자들의 이웃이 없는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낸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정부와 해양경찰과 선원들조차도 조난당한 이웃을 버린 사회, 생명을 외면한 사회가 세월호 바닥과 함께 들어난 채 되돌려지지 못하고 있다. 성장과 부흥, 과시와 사치, 탐욕과 허세 부리기에 몰두하면서 오늘의 교회는 조난당한 자들에 대한 기억과 논의조차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강한 자들과 연대하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난 한 해의 경험에서 나는 한스 큉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한국 개신교 역시 깊이 병들어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이런 점에서 한국기독교가 서구교회가 세속적 가치들과 타협하면서 생략하고 망각한 전통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는 회상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상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변질된 교회를 위한 복음에서 순수한 예수의 생명의 복음으로, 제도화된 신앙에서 급진적인 예수의 요구를 실천하는 교회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에 종교가 그 존재의미를 찾으려면 참된 의미에서 트뢸취가 보았던 예수의 순수한 종교적 가르침(Troeltsch, 1960: 328)을 새롭게 해석하여 생명에 대한 책임의 지평을 다시 읽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 이후 망각해 온 성서적 예수, 그리고 그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했던 초기 기독교의 금욕주의적이며 평화주의적인 전통의 회복이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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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paper was motivated by the tragedy of the sunken Sewol Ferry on April 16, 2014 in the near sea of Jindo island. This tragedy has evoked Korean Christians to confront with the ethical incapability of Korean Christianity which the author sees a result of an unhealthy hybrid nature of Korean Christianity. This paper has dealt with the unholy compromise of Christian religion with Roman Empire that produced a dark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in terms of original sinfulness. In Korean Church history, this realistic theory of human sinfulness has played a negative function by weakening human moral vision toward a better society, so that it has provided a solid ground for unlashing human greed for power and money as expressions of human sinfulness. Korean Christianity has been faithful to this tradition and successful in terms of number and power, but not for the moral power to build a more peaceful and safe society. This unhappy reality was radically disclosed when the Sewol Ferry was sinking down with 314 lives in the sea. In order to recover the genuine moral and ethical power that the early Christianity cherished, this paper concludes that it is possible only when Korean Christianity restores the recollecting power that will treasure the ethical heritages of Jesus and the early church spirituality. 

박충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 사회윤리학 교수(1991-2015)를 역임했고 현재는 생명과 평화 연구소(구 아시아 인권과 평화 연구소) 소장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학문적 관심은 종교와 사회평화와 인권생명윤리 분야에 두고 있으며기독교윤리사상사 I, II, III ; 한국사회와 기독교윤리, 21세기 문명과 기독교윤리생명복제-생명윤리예수의 윤리신앙공동체 윤리학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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