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 이야기 6: 현대 해방신학의 지평과 신앙적 과제
기독교 후기 시대의 신학적 질문
현대 신학적 논의의 맥락을 따라가 보면 두 가지 입장이 매우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한 편의 신학자들은 오늘의 시대를 기독교 후기 시대라는 시대적 인식을 받아들이면서 입장을 표명하지만 다른 편의 신학자들은 기독교 후기 시대라는 언어조차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며 과거에 형성된 신학의 보편적 유효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고수 한다. 전통적인 가치와 주장에 연연하는 이들을 소위 보수적인 신학자라고 부른다면, 전통적인 가치와 신학적 주장이 상대화되거나 주변화 된 세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신학적 지평을 찾는 이들을 일종의 진보적인 신학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신학자들은 당연히 진보 진영의 신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신학자들 중에는 여전히 유럽중심주의적인 신학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모두 해방신학자들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적어도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신학자들은 아시아 대륙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조차도 몰랐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 세계(그 당시에는 유럽와 그 주변을 생각했겠지만) 어디에서나 타당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신학적 사유를 전개해 왔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명료한 진리처럼 주장해 왔던 이론들 중에는 오늘의 비판적 지식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이 기독교의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교리적 주장에 곁들여지면서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양 가르쳐지고 기독교회 안에서 보편타당한 진리로 간주되어 왔었다는 사실들은 이제 날카로운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의 기준으로 가르쳐진 내용 중에는 인간을 차별하는 논리들이 주종을 이루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고, 그 결과 무수한 포악을 초래케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뢰를 격하시키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런 오류들 중에는 인종차별, 여성차별, 타종교인 차별 등이 있다.
특히 정치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뼈대는 거의 16세기 종교 개혁 이전 가톨릭 신학의 체계 안에서 이루어 졌고, 개신교조차 가톨릭 교회가 발전시켜온 주요 교리들을 모방 답습함으로써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치신학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 결과 4세기 초 콘스탄틴 시대 이후 로마 제국주의와 기독교 사상은 매우 독특한 타협의 과정을 거쳐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승인했고,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제국의 종교로 승인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는 유대 기독교 예언자적 전통을 예수의 메시아사상으로 대치함으로써 더 이상 예언적 메시아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즉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현실을 변혁하고 개혁하라는 준엄한 사회 윤리적 요구를 담고 있었던 예언자 정신을 정시시킴으로써 사회정의에 대한 강한 유대 기독교적 충동을 급격히 약화 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인류 역사를 인간의 뿌리 깊은 원죄에서 비롯된 죄스러운 역사로 규정하고 오직 메시아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혹은 은총에 대한 교리적 해명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르침으로써 죄와 구속의 역사가 병행하는 새로운 역사를 초월한 탈 역사적 구원을 기독교회 안에 유입시켰다. 즉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은 역사 밖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밖에 없다는 그의 죄론과 은총설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어거스틴 이후 유대-기독교적 예언자들의 사회 변혁과 개혁 의지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가부장적 삼권(가정, 종교, 정치)에 의한 사회질서 유지적 가치에 혼란을 초래하는 항목들이 죄악으로 규정되었고, 그 내용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도덕적 항목들에 그치고 말았다.
비록 죄의 역사라는 비관적 이해가 깔려 있었지만 어거스틴은 그의 스승격인 암브로우스에게서 배운 바 대로 로마 제국의 질서를 인정하고, 로마 제국을 옹호하는 정당전쟁이론(Just war theory)를 발전시켰다. 결과적으로 로마 제국의 무수한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옹호해 준 이 논리 안에는 정의로운 싸움의 주체는 언제나 통치자이지 결코 신민이거나 민중일 수 없다는 전제가 깊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예언자 혼에서 울려 나오던 변혁과 회개의 메시지는 어거스틴 이후 종교와 정치간 이루어진 야합의 대가로 기독교 사상사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하여 기존의 질서를 위배하는 요구는 반사회적이며 심지어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정치가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철저히 매도되고 척결 당했다. 거룩하지 못한 종교와 정치의 연대가 불러온 포악(atrocity)을 기독교는 사실 오래 동안 품고 있었다.
오랜 서구 기독교 역사 속에서 정치는 기독교를, 기독교는 정치를 이용하여 성장과 팽창 그리고 확장을 통하여 더 큰 권력을 얻고자 하였다. 이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본질은 오늘날에도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18세기 이후 종교적 세계관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세속화되었고, 종교개혁 이후 서구사회는 종교의 후견과 조언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을 종교 권력으로부터 이탈 독립시켜 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제정일치 시대의 종말, 곧 기독교 후기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시대를 알리는 여명의 시점을 나는 종교개혁 시대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며, 동시에 종교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개혁자들이 주창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는 종교의 자기모순을 지적하며 가톨릭적 세계관을 깨뜨리고 나온 가톨릭 후기 시대의 산물이다.
구원과 현실세계 관련성
어거스틴 이후 기독교가 주장해 온 구원은 예수의 대속설에 근거한 믿음의 유무에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절대적으로 의존시킨 것으로서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교도권과 은총 분여권에,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신앙 고백에 철저히 의존시켰다. 그리하여 가톨릭 교회는 제도적 교회가 구원을 담보한다면 개신교는 개인의 신앙 고백에 구원의 문제가 직결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기독교의 구원론이 일종의 “사회현실 관련성 없는 구원“으로 이해되어 자연스럽게 ”영혼구원“으로 요약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구원을 주장하기에는 어줍지 않은 처지에 처해 있었고,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회나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권력을 가진 이들과 매우 근친관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판적 대립보다는 권력의 공유자가 되는 것을 즐겼다. 다만 한 편은 영적인 직무를, 한편은 세속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달랐을 뿐이다. 루터는 이를 일러 하나님이 몸소 제정하신 두 기관이라고 하여 후대 사람들은 이를 소위 두왕국설(Zweireichelehre)이라고 이름을 짓기도 했다.
16세기 말 종교개혁 시대를 관통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은 교파에 따라 각기 달리 해석되었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지배와 권위를 당연시하는 교리적 특성을 유지했다. 루터의 두왕국설이나 칼빈의 그리스도 주권론 (Herrschaft Christi)은 사실상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바 사회를 관통하여 나란히 존재하던 두 기관(intermingled, parallelling two insititutions)의 색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여전히 기독교는 우주적 지배 종교로서 절대성과 궁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절대성과 궁극성은 사실 로마 제국이 가졌던 절대 권력에 버금가는 종교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로마 제국의 정복주의적 정책과 온화한 식민정책의 종교적 변형이었다. 즉 세계는 기독교 신앙에 의하여 정복되어야 하고, 개종을 받아들인 이들과 형제우애를 나눌 수 있지만 이교도들에게는 영적 구원을 거절한 존재로서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고 보는 타자화의 논리다. 이런 기본적인 윤곽은 바로 콘스탄틴 기독교가 가진 정복주의적 호전성이며, 이 논리는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도 깊이 배어 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는 구원의 문제와 관련되는 한 윤리적 숙고와 타당성을 검증할 기준이 증발해버린다는 데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의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구원”에 있다.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지극히 사적이고 영적인 것에 머문다면 삶의 다른 차원에서의 구원은 제외되기 십상이다. 즉 사회, 정치, 경제적 현실을 소외시키는 구원은 결국 사회 정치 경제적인 구원에 대한 질문을 침묵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런 질문을 불신앙으로 매도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구원은 사회 정치 경제적인 구원과 유리되거나 상관성이 결여된 영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의 구원은 결국 사회 정치 경제적 차별과 상관없이 구원을 선포하는 구원이 되어 사소한 개인적이며 영적인 악을 인식하는 데 그치고, 사회 정치 경제적인 구조악의 현실에 무지한 구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인의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사회 정치 경제적 정의가 자연히 수반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는 지난 역사가 보여주고 있고, 또한 해방신학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현실 관련성을 상실한 기독교의 진리 주장은 보편적인 진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고,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구조악의 조장, 침묵에 대한 비판
해방신학은 개인적 영성과 죄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사회 제도가 지닌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 영성과 죄악에 대한 인식능력을 넘어서서 사회악에 대한 인식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같은 기독교인 사이에서 한편은 식민지배자로서 머물고 한 편은 식민지 피지배자로 머무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배와 억압의 현실을 간과했기 때문이고, 이런 도식은 기독교인인 남성이 기독교인인 여성을 억압해온 역사에 침묵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자초된 것이다. 더욱 극심한 사례는 기독교인 백인이 기독교인 흑인과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노예로 삼아 부리는 것조차 당연시 하는 경향을 초래했다. 영성적 기독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정의가 결여된 영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한 관계를 조장, 유지해 주는 억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 점은 남아프리카의 해방신학이 왜 인종차별을 악으로 새롭게 정의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백인들의 신학과 영성이 왜 흑인들에게 보편타당한 진리일 수 없는지를 밝히는 이유가 된다.
지난 기독교 역사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기독교 사상이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삼고, 남성이 여성을 하위 종속된 존재로 여기고, 지배세력을 가진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베풀고, 피지배계층에게는 복종을 가르쳐 온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따라서 주류 기독교 신학에서는 그 해석 주체들이 한결같이 지배자 편에 서서 지배세력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함으로써 피지배 계층을 소외시켜왔던 흔적이 적나라하다. 이는 결국 기독교적 영성 안에 사회비판적인 구조악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마르크스의 경제적 비판이론은 개인의 영성에 고무되어 사회악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론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로부터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무신론적인 이론으로 낙인이 찍히기고 말았지만, 사실 그의 경제적인 구조악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 경제윤리 형성에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억압과 지배 구조와 계기에 대하여 침묵해 온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해방신학은 억압 현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정치, 경제, 사회적 억압과 지배는 교묘하게 종교와 결탁되어, 종교는 지배구조를 하나님의 질서로 옹호해주는 한편 정치 경제 사회적 지배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안에 종교 지배자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 대신 힘없는 남미의 민중들은 편만한 가난과 억압과 고통을 견디어야 했다. 유럽에서도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의 사회 구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근 20만명의 귀족화된 성직자들이 부패한 사회 안에서 기득권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민중의 가난과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이 타도하고자 했던 세력들은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옹호해 주고 있었던 성직자 계급들도 타도의 대상이었다. 민중을 잊고 민중을 착취해 온 종교 세력은 결국 민중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셈이다.
노골적인 식민지배 세력이 종식된 1945년 이후 서구 세계에서 기독교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현존질서 유지적인 기능을 해 오면서 대외적으로는 북아프리카, 아시아, 남미를 식민지화하고, 대내적으로는 기존질서를 옹호 유지해 주던 기독교의 지배세력 편집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과 아메리카의 기독교는 스스로 비판 반성하고 그 속성을 바꾸기에는 너무나 오랜 기간, 그리고 너무나 거대한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극복할 내성이 없었다. 그리하여 보수적인 기독교는 사사화의 길을 걷게 되어 더욱 개인주의화 되었고, 진보적인 기독교는 정치 사회 경제 권력과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정의와 평화의 과제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서구의 기독교는 신자들의 대다수를 잃었다. 비록 소수의 영성운동과 부흥운동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오늘날 유럽의 기독교는 찬란한 과거의 유산을 남기고 황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치명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기독교의 기억은 히틀러 나치 정권의 정신적 후원자가 되어 600만의 유태인들을 학살한 사건의 정신적 배후세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종교와 정치의 결탁은 결국 가장 참혹한 비극을 초래하고서야 비로소 종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독교 안에는 아직도 여전히 역사적 반성의식 없는 세력들에 의하여 종교와 정치의 결탁이 이루어지고, 지배세력과 야합함으로써 종교의 예언자적 전통을 스스로 잠재우는 세력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역사의 다양성은 역사적 오류의 본질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기억상실로 인하여 끝없는 악의 반복을 초래하기도 한다. 유태해방신학은 이런 점에서 유태인의 신학만이 아니라 종교와 정치의 경건치 못한 결탁이 얼마나 큰 포악을 불러오는 것인지를 고발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유태인들을 향한 기독교의 가학성은 기독교 선교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예증이다. 기독교적 구원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도 인간을 향한 구원의 길일 수 없다는 논리는 결국 기독교가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복과 식민지적 지배를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무가치한 타종교인들은 개종의 대상일 뿐 기독교인과 동일한 생명의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개종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을 향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너무나 쉽게 저주를 선언하며 비인간화 했고, 동류 기독교인들을 향해서는 이교도들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유럽에서 유태인들을 향한 차별이 종교적인 것이었다면, 아시아 대륙과 아프리카에서는 종교적인 이유에 인종차별주의가 덧 붙여졌다. 오직 기독교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서구 기독교의 신념을 아시아인들에게 이식하는 것이 선교였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저주아래 놓인 보잘 것 없는 존재들로서 하나님도 버린 존재들이므로 기독교적인 사랑과 연민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피부색갈이라는 가시적 차별의 이유에 더하여 비기독교적인 문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은 서구 우월주의를 조장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서구세계로 진입한 기독교 제국주의와 식민세력은 착취와 억압을 당연시했고, 토착민들의 문화와 종교와 삶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인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화란 기독교화이고, 기독교화는 곧 서구화였지만, 기독교인이 된다하며 피부색갈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고, 서구식민지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식민지배자들의 비정치, 비사회, 비경제적인 종교적 가르침은 식민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차별을 복음과 함께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흑인 해방신학은 이 점을 강하게 거부하며 비판해 왔다. 샤론 웰치(Sharon Welch)는 이런 사실들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종교재판, 마녀화형, 십자군 전쟁의 포악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정당화,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반 유태주의의 조장, 전쟁의 악마적 공포와 나치 홀로코스트에 직면하면서도 교회가 침묵했던 일들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에게조차 기독교가 주장해 온 진리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아시아인들은 서구의 역사보다 오랜 문명세계를 형성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적 우월성을 지닌 서구 종교인 기독교에 의하여 아시아의 종교성과 그 종교가 지닌 도덕성을 부정당해 온 측면이 크다. 이런 성향은 종교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문화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아시아의 사유와 삶의 방식들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풍토를 불러왔고, 이 문화적 차별주의는 서구 기독교 중심의 구원 개념에 의하여 더욱 깊이 자극되고 조장되었다. 구원이 없는 땅에서 유익한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논리는 기독교 복음안에 포장되어 서구의 문화적 한계를 넘어서서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와 남미에도 적용되었다. 개종 아니면 배타와 심판과 저주의 태도가 기독교적 구원이라는 이해를 둘러싸고 당연시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구원론은 결국 전지구적 상황에서 기독교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기준이 되었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저주 아래 놓인 이교도들을 향하여 선교적 열정을 불태우게 하였으며, 서구의 우월한 정치 경제적 세력을 동반한 식민지화를 통하여 포악을 행하게 하였다. 기독교도들에 의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북아프리카의 흑인들에 대한 차별정책, 600만 유태인들 학살사건, 무수한 십자군 전쟁과 마녀 사냥 사건들은 기독교의 구원론에 의하여 변형된 인간억압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폭력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얻으려면 기독교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개신교는 그 교파적 다양성으로 인하여 그리고 신학적 인식의 깊고 옅음에 의하여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객관적 성찰을 받아들이는 교단도 있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단도 있다. 아마 대다수의 교단적 신학과 개인적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무이한 구원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앙인과 신앙 공동체의 존재의미를 기독교 신앙의 확장과 팽창을 불러오는 영혼구원에 수렴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길에서 우리는 기독교 외의 문화와 종교를 향한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예수의 평화로운 가르침을 받았던 기독교는 평화로운 삶보다 영혼구원의 종교라는 차원에서 그 정체성을 찾아 왔기 때문이다. 윤리론을 부정하며 구원론만을 쫒아 온 결과다.
전인적 책임과 구원을 선포 하려면
지난 2008년 6월 5일 나는 미국 하바드 대학 졸업식장에 앉아 있었다. 하바드 357년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선임된 파우스트 박사는 대학교육의 본질을 일러 “자유와 책무"(freedom and accountability)라고 요약하였다. 대학을 세운 하바드 목사의 교육철학에서 시작된 그 대학의 엠블렘에는 오직 하나의 단어 ”진리“(veritas)가 새겨져 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존의 질서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새로운 창조의 지평을 열수 있지만, 동시에 그 자유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책임의 지평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 논리를 오늘의 기독교 신앙에 적용해 본다.
기독교가 참된 진리의 종교라면 영혼구원에서 그 진리성을 입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세계에 대한 책임 앞에서도 구원의 길을 제시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까지의 기독교 신앙은 부유한 기독교 세계로 구성된 북반구와 그 부유한 기독교 세계의 식민지배지가 되었던 남반구인들의 가난과 고통 앞에서 보편적인 진리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은 착취와 억압자로서의 기독교인으로 존재하고, 한편은 착취와 억압을 받아온 기독교인으로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구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는 억압자와 억압받는 자, 착취자와 착취를 당해온 자로 나누이어져 있다. 기독교는 이런 불평등에 대하여 책임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18세기 중엽의 기술과학 문명이 촉진된 이후 서구 기독교 세계는 생산능력을 고도로 증가시킴으로써 물질문명의 대변혁을 주도해 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문명을 탄생시켰으며, 무한한 경쟁관계를 불러들임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충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해석해 왔다. 영혼구원의 종교라는 내면적인 차원과는 달리 구원받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으로서 풍요로운 문명은 서구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특권과도 같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런 욕망충족의 문명은 이제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다. 수천만 년 동안 지구가 저장해 두었던 화석연료들을 거의 고갈시키는 동시에 전 지구적 환경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전지구인들이 영혼구원을 받아 서구인들과 같은 류의 축복을 받아 그와 같은 삶의 질을 누리게 된다면 이 지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연구 보고서가 이미 36년 전에 나왔다. 배타적인 풍요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해 온 서구 기독교 문명 구조 안에서 우리는 예수의 청빈의 윤리가 거부당해 온 역사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몰락을 맞고 있는 서구적 구원 모델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구원의 길인가?
그 결과 서구 기독교 그리고 그 기독교를 모방 답습하는 기독교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욕망충족을 예찬하는 문명을 멈추게 할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기독교는 무한한 개발주의를 부추겼고, 소유를 축복으로 이해하는 성공신화를 조장해 왔으며,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중들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데 비하여 서구 사회의 사람들은 하루 100달러 이상의 돈으로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직면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대중의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보이며 전통적인 선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종교 지도자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사회과학적 이해능력을 상실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난과 억압을 불신앙의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구의 생산능력의 한계 안에서 자신들이 더 많이 가짐으로써 그들이 더 가난하여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아니라 그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가난한 나라를 자신들의 시장으로 삼고 있다. 지구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독교의 축복과 풍요의 메시지는 더 이상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여기서 구원의 기독교는 어떤 대안적 윤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세기동안 화석연료를 불태워 이룩한 서구 사회의 풍요는 전 세계적인 생태계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생명력이 약한 생물들이 궤멸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불러와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기후 변동은 급기야 라니뇨 및 엘리뇨 현상을 불러와 세계 기상도에 이변을 불러오고 있다. 생존환경을 문명사회구조화한 나라들에 비하여 자연친화적인 생태적 습성을 가진 가난한 나라의 민중들이 기후 변동으로 인하여 치명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해 온 서구 문명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기독교는 오늘의 이 정황에 대하여 과연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축복와 풍요를 여전히 약속하는 논리를 지속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의 자유를 누리려면 오늘의 세계에 대한 책임과 구원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의 영혼구원의 약속이 기독교내에서만 유효하다면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아시아 땅에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을 저주하신 것일까? 그리고 동시에 서구 사회의 기독교 문명권 안에 놓인 이들에게만 사랑의 하나님 이셨던 것일까?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 밖에 있는 아시아 대륙의 97% 민중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서 배제되어 저주아래 놓인 것일까? 이 저주의 논리는 어쩌면 유태인 600만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보다도 더 무섭고 잔인한 종교적 결론을 초래한다. 루벤슈타인의 주장대로 “죄없는 100만의 어린 아기들을 죽이도록 허용한 하나님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홀로코스트 신학은 아시아에서도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인을 저주하는 신학으로부터 우리가 해방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수천 년 동안 아시아인의 영혼을 외면하고 저주아래 버려온 하나님을 과연 아시아인들은 그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부재증명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아시아 해방신학은 아시아 안에서 인간의 평화와 구원을 위하여 일해 오신 하나님의 다른 얼굴을 증거 하려 한다. 유일회적인 기독론을 넘어서서 사건으로서의 기독론, 패러다임으로서의 기독론을 낮고 천한 이들과 동행하는 그리스도론에서 정통교리가 아니라 정행의 길을 찾는 것이다. 이 길은 서구의 배타적 신학적 주장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아시아인의 종교 문화적 가치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종교해방신학적 과제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현대 해방신학은 서구 전통 신학들이 간과하고, 제외시키고, 저주하고 차별했던 이들 편에 서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신학의 특성을 지닌다. 가부장적인 하나님에서 해방되어 평등주의적인 하나님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인 하나님 신앙에서 보편적인 인권론적인 하나님 신앙으로, 착취와 억압을 간과하며 영혼구원만을 역설하는 하나님에서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는 전인구원의 해방의 지평을 가리키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들이 오늘의 해방신학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이 해방신학 이야기는 강단으로 이어지고, 기독교인들의 평화와 인권운동으로 이어지며, 환경운동과 민주화와 인간화를 통하여 확장되는 것이다. 온갖 차별과 억압과 착취문화에 의하여 포로 되었던 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정치, 경제, 사회적 운동이 영혼구원의 가르침에 잇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도덕적 모순과 해이
지난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내적 모순은 성서적 예수의 상실에 있다. 소종파적 신학자인 요더(John Howard Yoder)도, 기독교 현실주의적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도 예수의 정신을 유대 기독교의 예언자 전통에서 찾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폭력과 탐욕과 쾌락원리들을 하나님 신앙에 정면 대치되는 것이라고 간파했고 그것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는 결코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혼구원을 현실세계와 유리시키고, 권력과 타협하며, 대대로 욕망 충족의 원리를 유통시키며, 인간의 쾌락지향적 욕구를 적당히 충족시켜 주었다면 예수는 오늘날의 부유한 대형 교회 목회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서 절대 정치적 억압이나, 가난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을 겪었고 마침내 그들의 모함과 음모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이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예수의 죽음을 메시아적인 구속의 사건이라고 보았던 정통 기독교 신학은 완성된 구원론을 강조하여 예언자적 음성을 기독교 역사속에서 침묵시킴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지평을 역사 너머로 밀어 버렸다. 나는 1970년대 해방신학의 발흥은 4세기 경 기독교(종교)가 로마 제국(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더 이상 저항적 종교가 아니라 현실 타협적 종교가 되기로 자처함으로써 현실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소리를 막아왔던 침묵의 역사를 깨고 다시 예언자의 소리를 이어가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본다면 기존의 정통신학이 가졌던 탈예언자적 구원론은 해방신학 안에서 비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언의 소리를 침묵시킨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 호전적 종교가 되었고, 로마 제국의 등에 업혀 세력 확장을 위한 교리를 개발해 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철저하게 삭제당한 것이 예수의 평화윤리사상이다.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었던 예수가 삭제되는 동시에 우주적 지배자로 높여진 예수가 등장했고, 평화의 임금으로 예루살렘에 들어 왔던 예수는 정당전쟁론을 앞세우고 주변 국가들을 괴롭히는 전쟁의 후원자로 합리화 되었다. 더불어 욕망과 쾌락의 문화를 지배하고 축복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세라와 바알을 방불케 하였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문화의 비판하고 심판하며 변혁하는 분이 아니라 죄 많은 인간들의 속죄주로 가르쳐져 온 것이다. 예언자 정신의 상실과 더불어 속죄주 예수에 대한 교설의 확립은 결국 보편적인 인간의 죄스러운 삶에 대한 용서와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심리적인 위안의 은신처가 된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범한 죄의 결과로 무수한 이들의 고난과 고통이 당연시되거나 간과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명백하게 기독교 안에 자리 잡은 도덕적 해이와 모순을 드러내는 증거로 남아 있다.
기독교 문화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 인종 가치를 타자화해 온 기독교의 도덕적 오류는 특히 여성억압, 노예제도, 거룩한 전쟁, 십자군 전쟁과 인종차별, 그리고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힘의 근원이 된 폭력을 지지해온 역사적 오류와 연계되어 있다. 기독교 죄론의 그늘 아래 핀 독버섯과 같은 사회윤리적인 치명적 결함이다. 이런 결함은 결국 기독교가 절대적인 종교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격하시켜 그 도덕적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 요인이 되었고, 기독교 진리에 대한 배타적 주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오게 되었다. 완성된 구원론이라는 장벽 안에서 기독교 지도력은 권력과의 타협, 세속적인 탐욕문화에 대한 긍정, 그리고 폭력을 긍정하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로마 제국과의 친밀성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로마 제국 멸망이후 서구 기독교 열강의 식민지배 세력을 후원했다. 지배와 정복문화는 기독교의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타자화와 더불어 차별과 배제와 착취와 정복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자들이 가진 시각은 전통적인 기독교 내부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서구, 백인, 남성, 지배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던 아퀴나스, 루터, 칼빈의 전통은 이런 점에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은 서구, 백인, 남성, 지배세력에게 위탁된 것이 아니라, 아시아 문명, 유색인종, 여성, 피지배자들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 해방신학의 방법론적 관점이다. 류터(Rosemary Radford Reuther)는 이렇게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영감과 종교적인 권위에 대한 나의 이해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한 지역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일단의 남성들에게만 옛날에 말씀하시고, 그 이후 그 남성들의 경험에서 나온 경전에 우리가 항상 의존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백인 남성들이 지배세력과 더불어 전개해 왔던 바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 그리고 절대적인 자기주장으로 점철된 신학적 형이상학은 절대적이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기독교 전통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안에 있는 제국주의적 폭력성, 식민적 지배성’을 인식한 이상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여러 각도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지배자적 관점이 아니라 피지배의 경험에서 우러난 피맺힌 절규들에 의하여 촉진 되었다. 따라서 어떻게 폭력적 종교에서 거듭나 생명과 평화의 종교로 거듭날 것인가가 다양한 해방신학이 안고 있는 고민이며 주된 담론이다.
이 담론은 모든 역사적 지식들이 개방되어 더 이상 밀실 담합이나 비밀을 유지할 수 없는 오늘의 개방사회 안에서 폭력적 기독교를 해체하고 어떻게 평화적인 기독교로 재구성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해방신한은 한결같이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며, 구성적이다.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기독교 내부에 담고 있는 비윤리적이며 부도덕한 가치체계들을 직면하면서 기독교적 사유와 신앙과 신학 안에 내장된 억압과 지배와 차별의 논리를 스스로 해체하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정통신학의 논제들을 해체하고 비판 한다.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근본구조를 불러오는 타자화가 아니라 동정과 연대와 나눔의 신학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해방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이 해방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이들과 거부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지만, 역사의 흐름은 거부하는 이들의 도덕적 오류를 거듭 거듭 드러낼 것이라고 본다.
홀로코스트와 현대신학의 특성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량 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는 전통적인 기독교 문명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그 폭력적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기독교적 동류가 아닌 존재를 향한 타자화와 차별의 논리는 상대(유태인, 타종교인, 장애인, 동성애자, 집시)를 악마화하고, 상대의 인간성을 부정하며, 심지어는 말살시키는 인종 청소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홀로코스트 이후 이런 폭력적 종교가 주지했던 영혼구원의 교리는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되었고, 거대한 악의 현실을 불러온 기독교 내부의 악은 그동안 기독교 밖에서만 악을 규정해 오던 신학적 논리를 뒤집어 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다른 이를 저주함으로써 얻어지는 구원이 참된 구원이며 평화일 수 있겠는가? 이를 아시아적 맥락에서 바꾸어 말한다면 오직 3%에 지나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주장할 때 우리는 97%의 아시아인들을 저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97% 안에는 순진한 어린 아이들이 무려 10억이 넘는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이 과연 온 세계를 창조하고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실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은 홀로코스트 신학자들로부터 신죽음의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과격한 이들은 전통신학이 주장하던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하거나 온건한 이들은 하나님 없는 세속화된 세계 속에서 새롭게 신학하기를 주창하기에 이른다.
주로 서구 세계에서 일어난 신 죽음의 신학은 결국 서구 기독교 신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그 신학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진 하나님에 대한 죽음의 선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현대 신학의 주된 과제는 서구신학과 함께 붕괴되어 죽은 신을 넘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진술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학의 한계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학이 상대적이라면 그 신학이 산출해 낸 신앙도 상대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안에 제약된 인간의 인식구조를 뛰어 넘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고백되어 오던 내용도 결국 현대 세계의 인권사상의 빛에서 본다면 여전히 억압적이고, 차별적이며, 주변을 타자화함으로써 폭력과 지배구조에 연연하는 면모를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자들은 올바른 신학적 태제, 조직신학적 정론(orthodox) 논쟁에서 벗어나 올바른 행위, 기독교 윤리학적인 정행(orthopraxis)에 더욱 관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중심축은 조직신학적 논의가 아니라, 조직신학적 논의의 허구와 오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기독교 윤리학적 논의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서구 기독교의 역사에서 정행의 문제가 신앙과 삶에서 사라진 것은 인간의 죄성을 강조하면서 은총의 교설을 통한 교리적 구원을 통하여 의로워진다는 루터적인 “행위없이 의로워지는 낮선 의”에 대한 가르침에 크게 기인한. 그리하여 기독교 주류는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적 헌신과 경건을 강조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여 가능성을 부정해 왔다. 곧 도덕 폐기론적인 교리적 특성이 인간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무능을 끝없이 고발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고발은 인간의 도덕적 무능을 영혼 구원에 연결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언자적 전통에서의 고발과 그 근본 성격이 다르다.
예언자적 전통에서는 도덕적 무능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실패와 불성실을 고발함으로써 도덕적 성실성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불성실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다. 복음주의 인간론이 담고 있는 죄론과 예언자 전통의 죄론은 전자가 인간 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데 비하여, 후자는 인간 선의 가능성을 오히려 주장한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예언자들에 의한 부정의에 대한 고발은 바로 이런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라인홀드 니버의 표현을 빌려 다시 말한다면 죄성의 보편적 균등성(equality in sin)에 대한 통찰에 그치고 마는 것이 복음주의적 죄론이라면 개체 죄성의 불균등성(inequality of sinfulness)을 지적하는 것이 예언자적 전통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복음주의가 지니고 있는 불의한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을 비판하고, 예언자적 전통을 회복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역사적 선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이런 윤리 신학적 주제는 18세기 이후 사회 정치사상의 발전과 더불어 인권사상의 발전 과 그 확대과정에서 기독교 윤리학적 실천과제를 규명하고 찾을 수 있는 논거를 찾으려는 노력과 일치한다. 이런 주제들은 전통적인 신학에 종속되었던 기독교의 행위론으로서 기독교 윤리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독립되어 자리를 잡게 했고, 1960년대를 지나면서 인권과 생명권을 옹호하는 사회책임의 신학, 즉 기독교 사회 윤리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지평은 오늘의 세계 현실을 담아낼 수 없는 편협하고 왜소한 신학으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그러한 왜소한 신학에 갇힌 하나님의 해방을 요구하고, 나아가서 인문사회, 과학, 생물학과 의학의 영역에서 인간의 권리와 생명권을 옹호하는 신학적 과제를 열어온 사상적 동인(動因)을 지니고 있다. 신학의 폭력성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사상적 폭력과 기술과학 문명의 폭력성, 이데올로기적 폭력성으로부터 해방의 과제는 아직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분열된 세계의 화해와 치유의 과제
오늘날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는 수백 개의 교파로 분열되어 있다. 우리 한국 사회만 해도 한국 기독교 협의회(NCCK)가 있는가 하면 한기총이 있다. 신학교육기관도 보수신학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신학대학과 비교적 진보적 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신학대학으로도 갈라져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과학적 데이터를 부정하는 보수신앙을 중시하는 신앙 공동체가 있고, 사회과학적 진보를 받아들이려는 신앙공동체도 있다. 나아가 정치신학적인 변혁과 개혁을 요구하는 신학전통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변혁과 개혁보다는 정치적 안정과 전통적인 가치를 고수하려는 신학전통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적인 논의는 진보적인 신학자들이나 신학전통에서는 활발히 소개되고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보수적인 신앙 공동체나 신학자들은 해방이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경계하고 비본질적인 복음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두 진영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신앙체험과 고백을 중시한다.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대하신 사건이 복음이라면, 우리는 이제 차별받고,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배제되었던 이들과의 연대를 추구함으로써 복음적 실천을 지향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해방신학은 흔히 오해되듯이 붉은 사상에 물든 신학도 아니고, 교회를 파괴하는 신학도 아니다. 해방신학은 오히려 기독교가 너무나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사회윤리적 과제를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개혁하는 신학적 동기를 불어 넣어 준 새 술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지배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는 해방자로서 일하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참된 화해와 치유는 대립과 증오와 착취와 억압을 통하여 어느 한 편의 안락을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착취와 억압, 차별과 배제의 관계가 극복될 때 비로소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장벽을 넘어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도 우리 안에 세워져 있는 이념적 장벽과 증오와 불신의 장벽으로 인해 지속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장벽, 착취적 근성과 폭력성의 제거야말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결해야 할 과제다. 그리고 고난과 가난, 억압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나누어야 할 연대는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의무다. 다양한 해방신학은 각기 그 관점에서 우리 안에서 무엇을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일러주고, 무엇을 우리가 열어야 할 것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이런 해방신학의 지평은 우리가 잃었던 정의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주고, 불평등을 넘어선 평등 공동체의 이상을 되찾게 해주며, 폭력과 착취적 관계의 해소 없는 사랑과 평화란 거짓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냉혹하게 바라보던 우리를 해체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신앙 공동체 혹은 우리 안에 내재된 억압과 차별과 착취 구조를 비판 해체함으로써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 우리를 더 깊은 사랑과 화해와 치유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 예언적인 음성을 담고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해방 사역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이 예수의 정신에서 멀지 않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Saturday, June 14, 2008
Liberation Theology and the New Horizon of Christian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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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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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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