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평화윤리> 최종 원고를 홍성사에 넘긴지 2주가 되었습니다. 2500매 분량을 1600매 가량으로 줄였지만 아직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 됩니다. 이 책의 결론부를 아래와 같이 매듭지었습니다. 가을 학기가 오기 전 예쁜 책의 모습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 희망합니다.
인간의 삶과 평화는 아무리 분리시키려 해도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갔던 그리스도인들도 나름대로 기독교적인 평화를 구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역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기독교가 지난 2000년 동안 추구해온 평화는 각 시대마다 폭력을 극소화 해왔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했다. 초기 교부들의 내적인 평화가 외적인 억압과 핍박 속에서 선택한 길이었다면 어거스틴 이후의 제국화된 기독교 안에서의 기독교 평화론은 로마 제국의 폭력성을 기독교적 사랑의 관점에서 국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16세기 이후 소종파 신앙 운동 속에서 재현된 예수의 평화주의 사상은 기독교 역사의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둘째, 기독교 평화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기독교가 핍박받던 종교에서 권력종교로 변신하면서 하나님의 평화를 교회의 평화 혹은 국가의 평화로 잘못 해석한 지점이다. 이러한 오류의 길은 암브로우스와 어거스틴부터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을 선교적으로 끌어안으면서 그들은 로마 제국의 폭력성까지 끌어 안았다. 그들은 선교를 위하여 로마 제국의 폭력성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평화보다는 지상의 불완전한 평화를 선택하면서 정당한 평화가 아니라 정당한 전쟁 이론을 제시했던 이들이었다.
셋째, 어거스틴 이후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로만 가톨릭교회의 정치이론은 철저하게 강자의 이론을 대변했다. 정당전쟁론의 일곱 가지 요건은 강자가 아니면 정당한 전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이론이었다. 이는 사실상 기독교 세계의 영적이며 군사적인 우월성을 전제한 것이었다. 이 전통은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평화의 종교가 아닌 지배적이며 폭력적인 종교로 만들어 왔다. 종교개혁자들의 사상 속에서도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종교와 정치의 거룩하지 못한 연대가 기독교를 포악한 종교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평화라는 지평을 상실하고 교회의 평화, 혹은 기독교 세계의 평화를 옹호해 온 기독교 전통은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이교도 징벌 등 종교재판의 역사를 점철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극심하게 짓밟았다. 이러한 기독교의 오만은 계몽주의 이후 근대화된 세계에서 형성된 인권사상과 민주사상에 의하여 부정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18세기 혁명의 시대를 지나면서 기독교가 행사하던 종교 재판권은 몰수되었다.
다섯째,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전개된 재세례파 신앙운동은 초기의 종말론적 기대에서 발생한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극복한 이후 메노나이트 등 소종파 평화주의 운동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고, 18세기 영국 국교의 교권적 형식주의에 반하여 형성된 퀘이커 신앙운동은 반교권적 반권력적 기독교 평화운동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이들의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한 증언과 실천의 중요성은 오늘의 핵무기 시대에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여섯째, 기독교 정당전쟁 이론은 세계 1, 2차 대전의 비참함을 경험한 후에도 이념적 편당성을 지원하며 각 진영의 군비경쟁의 이론적 논거를 제공해 왔다. 그 결과 지구를 수차례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비축한 양대 진영은 지구라는 행성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을 담보로 삼아 핵폭탄으로 서로를 위협하는 정황을 초래했다. 이런 위기 인식에서 독일교회는 핵평화주의를 선택했고, 미국 가톨릭 교회 역시 핵평화주의를 받아들였으며, 세계교회협의회도 정당전쟁론의 유효성을 폐기하고 “정의로운 평화”이론을 기독교 평화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함으로서 기독교 평화운동의 대전환을 이루었다.
일곱째, 2011년 킹스톤 평화문서에서 세계 교회협의회는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군비경쟁과 핵전쟁의 위협 앞에서 기독교가 하나님의 평화가 아니라 민족적, 국가적, 이념적 가치에 편승하며 군사 및 폭력적 수단에 동의해 온 지난 역사에 대하여 반성과 회개를 촉구했다. 오늘의 기독교가 자기 안에 있는 폭력성을 근절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사람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를 위한 소명 앞에 새롭게 서야만 한다는 당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를 통하여 나는 오늘의 기독교 평화 운동은 단순한 정치적 평화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 집단과 국가, 그리고 동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폭력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제거함으로써 일구어 내는 평화운동으로 재규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위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평화의 신학을 제창하고 “정의로운 평화”운동을 제안했다. 따라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사람의 평화나 국가의 평화, 혹은 이념적 평화를 위한 봉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을 넘어서서 개인, 교회, 사회, 국가 안에 기생하는 모든 폭력성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평화의 사역자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결론은 핵무기 시대를 직면하여 소종파 교회들만이 아니라 주류 교회들조차도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전쟁으로 인한 공멸과 자멸을 초래할 수 있는 정당전쟁론이 아니라 비폭력 평화주의의 길 뿐이라는 현실 인식에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2000년의 긴 방황 끝에 주류 교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가르침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이 복이 있다.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 울 것이다 (마 5: 8).“
목 차
-머리말
I. 그리스의 평화(είρήνη)이해: 에이레네
II. 로마의 평화: Pax Romana
III. 구약성서의 평화: 샬롬
IV. 예수의 평화사상
V. 초기 교부들의 평화사상
VI. 제국화된 기독교의 평화
VII. 기독교세계의 평화론 (pax christi)
VIII. 종교개혁자들의 평화
IX. 재세례파 신앙운동과 평화
X. 퀘이커 신앙운동과 평화주의
XI. 독일개신교의 평화운동
XII. 미국교회의 평화운동
XIII.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평화운동
- 맺는 말
- 참고도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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