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28, 2022

소크라테스는 왜 사형수가 되었을까?

 “오류”


1.
소크라테스, 그는 시대의 반역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죄명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불경한 자라는 것이었다. 그를 고발한 자들의 참소가 이어지고, 아테네 시민으로 구성된 500명의 배심원의 투표에 의하여 280 : 220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그 부당함에 항의하거나 비록 구차하게라도 도망칠 기회가 있었으나 모든 의도를 포기하고 "마지막 행위로서의 증언", 곧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숨졌다.

이 부당한 재판 과정에서 그가 남긴 말은 “깊이 숙고하지 못한 삶은 살 가치가 없다(Unexamined life is not worth of living.).”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인류사회는 그를 지혜의 스승이라 일컫고 있지만, 사실 그는 깊이 숙고할 줄 모르는, 그래서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던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철학자였다. 사유 능력을 결핍한 시대에서 철학자는 이렇게 버림을 받았다.

2.
아테네 시민들이 바라본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바라본 아테네 시민은 사실 서로에게 같은 의미의 판단을 주고받았다. “살 가치가 없다.”라는 의미에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깊이 사안을 헤아릴 능력이 없어 가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자들의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래서 깨우쳐 주고 싶었다.”라고 생각했다면,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의 근저를 흔들며 불안하게 만드는 경건치 못한 자, 그래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주어진 질서에 적응하거나 순복하지 못하도록 타락시키는 자, 그래서 죽어 마땅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목적이 달랐다. 그런데,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 자는 모두 잡아, 죽여야 한다는 지배자의 욕망은 왜 피지배자, 곧 힘없고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주장이 되는 것일까? 280 : 220. 나는 이 수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깊은 상징성을 가진다고 본다.

3.
나에게는 어느 시점부터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지 않았다가” 수십 년 만에 만난 소싯적의 친구들이 있다. 중고등부 시절 교회 친구, 청년 시절 함께 성가대를 하고 교회 학교 교사를 했던 친구들, 군대 친구들, 그리고 신학교 동기들... 하지만, 수십 년 지나온 시간 속에서 우린 나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공유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벗들을 만나면 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마음에 떠오른다. 그들의 패각 투표에 의하여 나의 사상과 신념이 사형 선고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을 간혹 받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 나의 주장을 하지 않고 조용히 듣는 편이다. 몇 주 전에는 그들의 초대에 의하여 그들의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수락산 계곡에 모여서 점심을 함께했다. 서로 헤어져 있는 사이에 나는 신학자 목사가 되었고, 그들은 교회 장로, 선교사, 사랑의 교회 신도, 온누리 교회 신도이니 우리는 우리의 젊은 날부터 셈하면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온 셈이다. 오랜 벗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으나, 나는 솔직히 그들과 함께 자리를 계속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어제도 군대 동기들의 모임에 몇 달 만에 나갔다.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의 성격도 위의 벗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친구는 문재인 정권의 부도덕함을 질타하면서 형편없는 윤석열이 정권을 잡게 한 원흉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나 역시 문재인 정권의 못난 점을 비판하곤 했지만, 매도성 원색 비난에는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조국 가족이 파렴치하다는 평가를 더 하고, 대학 교수라는 정경심이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여 딸의 입시에 사용한 사실을 들어 지식인 계층의 부덕성을 비난하면서 인간 이하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에게는 한명숙 전 총리 재판 결과도 명료하게 파렴치한 부패와 타락의 결과였다. 한명숙이나 조국 같이 부패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권을 뺏긴 것이라는 현실 진단까지 내놓았다.

옛 교회 친구들은 좌파 빨갱이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전광훈이 파로 해외 선교 활동한다는 벗은 “그렇게 북이 좋으면 좌파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버려!”라는 경멸조의 결론을 내렸다. 사랑의 교회에 나가는 벗은 국가 유공자 가족을 대변하는 듯 북한 정권과 북을 싸잡아 큰 소리로 비난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설교하러 갔던 나는 졸지에 그들에 둘러싸여 오후 내내 적대적 증오를 품은 언행을 하염없이 들어야 했다. 계속 주변에 여러 사람이 피서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과 판단이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는 기독교 신자 무리”와 어울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좌파, 빨갱이, 친북, 용공주의자를 상상하며 평생을 증오를 품고 살아온 것이다. 그들이 틀렸다고 비판하는 소리는 그저 좌빨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런 의식과 사고를 하고 있는 집단의 정신세계에 민주주의, 인권, 평화, 세계의 환경 위기라는 복잡한 사유체계가 어떻게 들어설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로 다가왔다.

4.
나는 교회 벗에게는 그저 몇 마디만 남겼다.

“우리가 젊은 날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자부하는 그대들이 어떻게 그리도 무시무시한 증오와 독설, 저주와 심판, 그리고 혐오를 가슴에 여전히 품고 있는가? 그런 그대들은 예수와 어떤 관계인가? 예수가 그대들에게 평생 증오와 독설, 저주와 심판, 그리고 혐오를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인가?”

나는 군대 동기 정 사장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

“이봐 정 사장, 자네는 비교적 양심과 의리를 지키는 상식인이라고 나는 믿네.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묻겠네. 자네 같으면 자네 딸을 앞에 불러 앉혀놓고 ‘자 동양대 표창장을 같이 위조하자. 그래서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네가 의학전문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하자.’라며 딸과 함께 모의하겠는가? 그게 아비로서 할 짓인가? 그런 짓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건가?”

그러자 그렇게 열을 내며 비방하던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며 아무 말을 못 했다.

“자네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정경심 교수는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확고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5.
정 사장은 이재명을 향해서는 정말 파렴치한 자라고 혀를 차며 분노했다. 김 모 씨와 불륜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향한 비방을 생각하면, 나도 어느 정도 의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정말 그런 행위를 했다는 물증이나 증거가 없으므로 의심은 하지만 단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재명의 형수 욕설을 인용하면서, “더러운 놈”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이재명의 형수가 동일한 내용의 언행을 정 사장 어머니에게 했다면 정 사장은 어떻게 반응하겠느냐?”고 물었다. 평소 정의감이 남다르고, 이미 돌아가신 모친에 대하여 각별한 정을 가진 친구는 다소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자기 어머니를 모욕하는 며느리에 대하여 이재명이 “되갚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도 그런 경우를 겪었다면 용서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적인 응대보다 좀 더 합리적인 응대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순간 “덕스러움을” 나는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일에 대하여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가?

6.
나에게 나의 친구 정 사장처럼 “어떻게 신학대학 윤리학 교수로 산 사람이자, 목사인 사람이 이재명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가? 당신도 같은 부류냐”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정 사장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판단에는 사실을 확인한 ‘사실 판단’이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을 듣고 미루어 판단하는 ‘추정 판단’이 있네. 나는 윤리학자로서 추정 판단을 공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네. 진실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는 마치 재판도 하기 전에 판결을 하는 행위와 같이 그릇된 일이네. 오로지 사실로 확인된 것에 근거한 판단만이 내가 공개적으로, 책임지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네.

예컨대 누군가 도둑이라고 의심이 간다고 하여 내가 공적인 세계에서 도둑이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 행위에 대한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의 판단은 대부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내리는 판단이고, 그런 판단을 자네가 유통해도 자네 주변에서는 그것을 틀렸다거나, 교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렇게 되면 추정 판단과 사실 판단을 혼동하면서 선거 때마다 의도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흘리는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게 되는 것일세.”

7.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것은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단에 따른 민주적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소크라테스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그를 법정에 고발한 아테네 지배 계급들의 음흉한 의도와 면밀한 기획에 선동을 받아 배심원들이 저지른 오판이었을까? 배심원 배후에서 과연 누가 웃었을까?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죽음은 이렇듯 사유 능력이 빈약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대중, 자신들의 판단 오류를 인지할 능력이 없는 집단이 저지른 죄의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판단의 오류를 비판해주거나 지적할 이웃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세계가 초래한 불행, 비극이 아닐까?

8.
나는 나의 교회 벗이나 군대 벗들의 분노를 이해는 한다.

그들은 평소 착한 기독교인으로 평화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했기 때문에 “북한을 평화의 파괴자라고 인식하는 순간” 가슴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자신을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나의 친구 정 사장은 평소에 합리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으로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정경심 교수를 향하여” 분노하는 것이다. 평소 다소간의 불륜적 상상은 해도 정작 불륜에서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만 들어도” 그는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노가 과연 의로운 분노인가?

나는 나의 벗들이 “조작된 허위 진실”에 의하여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깊이 숙고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들은 왜 사형수가 되었을까?

광주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요람이 된 것은 광주시민들이 "군부에 의해 조작된 허위 진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을 사형수로 만들었던 세력을 믿을 수 없었다.

9.
전쟁 당사자들은 상대를 당연히 악마로 몬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재산, 내 나라를 짓밟은 무리룰 향해 서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사악한 자들이여!” 분단된 나라 남쪽에서는 북을 “사악하다”라고 하고,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대대로 살던 땅이 초토화되고, 형제자매 부모를 잃은 북은 남을 향하여 “사악하다”라고 한다.

나는 한 편의 주장에만 현혹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잘못은 미련하게 내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형제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인간이 된 것이다. 한 편은 천사, 한 편은 악마가 아니다. 내 눈에는 둘 다 악마 노릇을 한 것이다. 악마는 원수 맺기와 증오와 다툼으로 우리를 내몰아간다.

왜 예수를 따른다며 평생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 증오와 혐오, 미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는가?

10.
부정직한 지배자들은 사실이나 진실을 감추고 지배가 용이하도록 조작한다. 진실을 몰랐던 우리는 광주 민주항쟁에 참여한 이들을 폭도라 여겼던 경험이 있다. 이 조작된 인식을 바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 백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삼기 위해 성서의 진리를 조작했다. 하나님이 유색인종을 열등한 종족으로 만들어서 노예로 살아가도록 섭리하셨다는 주장이다. 인종차별의 뿌리 깊은 악이다.

-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기 쉽도록 조작한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고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사회적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랫동안 진리처럼 굳어진 억압 규범 체계, 곧 가부장주의다.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이 비판 없이 유통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하나님은 남성이다. 이런 주장은 틀린 것이다.

- 나는 검사들의 주장을 믿지 않는 사회가 민주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도대체 재판이 3심까지 왜 필요한가? 나는 심지어 검사만이 아니라, 판사들의 판단도 절대적이라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옳을 수가 없다. 그들이 늘 옳다면 하나님의 심판이나 역사의 심판은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11.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배심원, 나는 소크라테스의 자리에 조국을, 한명숙을 넣고, 아테네 배심원의 자리에 우리 국민을 대입시켜본다. 현재로서는 아테네의 배심원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판단이 나올 것이다. 나의 옛 교회 친구들이나, 나의 군대 친구 정 사장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of living.“

“깊이 숙고할 줄 모르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풀어 말하자면, “깊이 숙고할 능력을 결핍한 경박한 삶은, 말은, 판단은 가치가 없다.”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 말인가?
그리고 무서운 말인가?
그리고 Unexamined life를 살아온 자들에게 우리 생명, 재산, 우리 자식들을,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12.
한 가지, 더,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증오하여 죽임으로 넘겨주었지만, 사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사랑했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가치 있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다가 아테네 시민들의 판단에 의해서 죽임을 겪어야 했다. 한 편은 영문도 모르고 증오했고, 한 편은 자기를 죽이려 드는 이들을 사랑했다.

예수 역시 예루살렘 거민들의 분노와 조롱과 저주의 소리 “저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증오나 미움, 혐오, 살의를 가르친 적이 없다. 그것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