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17, 2024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2024. 12. 7)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 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배로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 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 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Saturday, December 7, 2024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윤석열을 조속히 퇴진시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12월 3일 느닷없는 위헌적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 윤석열이 권력에 취하여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증거다. 그는 민주적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하여 권력 견제와 균형을 위해 헌법기관으로 세워진 국회의 권능을 근본에서 부정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국가기관을 교란하고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하며 “범죄자 집단 소굴“이라고 규정했으며, 심지어 ”자유 민주주의 체재를 붕괴시키는 괴물”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올바른 판단 능력을 가진 품위 있는 공직자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를 경영할 온전한 정신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우리 국민과 국회에 의해 신속히 저지되어 6시간 만에 종료되었고, 헌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계엄 과정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리는 이 사태가 국민의 뜻에 반한 권력집단의 무력에 의한 내란 획책이었다는 판단을 버릴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기관들이 판단능력을 상실한 대통령 휘하에 여전히 놓여있으므로 매우 엄중한 민주주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일부 군부와 경찰 권력을 동원한 내란범들이 제어되지 않은 채 권력을 가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 위중한 상황에서 즉시 내란범들을 체포, 수사하여 국가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검찰이나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도 믿기 어렵다. 지금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던 내란 세력 중 그 어느 누구도 제어되지 않은 위기 상황이다. 


국방부 장관은 위헌적 계엄을 제안했고, 대통령은 위헌적 계엄을 선포했으며, 군부 일부와 경찰청장, 서울 경찰청장, 국회 경비대장은 그들의 하수가 되어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시키려는 내란 행위를 도모했다는 사실이 만 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법무부와 국가수사본부, 공수처는 무기력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법무부,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경찰, 군검찰, 검찰 등 모든 권력기관이 국민을 위해 법과 원칙을 집행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채 윤석열 정권 수하에 그대로 복속되어 있다는 현실을 확증해주고 있다.  내란죄는 있으나 내란범을 제어할 능력이 없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틈을 타서 부패한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기회주의적인 정치평론가들이 때를 만난 듯 종편과 유튜브들을 통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을 이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는가? 윤석열의 검찰인가? 국회의 권능을 가로막았던 경찰인가? 국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다시 들이댄 군대인가? 아니면 위헌적 계엄을 방임하고 동조한 윤석열 정권 각료들인가? 과연 우리 국민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댄 이들을 믿을 수 있는가?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구해낼 것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유일한 길은 주권자 우리 국민이 다시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우리 국민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주권자로서의 책무를 감당해온 빛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승만 독재에서 나라를 구한 것도 젊은 국민이었고, 군부 구테타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건져낸 것도 우리 국민이었으며, 부패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촛불을 든 우리 국민이었고, 12월 3일 국회를 지키기 위해 국회로 제일 먼저 달려간 이들도 우리 민주시민이었다. 


이제 우리는 국민을 배반한 내란범들의 수중에서 모든 권력을 조속히 회수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올곧게 회생시키기 위해 모든 민주세력과 애국시민들은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당파적이고 자기 집단의 명분을 지키겠다는 소아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남녀노소 모든 국민들이 혼돈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사실상 주권자 국민에게 다시 총부리를 들이댄 반란 행위였다. 우리 국민이 나서서 반란 세력, 윤석열과 그의 수하들의 수중에 있는 권력을 즉각 회수하고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움으로써 피로 지켜온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2024년 12월 6일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Friday, November 10, 2023

 원숭이보다 못한 인간


정의로워야 인간이다.

기독교인은 인간이다.

기독교인도 정의로워야 한다.


1.
원숭이 무리를 관찰한 과학자들은 원숭이에게는 같은 무리에 대한 책임감, 부당함에 분노할 줄 아는 정의감, 그리고 최소의 연대감을 나눌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다. 원숭이 무리는 강자에게 누군가가 공격받았을 때 지도급 원숭이가 앞장서서 상대를 공격하고 무리가 뒤이어 공격한다. 원숭이를 부당하게 차별 대우 할 경우 이에 대하여 원숭이가 분노를 드러내는 태도를 보였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이런 원숭이의 사회 윤리가 원숭이들이 무리지어 서로 보호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2.
간혹 사람답지 못한 처신을 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말로 “짐승보다 못하다”라는 표현이 있고,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짐승같이 행세하는 이를 일러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일컫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에게는 짐승보다 더 나은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동료 인간에 대한 연대와 책임감도 없고, 부당함에 항의하는 정의감도 행사할 줄 모르며, 그리고 갈등과 투쟁보다 평화를 애호하는 공동성의 윤리가 없다면, 그는 어쩌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의 속성을 가진 이라 할 것이다.

3.
짐승이 가지고 있는 사회윤리 규범은 물론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며 올바름을 선택하는 윤리적 존재의 차원과는 매우 다르다. 짐승은 반성적 사유보다 본능에 따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아있는 먹잇감을 사정없이 뜯어먹는 야수의 잔인함은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 본성이 야수 같다고 주장한 이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유독 짐승보다 우월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다소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4.
윤석열에게 표를 주고,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는 무리 중에는 유독 기독교인들이 많다. 나는 이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사회 윤리나 도덕의식이 원숭이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기 무리 안에서 최소한의 연대성을 나누며 강한 외부의 세력과 싸울 줄 모르는 인간, 사회의 불공평과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면서도 이에 대하여 정의로운 분노를 표현할 줄 모르는 인간, 성조기나 일장기까지 들고 나선 인간을 보면, 간혹 원숭이 무리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5.
검찰이 은폐해준 윤석열의 본부장 비리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이에 분노할 줄을 모른다. 윤석열이 자기 장모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남에게 1원 한 장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단언한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의 장모가 감옥에 가도, 윤석열 처가 식구들이 이곳저곳 땅 투기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권력을 동원해 양평 고속도로 원안을 고쳐 휘게 만든 권력형 불법을 저질러도, 그 무수한 기독교인들은 이에 분노할 줄을 모른다. 원숭이보다 못하다.

6.
윤석열 정권이 부자들은 감세해 주면서 노인복지 예산을 줄이고 깎아도, 청년들의 일자리 예산, 하다못해 군대 보낸 자식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까지 줄이고 깎으면서, 대통령이 갈 곳, 안 갈 곳 마다하지 않고 해외에 쏘다니며 흥청망청 혈세를 낭비하거나 퍼주는 짓을 계속 해도 아무 소리도 못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 예산은 다섯 배, 고위 검사들이 흥청망청 산해진미 나눠먹고, 서로서로 용돈 나눠주고, 영수증도 남기지 않고 쓴 검찰 특활비가 뭐가 문제냐 하는 태도다. 불공평과 부정의에 대해 분노라도 표현하는 원숭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7.
원숭이들은 자기 새끼가 해를 당할 경우 어미가 나서서 목숨을 바쳐 상대와 싸우고, 무리가 달려들어 그 어미와 함께 새끼를 되찾아오는 용맹함을 보이지만, 멀쩡한 새끼가 길 가다가 참변을 당해 울고 있는 동료 인간을 향하여 연대와 위로를 나누지는 못할망정, 온갖 비정한 말로 공격하여 그 상처를 덧내는 기독교인이 한 둘이 아니다. 원숭이보다 못한 인간들이다.

8.
미국이 앞장서서 우리 바다 동해를 일본해라 불러도 미국에 항의의 표정도 짓지 못하는 팔푼이 행세를 하는 자들이 과연 미국이 노골적으로 편들고 있는 일본으로부터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국회에서는 독도를 지키기 위한 결의안도 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제 것 지킬 생각도 못하면서 바다 이름 빼앗아 가는 미일, 우리 땅을 제 땅이라 하는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겠다는 윤석열 정권을 일편단심 지지하는 기독교인을 보면 자기 무리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원숭이 무리보다 한 참이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9.
한국 기독교는 일제에 머리를 숙였던 과오를 가진 종교다. 강한 자 편에 서기를 좋아하는 종교는 더 강한 자 앞에서 배반을 일삼는 습성이 있다. 하나님은 강한 존재이므로 강한 자 편에 서야한다는 정서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미국을 숭상하고, 미국의 적을 우리의 적이라고 여긴다. 미국이 동해를 빼앗아 일본해라 이름을 바꾸어 일본에게 주어도 기독교인은 이에 분노할 줄을 모른다. 이런 기독교인은 언제라도 강한 지배자 편에 빌붙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제 무리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원숭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10.
연대감을 나누고 불의에 항거하며 평화를 지키는 일, 인간이나 짐승에게 똑같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에는 연대감도 없고, 정의감도 없으며, 평화를 지킬 능력도 없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원숭이들은 자기 자식과 자기 무리를 목숨을 걸고 지킬 줄 안다. 친미 친일에 빠져 동족을 원수로 삼고 있는 일부 목사들과 신도들을 보면 원숭이보다 못한 무리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숭이보다 못한 목사들이 앞장서고 원숭이보다 못한 신도들이 성조기와 일장기를 들고 그 뒤를 따른다. 분명 원숭이보다 못난 인간들이다.

 In Love

(사랑을 담아, 문학동네 2023, 신혜빈 옮김)를 읽고....
우리의 작은 독서모임에서 읽고 토론하던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이의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각기 연장 독서를 한다. 그 저자의 다른 책을 구입해 읽거나 그와 유사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몇 달 전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의 책을 읽은 후 에이미 블룸(Amy Broom)의 책을 읽은 벗이 내게 이 책을 권했었다. 당시 이 책을 찾아보니 초판이 매진된 상태여서 구할 수 없었다. 지난 주 동해 촛대바위 앞에서 함께 캠핑을 하면서 그 벗에게 그가 읽었던 책이라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교보문고 봉투에 담긴 이 책이 나의 집으로 배달되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최근 내가 주문한 책이 도착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벗이 재판되어 갓 나온 새 책을 나를 위해 주문해 준 것이었다.
엊저녁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에 잔잔한 울림이 이어졌다. 작가이자 심리 치료사인 에이미 블룸의 남편, 브라이언은 그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후 그의 기억이 남아있을 때, 두 발로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 그리고 분별력이 남아있을 때,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기로 작정했다. 그 남편을 지켜보며 조금씩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던 그의 아내 블룸은 남편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을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 동행하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을 마감하고 죽음을 앞당기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통틀어 그것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자살은 자살하는 이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이유에 따라 다양하다. 순교도 일종의 자살이고, 사랑에 실패하여 자기를 버리는 경우도 자살이며, 배반을 당하여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여기 포함된다. 이 이 모든 경우는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절망의 병이다. 그런데 그 절망은 간혹 속임수일 경우도 많다. 절망이 아닌 것을 절망이라고 여긴 경우다. 그런데 아주 드물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자살도 있다. 이 경우를 일러 합리적 자살이라고 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공포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무게는 어디까지 일까? 나는 나의 책 <인간의 마지막 권리>에서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오류가 아닌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것은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조력사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이미 합의된 사안이다. 이 책에서 브룸은 남편 브라이언의 선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공포가 현실이 됐다는 게 끔찍했을 거고 이것이 미칠 영향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라고(229쪽)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욘 포세(Jon Fosse)의 말처럼 시간 속에서 사람은 가고 사물만 남는다. 죽음을 겪는 것들은 모두 간다. 그런데 죽음만이 아니라 공포와 무의미에 짓눌리는 것은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부당한 것이다. 말로 듣고 생각하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경우의 자살이라 할지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신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 인간이 멈추게 하느냐고, 그것은 살인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들은 살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하다. 그 무서운 것이 자기의 것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
브라이언의 의지나 선택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의 뇌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주저 않고 있었다. 사실 인간의 몸은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100년을 전후하여 죽음에 도달하게 운명 지어져 있다. 불행한 경우 어떤 이는 조기에 죽음에 이르고, 어떤 이는 100세가 넘기까지 살기도 하지만 사실 늙어간다는 것은 일정 부분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몸의 죽음, 정신의 죽음, 욕망의 죽음, 사유능력의 죽음 등은 존재의 죽음 이전에 이미 찾아온다. 그래서 몽테뉴는 우리의 마지막 죽음은 1/3, 혹은 1/4의 죽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 이전에 부분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욱 무서운 것들이 있다. 고통, 소외감, 무의미, 독립성 상실, 단절, 그리고 기억 상실과 주체 상실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는 적거나 많거나 삶의 독립성을 상실한다. 그 중에서 사람에게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 자기 상실이다. 자기 상실은 시공간에서 존재가 이탈하는 것이다. 삶의 좌표 평면을 읽어낼 능력을 상실하여 시간도 공간에도 적응할 수 없게 되는 까닭이다. 삶의 질에 대한 논의와 삶의 지속에 대한 애착이 있을 경우라면 여전히 희망적 이다. 그러나 모든 논리와 삶의 질서가 순식간에 혹은 서서히 증발한하는 상태에 처하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상태가 확인되기까지 혼란의 시기가 몇 년 걸린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면밀히 추적되기 시작할 무렵이면 벌써 병이 한참 진척된 경우다. 브라이언의 경우 2년, 혹은 3년 전에 이미 발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렇게 확인이 된 후 알츠하이머는 평균 12년이라는 시간 속에 환자를 포로로 삼는다. 환자의 노력 여부에 따라서 그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끝은 자기 상실과 죽음이다. 브라이언은 알츠하이머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끔찍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 전에 방어할 길을 다방면으로 모색했다. 그 결과 츄리히 디그니타스로 가기로 결정하고 아내 브룸의 동의를 얻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겪는 공포보다 그의 가족이 겪는 고통의 양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는 것을 브룸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양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브라이언부부가 스위스 츄리히행 비행기를 타게 된 이유다.
미국에서도 의사 조력사를 허용하는 11개 주가 있다. 하지만, 각 주마다 입법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환자가 조력사를 받지 못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와 과정을 만들어 놓았다. 말기환자에게나 적용되는 조건과 동시에 건강한 사람이나 수행할 수 있는 독립적인 행동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룸과 브라이언은 미국에서보다는 스위스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출구를 찾고,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 브라이언의 마지막 여정, 스위스 취리히로 향하는 편도 여행을 떠난 것이다.
디그니타스에서 조력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충동이나 우울증, 염세적인 동기에서 조력사 도움을 청하는 경우는 모두 스크린이 되어 거절된다. 충분한 합리적인 이유, 그리고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온전한 정신, 자신이 투약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브라이언 부부는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 마침내 알츠하이머 포로 상태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 죽음의 과정은 두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일단 구토억제제를 음용하고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펜토바르비탈나트륨, 몰핀보다 50배 이상 강력한 약을 스스로 투약해야 한다. 2020년 1월 30일 오후, 디스니타스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감의 과정을 지켜보는 이의 가슴에는 사랑하는 만큼 눈물이 흐르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과 이해가 더해지는 울림이 있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여러 논의는 각자의 종교 전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스위스 디그니타스에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고령의 노인이거나, 고통이 없다할지라도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견딜 수 없는 장애나 고통을 겪는 사람인 경우다. 디그니타스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런 이들의 죽음을 돕는다.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이 극도로 손상되는 정황에 버려지는 경우, 디그니타스에서는 곤경에 처한 이가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여기고 그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돕는다.
나의 벗은 나의 책, <인간의 마지막 권리, 홍성사, 2019>를 읽을 때에는 내면에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책에서 내가 주장한 바가 이해가 되고 동의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어느 누군가는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무엇인가에 의하여 이미 결정된 한계 안에서 삶의 질과 의미를 박탈당하는 정황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경건한 신앙인은 극단의 한계마저도 신의 뜻이라 여기고 고통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신의 뜻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을 합리화하는 데까지 적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신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아주 특별한 경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죽을 권리“라는 개념은 삶을 구차한 이유에서 포기하는 자살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권리는 한 인간의 존엄성이 극도로 손상되는 경우를 전제한 개념이다. 극도로 존엄성이 손상되는 정황이란 어떤 수단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신체적이거나 정신적 고통“이 개인의 일상을 무의미하게 지속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다. 이 책에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뇌가 붕괴되어 기억을 상실해 가고 있는 정황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법의 이름이나 신의 이름으로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신의 이름이나 법의 이름으로 죽어가는 이를 고통 속에 속수무책 버려두는 입장을 택하게 된다.
2021년 독일 헌법 재판소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극도로 손상되는 정황에 처한 이에게서 국가 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죽음을 택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이나 국가는 그럴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런 인권침해를 간혹 신앙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한 인간을 고통 속에 지속적으로 버려두며 죽음은 적이고 삶의 지속 그 자체가 승리라고 여기는 신앙을 지키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태도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특별한 경우,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이들을 위하여 쓴 나의 책 제목을 <인간의 마지막 권리>라고 붙인 이유다.

Thursday, July 28, 2022

소크라테스는 왜 사형수가 되었을까?

 “오류”


1.
소크라테스, 그는 시대의 반역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죄명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불경한 자라는 것이었다. 그를 고발한 자들의 참소가 이어지고, 아테네 시민으로 구성된 500명의 배심원의 투표에 의하여 280 : 220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그 부당함에 항의하거나 비록 구차하게라도 도망칠 기회가 있었으나 모든 의도를 포기하고 "마지막 행위로서의 증언", 곧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숨졌다.

이 부당한 재판 과정에서 그가 남긴 말은 “깊이 숙고하지 못한 삶은 살 가치가 없다(Unexamined life is not worth of living.).”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인류사회는 그를 지혜의 스승이라 일컫고 있지만, 사실 그는 깊이 숙고할 줄 모르는, 그래서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던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철학자였다. 사유 능력을 결핍한 시대에서 철학자는 이렇게 버림을 받았다.

2.
아테네 시민들이 바라본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바라본 아테네 시민은 사실 서로에게 같은 의미의 판단을 주고받았다. “살 가치가 없다.”라는 의미에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깊이 사안을 헤아릴 능력이 없어 가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자들의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래서 깨우쳐 주고 싶었다.”라고 생각했다면,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의 근저를 흔들며 불안하게 만드는 경건치 못한 자, 그래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주어진 질서에 적응하거나 순복하지 못하도록 타락시키는 자, 그래서 죽어 마땅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목적이 달랐다. 그런데,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 자는 모두 잡아, 죽여야 한다는 지배자의 욕망은 왜 피지배자, 곧 힘없고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주장이 되는 것일까? 280 : 220. 나는 이 수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깊은 상징성을 가진다고 본다.

3.
나에게는 어느 시점부터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지 않았다가” 수십 년 만에 만난 소싯적의 친구들이 있다. 중고등부 시절 교회 친구, 청년 시절 함께 성가대를 하고 교회 학교 교사를 했던 친구들, 군대 친구들, 그리고 신학교 동기들... 하지만, 수십 년 지나온 시간 속에서 우린 나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공유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벗들을 만나면 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마음에 떠오른다. 그들의 패각 투표에 의하여 나의 사상과 신념이 사형 선고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을 간혹 받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 나의 주장을 하지 않고 조용히 듣는 편이다. 몇 주 전에는 그들의 초대에 의하여 그들의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수락산 계곡에 모여서 점심을 함께했다. 서로 헤어져 있는 사이에 나는 신학자 목사가 되었고, 그들은 교회 장로, 선교사, 사랑의 교회 신도, 온누리 교회 신도이니 우리는 우리의 젊은 날부터 셈하면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온 셈이다. 오랜 벗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으나, 나는 솔직히 그들과 함께 자리를 계속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어제도 군대 동기들의 모임에 몇 달 만에 나갔다.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의 성격도 위의 벗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친구는 문재인 정권의 부도덕함을 질타하면서 형편없는 윤석열이 정권을 잡게 한 원흉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나 역시 문재인 정권의 못난 점을 비판하곤 했지만, 매도성 원색 비난에는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조국 가족이 파렴치하다는 평가를 더 하고, 대학 교수라는 정경심이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여 딸의 입시에 사용한 사실을 들어 지식인 계층의 부덕성을 비난하면서 인간 이하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에게는 한명숙 전 총리 재판 결과도 명료하게 파렴치한 부패와 타락의 결과였다. 한명숙이나 조국 같이 부패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권을 뺏긴 것이라는 현실 진단까지 내놓았다.

옛 교회 친구들은 좌파 빨갱이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전광훈이 파로 해외 선교 활동한다는 벗은 “그렇게 북이 좋으면 좌파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버려!”라는 경멸조의 결론을 내렸다. 사랑의 교회에 나가는 벗은 국가 유공자 가족을 대변하는 듯 북한 정권과 북을 싸잡아 큰 소리로 비난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설교하러 갔던 나는 졸지에 그들에 둘러싸여 오후 내내 적대적 증오를 품은 언행을 하염없이 들어야 했다. 계속 주변에 여러 사람이 피서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과 판단이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는 기독교 신자 무리”와 어울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좌파, 빨갱이, 친북, 용공주의자를 상상하며 평생을 증오를 품고 살아온 것이다. 그들이 틀렸다고 비판하는 소리는 그저 좌빨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런 의식과 사고를 하고 있는 집단의 정신세계에 민주주의, 인권, 평화, 세계의 환경 위기라는 복잡한 사유체계가 어떻게 들어설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로 다가왔다.

4.
나는 교회 벗에게는 그저 몇 마디만 남겼다.

“우리가 젊은 날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자부하는 그대들이 어떻게 그리도 무시무시한 증오와 독설, 저주와 심판, 그리고 혐오를 가슴에 여전히 품고 있는가? 그런 그대들은 예수와 어떤 관계인가? 예수가 그대들에게 평생 증오와 독설, 저주와 심판, 그리고 혐오를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인가?”

나는 군대 동기 정 사장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

“이봐 정 사장, 자네는 비교적 양심과 의리를 지키는 상식인이라고 나는 믿네.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묻겠네. 자네 같으면 자네 딸을 앞에 불러 앉혀놓고 ‘자 동양대 표창장을 같이 위조하자. 그래서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네가 의학전문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하자.’라며 딸과 함께 모의하겠는가? 그게 아비로서 할 짓인가? 그런 짓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건가?”

그러자 그렇게 열을 내며 비방하던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며 아무 말을 못 했다.

“자네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정경심 교수는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확고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5.
정 사장은 이재명을 향해서는 정말 파렴치한 자라고 혀를 차며 분노했다. 김 모 씨와 불륜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향한 비방을 생각하면, 나도 어느 정도 의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정말 그런 행위를 했다는 물증이나 증거가 없으므로 의심은 하지만 단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재명의 형수 욕설을 인용하면서, “더러운 놈”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이재명의 형수가 동일한 내용의 언행을 정 사장 어머니에게 했다면 정 사장은 어떻게 반응하겠느냐?”고 물었다. 평소 정의감이 남다르고, 이미 돌아가신 모친에 대하여 각별한 정을 가진 친구는 다소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자기 어머니를 모욕하는 며느리에 대하여 이재명이 “되갚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도 그런 경우를 겪었다면 용서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적인 응대보다 좀 더 합리적인 응대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순간 “덕스러움을” 나는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일에 대하여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가?

6.
나에게 나의 친구 정 사장처럼 “어떻게 신학대학 윤리학 교수로 산 사람이자, 목사인 사람이 이재명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가? 당신도 같은 부류냐”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정 사장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판단에는 사실을 확인한 ‘사실 판단’이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을 듣고 미루어 판단하는 ‘추정 판단’이 있네. 나는 윤리학자로서 추정 판단을 공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네. 진실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는 마치 재판도 하기 전에 판결을 하는 행위와 같이 그릇된 일이네. 오로지 사실로 확인된 것에 근거한 판단만이 내가 공개적으로, 책임지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네.

예컨대 누군가 도둑이라고 의심이 간다고 하여 내가 공적인 세계에서 도둑이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 행위에 대한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의 판단은 대부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내리는 판단이고, 그런 판단을 자네가 유통해도 자네 주변에서는 그것을 틀렸다거나, 교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렇게 되면 추정 판단과 사실 판단을 혼동하면서 선거 때마다 의도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흘리는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게 되는 것일세.”

7.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것은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단에 따른 민주적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소크라테스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그를 법정에 고발한 아테네 지배 계급들의 음흉한 의도와 면밀한 기획에 선동을 받아 배심원들이 저지른 오판이었을까? 배심원 배후에서 과연 누가 웃었을까?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죽음은 이렇듯 사유 능력이 빈약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대중, 자신들의 판단 오류를 인지할 능력이 없는 집단이 저지른 죄의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판단의 오류를 비판해주거나 지적할 이웃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세계가 초래한 불행, 비극이 아닐까?

8.
나는 나의 교회 벗이나 군대 벗들의 분노를 이해는 한다.

그들은 평소 착한 기독교인으로 평화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했기 때문에 “북한을 평화의 파괴자라고 인식하는 순간” 가슴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자신을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나의 친구 정 사장은 평소에 합리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으로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정경심 교수를 향하여” 분노하는 것이다. 평소 다소간의 불륜적 상상은 해도 정작 불륜에서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만 들어도” 그는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노가 과연 의로운 분노인가?

나는 나의 벗들이 “조작된 허위 진실”에 의하여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깊이 숙고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들은 왜 사형수가 되었을까?

광주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요람이 된 것은 광주시민들이 "군부에 의해 조작된 허위 진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을 사형수로 만들었던 세력을 믿을 수 없었다.

9.
전쟁 당사자들은 상대를 당연히 악마로 몬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재산, 내 나라를 짓밟은 무리룰 향해 서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사악한 자들이여!” 분단된 나라 남쪽에서는 북을 “사악하다”라고 하고,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대대로 살던 땅이 초토화되고, 형제자매 부모를 잃은 북은 남을 향하여 “사악하다”라고 한다.

나는 한 편의 주장에만 현혹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잘못은 미련하게 내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형제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인간이 된 것이다. 한 편은 천사, 한 편은 악마가 아니다. 내 눈에는 둘 다 악마 노릇을 한 것이다. 악마는 원수 맺기와 증오와 다툼으로 우리를 내몰아간다.

왜 예수를 따른다며 평생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 증오와 혐오, 미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는가?

10.
부정직한 지배자들은 사실이나 진실을 감추고 지배가 용이하도록 조작한다. 진실을 몰랐던 우리는 광주 민주항쟁에 참여한 이들을 폭도라 여겼던 경험이 있다. 이 조작된 인식을 바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 백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삼기 위해 성서의 진리를 조작했다. 하나님이 유색인종을 열등한 종족으로 만들어서 노예로 살아가도록 섭리하셨다는 주장이다. 인종차별의 뿌리 깊은 악이다.

-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기 쉽도록 조작한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고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사회적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랫동안 진리처럼 굳어진 억압 규범 체계, 곧 가부장주의다.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이 비판 없이 유통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하나님은 남성이다. 이런 주장은 틀린 것이다.

- 나는 검사들의 주장을 믿지 않는 사회가 민주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도대체 재판이 3심까지 왜 필요한가? 나는 심지어 검사만이 아니라, 판사들의 판단도 절대적이라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옳을 수가 없다. 그들이 늘 옳다면 하나님의 심판이나 역사의 심판은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11.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배심원, 나는 소크라테스의 자리에 조국을, 한명숙을 넣고, 아테네 배심원의 자리에 우리 국민을 대입시켜본다. 현재로서는 아테네의 배심원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판단이 나올 것이다. 나의 옛 교회 친구들이나, 나의 군대 친구 정 사장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of living.“

“깊이 숙고할 줄 모르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풀어 말하자면, “깊이 숙고할 능력을 결핍한 경박한 삶은, 말은, 판단은 가치가 없다.”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 말인가?
그리고 무서운 말인가?
그리고 Unexamined life를 살아온 자들에게 우리 생명, 재산, 우리 자식들을,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12.
한 가지, 더,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증오하여 죽임으로 넘겨주었지만, 사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사랑했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가치 있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다가 아테네 시민들의 판단에 의해서 죽임을 겪어야 했다. 한 편은 영문도 모르고 증오했고, 한 편은 자기를 죽이려 드는 이들을 사랑했다.

예수 역시 예루살렘 거민들의 분노와 조롱과 저주의 소리 “저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증오나 미움, 혐오, 살의를 가르친 적이 없다. 그것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이다.