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의 배후라고 구속된 한상렬 목사의 모두진술서
2008.09.10. 서울중앙지법 519호 재판장에서
지금 여기 모두진술을 허락하신 재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법정에 시간과 정성을 다하여 함께 하시는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과의 인연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심장으로 존경과 사랑과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재판장님 저는 지금 총체적으로 저의 심정과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재판에 있어서 그 사건의 사실여부와 함께 그 사람의 사연과 삶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싶어 다소 포괄적으로 길게 말씀드리는 점을 널리 양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 먼저 제가 경찰과 검찰에서 진술을 거부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묵하면 오히려 불리할 수 도 있으니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게 좋으리라는 얘기도 있었으나 유불리를 떠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항의 작은 몸짓이었습니다.
먼저 체포과정입니다. 8월 14일 전격적으로 체포당하면서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8월 10일 주일예배를 전주고백교회당에서 드리고 그 다음 다음날인가 서울에 와서야 전해 들었습니다. 진보연대 사무실로 8월 9일자로 제3차 소환장이 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인 8월 10일 주일날 출두하라고 했기에 실무일꾼이 종로경찰서에 팩스를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주에 계신 목사님과 상의하여 다시 적절한 날에 출두하면 좋겠다는 사연을 담아서 말입니다.
저는 8.15 이후로 생각했습니다. 진보연대의 상임대표 중에 통일 분야에 관련해서는 주로 제가 주관하여 왔기 때문에 8.15 광복 63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끝마치고 출두할까 했던 것입니다. 저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요 공인으로서 떳떳하게 도주할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갑자기 강제로 체포하는 것은 공권력의 횡포로 여겨져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의 아픔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진술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 이 민족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화는 독재화로, 통일화는 분단화로, 자주화는 예속화로 치닫고 있는 이 역행 역리 역천의 행태를 어찌할 것인가? 이미 진정성을 상실한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던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무개념이고 비열하고 엉망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17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저는 치 떨리는 아픔으로 쓰라리고 쓰라렸습니다. 17년 전 1991년 그때 당시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음을 당했는데 지금에 와서 또 다시 백골단이 등장하는 등 그 당시 때보다 더 극심한 공안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불법으로 언론을 자획하는 경악적인 행태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말도 안 되는 독재의 망령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체포된 그 다음날인 8월 15일 하루 종일 단식기도를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통한의 8.15를 맞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해방과 광복일진데 길고 긴 분단의 세월 그 얼마나 우리 민족은 피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쳐 왔습니까? 그 한 많은 고난의 세월과 함께 드디어 새시대 새상황이 열렸습니다. 6.15가 그랬고 그걸 이어서 10.4선언이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적 성과들을 이 정부는 무위로 돌리고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소위 비핵개방 3000은 대북적대정책의 일환이요 흡수통일론적 발상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 제1항 ‘쌍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 정부가 그토록 말하는 경제운운, 실용논의도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 이념적인 잣대보다 경제적인 잣대로 생각한다해도 통일이 실용이요 통일이 경제입니다.
그런데도 냉정체제의 잔재에 매달려 실속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미친 짓 입니다. 향후 5년간이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둘러싼 4강국, 이 가운데 신냉전체제 질서 속에서 또 새로운 비극이 재현될 수 있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위기를 막는 길은 한미일동맹 대 이북이라는 왜곡되고 거꾸로 된 역사를 청산하고남북 간에 분열, 파괴, 전쟁 지향적인 모든 정책을 폐기하고 6.15와 10.4선언을 실천해 나가는데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민족 대 중국, 우리민족 대 일본, 우리민족 대 미국으로 역사구조를 바꿔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 뿐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참된 길입니다. 한미일동맹을 넘어 통일지향적 평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해야하는 이 엄중한 시기에 한국의 이 대통령이 영국의 블레어를 대신하여 미국 부시의 푸들노릇을 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는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각 분야는 뿌리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이 고통하는 역사의 현장에 아픔을 안고 특히 60일 넘게 단식하고 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8.15 단 하루일망정 물도 안 먹는 단식을 하면서 침묵하였던 것입니다.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신 그 이유를 깊이 묵상하면서 그분의 심정을 이해할 듯싶었습니다.
저는 이 법정에서도 묵비할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다시 사법부의 양심에 희망을 걸며 촛불의 진실을 증언하는 뜻에서 이렇게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판장님 체포 구속된 지 오늘로 27일째입니다. 그동안 저는 저의 지나온 삶의 과정과 운동의 원칙들을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며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역사의 눈 뜬것은 5.18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전주에 있었으나 체포당하여 보안대로 헌병대로 광주 상무대로 끌려 다니며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치솟는 용기가 솟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를 맞고 고문당하고 특히 빨갱이로 몰릴 때는 한없이 비겁해졌습니다. 용기와 비겁의 갈등에서 죽고만 싶기도 하였습니다. 제 인격이 바스라지며 터져나온 질문은 ‘왜,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통일과 민주와 자주야 말로 우리민족의 시대적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18 항쟁을 통해 비로소 역사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저는 분단병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새 세상을 만나는 길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왔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여전히 역사에 빚진 죄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산자는 죽은 자 앞에서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민중 앞에서 또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불타는 온몸으로 절규하신 전태일님을 비롯한 모든 열사들 앞에서 다만 부끄러울 뿐입니다.
참 역사운동에 동참하면서 저 나름대로 다섯 가지 질문을 운동의 자세로 삼아 왔습니다.
첫째 진실한가?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열사 앞에 진실한가?
둘째 책임지는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맡겨진 역할과 임무에 정성을 다하는가?
셋째 평화기조인가? 평화야말로 운동의 처음이요, 과정이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대동단결인가? 마침내 하나되고자 하는가?
다섯째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 기도,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재판장님 제가 이렇게 저의 살아온 삶의 일단과 운동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촛불의 총 배후이거나 최고 지휘부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책임 있는 주체로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할 의도가 없음을 제가 살아온 삶과 운동의 자세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날 두 번의 구속과정에서도 그랬습니다. 5.18때 저는 제가 한 일을 숨기지 않아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91년 때에도 전민련 공동의장으로 전국연합 소집책으로 공안탄압 분쇄와 강경대 열사 대책위 총 대표자로 책임질 일은 당당하게 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닙니다.
공안에서 저를 촛불의 총 배후로 추대해주시니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촛불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을 모독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촛불의 총 배후 이야기가 6월 초부터 나왔습니다. 몇몇의 수구언론이 사설을 동원하면서까지 구체적으로 배후로 제 이름을 찍어 떠들어댔습니다. 뒤를 이어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라는 자가 공식석상에서 또 제 이름을 찍어 지목했습니다. 드디어 6월 30일 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분명 수구언론, 한나라당, 공안이 총 동원된 기획· 조작· 표적 수사인 것입니다.
수구공안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흉악한 촛불의 최고 지휘부라면서 배후 말이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난 이제서야 왜 체포하는 것입니까?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잠깐 직무유기를 했던 것입니까?
재판장님 이제 촛불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촛불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의 저의 상황과 심정의 흐름을 밝히고 싶습니다. 대선 직후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파 삼 일간 꼬박 교회당 십자가 앞에서 철야기도를 한 바 있습니다. 장차 이 나라와 이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라와 민족을 보기 전에, 우리 운동의 대오각성을 말하기 전에 ‘너 한상열이는 과연 어떤가’가 문제였습니다. 저 자신이야 말로 관성주의, 패배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분열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는가?
민중의 삶과는 너무나 유리된 생활을 해왔지 않았는가? 고통과 통곡가운데 회개하는 심정으로 40일 기도를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변혁이 없이 역사변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봄에 저는 주로 전주에 있는 고백교회당에서 40일 기도를 하며 역사와 자기 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5월초부터 위대한 촛불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촛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간에 운동방식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운동의 주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 알다시피 특히 촛불소녀, 소년들이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광우병 소고기 먹기 싫다. 건강주권 찾고 싶다’는 그 청소년들의 순수와 단순성이 감동감화로 역사를 움직이며 촛불운동을 일으키는 불씨가 된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에는 살림을 도맡아 왔던 생활주부 여성들이 대거 촛불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소위 비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광장은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면서도 즐겁게 나들이하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각계각층,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촛불주체가 되어 나섰던 것입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체는 재야, 단체, 학생, 직장인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주권의식을 가진 자발적인 참여대중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노래처럼 모든 촛불은 국민의 힘으로부터 직접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지휘부와 배후가 없는 촛불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공안당국이 촛불의 배후를 찾고 싶다면 제가 한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일산에 사는 박모씨입니다. 중국 출장 중인 그는 인터넷을 통해 소고기 문제를 알았다고 합니다. 국민의 주권을 찾고자 밝힌 촛불이 그 숫자를 더해 갈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더 없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던 그분은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에게 6월 10일 시청 앞 촛불집회에 가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면서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설명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약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13살배기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주미가 물놀이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잘 가려 행동하는 믿음스런 딸인 이 주미의 장례식을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대신에 치러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내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딸이 오랫동안 모아온 저금통장을 발견했습니다. 아빠는 중요한 마지막 약속 그 촛불집회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모아온 소중한 이 돈으로 함께 촛불을 만들고 싶다며 딸이 생전에 저축한 629,000원을 국민대책위 후원계좌에 입금하였습니다. 주미 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보람될 것 같다며 남편의 뜻에 동의했던 것입니다. 아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가 모아온 소중한 정성을 보내니 부디 희망을 만드는데 사용해 주시길 바란다고 편지를 보내왔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저는 가슴이............
재판장님 바로 이런 분들이 촛불의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을 움직이는 엄마와 아빠들이 배후라면 참 배후요 주체가 아니겠습니까? 주체가 그러하니 집회방식도 엄청나게 달라져 버렸습니다. 과거처럼 엄숙한 시위, 누군가가 앞장서 주도하는 시위가 아니요 진정한 문화축제가 되었습니다. 연대, 지혜, 토론, 소통의 방식으로 확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유발언대 등 그저 각자 생각하는 대로 하면 되는 식의 축제한마당이었습니다. 국민 다수와 함께 한다는 자신감 때문에 여유와 유머, 낙천성과 자발성과 생명력이 넘쳐났습니다. 차가운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온수, 세탁비’ 라고 웃으며 외쳤다지요. 대치와 긴장을 평화와 웃음으로 바꿔 경찰의 능력을 무력화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축제와 평화는 한몸입니다. 촛불을 불법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6.10일 밤 명박산성 앞에서 일어난 일이 촛불의 정통이요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10일 밤 10시부터 11시 11일 새벽 5시까지 7여 시간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장벽 앞에서는 그야말로 대단한 토론이 열렸다고 합니다.
해 뜰 무렵에야 겨우 끝났다고 합니다. 토론 참석자 규모는 연인원 일만에서 최저 삼천여명, 주제는 저 눈 앞에 보이는 컨데이너를 넘을 것인가 넘지 않고 광화문 사거리에 남을 것인가, 즉 투쟁의 수위를 높히자는 쪽과 계속 평화시위를 하자는 쪽의 대결이었습니다.
결론은, 깃발만 컨테이너 위로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와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저 자신은 직접 현장에 없었으나 보도를 접하면서 그 현장의 감동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수개월간 세계 운동사상 유례가 없는 연속촛불을 밝히면서도 끝내 평화축제를 유지하고자 촛불대중은 노력했습니다.
촛불자체가 평화의 상징이요 비폭력의 꽃입니다. 그동안 일어난 불상사도 따지고 보면 공권력의 횡포로 야기된 측면이 많습니다. ‘비폭력, 비폭력! 삼보후퇴!’를 외치는 평화애호시민들을 때리고 잡아갔습니다. 폭력시위감시단을 짓밟았습니다. 인권침해 감시단의 변호사마저 폭행을 당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는 커녕 아예 무시하고 변명과 핑계와 임시방편의 속임수를 일삼으며 구조적인 폭력과 무자비한 진압폭력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이 정권이야말로 불법폭력정권입니다. 촛불의 본질은 비단 광우병쇠고기문제만이 아니라 무한경쟁교육, 의료·수도·물 민영화, 한반도대운하, 방송장악 등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이 정부의 성장지상주의,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입니다. 이러한 막가파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현정부로 인해 삶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게 될 국민들의 불안과 저항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스님의 말씀대로 촛불은 과연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한없이 초라해지는 개인의 실존적 피해를 위로하는 인간존엄의 멧세지였습니다. 소통의 단절, 신뢰의 결핍이라는 불안한 정치토대가 키운 시대의 어둠을 촛불이 밝혔던 것입니다. 촛불의 광장은 오만과 독선과 무능력한 대의적 민주주의, 제도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참여민주주의 사이버전자민주주실현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생활주권수호항쟁을 통해 운동이 삶과 분리가 되지 않는 생활정치의 도래와 탈중심적, 탈위계적 성격의 신변혁공동체의 맹아를 보았습니다. 엄청난 국민대중이 촛불을 들었으나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촛불의 숫자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시민이 개인으로 고립되지 않고 진정으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의견공동체를 구축하며 진실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야말로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진정한 대표자들이요 진정한 주동자들입니다.
기존의 운동은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운동이 출현하기를 대망하고 있었던 저는 경이로운 촛불을 바라보며 저로서는 한없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진행과정에서 저 자신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솔직히 허망한 심정이 잠깐 스치기도 했습니다. 못된 생각이지요.
저는 주객관적인 상황을 성찰하면서 일찌감치 세 가지 정도로 제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일체 촛불의 진행과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둘째, 기자회견 등 참여기회가 있더라도 이를 최소화한다.
셋째, 문화제에 참여하는 경우라도 행진이나 시위는 하지 않는다.
8월 15일로 100차 촛불문화제라고 하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여했는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대중 앞에 죄송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물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횟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때로는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며 분노가 치솟아 전면에 나서서 주동하고 싶었으나 많이 참았습니다. 딱 한번 자유발언대에 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병렬열사의 장례식이 있었던 6월14일입니다. 5월 25일 전주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일을 보고 있는데 백화점 앞에서 어떤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예수병원 응급실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에게 ‘한목사 왔다고 내 소리 들리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 살아야 한다고, 이제부터는 살려고 작정하라’고 절규하니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죽어야겠다는 뜻 같았습니다.
그의 유서를 보니 이미 5.18광주망월동묘역에 다녀오면서 분신을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5.18정신과 모든 열사들의 뜻을 이어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했기에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던졌습니다. 그 분의 아픔을 안고 발언대에 나선 것입니다. 아마 공안당국에서 녹취해놓은 모양입니다.
재판장님께서 수고스럽지만 그 발언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어보시면 촛불에 대한 저의 견해를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판관님 이제 공소장에 관한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촛불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몇 가지를 덧붙여서 기소했더군요.
첫째, 2007년 8.15민족통일대회는 저의 주관아래 이루어진 것이 확실합니다.
둘째, 민주노총이 2007년 8월 17일 이랜드 비정규직해결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고자 하면서 격려발언을 요청하기에 ‘누가 이 거룩한 길을 막고 있는가, 경찰은 즉시 이 길을 터라, 우리 모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대우받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투쟁하자‘고 연설한 것도 사실입니다.
셋째, 2007년 11월11일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잠깐 참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를 인정하되 교통방해 부분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넷째, 기자회견에 관련해서도 집시법 위반죄를 적용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제 촛불에 관해서 말씀드립니다. 공소장 내용 그 자체가 제가 배후가 아님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밝혀지리라고 봅니다. 단 몇 가지 우선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공소장을 보면 제가 광우병위험 미쇠고기 투쟁과 관련한 주요사업계획을 승인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총지도부인양 기소했는데 그 객관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5월9일부터 7월5일까지 촛불문화제를 거의 날마다 하루 한건씩 공모주최했다고 하는데 전혀 관여한 바가 없고 참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특히 5월 25일, 6월 22일, 6월29일은 주일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예배드린 그 날에도 그렇습니까?
특히 6월15일-16일에는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8주년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일어난 촛불문화제를 제가 공모주체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대책회의 이름으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옥중에 있는 제가 총 배후, 조종자입니까? 공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책회의에서 아무 직책도 없었고 역할도 없었습니다. 진정 위대한 촛불의 총지도부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청하거나 자임해서 될 일이 아니요,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신성하고 거룩한 촛불대중을 더 이상 모독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9월 4일자 신문을 보니 촛불관계로 32명 구속, 1336명 불구속, 56명 즉심 총 1534명이 사후처리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것의 대부분이 너무 부당한 일이요, 일부 소수마저도 정상참작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촛불은 죄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든 국민과 또한 마음속에라도 지지했던 모든 분은 다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촛불이 누운 풀처럼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나 국민의 가슴마다 횃불이 되어 타고 있고 결국 활화산이 되어 이 어둔 역사를 심판할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갑오농민혁명 3·1만세운동, 4.19, 5.18, 6월항쟁의 맥을 따라 촛불은 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물은 연대성, 유연성, 지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누가 그 무엇으로 이 촛불의 대역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재판장님
저는 무죄입니다.
제가 이 법정에 설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사법부의 심판을 받을 자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진짜 촛불의 배후인 행정부의 이명박대통령입니다. 이미 그의 죄가 과중합니다. 민주적 선거가 민주정부의 구성에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하는데 법치주의 운운하면서 불법, 무법 해당위적인 발상으로 폭력에 의존하면서 독재와 예속과 분단고착을 심화시키며 수구부유층 기생세력을 대변하며 양극화로 몰아가는 반민중, 반역사의 죄가 있습니다. 자칭 대한민국 주식회사 사장이라면서 도시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미국에게 조공을 바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도 ‘도시 근로자들이 질 좋은 쇠고기를 싸게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을 믿어야지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미국산쇠고기 판매과장인양 처신한, 대통령직무위기와 매국의 죄가 있습니다. 7·4·7 운운하며 거짓말로 거품을 일으키더니 한국경제를 망쳐가고 있는 경제쪽박의 죄가 있습니다. ‘그 많은 촛불은 누가 샀어, 조사하라’ 등 그는 배후괴담색깔론을 늘어놓다가 촛불의 힘에 놀라서 5월22일 ‘정부가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 지금까지 부국정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해놓고 국민다수의 뜻인 전면재협상을 끝까지 거부한 국민기만죄가 있습니다.
6월19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다시 사죄를 해놓고는 -전면 재협상이 아니라 별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정부의 추가협상에 힘을 실어 미국의 양보를 조금이나마 얻어내는 데 공로가 있는 촛불입니다. 한국국민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민족의 자존과 대의를 세운 촛불을 불법시위로 몰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배은망덕한 죄가 있습니다.
국민신뢰가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설 수 없습니다. 서울 사대문 인의예지 문 가운데 보신각, 무엇보다도 믿음, 신의 가 중심인데 상습적으로 거짓말하며 삼진치로 가득한 저 심보 때문에-이로 인해 자기도 명박, 대통령의 명이 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이 나라 이 민족을 불치의 병, 죽음의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미친운전의 죄가 있습니다.
불법언론장악죄 등 죄가 많은 이 사람을 긴급체포하여 법정에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판장님
저는 무죄입니다. 이미 역사가 저를 무죄로 한 경험이 있습니다. 5.18로 구속되어 폭도라고 칭해졌던 저는 지금 국가유공자입니다. 91년 민자당과 공안탄압분쇄로 구속되었던 저는 지금 공식적으로 인정된 민주화유공자입니다.
세 번째에 구속된 저는 재판부에 간절히 호소합니다. 저를 무죄라고 선언해주십시오. 촛불의 진실과 참역사를 위해서 촛불의 진실과 신성하고 정의로운 법정을 위해서라도 제가 무죄임을 확인해주십시오. 과연 일체유심조입니다.
일체은혜자족감사입니다. 저는 구치소를 국립기도원으로 삼고 깊이깊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변혁을 위한, 이명박대통령의 진정한 회개를 위한. 이 나라 이 민중 민족과 세계 인류의 참역사, 사랑·자유·정의·평화와, 통일 자주 민주 세상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사람, 사랑, 삶이 하나일진대 진실로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한몸 평화 한몸이니 한몸으로 한몸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uesday, September 16, 2008
I am not gui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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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3, 2008
The Personhood in One's Moral Judgment
판단과 사람됨.
삶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므로 너무나 다양한 이해와 판단을 요구한다. 사람의 판단능력을 평가하는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범주가 있다. 그 첫째는 사람됨이다. 그의 판단이 사람다운 따듯한 판단인지 아닌지를 느끼게 해 주는 요소다. 판단에는 그의 인품과 성품이 배어 있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판단 형식을 통하여 자기를 밖으로 보여주게 된다. 아무리 그 판단이 정확하고 진실하다 할지라도 그 판단의 동기가 자신의 성품을 통하여 걸러지지 않았을 경우 간혹 우리의 판단은 시기와 질투, 증오와 원망, 고의적인 악감정이나 특정한 목적에 의하여 동기화되기 쉽다. 정의를 주장하면서도 그 정의가 맹목적으로 적용될 경우 우리는 그 판단이 정직하고 진실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데 그 까닭은 그의 주장이 이미 악의나 고의성을 가진 공격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이 왜곡되었을 경우, 그는 끊임없이 유사한 사건을 늘 벌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성품을 통하여 여과되지 못한 의도들이 공론과 정의를 주장하는 과정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의 판단형식을 볼 때마다 감동한다. 예수의 행위는 결코 악의에 의하여 동기화되지 않는다. 악마에 이끌려 시험을 받을 때 그는 자신의 판단을 유도하는 악마의 숨은 동기에 쉽게 유혹받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판단형식에 배어있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사실을 진실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의도가 앞선 판단은 특정한 사실에 대하여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그 행위의 오류를 과도하게 정죄하거나, 외삽법적으로 뜬금없이 천상의 가치를 대입하는 경우를 본다. 타인의 오류를 지적함에 있어서 의도가 앞설 경우 자신도 모르게 객관적 판단기준이 흔들리는 이들이 있다. 그리하여 공정하지 못한 도덕주의적인 판단을 생산한다. 이 문제는 현대 윤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되고 있다. 도덕적 판단이란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인식론적 능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은 자연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직관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중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본능적 판단기준을 믿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판단형식은 우리의 지난 경험에서 산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은 그 사람이 사실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질, 혹은 능력을 함축하게 된다. 판단자의 인식능력이 협소할 때 우리는 그의 판단에 동의를 보내기 어렵고, 판단자의 판단이 지극히 한 부분만을 확대할 경우 역시 동의를 보내기 어렵다. 진실한 판단은 사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된 판단이어야 한다. 간음한 여인을 앞세운 무리들이 다가 왔을 때 예수는, 그 상황 전반, 그 여인을 정죄하여 손에 돌을 든 자의 가슴 속까지 헤아린다. 그리함으로 그는 한 두 가지 사실만을 미루어 한 가련한 여인의 전존재를 싸잡아 부정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의 또 다른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판단할 경우 그것에 대하여 신중하며 책임적이어야 한다. 사람의 판단이 공공의 세계에 밝혀질 때 거기에는 매우 선명하게 “판단하는 자”와 “판단 받는 자”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판단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게 된다. 공공의 세계에 드러난 판단은 자칫 잘못하면 부차적인 명분싸움으로 전락하기 쉽다. 상대를 그릇되었다고 공공의 세계에 고발한 이는 “상대의 그릇됨”을 필연화하지 않으면 자신의 판단이 오류라고 증명되기 때문에 자신의 명분을 위하여 상대의 오류를 더욱 집요하게 들추어내려 든다. 또한 공적인 세계에서 비난을 받은 이는 그 비난을 통하여 자기 전존재가 너무나 단순하게 요약된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벌리는 공적인 다툼들이 간혹 본의보다 더 커다란 사건으로 비약되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악의에 의하여 동기화된 공격자들은 언제나 문제를 확대하고, 과장하며, 상대의 인격과 존재를 부정한다. 예수의 투명하고 맑은 눈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죄와 허물이 보였을 것인가? 나는 이런 모습을 예수에게서 찾지 못한다. 예수는 진리의 이름으로 자유를 주려하는 분이었지, 진리의 이름으로 진리에서 벗어난 이들을 정죄하려 드는 심판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교회의 역사는 그를 최후의 심판자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판단이 결과하는 세 가지 현상이 있다. 정의논쟁, 지위논쟁, 자격논쟁, 그리고 권력투쟁이 한창인 요즈음 많은 이들이 침묵하고 있다. 침묵은 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마틴 루터 킹은 “적들의 침묵”보다 “벗들의 침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하여 글을 쓴 적도 있다. 우리는 말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만일 침묵을 깨려면 우리는 우리의 성품을 다하여, 우리의 인식능력을 동원하여 신중하게, 그리고 공공의 세계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진실한 예측을 가늠하는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가 민주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우리는 민주적 절차와 원칙을 지켜야 한다. 비록 우리 논쟁의 적대자라 할지라도 그의 전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나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토론 과정에서 가해지는 도덕적 판단은 제아무리 사실적 판단에 근거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 성격은 아직 추정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까닭이다. 교회와 교단, 혹은 대학사회에서 공공의 유익을 위한 민주적 토론과 비판 원칙을 지키려면 우리는 불평과 비난과 비판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불평이란 부당한 사실에 대한 무책임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옳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는 이들은 그 그릇됨을 시정하려는 노력에는 가담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불평을 토로하여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 해놓고서, 자신은 전면에서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비난은 옳음을 선택하기 위하여 상대를 비하하거나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비난을 할 경우 우리는 상대의 인격과 삶의 귀중함을 송두리째 몰수하기 쉽다. 이 경우는 공공의 이익보다, 그리고 지금 논쟁하고 있는 근본 원인, 즉 그릇됨을 시정하려는 공동의 책임의 자세가 아니라 상대를 몰락시키려는 악의에 더욱 크게 지배를 받는 경우다.
우리는 합리적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보다 나은 삶을 구성하기 위한 우리의 논쟁이 불평이나 비난이 아닌 비판적 견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민주시민이라면 대부분 합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가 보장하는 양심과 표현의 자유, 혹은 결사의 자유는 이렇듯 민주적 합리성과 인격성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매도와 악의에 찬 비난, 그리고 지나치게 무례한 공격적인 언사는 상대의 인격과 명예를 극단적으로 훼손하는 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사실이 아닌 주장을 유포하는 경우, 매우 악의적인 거짓이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허위진술을 담을 경우 그 책임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 판단을 넘어서서 자의적 가치판단을 섞는 행위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상대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민주사회는 무한정의 자유를 누리는 세계가 아니라 합리성에 근거한 비판이성에 의하여 통제를 받아야 한다. 만일 일방적인 해석과 공격적인 행위들이 빈번할 경우 그 집단은 도덕적으로 저급한 집단이 되기를 자초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민주적 질서와 합리성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세계에서는 합리성을 가장한 공격적 행위의 폭력성이 지나칠 경우도 많고, 그 반대로 권위를 가진 이들이 그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폭력화되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우리는 합리성을 상실한 집단이 되어 좌충우돌 비약과 무책임 사이를 오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성서적 규범과 민주사회의 최소규범을 지켜야 한다. 성서적 규범은 우리가 복음의 의하여 자유를 얻었으므로, 그 자유를 가지고 이웃 사랑의 길에 나서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최소규범은 법정적 판단이 내리기 전에 아무리 미워도 상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복음에 의하여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받은 이들이라면, 그것이 진실한 우리의 고백이라면 우리의 최대 관심은 “나”나 “우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 신앙 공동체에 있어야 하며, 조금 더 확장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적 삶의 자리” 즉 우리 한국 사회를 섬기는 데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로부터 자유한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이다. 사리사욕이나 개인적 감정, 혹은 집단이나 파벌의 이익에 사로잡히거나 그것들에 의하여 동기화되는 행위는 제아무리 기독교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기독교적 행위를 유발할 수는 없다. 나는 이런 행위를 기독교적인 행위라고 조장하는 예수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생명과도 같이 여기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혈연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라는 삶의 공동성을 확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협소한 민족주의나 국가안보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반민주적 악법 철폐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사소한 이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명분을 걸고 이전 투구하는 것이 예수 앞에서 어찌 옳겠는가? 정의를 주장하고, 정직함을 주장하기 위하여 폭력을 동원하는 일도 옳지 않다.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보여주신 예수의 모습에서 나는 선명한 메시지, 즉 인간이 먼저이지 정의가 먼저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큰 정의이고, 무엇을 위하여 우리가 싸워야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과 민주사회의 이념이 공유하고 있는 영역이 침해받을 때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과 권리가 무시되거나 침해를 받는 현장에 우리가 서 있을 경우, 우리가 복음을 증언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귀함과 그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의 존엄함이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정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민주세계가 합의한 인간의 권리들이 누군가에 의하여, 혹은 어떤 이기적인 집단에 의하여, 혹은 정치권력에 의하여 침해되는 현장이라면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영성과 명상적 삶을 살아가면서 침묵을 깨뜨려야 할 경우가 있다면 나는 이런 원칙에서 시작된 사랑과 자유의 해방운동의 지평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적은 자를 돌보라는 예수의 메시지를 우리가 성서에서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강자보다, 약자를 돌보며 살라는 구약성서의 계약법전의 정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오래 동안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전쟁조차 벌릴 수 있다고 가르쳐 왔지만, 나는 그런 윤리는 예수의 사상에서 배태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주구가 되어 온 사상의 전형이다. 그러므로 집단의 존속과 유지를 위하여 한 인간의 생명의 존엄함을 외면하면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입다의 제의는 불의한 것이다. 이런 기독교의 전력을 새삼 들추지 않더라도, 역사 속에서 상대적인 정의가 이기는 순간, 그간 불의한 행위에 가담한 이들이 약자로 전락할 때라도, 그들조차 기독교적인 이웃사랑의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신앙인으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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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0, 2008
문규현 신부님의 오체투지
-오체투지, 순례 길을 떠나며
다시 순례길을 떠납니다.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입니다. 이 둘이 오체투지, 온 몸을 땅에 내리고 보듬으며 갑니다. 가늠도 안되게 고되고 하염없이 느린 길을 기꺼이 갑니다. 허나 우리의 고행이 도리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순례가위로의 길, 용기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각자의 마음과 삶, 공동체와 사회에 존엄과 존중심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사랑과 자비, 공존과 평화, 정의를 행하고 이루려는선한 마음들이 더욱 힘내길 기도합니다. 낙심과 냉소, 쉽게 얻고 누리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애쓰고 헌신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가운데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양심과 인간애, 진실과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세를 굳건히 지켜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체투지, 이 여정은 특히 손에 가슴에 생활 속에 촛불을 피어올린 청소년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수난과 상처, 모욕과 폭력, 수배와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가는 그 모든 고결한 정신에 드리는감사의 표현입니다. 촛불이 밝히는 것은 생명의 귀함과 꿈이 있는 미래입니다. 자존과 품위이고, 신뢰와 진정성입니다. 주권과민주주의입니다.
그 아름다운 불빛들에게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지, 더불어 무엇을 해야 할지 수없이고뇌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여 이제 아주 단순하고 응집된 표현으로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향해절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하고 진정한 마음들, 그 착하고 여린 마음들을 품고 기억하며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민주주의를지키고 생명력 있고 희망이 있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가겠노라고 맹세의 길을 갑니다. '생즉사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이라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용기의 원천입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합니다. 저들이 숭배하는 경쟁과 실용으로 보자면 극단적으로 바보스럽고 누추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돈과 일등놀이에 몰두하는 사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음을, 성공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은 사회는 죽은 공동체임을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몸짓으로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천지간에 불통이고 사방이 '명박산성'입니다. 정권 스스로 무법탈법이요 공권력을앞세우지 않고선 그 무슨 일도 행하질 못하는 지경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20년 전 30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그만가길 기도합니다. 정녕 종교인이라면 전정한 참회와 속죄의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 신독재와 신공안정국, 신냉전주의, 신종교전쟁으로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기부양을 앞세워대운하를 재론하고 부동산투기판을 재연합니다. 핵발전소 증설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 위장합니다. 21세기를 살며 22세기를준비하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고작 20세기에 잡아두려는 천박한 발상입니다. 나라의 조화와 균형, 지속가능한 발전을 파괴하는행태에 반드시 냉정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촛불은 조용히 불씨요 홀씨가 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들불이 되고 횃불이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
남과 북 사이조차 단절과 분단심리가 견고해지는 오늘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우려스럽습니다. 현 정권은 아예 민족통일이나 평화 문제엔관심 없는 듯합니다. '국지전 가능성' 같은 용어조차 쉽게 올리며 적대감과 긴장을 격화시킬 뿐입니다. 애절한 아우성은 남에도있고 북에도 있습니다. 남과 북은 공존과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산맥과 강길에는 단절이 없고 벽이 없습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온 민족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온 산하를 따라가며 남북 사이에 소통과화해의 길이 열리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 우리현실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의 태만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왜곡된 형상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면과 생활을 바꿔갈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와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품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믿음과 희망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인내와 끈기로영혼을 단련시키십시오. 각자의 자리와 모양새는 다르나 영혼을 나누고 마음으로 연대하며, 더불어 즐겁게 진리를 구하는 순례의 길을함께 갑시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제 몸과 마음은 1976년 사제서품을 받던 그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바닥에온몸을 엎드리곤 가장 겸손한 태도로, 모든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처럼 이웃과 세상을 섬기겠노라 다짐하던 그 때입니다.이제 사제수품 33년을 훌쩍 넘어 황혼 길에 든 이 시간, 다시금 더 비우고 더 버리고 더 낮춥니다. 첫 마음에 저를 세웁니다.
2008년 9월 2일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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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8, 2008
두 가지 슬픈 소식
두 달 전 나는 문규현 신부를 만나 함께 망월동 묘역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이틀을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 분이 얼마나 어린아기 같은 마음으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마음 깊이 느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지리산 노고산 언덕에서 한반도의 생명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원하는 험한 고행의 길을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신대 강의 시간에 한번 오시기를 청하며 다시 한번 만나뵙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반생명, 반민주, 반평화적인 행태에 저항하는 길을 수경스님과 더불어 가기 시작하셨구나! 오체투지, 자갈밭에 온 몸을 부딪히며 민족의 죄와 고통을 짊어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메이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과 존경과 사랑의 감정에 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솟는다. 노고산 언덕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 분의 기도문이 담긴 인터넷 주소를 여기 적는다. http://www.mncast.com/player/index.asp?mnum=5648424&prevmnum=5648288
오늘 나는 우리 감신대의 누군가가 신임총장을 공개비난하기 위하여 그동안 학내에서 일었던 표절시비를 연장하여 모든 신문사에 제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 또한 가슴이 아프고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픔을 불러온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내몰아야 되는 것인가? 어느 분들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며 생명, 평화, 그리고 민주의 길을 열어가는 데, 감신대의 사람들은 교회와 제자들 앞에서 염치도 없이 권력싸움에 날새는 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들과 동시대의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들과 다름없이 죄인이 된 심정이다. 오래전 카나다에서 만난 장성환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 40년을 돌아보며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내가 보낸 목회의 여정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명제를 경험으로 이해하는 기간이었다." 생명과 평화와 민주를 위하여 사는 길에 죄인이 되는 이와 권력다툼에 날을 새는 죄인을 생각해 본다. 한 편은 맑고 희망적인 슬픔을 가져오지만 다른 한 편은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수치스러운 슬픔을 가져온다. 감신인 모두의 수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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