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8, 2020

종교개혁 정신은 어디로 갔지?
 
#12. 종교개혁의 한계와 의미 VI: 번영신학에 물든 한국교회
 
1. 종교 개혁의 원칙

종교 개혁 정신의 본질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제는 16세기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여 재래의 기독교에 대한 신학적 검증과 비판을 동반했다. 종교 개혁자들은 기존의 종교 안에서 자신들의 지위와 특권을 포기하고 참된 신앙의 길을 찾기 위하여 그들의 삶을 바쳤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난 역사에서 단 한번도 충분히 개혁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종교 개혁적 사상은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추동하는 비판적 시각을 제시해 주었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사람들은 그 시대의 편견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은 세 가지 측면에서 언제나 타당하다고 본다. 그가 부르짖었던 원칙에 담긴 근본적인 속성이다. 기독교 신앙은 성서적 적절성(sola scriptura)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 기독 신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sola gloria)을 돌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어느 시대의 사람이나 사죄의 은총을 통한 용서를 필요(sola gratia)로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인 교집합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지평(sola fide)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의 규준을 따라 그의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은 사는 데에서 가장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에서 활성화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6세기의 신학자들이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분파적 무리를 이루며 이견을 제시했던 것은 기존의 신앙 체계의 비성서적 위선을 거두어 내고 진정한 믿음의 길을 찾기 위해서 였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 타방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자기비판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개혁 정신과 행위가 그 정당성을 가지려면 타방의 비()믿음을 비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비()믿음도 자가 비판할 수 있을 때다. 종교 개혁은 개혁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급진적인 시각을 요구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개혁 사상은 도구화되거나 정치화되어 상대를 비난하고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유감스럽게도, 개신교 500년 역사 속에서 난립한 무수한 분파의 존재는 상당부분 개혁 사상이 도구화되거나 정치화되어 특정한 교파나 교회를 옹호하기 위하여 오용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들어본다면 광화문에 출현한 한기총 세력이 한국교회를 대리하는 개혁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사상적 토대나 논리는 기독교 개혁 사상의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엉뚱하게 비성서적이며 몽환적 주장에 이끌리는 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들은 기독교 교세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기독교 정치 세력을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기독교와 개혁 정신을 빙자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을 외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전령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종교 개혁은 성서외의 권위를 부정했고, 은총의 도구화를 비판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제도적 교회가 가로채는 것을 거부하는 믿음의 지평을 열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믿음의 지평을 잃지 않으려면 개혁의 대상은 기존의 종교만이 아니라 개혁된 종교를 요구하는 자신들 역시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명제를 우리에게 넘겨 준 것이다. 그러므로 부단히 개혁되어야 하는 자기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놓치거나 쉽게 망각한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2. 종교 개혁의 관점에서 본 한국 개신교회

기독교 사상사의 좌표 평면에서 본다면 1884년 미국의 선교사들이 들고 온 복음은 온전한 기독교가 아니라, “19세기 미제 기독교였다. 내가 우리에게 전래된 기독교를 한정적인 의미에서 “19세기 미제 기독교라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종교 개혁적 관점을 적용해서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19세기 미제 기독교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1866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 호가 평양을 향해 대동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왔다. 이 상선에는 총과 대포가 실려 있었고, 토머스라는 이름의 목사가 타고 있었다. 이 배는 미국의 상업적 관심, 제국주의적 힘, 그리고 개신교 선교라는 3중적 목적을 싣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조선 문정관과의 대화에서 통상과 선교 의지를 밝혔다. 토머스 목사의 통역을 거쳐 통상과 개신교 선교 허용을 요구하면서 이들은 은근히 소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있음을 자랑했다. 수틀리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외지인을 향하여 친절한 태도를 보이던 조선 관헌들을 셔먼호를 타고 온 외국인들이 조선인을 볼모로 잡는 오만한 행태에 분격하여 갈등이 유발되었다. 비 때문에 불어난 강 수위가 급격히 빠지면서 배가 좌초하자 관군들은 불화살로 공격하여 27살의 토머스 목사와 더불어 제너럴 셔먼호 승선자 전원을 처형했다. 이 사건이 미 해군에 의해 밝혀진 이후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마침내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결과 일본과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에 의하여 한국 선교에 대한 관심이 영미권에 알려지면서 미국 선교사들이 내한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내한한 선교사들의 활동을 평가한 글들을 살펴보면 대략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일단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우월하게 여기는 관점에서 형성된 힘의 지배, 곧 제국주의적 관점이 팽배했다. 그 결과 이들은 미국과 일제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대하여 침묵했다. 심지어 광산 채굴권과 같은 이권을 미국인들에게 알선하기도 했다. 둘째, 피선교지의 지성적 수준과 이해능력에 따른 매우 심플하고 공격적인 기독교 신앙을 일반화 했다. 그 결과로 신학사적 비판과 이해 능력이 매우 취약한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신앙 전통이 형성되었다. 셋째, 토착 권력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이 비사회적, 비정치적, 비경제적 선교 정책을 적용한 결과 비()사회화된 복음을 한국 교회에 고착시켰다.

결과적으로 넷째, 기독교 선교가 교회확장주의 과제와 동일시되었다. 다섯째, 교회확장주의를 위하여 개종주의를 선교의 기조로 삼아 토착 문화와 가치를 부정했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인의 얼과 삶에 대한 자기부정을 결과 했다. 여섯째, 당대의 다양한 과학적 사조, 사회변화의 사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은 합리적 전통과 이성을 부정하는 성향을 보였다. 일곱째, 선교사들은 한국인 교역자의 질을 자신들보다 낮게 만들어 백인 우월주의와 토착민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지속시키려 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은 많은 시간을 들여 검토해야 할 중요한 관점들이다. 만일 이런 이해가 정당성을 가진다면 종교 개혁적 사상의 내적 검증 구조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독특한 피선교적 정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피선교지의 불리함 - 그것은 서구 사회에서 종교개혁 사상은 나름대로 교회의 자기 검증을 위한 신학적 비판 능력으로 작동했으나, 한국 교회의 피선교지적 특성은 이러한 자기 검증적 신학 전통이 단절된 교회에 만족하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단순하게 기독교 사상의 파노라마와 더불어 검증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은폐된 채, 선교 제국주의적인 우월한 종교 사상 체제로서의 기독교만 작동했으며, 동시에 교파주의적 경쟁이 기독교의 자기 절대화의 기조를 지속적으로 강화,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런 기조는 비기독교적 문화 안에서 종교 간의 비교를 통해 상대를 정복하려는 개종주의적 선교를 당연하게 만들었다.

중국이나 일본 선교와는 달리 조선에서의 선교는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이는 토착 종교였던 유교와 샤머니즘의 사회 변혁적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기독교가 제시한 새로운 삶의 양태가 상당부분 개인의 갱신과 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 이면에는 일종의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했다. 기독교를 통해서 일어나는 보다 나은 서구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한국인 내부에서 지속되어 온 조적 자기부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다 우월한 백인들의 종교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무능한 정치권력, 그리고 이어진 포악한 일제의 횡포 이면에서 기독교를 일종의 다차원적인 삶의 구원의 길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1910년대를 지나면서 일체 치하에서 선교사들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교분리의 원칙은 민족주의자들이나 제국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던 지식인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고, 이들이 교회로부터 축출되거나 스스로 떠나는 결과를 초래 했다.
 
3.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는 신학적 검증이라는 지성적 자기비판의 기재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한국에서의 신학교육은 선교사들의 내한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선교사들의 지적 수준은 신학적 자기 점검보다 토착종교로부터 조선인을 개종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도구적 수준이었다. 비판적이며 검증적인 신학교육 없이 개신교 선교 6년만인 1890년 신도 수가 17,577명이 되었고, 1900년에는 43,441, 191073, 517명에 이르다가 한국 전쟁 이후 급격하게 신자가 늘어 1960년에는 신도수가 1257,428명이 되었고, 그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신자가 늘어 2000년에는 8,760,336명으로 집계되었다.

2019년 현재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는 374개의 교단을 두고 있으며 교회 수는 83,883, 교직자는 98,305, 신자 수는 1,13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성장 과정에서 가장 현저한 특성을 보인 교회는 조용기 목사가 이끌던 순복음 교단이다. 순복음 교회(하나님의 성회)1953년 출발한 교단이었으나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교인 수 110만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에는 독특하게도 수천에서 수만, 심지어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신자를 둔 교회도 생겨났다. 한국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신학적 특성을 가진 교단의 성장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가진 개 교회의 성장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고도 성장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이후는 한국 사회의 경제부흥과 맥을 같이하는 부흥과 성장의 흐름을 타고 있었고, 이 때의 정치 사회적 격변성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등이 겹치고 있던 시기다. 이 기간 한국교회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비정치적 입장을 고수했고, 스스로의 신학적 사유를 가지기보다는 수입신학에 의하여 끝없는 분열을 이어간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가 낳은 신학적 사상은 토착화 신학과 민중신학으로 양분되고, 이 두 진영의 신학적 흐름 외에는 대부분 수입신학을 추종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사회 참여적 지식인들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탈했고, 사회 변화와 더불어 신자들은 축복과 영생이라는 신앙 목표를 교도받은 신자들이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4. 한국교회의 내적 논리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신학적 기반은 19세기 미국 선교사들의 신학이 바탕이 되었다. 이들이 이끌었던 신앙운동의 성격은 철저하게 교인 만들기에 집중되었고 부흥운동, 백만 명 구령운동, 회개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비정치화를 초래했다. 이런 시각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선교사들에게는 조선이 일본에 강점되는 문제가 그들에게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신도들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조선의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침묵하는 신자로 양육되었다. 심지어 일제하에서 일본인을 미워한 죄를 참회하는 운동도 전개 되었던 적도 있었다.

1917년 춘원 이광수는 기독교의 공헌과 약점에 관하여 청춘지에 기고하면서 개신교회의 순기능을 서양 사정의 소개, 도덕의 진흥, 교육의 보급, 여성지위향상, 조혼폐지, 한글보급, 사상의 자각, 개성의 자격과 개인주의의 파급에서 보았다. 동시에 그는 교회내 차별적 질서, 반지성적 교회지상주의, 교역자의 무식함과 구복신앙의 미신적 행태를 한국 기독교의 역기능으로 지적했다. 나는 이 평가가 당대 지식인의 평가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 초기 흐름에 대하여 이광수가 반지성적 교회지상주의구복신앙의 미신적 특성을 지적했다는 것은 결국 비판 신학으로서의 개혁 사상의 증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한국교회의 반신학적 기질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신학적 사상보다 신학 없이 신앙적 근거를 댈 수 있는 손쉬운 길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성서다. 성서에 쓰인 말씀을 문자적으로 신봉하는 것을 가장 좋은 신앙의 기준이라 여기는 것이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도 중시하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성서적 근거를 가진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의미에서 종교 개혁적 원칙이기도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사성 없는 성서해석의 자의성을 제어할 기재가 없다는 데 있다.

루터의 오직 말씀으로만(sola scriptura)” 이라는 원칙은 성서적 근거가 없는 신앙행위의 무용성내지 오용성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목회자의 신적 권위를 주장한다든지, 성서적 근거가 없는 예전을 만들어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다든지, 교권질서를 신적 질서로 간주하는 전통이다. 하지만 종교 개혁적 의미에서 오직 말씀으로만이라는 구호가 지시하는 것은 성서문자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루터의 입장을 담은 이 간결한 표현은 최소한 1500년의 신학사적인 배경을 두고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이 표현은 신학사적인 사상과 실천의 배경 없이 유통된다. 그 결과는 성서문자주의, 문자율법주의를 미신적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신학적 검증 없는 신앙, 사상적 배경 없는 성서 해석, 문화적 거리를 무시하는 비과학적 문자주의는 결국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대들보는 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춘원 이광수가 1917년에 비판했던 한국교회의 4대 문제, “교회내 차별적 질서, 반지성적 교회지상주의, 교역자의 인문 사회 과학적 무지, 그리고 구복신앙의 미신적 행태가 한국교회의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성서 문자주의적 권위를 유통시키며 문자를 앞세운 사람의 자의가 불러온 결과다. 사람을 차별한 이유는 따지고 보면 성서를 들고 재래의 유교적 질서를 유통했기 때문이고, 반지성적 교회지상주의는 성서만 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미신적 우둔함에 빠진 결과였으며, 인문 사회 과학적 지식을 한국교회가 무시해온 것은 성서에서 문자적으로 일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대 교육의 기초소양 교육 과정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종교가 그리는 하나님은 요술방망이를 든 하나님(deus ex machina)이어야 한다. 재래의 샤머니즘적 열심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무당의 요구에 따라 제물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며 손을 모아 기도하는 양태의 서구적 번역이다.

나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속성을 도구적으로 가장 잘 반영한 사람이 조용기 목사와 그를 숭상하는 부류들이라고 생각한다. 춘원의 비판이 100년도 더 된, 1917년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교회는 과연 100년 전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자. 사실 신학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의 내가지 문제에 대하여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며 심각하게 고민한 이들이 있었다. 19세기에 대두된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비지성, 비과학, 비정치화된 신앙을 비판하고 신앙적 관심이 정치, 교육,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불룸하르트(Christoph Friedrich Blumhardt) 등의 종교 사회주의적 비젼을 불러왔다. 이 비젼은 서구사회에서 상당한 반영을 불러와 유럽 지식인들을 설득하여 오늘의 유럽 사회를 복지사회로 탈바꿈하게 하는 사상적 원동력이 되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난 독일은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두 흐름의 장점을 모은 자유 사회적 국가(Freihietlicher Sozialstaat)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정통주의 신학의 패배주의적 비관론에 다시 말려들어 신정통주의 신학과 20세기에 급조된 근본주의 신학에 의하여 일선에서 좌파적 사상으로 상당부분 거부되었다. 기독교 내부에서 신학의 사회 정치화를 거부한 것이다. 초기에 자유주의 사조를 수용했던 사상가들도 후기로 가면서 대부분 자유주의의 기조를 버리고 자본주의 정신에 손을 들었다. 자본을 앞세운 맘모니즘이 소유의 사회화를 거부하고, 소유의 정의로운 분배 요구를 마르크스의 불온한 사상의 침공이라고 보았던 까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과적으로 한 세기만에 다양한 해방신학의 씨앗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 안에서는 이렇게 삶의 구체적인 현장을 다룬, 육화된 신학적 사고가 거의 없었다. 선교사들은 자유주의 신학 이후의 정복주의적 선교관이라는 가마에 태워온 하나님 신앙만을 가르쳤다. 이 당시 희미하게나마 한국교회에 자유주의 신학을 소개한 이는 일본 도지샤 대학, 미국 시카고에 있는 게렛 신학교, 그리고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공부한 정경옥 교수(1903-1945)였다. 정경옥은 선교사 신학의 편협함을 넘어서 현대신학의 동향을 밀도 높게 한국교회에 소개했던 인물이었으나 아쉽게도 42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보수 교단에서 이단시했던 감리교 신학의 진보적 성격은 정경옥 주변의 인물을 중심하여 씨앗을 뿌린 결과라고 나는 본다.

반면 성서문자주의적 신학을 표준으로 삼은 교단에서는 성서 해석에 자유주의 신학의 속성이 드러날 때마다 신학적 논쟁이 일어 교파 분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극보수, 중도보수, 진보로 대별되어 공존하고 있다. 물론 신학사적 이유가 아닌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른 교파들의 분립 또한 적지 않았다. 2019년 현재 한국교회는 374개 교단을 가지고 있으니 지난 백 년 동안 1년에 평균 3개의 교단을 세워온 셈이다. 그 중 대다수가 장로교회라는 명패를 걸고 있다. 교단의 다양성은 또 다른 기준, 즉 에큐메니칼 진영과 비에큐메니칼 진영으로 크게 나뉘어 에큐메니칼 진영은 교회의 선교를 넘어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지평에서 다양하게 협력하고 있지만, 비에큐메니칼 진영은 하나님의 선교 지평보다 교회 선교라는 기독교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5. 한국교회의 속성

서구 기독교 세계의 교회는 1900년 교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다양한 신학적 전통과 그 장단점을 파악할 능력이나 신학적 대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 교회는 1900년의 기독교 역사를 선교사의 정복주의적 신학으로 요약된 것을 소개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성장과 확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교회지상주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교회 연합을 위한 노력보다는 개교회주의 원칙을 모든 교단이 채택함으로써 교회의 에큐메니칼한 연합 능력을 약화시켜 왔다. 개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연합과 협동보다는 비교와 경쟁의 자유화가 더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의 대형 교회를 이루어낸 조용기는 서구 근본주의자들의 펜테코스탈 신학을 배워 성서문자주의와 토착 샤머니즘적 욕망을 성령론과 연계시킴으로써 기독교를 명실공이 현세 지복적 종교로 재해석했다. 그의 3박자 축복론은 전쟁 직후 파탄난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질, 건강, 영생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응답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그는 오중복음(‘거듭남의 복음’, ‘성령 충만의 복음’, ‘치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이라는 새로운 복음을 더했다. 소위 3중 축복과 5중 복음은 조용기가 종교개혁 사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성서를 표절하며 그의 복음서를 다시 쓴 것과 다름이 없다. 그 결과 그의 신앙론에 대하여 1982년에는 한 교단으로부터 이단시비가 제기되었다.

종교 개혁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성서, 은총, 믿음, 영광으로 요약하며 기독교 신앙을 인간의 탐욕이나 욕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나, 조용기는 기독교 복음을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성령 충만의 내재적 역사를 강조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죄론을 약화시켰다. 여기에 예수 믿고 축복을 받는 번영신학이 자리를 잡았다. 번영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을 약화시키는 대신 십자가를 통한 축복론을 강화하는 특징을 가진다. 예수의 죽음은 나를 잘 살고 건강하고 영혼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이런 해석은 자본주의 세계가 아니라면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며, 재화가 한정된 세계에서 축복과 번영을 노래하는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생태계의 파괴와 공동체의 연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악을 생산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개혁 사상의 증발을 보는 동시에 샤머니즘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미신적 물신주의가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재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Harvey Cox)는 조용기의 오순절 신학에서 샤머니즘적 축귀 행위를 치유와 연관시키고, 경제적 곤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큰소리로 기도하는 행위 등을 들어 기독교 샤머니즘(Christian Shamanism)의 강신(降神)과의 유사성을 본다.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방언 등의 보편적인 종교 현상을 넘어서 내가 심각하게 보는 것은 기독교 사회 윤리성의 증발이다. 조용기의 신학에서는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와 청교도 윤리의 상관관계에서 나오는 현세적 금욕주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자들이 인간의 죄성을 새로 들추어내고, 인간의 오만한 장치들을 제거한 방향과는 달리 조용기는 인간의 죄성을 약화시키고, 죄인을 성령으로 옷 입히는 동시에 풍요와 건강과 영혼 구원을 약속해주며 지극히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현세적 지복주의를 가르쳤다. 조용기의 번영신학은 교회의 대형화를 낳았고, 조용기 식의 지복주의는 교단을 불문하고 영향을 끼쳐 대형교회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조용기를 향한 이단 시비는 사라지고, 오히려 그를 모방하려는 이들이 종파를 불문하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기독교 신학과 기독교 윤리가 없는 기독교의 물신적 샤머니즘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6. 한국 신학의 형성

선교사 신학에 내재되어 있었던 비지성, 비사회적 신학은 한국 기독교를 비지성적 기독교로 특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정복주의적 선교신학은 신학적 자기반성 능력을 삭제했으며,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면서 기독교의 비정치, 비사회적 특성은 결과적으로 기독교 사회 윤리의 약화를 불러왔다. 소수의 예언자적 사역자들이 간간히 나타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물신주의에 대한 경고를 외쳤으나 한국 교회 주류는 교회 성장이라는 열매를 거두는 데 급급하여 기존의 속성에서 벗어날 필요를 못 느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신학적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였다. 해천 윤성범의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의 비지성성을 아시아의 유교적 지성으로 윤리화하려는 성향을 보였다면, 서남동, 안병무의 민중 신학은 성령을 도구화한 교회들에게서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저변에 소외된 민중에게서 들어야 한다는, 기존의 신학을 뒤집는 논리를 담고 있었다. 서남동은 이를 반()신학이라 불렀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교회 한 편에서는 정경옥의 후예들이 토착화 신학을 전개하고, 다른 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교회 밖에서 보려는 이들의 논리는 잠시 솟구쳤다가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신학은 욕망에 사로잡힌 신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교역자들에게는 교회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까닭이다.

이미 물신화되고, 비대해진 교회들은 한국 신학을 거추장스럽게 여겼다. 토착화 신학을 가르치던 변선환 교수를 아예 종교 재판에서 출교시킨 현장이 당시 감리교의 가장 큰 교회라 여겨지던 금란교회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민중 신학을 생산했던 한신대의 후예들 중에 근본주의를 도구로 삼는 이들이 더 많아 진 것도 이런 평가에서 멀지 않다. 이렇게 한국 기독교는 종교 개혁 사상과는 무관한, 어쩌면 종교 개혁 사상을 망각한 기독교 변종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수가 100년 전에 지적했던 4가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해온 결과 오늘날까지 한국 교회 안에는 물신주의가 하나님처럼 자리 잡고 있고, 온갖 차별주의가 제도화되어 남성권력 종교체계가 되어 굳어진 것이다.

선진 사회의 기독교가 모두 버린 십일조를 축복과 저주의 가늠대로 삼는 한국교회, 성직자의 특권을 종신화 하고, 목사가 교회를 가내 기업처럼 사유화하고 자식에게 상속하는 한국 교회, 목사의 이동과 은퇴시기에 일어나는 돈 거래, 헌금을 유용하여 교단장 선거에 나서는 정치 목사들의 세계, 신도 68%가 자기 목사를 신뢰하지 않는 한국교회, 무수한 가짜 뉴스 생산 공장이 된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과연 한국 교회는 종교 개혁 사상을 어디에다 던져 버렸을까? 그리고 9만 여명의 목사들과 8만 여개의 교회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성업”(聖業)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총선 직전 광화문에서 드러낸 한국 기독교의 민낯은 우리가 지금 2020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광수의 1917년 평가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묶여있는 한국 교회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스 큉(Hans Küng)은 지난 2011과연 교회가 구원 받을 수 있을까?”(Ist die Kirche noch zu retten?) 라고 물었는데, 나도 그의 심정과 비슷하다. 다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가 종교 개혁 정신을 망각한 교회 안에서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Sind Wir Noch Zu Retten in die Kirche, die den Geist der Reformation Vergessen Hat).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료하다.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 검증적 비판 신학을 통해 기능했던 종교 개혁 정신을 되찾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P.s. 이 글은 지난 1년 동안 평화교회연합회에 기고해온 글 중의 마지막 것입니다. 

Thursday, June 25, 2020

폭력 시대와 종교

인류 역사는 폭력을 극복해온 역사입니다. 종교는 폭력 극복에 앞장서야 진정한 종교라 할 수 있지요. 폭력의 관점에서 원시시대에서의 폭력의 양상, 국가와 권력, 제국주의와 폭력관계, 그릭 죵교의 두 줄기에 대하여 생각을 모았습니다.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대표: 김요한 목사)에서 귀한 자리를 마련하고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강연을 잘 편집해 올려주신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cRyBP-RbtM&feature=youtu.be&fbclid=IwAR19nDH0Pc_dF2Wrnt1ehMNSOGv0cjfMC0tiEqWEF1S3n3TGh_yxBqdgkcU

Sunday, May 17, 2020

명진 표 기독교 파시즘

명진 표 기독교 파시즘
기독교 파시즘에 관하여 언급한 사람은 톰 드라이버, 도로테 죌레 같은 신학자다. 이들은 기독교에는 파시즘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기독교 안에 파시즘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목사가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일 때 여지없이 기독교 파시즘이 생성된다. 또한 목사가 신도에게 기독교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가르칠 때 기독교 파시즘이 발생한다. 목사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추종자를 많이 거느릴 때다.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려면 신자들에게 자아도취를 시키는 동시에 그들을 갈라놓고 충성과 복종 경쟁을 시켜야 한다. 평등 공동체에서는 목사 중심의 파시즘이 일어나지 않는다.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치와 화합과 평등보다는 위계적인 질서를 이용해 신자를 하향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에는 자연스럽게 가진 자, 배운 자, 힘 있는 자가 상위의 지위를 가지고 없는 자, 못 배운 자, 힘없는 자를 지배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에 익숙한 교인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파시즘에 사로잡힌 공동체 안에서 파시즘이 구조화되어 있으므로,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파시스트가 목사가 되면 파시즘을 좋아하는 신도들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한다. 강력한 지배자를 선호하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신도들이 모이면 그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통제하는 방법으로 진리독점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전체주의적 정서와 더불어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과 복종 경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파시즘의 구조적 특성, 목사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영웅시하고, 자기 집단을 기독교 그 자체와 동일시함으로써 목사에 대한 순종과 집단에 대한 충성을 마치 하나님이나 기독교를 향한 충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충성과 순종은 중앙화된 권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권력은 점차 경제권력, 정치권력으로 변하고, 지배 권력의 성격을 가지게 되어 오만해 진다. 대부분의 큰 교회 목사들은 교회가 큰 것에 정비례하여 오만하고, 권력욕이 강하고, 신도들의 복종과 충성을 유발하는 법을 잘 아는 이들이다. 이들이 아무런 업적을 남기지도 않으면서 교단장 명예와 지위를 탐하는 이유다.
신도들의 남다른 충성과 복종을 유발하는 목사의 교회는 신도 수가 증가하게 된다. 신도의 충성과 복종이 과연 그리스도를 향한 복종인지, 교회나 목사를 향한 복종과 충성인지에 관해서는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설교나 교육과정이나 신도들과 관계하는 형식에서 은연중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행위가 간증이나 예화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목사는 보이게, 보이지 않게 자기 스스로를 의화하고, 영웅적으로 묘사하며, 깊은 영성가로 포장한다. 이런 포장 속에 지배와 복종을 요구하는 논리가 내재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은연중 가시적인 교회와 목사를 향한 사랑과 충성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런 속성에 익숙한 이들이 모인 교회는 일종의 전체주의 집단으로 굳어간다. 사람다운 생각, 이견과 갈등을 용납하지 않는 오만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견과 갈등을 불러오는 요인은 모두 사탄이나 악마의 기획으로 간주되고, 영웅적인 목사는 그러한 일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증하는 설교를 하며 교인들을 세뇌시킨다. 동시에 우둔한 신자들이 스스로를 하나님 편으로, 상대는 악의 수하로 간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신도들에게서 이내 군사주의적 십자군 멘탈리티가 작동된다. 평소에 따스한 이해와 사랑의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갑자기 증오와 혐오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는 이제 이견자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적, 하나님의 원수로 낙인찍히게 된다. 70년 넘게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주의를 교도하고 군사 훈련을 통하여 원수에 대하여 증오와 혐오를 하도록 익숙하게 방향 지어져 있기 때문에, 국가보다 더 소중하고 높은 하나님, 기독교 신앙에 적대하는 자를 향해서는 더욱 노골적인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면 그는 그간 사랑을 입에 달고 살던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가학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게 된다. 죄와 악은 징벌되어야 한다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심판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런 심판자 자처는 생각이 다른 이견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주의적 집단이 그에게 부여한 우월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며 이견자를 공격함으로써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자기 집단을 보호하고, 상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승리를 거둠으로써 종교적 쾌감을 얻는 것이다. 한 예로, 이들이 이를 악물고 동성애를 저주하고, 악착같이 동성애자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동성 공포증(homophobia)현상으로 다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한 전체주의자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말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종교적 심판자 노릇을 자처함으로써 자신의 독점적 신앙의 진리를 타협없이 입증하는 쾌감을 얻는 것이다. 기독교 사디즘은 이렇게 작동한다.
따라서 가학적 기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권력 숭배적이며 권력 지향적이다. 이들은 상대보다 강한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 편에만 서 계신 것으로 판단하고, 권력도, 물질도, 다른 여타의 가치들도 자신들이 우선적으로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나안 땅을 침공하던 이스라엘 무리를 이끌어가던 사무엘같은 이를 리더의 모델로 삼는다. 불순을 허락하지 않도록 인간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합리성도, 인의도 무시하라고 교사한다. 순수한 사람은 오직 자신들만 이라는 착각이 집단적으로 일어난다. 이 때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은 선의 도구가 아니라 악의 도구다. 태중의 아기까지 죽이라는, 하나님 신앙 이전의 원시적 습속을 신앙 속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태중의 아기까지 잔인하게 죽이기를 요구하는 종교적 폭력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이다.
무덤가에서 서로 매질을 하는 짓, 온 몸에 화상이 입도록 한증막에서 목숨을 걸고 견디는 일, 뇌출혈이 일어나 쓰러질 때까지 맹목적인 복종을 하는 일, 심지어 인분을 수저로 떠먹는 비상식, 비이성적인 일은 그러니까 약과인 것이다. 이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파시스트 종교가 이들을 가학적인 인간으로 세뇌하고, 그 가학성에서 만족과 쾌감을 얻는 신종 인간으로 개량해 놓았기 때문이다. 극한의 과정을 견딤으로써 전체주의적인 종교 집단 안에서 충성과 복종을 보이는 행위에는 보상이 따른다. 피라밋처럼, 사다리처럼 계층화된 계급 구조에서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이 자격은 인격이 아니라, 영성이 아니라, 우월성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된다. 비상식적인 모멸과 수치를 견뎌낸 대가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사랑과 이해와 협력과 섬김이라는 언어로 곱게 포장된다. 인분을 먹으라는 권고는 그를 높여주고 싶어서, 사랑해서다. 서로 매질을 하는 이유는 서로 성장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라는 것은 보다 높은 경지의 신앙인으로 승화되라는 요구다.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공포를 느끼는 훈련도 사랑해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가학적 과정이 사랑인지, 기독교 지도자의 훈련 과정이 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작된 집단 속에서 이미 그렇게 해야만 통과하는 절차를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이는 앞다투어 인분도 먹고, 매를 맞아야 하고, 공동묘지를 헤매야 하는 것이다. 이미 그들이 전체주의적으로 혐오하기로 한 동성애자를 찾아가서 그들을 자극하고 괴롭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미 이 집단은 획일적인 사디스트 변종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변신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수기와 잠언서와 고린도후서에 문자적인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도록 교사 받은 사람은 1세기의 종교적 문자를 20세기에 사실적 문자로 읽는다. 여기엔 지성이, 이성이, 문화 비판이, 사회적 분석이, 인문학적이거나 역사적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성서에 있으므로,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 충실한 것이라고 여긴다. 의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믿으라고 세뇌되어 왔으므로 충실한 신자일수록 더 철저하게 비이성적이고, 비지성적이어야 한다. 교회 집단이 전체주의 집단이 되었으므로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간 자신이 쌓아온 자신의 지위, 관계, 신앙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가 된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이 반이성의 행진에 참가자가 많을수록 회의의 질도 낮아지고 두려움도 적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대형 교회에서 불안한 영혼을 안심시킨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이성에 반하는 집단 안에서 권력을 쟁취함으로써 스스로를 자해한다. 자신의 지성, 이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집단 안에 몸담고 있는 소위 일류 대학 출신들은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자학적 인간이 되고, 다른 이를 향해서는 가학적 인간이 된다. 자기가 인분을 먹고, 다른 이에게 인분을 먹으라고 하는 이유다. 빛과 진리의 교회라는 게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운지 이들은 서둘러 일부의 이탈적 행위로 치부하려 하고 있다. 이들은 정말, 집단으로 기독교 파시즘에 감염된 것이다. 파시스트의 삶이 기독교인 됨의 증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인간을 가해하면서 쾌락을 느끼고 자기를 자해하면서 신앙을 지킨다고 착각하는 무리다.
이들은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공연히 언론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사탄이 공격하는 것이라고 신화화한다. 그러나 목사 이름이 명진, 빛과 진리다. 교회와 목사는 애초부터 어의상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장로 권사 집사 직제도 모자라 10단계의 사다리 계단을 만들어 그의 교회를 위계적으로 구조화 했다. 그 맨 꼭대기에 걸터앉아 있는 이가 누구일까? 그리고 그는 신도들을 사병화하기 위하여 바울을 빌려오고, 해병대 특수부대 UDT 극한 훈련 과정을 불러오고, 공동묘지, 인분, 매질, 그리고 뜨거운 한증막을, 이태원 게이바를 이용했다. 그리고 마치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처럼 스스로를 지도자라 자처했다. 충실한 추종자에게는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지혜자”라고 불러주어 영지적 나르시시즘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무엇이 문제냐고 되묻는다. 목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목사나 신도나 파시스트 병이 들어도 너무 깊이 들었다.

Friday, February 14, 2020

좋은 교회, 좋은 목사에 대하여...

좋은 교회, 좋은 목사에 대하여...
한국 개신교에 별의별 교회, 목사가 다 있군요. 저도 엇저녁 뉴스를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교회라고 다 정상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한국 개신교에는 무려 374개의 종파가 있습니다. 정말 괴이한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도 있더군요. 하여 좋은 교회, 좋은 목사 감별법을 적어봤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더 좋은 견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 목사가 신학교육 제대로 받은 분인지 확인하세요. 여기서 말하는 신학교육은 에큐메니칼한 신학, 즉 세계 어디에 가도 낯설지 않은 신학교육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목사는 편협하거나 엉터리 신학교육을 받은 자입니다. 본직이 교수인 사람이 강단에서 함부로 설교하는 경우 매우 위험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
2. 목사가 헌금을 강요하며 축복과 저주를 가르치는 자인지 확인하세요. 물신주의에 빠진 자가 무척 많습니다. 교회를 위한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는 목사는 위험합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돌보고 그들에게 봉사하기를 권하는 목사가 좋은 목사입니다. 여러분의 동의 없이 무리하여 빚진 교회는 피하세요. 단 여러분이 동의한 일이라면 헌신하십시요. 요즈음, 무리해서 교회 지어놓고 교인 모으려는 목사가 적지 않습니다.
3. 책을 읽지 않는 목사를 조심하세요. 이런 목사는 남의 설교를 표절하는 목사입니다. 설교 준비하지 않는 목사도 결국 누군가의 설교를 표절합니다. 표절하는 목사는 거짓말을 잘하므로 정직하지 않은 목사입니다. 명예 좋아하고 교단 정치하는 목사도 많은 시간을 헛된 욕망을 위해 낭비하는 목사입니다.
4. 영적 능력을 자랑하는 목사를 조심하세요. 자의와 하나님의 뜻을 섞는 목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목사는 자신을 하나님 대행자로 여기도록 사주합니다. 사탄을 분별한다고 알려진 목사가 연봉 5억 받는 것을 당연시 하더니 교회 헌금 유용으로 최근 6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5. 계시록을 강해하는 종말론자를 조심하세요. 종말론자는 대부분 사기에 능한 사람입니다. 왜냐구요?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니까요. (초대교회 시절부터 시대마다 이런 자들이 나댔습니다) 현대판 종말론자 목사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종말이 오면 이단이 성행한다고 가르치고, 둘째,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세력이 적그리스도로 신도들을 배교에 빠지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일단 목사가 이런 주장을 하면, 그 목사는 이단이 아니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목사 중의 목사로서 이단 판별사 권위를 가진 자로 신도에게 각인되어 신도들은 자기 목사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부분 이단 사설은 이런 교묘한 수법에 능합니다.
이들은 성서에서 찾아낸 적그리스도를 공산주의, 좌파, 빨갱이, 동성애 등등과 동일시 함으로써 엉뚱한 신앙의 적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세뇌 되면, 동성애 척결, 좌파 척결이 곧 믿는 자의 영적 투쟁 과제라고 여기게 됩니다. 성품이 올곧지 않은 신자는 영적 전쟁을 한다고 착각하는 영적 전사로 돌변합니다. 이들은 누구든지 좌파라고 지목만 하면 들개처럼 달려듭니다. 사탄이라고 여기니까요. 아주 멀쩡해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문재인 빨갱이”라는 피켓을 들고 국민이 뽑아 세운 대통령을 모욕하는 이유입니다. 종말론자 목사에게서 신앙을 배우면 시대 착오적인 기독교 돈키호테가 되기 때문이지요.
6. 성서 문자 주의에 빠진 목사를 조심하세요. 성경은 소중한 것이지만 문자 그대로 믿으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가 잘못하면 혐오 범죄자, 증오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한 경우 인격 살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성서문자주의를 배운 근본주의자가 사람을 살인한 사례 무척 많습니다.
7. 생각하는 신앙이 아니라 기도만 하는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는 위험합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거나, 정직함과 인격적 책임보다 성령과 영성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는 여러분의 삶과 신앙을 분리하는 목사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안 목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요. 새벽기도로 유명한 어느 목사는 신도 모르게 800억을 모아두고,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시키려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요.
8. 헌금을 강요하며 헌금자를 예배 시간에 호명하는 목사를 멀리하세요. 물신주의에 빠진 목사입니다. 물신주의에 빠진 목사는 은퇴하며 교회를 털어 갑니다. 나는 무신론자보다 더 나쁜 경우가 물신주의에 빠진 정직하지 못한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 = 축복의 열쇄라고 가르친 어느 목사는 수백억대 재산을 모았고, 자식에겐 신문사를, 부인에겐 대학을 지배하게 했지요.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함께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들이 종교 귀족 가족을 이룬 배경은 가난한 신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입니다.
9. 책을 읽는 교인이 없는 교회는 다니지 마세요. 여러분의 지성을 녹슬게 만듭니다. 신앙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10. 여러분을 감시 감독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고, 여러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뺏는 교회입니다. 주인은 감시하는 자고, 여러분은 그저 종처럼 섬겨야 하는 맹신도가 됩니다. 감시하는 자가 없어 서로 돌보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11. 성평등 지수가 떨어져 여신도에게 반말하고, 여전도사 차별하며, 성희롱 음담패설을 떠벌리는 목사는 성차별주의자입니다. 그런 목사가 있는 교회에서는 어서 떠나십시요.
적어 보았지만,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제에 친일을 자처하는 뻔뻔한 목사들이 나대고, 아베에게 사죄한다는 사람까지 나오니, 좋은 교회 나쁜 교회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안 해볼 수 없군요. 목사로서 당황스럽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기이한 기독교 돈키호테들이 왜 어떻게 생산되는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Sunday, January 5, 2020

영화 "두 교황"을 보고 뉴스엔죠이 기고

20200104
뉴스엔죠이 기고문
 
누가 좋은 성직자인가?
 
영화 두 교황을 보고
 
2019년 페르난두 메이렐리스가 감독한 두 교황(Two Popes)”이라는 영화는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두 명의 교황은 바티칸의 해방신학 비판자로서 명성을 날리던 라찡거 추기경, 베네딕트 16, 그리고 현재의 프란시스 교황, 과거의 버고그리오(Bergoglio) 추기경을 지칭한다. 나는 두 교황이 택한 시성(諡聖)이 베네딕트와 프란시스라는 점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성직자로서의 삶의 지평을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라찡거 추기경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교황 이름으로 베네딕트라는 이름을 택했다. 베네딕트라는 이름은 서구 기독교 역사에서 베네딕트 수도회를 세운 성인의 후예를 상징한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5세기 말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수도회로 가톨릭교회의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왔다. 가톨릭 역사에서 베네딕트 1세가 6세기 말 교황으로 선택된 이후 같은 이름을 선택한 이들은 모두 16명이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는 거의 한 세기에 한 명씩 베네딕트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평화를 지키며 기도하고 일하는수도회라는 원칙을 지킨다.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정주(定住) 원칙을 지키며 베네딕트가 만든 수도 생활의 규범을 따라 평생 기도와 헌신의 삶을 살아간다. 베네딕트 16세는 길고 긴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온 파수꾼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사역을 선택한 셈이다.

반면, “프란시스12세기말 이탈리아 아씨스 출생으로 부유해진 수도원의 개혁을 주창하고 무소유 청빈의 전통을 재확인하면서 개혁 운동의 요람이 된 프란시스코 수도회를 세운 성인의 이름이다. 프란시스는 당시 중세 교회와 수도회가 천년 넘도록 신도들의 헌신과 봉헌을 받아오며 축적된 부유함을 누리는 데 반하여 청빈한 삶과 가난한 자들의 이웃으로 머무는 수도사의 삶을 중시했다. 교회의 전통과 교리보다 창조 중심의 영성을 통해 뭇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신앙의 길을 제창함으로써 권력 지향적인 종교의 흐름에서 가난과 벗하는 청빈의 영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작은 형제라고 불렀고 복종과 무소유의 정결한 삶의 원칙을 따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프란시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이 지금까지 없었다. 금번 프란시스 교황이 처음이다. 다음에 이 이름을 선택하는 교황이 있다면 그 때는 프란시스 II라 부르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듯 신학적으로 사뭇 다른 전통에서 나온 두 명의 교회 지도자가 진솔한 대화를 통하여 서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소명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은 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 데 나는 이 대화의 깊이는 그들의 진솔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깊은 곳을 보이고 교회를 섬기는 길에서 일어나는 실패를 감추지 않는다. 또한 이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하여 교회를 바르게 섬겨나갈 가능성을 참된 영성의 관점에서 긍정하고 있다. 성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끝없이 성직자의 내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성의 힘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측면에서 그러한 영성의 고갈을 느끼고 있었다. 한 사람은 교회를 지키느라고 영성이 고갈되고, 다른 한 사람은 교회의 형식을 지키는 교회로 인하여 영성의 고갈을 느낀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추기경 직을 사임하고 평범한 사제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교황 직을 수행할만한 힘이 결여된 자신의 메마른 영성을 느끼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진실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교회에서 누리는 직무에서 자유롭기를 원했다면, 다른 이는 교회의 고귀한 직무를 가졌으나 그것을 풍요롭게 채우지 못하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고백한다. 한 사람은 나는 더 이상 교회의 영업사원으로 살 수 없다고 고백하고, 한 사람은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모르는 죄를 지었다라고 고백한다. 두 사람의 진실한 만남에서 베네딕트 교황은 버고그리오 추기경에게서 활기 있게 교회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본다. 생명력 넘치는 관계성이 결여된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영성적 결핍이 결국 생명력 없는 교회의 권위에 미련을 두지 않고 추기경직을 사임하겠다는 버고그리오 추기경의 결단을 낳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추기경직을 사임하겠다는 버고그리오 추기경 속에서 오히려 교회를 이끌어 나갈 활력을 보고 신학적으로는 자신과 전혀 다른 전통을 가진 이에게 교황직을 넘겨주기로 작정한다.

교회와 교리를 지키기 위하여 살아온 고독한 내면의 사제와 살아있는 평범한 이들과의 교제가 있는 사제, 홀로 식사하는 사제와 탱고를 추는 사제, 이 두 사람 중에서 교회를 이끌어갈 영성적 능력을 가진 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그 답을 베네딕트 교황의 진심어린 고해성사에서 얻는다. 삶의 모든 에너지가 소비된, 여든 살이 넘은 교황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못한 죄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삶이 선물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공부하는 일에만 몰두하여 교회와 교리를 위해서 살아온 자신은 정작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를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과 더불어, 귀하고 천한 것의 경계 없이 삶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사목해 온 이가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교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교회주의자는 베네딕트 교황을 지지할 것이지만, 교회가 민중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들은 프란시스 교황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버고그리오 추기경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누군가는 그가 좋은 추기경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는 그를 좋은 사제라고 인정하거나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실한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간혹 욕심 많은 이나 진실하지 못한 이와 어쩔 수 없이 다투기도 해야 한다.

나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두 교황에 대한 전기적 기록이 아니라 누가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방향은 귀하고 천한 것 가리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과 삶을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데 있다. 신자들을 만들어 교회를 위해 살게 하는 사역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는 사역이 더 진실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 영화는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은 일, 교황이 스스로 교황 직위에서 물러난 사건의 깊은 이유를 이렇게 넌지시 밝히고 있는 셈이다. 교인을 앞세우며 교인을 모아 교회를 위해 존재하게 만드는, 종교 영업 하는 이, 큰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공한 목회 운운하며, 자만하여 우쭐대는 이는 베네딕트 교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 길을 택하는 베네딕트 교황과 자기 포기의 길을 찾다가 오히려 무거운 중책을 짊어지는 프란시스 교황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 개신교 교단마다 돈 선거와 상대에 대한 법정 소송까지 동원하며 감투싸움에 열심인 개신교 지도자들에게서 신앙 양심과 소명에 대한 정직한 고민이 과연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니 종교 지도자로서 교회의 전통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이해나 교회의 최고 성직자로서의 품위라도 가지고 그 자리에 오르려 하는 것일까.... 내심 묻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런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교회 현실이 매우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