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3, 2008

Marc H. Ellis' Jewish Liberation Theology




해방신학 이야기 4

마크 엘리스(Marc H. Ellis)의 유대 해방 신학


- Auschwitz -

마크 엘리스는 홀로코스트 이후 1세대 유대 신학자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홀로코스트 신학자 리챠드 루벤슈타인(Richard L. Rubenstein) 문하에서 종교와 신학을 공부했고, 뉴욕 메리놀 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택사스 베일러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유대해방신학을 향하여(Toward a Jewish Theology of Liberation, 1987), 거룩하지 못한 연대: 우리 시대의 종교와 포악 (Unholy Alliance: Religion and Atrocity in Our time, 1997), 유배 생활 (Practicing Exile: The Religious Odyssey of an American Jew, 2002), 아우슈비츠 끝내기 (Ending Auschwitz: The Future of Jewish and Christian Life, 1994)등과 같은 대표적 저작을 포함하여 16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의 글들은 자전적 성격이 강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정황 한 가운데에서 쓰여 졌기 때문에 오늘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에 비추어 기독교 신학의 미래적 과제를 조명하는 데 시사하는 점이 많다.

엘리스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자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명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와 매우 가까운 친구였고, 해방신학 및 페미니스트 신학자들과도 매우 활발한 토론을 벌려왔다. 그는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베일러 대학의 유대학과 종교 연구소에서 2007년 해방신학 컨퍼런스를 열어 오늘의 해방신학의 향방을 점검했다. 그는 그가 최근 발표한 논문들에서 홀로코스트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박탈하는 가해자로 변신한 현실에 개탄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평화로운 연대를 나누는 길만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9년 그는 전 세계의 해방신학자들의 글들을 모아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의 회갑기념 논문집을 편집했다. 그는 종교와 권력의 야합을 이루어 낸 콘스탄틴 신학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였고, 오늘날 제국주의적 종교의 위험과 타락을 지적하며 성서의 예언자적 소명을 재강조하고 있다. 이 글은 홀로코스트의 사상적 배경이 되어온 기독교의 반유대주의의 흔적을 살펴본 후 마크 엘리스의 유대해방신학의 사상적 기초를 논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기독교와 반유대주의
유대교는 기독교 이전 사막의 종교에 뿌리로 두고 기독교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가 4세기 초 콘스탄틴 대제 시대를 맞아 점점 굳어진 교리체계를 형성하면서 권력화 되어 갈 때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인들과 겹치면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종족으로 규정되었고,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뿌리 깊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끊임없는 인종차별적 증오와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유대인들은 마침내 20세기 중반 인류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고난을 겪었다. 물론 러시아 혁명 당시 근 2,000만 명이 살상을 당하고, 세계 1차 대전 중에도 근 2200만명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았지만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지배를 받아 종족 말살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기억 홀로코스트(Holocaust)를 가슴에 담고 있다.

내가 2002년 독일 베를린 근교 유대인 집단 수용과 학살이 이루어졌던 집단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 섬짓함은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방문했을 때 보다 현실적인, 캄캄한, 길고 긴 절망의 역사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지난 2008년 2월에는 미국 휴스톤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가 보았는데, 거기서 나는 홀로코스트야말로 기독교 문명의 붕괴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홀로코스트는 단순히 나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기독교 문명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문제를 철학과 신학적 작업을 통해서 조명한 인물들 중에 기억할만한 사람들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엘리 비젤(Elie Wiesel), 그리고 수산나 헤셀(Susannah Heschel), 그리고 신학자로서는 리챠드 루벤슈타인(Richard Rubenstein)등이 있다. 이들은 그들이 믿어온 하나님과 아우슈비츠의 현실 사이에서 깊이 고통하고 고뇌한 사람들이다. 매카피 브라운(Robert McAfee Brown)은 이 고뇌의 정황을 일러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과 아우슈비츠 “그 중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고립된 개체로 각기 다룰 수는 있었지만 - 즉 아우슈비츠가 있다면 하나님은 없어야 옳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우슈비츠는 없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하나님, 하나님과 아우슈비츠를 동시에 직면해야 했다.”

홀로코스트 이후 악의 현실과 공존하는 하나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선하신 하나님과 너무나 깊은 악의 현실이 공존할 수 없다고 믿어온 사람들은 이 질문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에 빠지곤 했다. 1945년 이후 홀로코스트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나치즘의 사상적 책임을 기독교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지목했다. 돌이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이후 흩어진 유대인들은 유럽전반에서 박해를 받아왔다. 가톨릭교회에서 자란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증오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의 태도에 크게 기인하였고, 특히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가한 유대인들의 사악함에 대한 책임을 후손들에게까지 묻는 데에서 증폭되었다.

특히 537년 경 유대인들은 정부의 고위직에 취임할 수 없는 법령이 제정되었고, 545년에는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유대인들에게 파는 것을 금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보다 앞서 306년 엘비라 공회(Synod of Elvira) 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결혼만이 아니라 성적 접촉, 심지어는 함께 식사하지도 못하도록 결정했다. 1179년에는 기독교인들이 병들거나 다친 유대인들을 의료적으로 돕는 일도 금지했다. 이어 1215년에는 기독교인들로부터 유대인들이 구별되도록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옷을 입도록 법을 만들었다. 1431-43년 열린 바젤 공의회(Basel Council)에서는 유대인들이 대학에 다니는 것을 금하고, 반드시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도록 법령을 제정했다. 1096년부터 시작되어 1272년 종료된 십자군 원정기에는 개종을 거부하거나 세례받기를 거절하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543년에 출판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논문에서 마틴 루터는 카톨릭 교회와의 프로테스탄트간의 대립과 갈등 사이에서 예수를 구원자로 믿기를 거절하는 유대인들을 지목하여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규정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일러 사악한 기생충과 같은 존재이므로 독일에서 추방되어야 마땅하며 그들의 회당은 모두 불에 태워져야 하고, 모든 유대인들의 책들은 압수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종교적 관용이나 인간적인 배려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을 가지고 루터는 유대인들의 종족적 말살을 요구하며 그들을 일종의 종말론적인 복음의 적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점철된 반유대주의는 히틀러의 나치즘에서 가장 극악한 형태로 실천되기에 이른 셈이다.

독일교회는 1975년부터 반유대주의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루터신학의 인종차별적 편견이 나치즘에 연계된 것을 시인하였고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관한 백서를 출간하여 독일 개신교인들 내면의 인종차별적 편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종교적 믿음과 전통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조장해온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부터 중세 가톨릭교회를 지나 개신교, 그리고 칼 마르크스의 사상까지 파고든 반유대주의는 히틀러의 인종청소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비참한 사악한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유대인들을 향해 보여주었던 지난 기독교의 태도는 개종, 추방, 아니면 말살 중 하나였던 것이다.

홀로코스트 신학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 신학자들의 고민의 흔적은 매우 역력하다.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유대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홀로코스트를 그들의 신실치 못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고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를 향한 충성을 요구하였다. 일련의 신학자들은 홀로코스트 사건은 곧 거룩한 것의 붕괴와 부정, 신의 일식(Eclipse of God)으로 이해했고, 초자연적 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경향을 불러왔다. 특히 정통 하레디(Haredi) 유대 신학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오니즘의 상실에 대한 주님의 격노한 응보(Wrath)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신학자 리쳐드 루벤슈타인은 아우슈비츠 이후, (After Auschwitz), 그리고 역사의 교활함, (The Cunning of History)에서 홀로코스트 사건을 일러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에 대한 거절, 그리고 모든 존재를 궁극적으로 무의미하게 보게 만든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의 정신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포악의 한 측면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나치에 의하여 “불태워지는 어린 아이들은 모든 인간적이거나 신적인 가치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그는 생각했다.

반면 에밀 파켄하임(Emil Fackenheim)같은 신학자는 홀로코스트를 일러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계명을 준 사건으로 이해했다. 그 새로운 계명이란 다름 아니라 “히틀러에게 사후에도 승리를 안겨주지 말라”는 것, 즉 악이 승리하는 경우를 다시는 허용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유대인들의 생존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리고 악을 정복하는 승리주주의를 고무하는 이런 류의 해석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시오니즘적 해석으로서 2차 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힘을 부여받게 되었을 때 강력한 정치력의 확보라는 과제로 이어졌다. 반면 루벤슈타인은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하나님의 현실 개입을 부정하면서 이신론적인세계관 아래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의 책 홀로코스트 이후(After Holocaust)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신학적 해명을 촉발한 책이 되었다. 현대 유대 신학자인 그린벅(Irving Greenburg)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불성실로 인하여 유대인들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사건이 홀로코스트라고 하면서 계약사상의 회복을 위하여 자발적인 계약사상(voluntary covenant)의 준수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엘리스는 “홀로코스트를 염두에 둔다함은 곧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현대 종교와 휴머니즘에 대한 심원한 비판을 의미 한다; 홀로코스트 사건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의미에서 홀로코스트는 기독교와 서구의 유산이며, 그 피해자들은 정의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유대인 공동체는 이 기억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 앞에) 성실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그가 홀로코스트 사건에서 보는 중요한 의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을 가진 공동체가 힘을 부여받는 일(empowerment)이다. 즉 홀로코스트 경험을 가진 유대인들은 그 기억을 통하여 악에 저항하고 정의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 앞에 선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파켄하임의 시오니즘적 해석을 넘어서서 유대인들이 피해자로서의 탄식과 항변과 생존을 위하여 힘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바로 홀로코스트 기억을 가지고 그러한 악이 재현되지 않도록 살아야 할 책무가 있고, 그러한 악이 스스로에게 기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제는 역사 안에서 홀로코스트의 재현을 막고 종식시키는 윤리적 과제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 날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보편적인 인간의 악의 출현으로 보았던 루벤슈타인의 이해를 받아들이되 그 협소한 해석을 넘어서서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은 악과 비인간화의 상징인 "아우슈비츠"의 종식을 위하여 거룩한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본질
엘리스는 홀로코스트 사건을 유대인들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범주만으로 보지 않고 이를 보편적인 종교와 권력의 거룩하지 못한 연대에서 일어나는 악의 전형이라고 보았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신학이 힘을 얻고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나가면서 파괴의 제의(The liturgy of destruction)를 불러 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종교적 풍토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의 극단화된 폭력에 의하여 희생자들이 되었던 유대인들이 전후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힘을 모으고, 그 힘을 가지고 이번에는 또 다른 아우슈비츠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아우슈비츠는 관료주의의 냉정함, 종교와 정치의 야합, 그리고 인간의 노예화, 사물화, 점령과 개입, 찬탈과 무국적, 고문과 학살이 일어난 자리였다. 이런 악의 자리는 그 주인공을 바꾸어 이번에는 나치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 시온주의자들이,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의 독점적 전유물이 아니며 악의 상징일 뿐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변증하기 위하여 전거로 삼을 수 있는 사건만은 아니다. 엘리스는 새로운 아우슈비츠를 만드는 이스라엘을 일러 콘스탄틴 유대주의라고 명명한다. 어거스틴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주의의 국교가 되어 권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종교로 전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 이후 유대인들은 더 이상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아니며, 오히려 아메리카 유대인들의 지지와 이스라엘 근본주의적 유대인들과 자유주의적 유대인들의 연대를 통하여 이루어낸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제 겨우 국가를 형성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과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하나님은 결코 포악을 인정하지 않은 하나님이므로 포악을 불러들이는 기독교나 유대교는 이미 그 자신들의 종말에 이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유대주의가 포악을 받아들인 오류를 지적한다.

“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바 그 포악으로 인해 유대인들의 생존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혹은 바로 이 경험이야말로 유대인들에게 포악이 다시는 어느 민족에게라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지 않았던가? 죠지 슈타인이 제기했던 질문처럼, 만일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역사와 인간성의 종말을 경험했다면 유대인들에게 남은 역사적 소명은 무엇이며 어느 방향으로 그 소명을 이루어 가야 하는가?”

그 소명은 포악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포악을 소명처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본다면 각 종교 전통은 피할 수 없는 포악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 콘스탄틴 기독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데 눈을 감았고, 마침내 홀로코스트를 조장 방임했다. 반면, 유대교는 오늘날 미국 유대인들의 영향과 이스라엘 유대인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아랍과 팔레스타인 세계에 포악을 행하고 있다. 특히 엘리스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안고 있는 유대 공동체가 피해자의 신분에서 가해자가 된 것은 역사적 소명을 잘못 이해하고 그릇되게 해석해온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 한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을 마치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명백한 죄악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각 종교 전통은 이러한 포악의 유산을 극복할 수 있는 갱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스는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포악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엘리스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는 서로 배우고, 적당히 타협하는 에큐메니칼한 거래(Ecumenical Deal)을 하려는 데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흔히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이들은 서로의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눈감아 주고 서로를 적당히 은폐 보호해 줌으로써 불의를 지속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 침묵으로 인해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억압이 지속되어 왔다. 그가 지적하는 하나의 대표적인 불의한 침묵의 예가 기독교와 이스라엘 세력 간에서 일어나는 침묵이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이 행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포악을 못본 체 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기독교의 무비판적인 태도를 일러 반유대주의를 넘어선 기독교라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두 종교 집단 간에 이루어지는 에큐메니칼 거래로 인하여 불의한 피해를 입는 이들은 약자들인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포악의 현실을 바라보며 침묵하거나 그 정황을 희석시키는 행위는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기억하는 신앙인들의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와 종교의 거룩하지 못한 연대를 파기하고 다시 예언자들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엘리스는 주장한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벌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비인도적인 행위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이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추방하고, 그들이 살아오던 거처들을 파괴하며, 기관총이 달린 헬기를 타고 집단 학살하는 일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엘리스는 결국 우리의 후손들에게 포악의 역사를 남겨주는 비극일 뿐이라고 탄식한다. 홀로코스트의 본질은 종교와 권력의 거룩하지 못한 연대에서 일어나는 포악이며 비극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데 있다. 하나님 백성들의 소명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가 재현되지 않도록 정의와 동정을 행하는 것인데, 오늘의 이스라엘은 그 소명을 실천하기는커녕 그 소명에 적대적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콘스탄틴 유대주의
성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포악에서 건지시는 해방의 하나님인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된 백성들은 너무나 손쉽게 권력을 가진 자들과 연대하며 또 다른 포악을 생산해 낸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비판하고 저항해 온 정신이 바로 성서의 예언자 정신이며,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포악을 그치고, 이를 비판하며 정의를 행하라고 요구해 왔다. 팔레스타인 현실과 관련하여 엘리스는 오늘날 세계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들이 소리 없이 제거되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대학이나 제도권에서 밀려나 추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방의 자리에 동행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 하나님은 제국주의의 시녀가 된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엘리스는 오늘의 유대주의에 대하여 탄식하기를 “내가 오직 기독교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바, 하늘에 상달된, 국가와 연계된 콘스탄틴적인 종합 속에 구체화되어온 바로 그 힘을 가진 자들의 위선은 그 내용과 행위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도 완벽하게 전수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콘스탄틴 유대주의가 바로 여기, 그리고 미국 안에서 만개한 것을 보고 있다. 폭력은 하나님과의 계약의 핵심이 되었고; 계약과 유대적 삶은 포악으로 오염되었다.”고 하였다. 지난 세기 포악에 희생되던 순진한 유대주의는 사라지고, 바로 그 포악의 희생자가 되었던 유대인들이 오늘의 포악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엘리스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무엇에 동일시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무력했던 유대인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오늘의 유대인들은 미국 안에서나 팔레스타인에서 힘을 부여받은 자들로서 존재한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세련된 엘리트들이며 자본주의 세계의 기득권을 걸머쥐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기관총을 단 헬기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머리위에 날리고 있으며, 그들을 추방하고 그들은 고문하며, 그들의 생존과 희망을 빼앗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모든 잘못과 책임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마치 온갖 무기로 무장한 어른들이 새총을 가진 어린 아이를 두들겨 패면서 어린 아이가 새총으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높은 벽을 세우고, 이들을 벽 밖으로 내 몰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하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정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엘리스는 성서는 명백하게 권력의 오용이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며, 권력은 권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계약사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 즉 팔레스타인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되므로 권력오용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성서의 메시지가 전하는 바로 이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자신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머리위에 폭탄을 퍼부으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정체성
엘리스는 오늘날의 유대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그리고 진보적 유대인들이 공모하여 벌리는 포악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한때 종살이하던 민족을 포악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바로 그들에 의하여 또 다른 포악을 저지르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라고 되묻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이제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불러온다는 것은 결국 유대인들이 가진 신앙의 정체성에 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콘스탄틴적 왜곡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벌리는 위선은 스스로를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로 위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민족을 향한 잔혹한 가해자가 되는 데 있다.

엘리스는 이스라엘의 최근 정책을 분석하면서 유대인들은 오늘날 이중의 장소와 초점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대적 삶의 콘스탄틴 제국화(Constantinianization of Jewish life)는 정치적, 역사적 그리고 종교적 맥락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서 중동에서나 미국에서도 상황적이다. 중동에서 주인은 아랍인들이며 무슬렘이다. 미국에서는 주인이 미국인들이며 기독교인들이다. 콘스탄틴 유대주의의 건설을 위한 전략은 그러므로 이중적인 장소와 초점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그 영역이 대부분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것이 때문이다. 안전하고, 확장된 그리고 번영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바로 그 두 컨텍스트가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거기 그 두 전선(戰線)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비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주의 정책은 다름 아니라 역사를 망각한 오류의 결과라고 그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은 그 당시 자신들을 박해했던 크리스쳔들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평등과 정의 위에서 새 출발을 요구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요구를 했던 이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서 정의와 평등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며, 신앙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엘리스는 이스라엘에서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소리에 대한 억압과 진압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의로운 예언자들의 추방이 권력 오용에 의해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므로 의로운 예언자적 삶에서 일어나는 유배는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늘 있었던 중요한 차원이다. 히브리 성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약속의 땅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동시에 그 핵심에는 추방의 현실이 있다. 바로 그 약속의 땅과 추방의 저변과 주변에는 언제나 예언자적인 것이 있다. 따라서 그는 신앙인의 정체성은 유배자의 경험과 예언적 메시지로부터 분리되어 해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배(exile)의 제의와 예언자
지난 종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견해차라는 다양성을 거부할 때 종교는 이내 기존 질서 이데올로기에 집착함으로써 새로운 담론을 거절하는 자기 우상화에 빠지곤 했다. 이런 정황에서 보다 인간다움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젼은 언제나 기존질서에 권위를 부여하는 세력과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가려는 혁명적이며 변혁적인 세력 간 마찰을 불러오곤 했다. 하지만 대중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모험보다는 안정을 요구하고, 이기적이거나 집단 이기적인 안전을 요구한다. 여기서 기존 세력은 새로움을 말하는 이들을 추방하고, 제거함으로써 그 권력과 질서의 안정성을 다지려 한다. 종교의 영역에서 바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추방의 제의이며 유배자의 삶이다. 성서적 맥락에서 본다면 제사장 계급들은 예언자들을 추방했고, 신학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콘스탄틴 기독교는 정의와 평화의 소리를 억압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서 제국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소리를 내는 이들의 운명은 유배자의 삶이거나 망명의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엘리스는 콘스탄틴 유대인들과 예언자적인 양심적 유대인을 구별하고, 양심적이며 예언자적인 삶을 사는 이들과 동행하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양심과 진실을 따라 살아가는 이에게 주어지는 삶은 장외의 삶(out of place)이다. 즉 추방되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것이다. 엘리스는 유배자로 살아간 사이드가 팔레스타인의 한 지식인으로서 언제나 장외의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사이드와 다른 유배자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그것은 엘리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자기 정체성의 문제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서 나는 하나님 없이 유배자의 삶을 살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해는 내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 있었고 합리적인 논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유배의 세월동안 언제나 하나님의 현존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분은 나를 성실함으로 부르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셨다. 내가 경험한 그 유배적 정황은 나의 역약함을 더 깊게 하였고 나로 하여금 내 안에 감추어 두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하여 더욱 분명히 규명하게 하였다. 나는 새로운 깊이를 경험했고 그 분의 동행을 열망했다. 혹은 신뢰. 내가 가졌던 그 유배 생활에는 빛이 있었고 어둠이 있었으며, 감사와 더불어 고통이 있었다. 그 본질을 말하자면 나는 새로운 차원의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고 있던 바, 그리고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더 강화될 것인, 내 삶을 뒤틀리게 만든 유배생활과 그것이 주는 고통과 더불어, 나는 동시에 나의 유배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

엘리스에게 있어서 양심적 신앙인이 겪어야 하는 유배는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이는 예언자적 삶을 사는 이들이 겪어야 할 숙명과도 같은 삶이지만 유배 속에서, 유배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예언자적 삶을 실천하게 된다고 한다. 예언적인 것들은 그러므로 깊은 어둠속에서 발견된다. 그 어둠속에서 예언자들은 빛을 찾아 그 빛을 모은다. 어둠속에서 빛을 모아 밝히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토착적인 것이다. 성서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예언적 유배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방어능력이 전혀 없고 뿌리가 뽑힌 사람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기관총을 탑재한 헬기들을 과연 에레미야나 아모스가 즐거워 할 리가 없는 일이다.

엘리스는 경전적 복음(canonic gospel)과 역사적 복음(historical gospel)을 구별한다. 추방의 제의를 벌리는 이들이 사용하는 경전적 복음은 성서를 교리로 축약하고, 그 교리를 들어 추방의 제의를 벌린다. 하지만 역사적 복음은 예수의 살아있는 음성을 듣게 하고, 예수의 따스한 가슴을 증언하는 복음이다. 경전적 복음은 사람들로부터 예수를 분리시켜왔지만, 반면 역사적 복음은 예수를 사람들 가슴속에 되 돌려주는 복음이다. 경전적으로 굳어진 종교가 되어가면, 예수와 더불어 살아있는 관계가 약해지고 예수 대신 폭력과 포악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적 복음에 앞서는 것이 역사적 복음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해방신학
오늘날 우리가 아우슈비츠에 대하여 관심하는 까닭은 아우슈비츠가 유대인들만이 경험이 아니라 극명한 인간 억압과 말살의 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도, 광주에도, 필리핀에도, 방글라데시에도, 미얀마와 티벳 에서도 일어나는 사건이다. 거대한 제국주의가 꿈꾸는 종교와 권력의 거룩하지 못한 연대는 도처에서 일어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하여 콘스탄틴 기독교와 콘스탄틴 유대주의가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를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홀로코스트로부터의 해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해방의 작업은 성서의 예언자들과 예수를 통하여,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해지는 과제다.

엘리스는 성서의 메시지는 잃어버려지거나 어제의 것이 아니며, 결코 길들여지거나 교화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언자적인 메시지는 오늘날의 포악한 권력을 인정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과, 결국 성서적인 것은 무엇을 정확하게 인정하기를 거절했는가를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서의 메시지에 의하여 끊임없이 자기 비판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것이 바로 해방의 과제이며, 사회정치적 해방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이 해방의 지평은 정치와 종교의 야합에 의하여 일어나는 포악을 멈추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의 유대주의에서 보듯이 포악을 경험한 이들은 자기비판이 약화되어 또 다른 포악을 행하는 자들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 해방신학은 예언자 영성을 통하여 포악으로부터, 스스로, 그리고 다른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1960년대 이후 전개되어 온 해방신학은 유대 해방신학과 이 해방의 지평에서 만난다.

현대 해방신학은 그 다양한 표현을 통하여 예언자들과 동행하려는 것이며 예언자들을 포로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언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란 곧 “지금 여기서” 예언자적인 삶의 내용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 신학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긴장은 그들을 묶어둔 바로 그 종교전통의 구조 안에서 예언자들을 해방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해방의 과제는 온갖 폭력과 포악의 포로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방시키고, 예언자들을 자유케 하며, 종국에는 하나님까지 포로로 삼고 있는 종교에서 하나님을 해방하는 과제를 의미한다. 이 과제는 엄밀히 말하여 거짓된 하나님 숭배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며, 이는 곧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자리로 겸손히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엘리스는 홀로코스트 경험을 가진 유대주의의 특수한 경험을 통한 보편적 봉사의 과제를 일러 유대해방신학의 요구라고 강조한다. 이 요구는 첫째, 유대적 전통의 깊이에서 울려나는 지기 비판의 소리를 듣고 세계를 섬기는 것이며; 둘째, 오직 비판적 토론과 책임있는 행위를 통해서만 성서가 요구하는 참된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것; 셋째, 성서적 명령에 충실한 종교는 반드시 포괄적인(종교인과 세속인들을 포함하여 남성과 여성을 모두 아우르는) 종교로서 온갖 형태의 억압과 포악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는 다는 것; 넷째, 유대인들의 생존과 존속은 세계에 보편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증언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 다섯째, 유대해방신학은 우상숭배로부터 예언자적인 증언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여섯째, 유대 해방신학은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더불어 헌신과 연대의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틴 기독교가 제국주의에 세례를 받고 세계를 향한 섬김과 봉사의 사명을 식민지배 세력과 제국주의에 종속시켰던 그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유대해방신학은 다름이 아니라 예언적 유대 신학이다. 이 신학은 홀로코스트 경험을 통하여 아우슈비츠를 종식시키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신학이다. 아우슈비츠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유대해방신학은 유대인들의 연대만이 아니라, 포악을 거부하고 제거하려는 기독교도들과의 연대를 넘어서서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를 포괄적으로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나오는 말
마크 엘리스는 정치적 정책을 달리 펴는 세 유대주의자들, 즉 1967년 7일 전쟁 이전의 종교적 유대인들과 양심적인 유대인들, 동예루살렘과 웨스트 뱅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세속적인 유대인들, 그리고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미국의 유대인들과 양심적 유대인들을 대별하고 그 중에서 양심적 유대인들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종교적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하여 팔레스타인 이웃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제국주의적 논리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뿌리 채 뽑혀 던져진 나무를 상상한다. 생존과 미래를 잃어버린 뿌리 뽑힌 민족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뽑아 내고 자신들만의 번영을 구가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던 사람들보다 이제는 이스라엘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성서가 약속했던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포악과 전쟁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벌린 독일 사람들을 대표하여 독일인으로서 수치감을 느끼고 있다는 독일 수상의 발언이 최근 보도되었다. 매우 순진난만한 표현이다. 수치감과 미안함이 아니라 더 이상 천진난만함으로 다른 이들의 비극을 간과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악에 의하여 무수한 이들이 생명을 빼앗기고 가정이 파괴되며,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그 역사 한 복판에서 살아가면서 모른 척 순진무구한 신앙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불신앙이고, 신성모독적인 것이며, 성서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 해야 마땅하다. 죄의 역사를 안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제국주의가 이 지상의 최고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 고백 위에서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 공동체들이 바로 서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엘리스는 주류 유대인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 유대 신학자로서 그의 삶을 일종의 유배처럼 살아왔다. 나는 그를 2006년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에서 만나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필리핀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는 수용소를 함께 방문하고, 필리핀 정부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리핀 대학의 이슬람 지도자들을 함께 만나 생각을 나누기도 한 경험이 있다. 홀로코스트를 빙자하여 더욱 세력화되고, 세력화된 권력을 이용하여 이웃 민족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온 그의 삶의 여정에 대한 긴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 기독교도 더 이상 순진난만함을 자랑하는 신앙이 아니라, 역사 비판적이며 예언자적인 지평을 신실하게 회복함으로써 한 반도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지평을 열어나가며 더 나아가 아시아와 이 땅의 포악한 역사를 제거하는 과제, 엘리스의 표현대로 한다면 스스로의 폭력성에서 해방되어 이 지구위에서 아우슈비츠를 제거하는(Ending Auschwitz) 과제에 연대하며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91년 엘리스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아우슈비츠 방문 마지막 날 그의 어린 아들 아론에게 엽서를 한 장 보냈다. 나는 이 엽서를 소개함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자식들의 미래와 연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론에게,

나는 지금 아우슈비츠라는 곳에서 이 카드를 너에게 보낸다.
이곳에서 무수하게 많은 유대인들이 죽은 곳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늘 이렇게 살아있구나.
나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네가 미래에 이런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세계를 이루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사랑 한다!
아빠로부터.

1 comment:

Peace and Justice in Solidarity said...

이 글은 지난 2월 부터 시작된 "해방신학 이야기" 네번 째 글입니다. 원문에는 주가 상세히 달려 있지만 블로그에는 주가 실리지 않았습니다. 각주가 포함된 글은 기독교 사상 5월호에 게재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